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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4

        

         

       숲이 떨린다.

       슬그머니 평원을 지나친 바람이 숲에 다다르고, 나무 사이사이를 통과하며 갈라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쪼개지며 나뭇잎 사이를 달리기도 하고, 나뭇잎을 간질이고 풀을 흔들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나뭇잎 아래에 매달려 자고 있던 벌레들은 떨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기도 하고, 화들짝 놀란 나비는 날개를 펼쳐서 날아오른다. 새들은 모습을 드러낸 벌레를 잡기 위해 퍼덕거리며 날갯짓하고 벌레를 부리에 물고, 어떤 새는 종종 뛰어 꿈틀대는 벌레를 먹는다.

         

       그리고, 무언가 역시 날개를 펼친다.

       잠자리처럼 얇은 날개를 펄럭인다. 얇다 못해 비치는 듯한 투명한 날개는 활짝 펼쳐졌고, 조금 큰 벌레 크기의 몸은 투명한 날개 덕분에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사람의 것을 닮은 두 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이고, 사람의 것처럼 보이는 팔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그리곤 벌레를 닮은 것 같기도, 사람을 닮은 것 같기도 한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날개를 움직여 널따란 나뭇잎으로 나아간다.

       그리곤 어린아이 손만 한 몸을 그 나뭇잎 위에 얹는다.

         

       그 형상은 영락없는 요정이었다.

         

       요정 모방체처럼 기괴하고 이질적인 형상의 그런 요정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보는 만화에 나올법한 정말 예쁘고 귀엽고 깜찍한 요정 말이다.

         

       동화책에서 나올법한 주인공을 조력해주는 귀엽고 깜찍한 요정.

       투명한 날개에서는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지고,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그런 요정이다.

         

       게다가 몸에서 발하는 은은한 광채는 또 어떻고.

       푸른색의 광채는 은은하게 발하며 숲을 밝혀주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푸른빛을 발하는 빙하를 보석 형태로 깎으면 저런 빛이 나올까 싶었다.

         

       그리고 그 요정 아래로, 병정들이 있었다.

         

       요정의 근처를.

       아니, 요정이 자리한 공터 전체에 빼곡하게 차 있는 수많은 병사.

         

       그 무리는 두 가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무리는 열정적인 붉은색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갈라져 있는 머리는 불꽃처럼 뻗어 있었고, 그 중앙으로 가면 태양의 빛을 그대로 뺏어온 듯 샛노란 색이 보인다. 나무꾼을 연상케 만드는 금색 수염을 두르고, 꼿꼿하게 자리에 서 있다. 가느다란 몸이었지만 나무 못지않게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초록색 장갑을 낀 듯 단단하게 손을 말아쥐었다.

         

       한 무리는 주위에 잘 녹아드는 초록색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같은 색상이지만 제각각 모습은 달랐고, 그들의 개성은 오직 다른 형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있는 뾰족한 머리로만 구분되었다. 다만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은 꽤 날카로운 것들이라서, 저것에 베인다면 피를 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두 무리는 공터를 반반씩 차지한 채로 요정을 바라보고 있었고, 요정은 나뭇잎에 앉은 채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태양이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오기를 기다렸다가-

         

       벌떡 일어나서, 팔을 허공에 쭉 뻗으며 외쳤다.

         

       [ 돌격! 돌격하라! ]

         

       돌격! 돌격! 돌격!

         

       요정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환호하듯 손을 올렸다.

       무기를 든 손을 높이 치켜들고,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며 호응한다.

       그리곤 일제히 발을 구르며, 오와 열을 맞추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숲과 밭의 경계에 도달하였을 때.

         

       [ 작전 시작! ]

         

       그들은 각자 할당받은 구역으로 향했다.

         

         

         

        * * *

         

         

         

       농사를 짓는 일은 힘든 일이다.

       그것도, 존나게 힘든 일.

         

       일단 농장이 더럽게 넓다는 것은 기본.

