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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4

    루미는 자신을 그윽하게 감싼 고요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은 채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운 한때의 기억.

    그건 자신이 아직 세상의 어떤 더러움도, 처절함도, 추잡함도 모르던 시기였다.

    가끔은 눈이 계속 보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눈이 보이게 된 후부터, 루미에게 세상은 늘 의심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으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땐, 이렇게 그저 자신이 붙잡은 손의 온기와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데.

    이 안락한 어둠 속에서 오로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소리를 듣고, 생각을 나누는 것만 해도 행복했는데.

    그 때, 자신의 손을 잡은 방향으로부터 살짝 위에서, 걱정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미? 괜찮은거니?”

    엄마의 목소리.

    그에 루미는 고개를 더욱 숙이며 대답했다.

    “괜찮을리가 없잖아요.”

    이제는 떠올릴 수 있게 된 그녀의 얼굴을, 표정을, 도저히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 다시금 그녀로부터 질문이 건네어졌다.

    “왜?”

    “지금 그걸 몰라서 묻나요?”

    “전 오늘 당신이 한 짓을 들었어요! 제 눈을 팔고, 절 마치 끔찍한 것처럼 생각하셨다면서요!”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루미는 결국 폭발하듯 쏟아내었다.

    “그동안 저한테 해주신건 전부 거짓이었던건가요? 절 대체 얼마나 비참하게 하려고 하시는 거냐고요!”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동안 자신을 길러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사랑이 아니었다니.

    그저 싸구려 죄책감일 뿐이었다니.

    루미는 그동안 그녀가 해준 모든 행동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루미에게, 여성은 체념한 듯 조용한 사과를 꺼냈다.

    “미안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탁.

    루미는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처럼 어깨를 감싸오는 손길을 쳐냈다.

    사과따위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차라리 그녀가 부정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자신을 사랑한다고, 그 사람들이 했던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그랬으면 그래도 믿어주는 척,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돌아갈 수 있었을텐데.

    “가요. 싫어하는 사람 데리고 있느라 고생하셨네요.”

    그렇게 아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말았다.

    이제 아무것도 보기 싫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

    배신감과 참담함에, 루미는 소리죽여 흐느껴 울었다.

    우는 건 약점을 내보이는 것 같아 최대한 참고 참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눈이 뜨이고 유일하게 좋았던 건, 그동안 상상으로만 보았던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거.

    그것은 루미의 짧은 일생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장면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그 표정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루미는 그녀의 지금 표정이라도 보기 위해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엄마?”

    이미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고요한 어둠 뿐.

    그리고 그 순간, 루미는 그동안 자신이 어둠 속에서 포근함과 안락함을 느꼈던 건 그저 어둠이 익숙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 어디있어요? 엄마!”

    “엄마아!”

    루미는 단말마같은 외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땀으로 축축해진 몸이 식기 시작하자, 서서히 이성과 감각도 돌아오기 시작한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감촉, 그리고 익숙한 바닥의 형태.

    자신이 있는 곳을 깨달은 루미는 천천히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긴, 우리 집이잖아……?’

    어라, 왜 집에 있는거지?

    오늘 아침에 분명 집에서 나갔었는데.

    설마, 오늘 있었던 일들은 전부 꿈인가?

    그러면, 엄마는…….

    그 때였다.

    “저런, 악몽이라도 꿨나보지?”

    “으아아악!”

    어찌어찌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의 목소리가 들리자 루미는 굉장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인 언니……?”

    사실, 그녀의 존재는 루미에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현실에 있다는 건, 오늘 벌어진 그 악몽같은 일들이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뜻이 되니까.

    하지만 그보다 먼저, 루미는 어째서 그녀가 자신의 집에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여기에…?”

    극도로 경계하며 묻는 루미의 질문에 루크는 읽고 있던 노트를 조용히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네 ‘단골’ 가게에 가서 물어봤다. 지금 당장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말이지.”

    “네? 그 꼬치가게 아저씨가요?”

    루미는 당혹감과 배신감에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 아저씨는 뭔데 처음보는 사람한테 집을 다 알려주고 있담?

    외부인에대한 경계심도 없는 건가?

    루미는 앞으로는 그 꼬치집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것이라니…….’

    루미는 그녀가 자신에게 확인하고 싶을만한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하다 문득,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급히 자신의 주머니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루미의 반응에 루크는 조용히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루미, 혹시 이걸 찾느냐?”

    “그, 그건.”

    루크가 꺼내보인 물것을 확인한 루미는 새하얗게 질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이 그녀에게서 훔쳤던 은빛의 반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루미는 처음 그녀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설 때 반지를 슬쩍했었다.

    처음엔 약값을 위해서였고, 나중엔 약을 구매할 때 혹시나 값이 모자라면 보태려고 했었지.

    “도, 돌려주려고 했어요.”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일단 돈때문에 훔치긴 했지만, 막상 그들의 약이 엄마의 병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엔 쓸모가 없어져버렸으니까.

    ……뭐, 내일이면 마을에서 나간다고 했으니까 정말 돌려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겠지만.

    그러나 루크가 루미에게 보인 반응은 꽤나 의외였다.

    “역시. 넌 이게 보이는 거로군.”

    탓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닌, 그저 보이는 걸 보인다고 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그에 루미는 루크가 이해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네? 그야 눈이 있으니까 보이죠? 뭐가 이상한건데요?”

    그런 루미의 질문에 루크는 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끼워넣으며 대답했다.

    
”틀렸어. 이건 아무한테나 보이는 물건은 아니거든.”

    반지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은 시가르마타의 권능이 녹아든 외장형 서클이다.

    이러한 권능과 마력의 집약체에는 기본적으로 인지조작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반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루미는 별다른 집중도 않고 이 반지를 보았을 뿐 아니라, 훔치기까지 했다.

    그렇다는건…….

    그녀의 눈이, 평범하지 않다는 뜻이다.

    루크는 루미의 턱을 들어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마치 예상했던 듯 말했다.

    “역시 네 그 눈은 마력시였던 모양이야.”

    “네? 마력시라고요?”

    마력시라니, 처음듣는 이야기에 루미의 눈이 커졌다.

    “일단, 따라와라.”

    —-

    루미가 루크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어머니의 병상이었다.

    뭐, 병상이라해봤자 그냥 특별할 것 없는 침대에 불과할 뿐이지만.

    루크는 그녀의 팔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살점하나 없이 마치 육포처럼 말라붙어서 앙상해진 팔목은,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라질 것 같이 연약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는 미약하게나마 마나가 순환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미약한 생명반응도 이젠, 꺼질 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지?”

    “제가 눈을 뜨고 난 다음부터니까 1년 정도요.”

    “그렇군.”

    1년 전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일반인은 어제와 뭐가 달라졌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다.

    하지만 루미는 당연하다는 듯 알아차리곤, 어떻게든 약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녀의 몸 안에서 발생한 이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또한 루미가 마력시라는 증거가 되리라.

    “너도 보이겠지만, 오늘을 넘길 순 없을거다.”

    루크는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자신이라해도, 운명에 주어진 생명이 다한 사람을 되살릴 순 없다.

    그건 신성력으로도 어려운 일이니까.

    사실, 그녀가 이정도까지 버틴 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기적이다.

    하지만, 루미는 그 사실에 슬퍼하기보다 한껏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겠죠. 다행이네요.”

    도무지 방금 전에 엄마를 부르짖으며 몸을 일으켰던 아이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목소리에 루크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다행이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루크의 물음에, 루미는 병상의 그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제 해방이잖아요. 절 그렇게나 싫어하셨는데.”

    “싫어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다 알아버렸어요. 제 눈을 팔아버린게 엄마였다는 걸요.”

    루미는 그렇게 담담하게 자신이 알게 된 모든 일들을 루크에게 털어놓았다.

    그녀가 자신의 눈을 팔아버린 돈을 전부 탕진한걸로도 모자라, 평소에 자신에게 갖고있던 감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을.

    루미는 그런 하소연이 누구에게도 공감 받지 못하는 꼴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루미의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루크는 곤란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에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는 듯 싶구나.”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루미의 물음에, 루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마나를 볼 수 있는 건 마법사에게는 축복이지.”

    마나가 보인다는 건, 단순히 마나를 보는 것 이상의 능력이다.

    남들과 다른 시야는 곧, 남들과는 다른 관점을 선사하는 법이니까.

    그러한 관점과 관념이 능력과 직결되는 마법사에게는, 마력시는 매우 유용하고 훌륭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저주와 같아.”

    왜냐하면, 마력시는 그것을 지니는 것 자체만으로 마나의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마나는 이성과 생명의 힘.

    만물이 마나로 이뤄진 세상에서, 마나를 소모한다는 것은 곧 수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러니까 너는, 그동안 눈이 없었기에 살 수 있었던 거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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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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