         

       빌어먹을 놈의 트랙터는 틈만 나면 고장이 나고, 자가 수리를 질리도록 해서 구조가 훤할 정도다. 농장이 망하면 트랙터 공장에 가서 취직하면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전통적인 농약 살포용 기계인-그것도 기름을 존나게 더럽게 많이 처먹는- 헬리콥터 대용으로 쓰기 위해 구입한 농약 살포용 드론은 프로그램인지 뭔지 뭐가 이리 복잡한지, 학생 시절에도 해본 적 없는 공부를 하게 만들어 머리를 아프게 하고.

         

       남북전쟁 시절에 지어진 주제에 지금까지 멀쩡히 서 있는 창고는 누더기나 다름이 없어서 직접 수리해야 하고. 거기에 머리통만 한 크기의 존나게 큰 쥐들은 뭐 그리 많은지, 창고에 가면 가족 단위로 이 빌어먹을 쥐새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쥐 잡으라고 고양이를 길러봤는데, 고양이가 이 쥐새끼들한테 물려서 죽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빌어먹을, 죽일 놈의 쥐새끼들이다.

         

       벌레는 또 더럽게 많다.

       집에 있어도 벌레를 보고, 농장으로 나가도 벌레를 보고, 창고로 가도 벌레를 본다.

       심지어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기 힘든 이 빌어먹을 벌레들 때문에, 그의 자식은 어릴 적 벌레를 볼 때마다 그렇게 경기를 일으켰더란다. 물론 지금에야 조금 익숙해진 듯은 하지만, 그래도 벌레를 싫어하는 거야 본능이라 집으로 잘 오지 않게 되었으니….

         

       하.

         

       좋은 것이 없다.

       지긋지긋하다.

         

       해마다 몸이 부서져라 기계를 정비하고, 풀떼기를 기르고, 집채만 한 동물들을 라이플을 들고 쫓아내거나 죽이고, 간신히 길러낸 작물은 수확하고, 관광용으로 심은 것들은 계속 신경을 쓰고….

         

       옛날이었다면 그냥 기르기만 하면 되련만.

       요새는 뭐 트렌드니 뭐니 그렇게 따져야 하는 게 많은지 원.

       학생 시절에 공부하지 않은 자신에게 원망이 들 정도다.

         

       아니, 집안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니 그냥 핏줄 자체가 머리가 안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자식은 그와는 다르게 머리가 꽤 좋은 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학창 시절에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그래.

       그러니까.

         

       농장 일은 엿 같고.

       그는 자기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세상에는 자신이 모르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 올바른 주거 환경 보장하라! 』

         

       『 우리는 이렇게 방치되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해도.

         

       그의 눈앞에 보이는 이 상황은, 그가 머리가 나쁘다거나 상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음.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에 속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Shit….”

         

       보인다.

       똑똑히, 두 눈에 그것들이 보인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똑똑히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는 하는데.

       애석하게도 존나게 잘 보인다.

         

       식물이.

         

       식물이, 시위하고 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헛것이 아니다.

       아니, 헛것 같은데….

       헛것이지?

       저게 현실이 맞나?

         

       농장 주인은 눈을 비볐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퍼억!

         

       그런데도 믿기지 않는지 주먹을 돌덩이에 휘둘러보기까지 했다.

         

       왜 얼굴에 휘두르지 않냐고?

       그럼 주먹과 얼굴 둘 다 손해를 보는 것 아닌가.

       그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이지, 멍청한 것이 아니다.

         

       “…진짜네.”

         

       주먹에서 느껴지는 통증.

         

       당연하다.

       단단한 돌덩이에 주먹을 휘둘렀는데, 안 아프면 이상한 것이겠지.

       능력자도 아닌데 당연히 아픈 게 정상이다.

         

       그리고 이 통증은 역설적으로.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더 이상 회피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음. 역설적-이라는 표현이 맞나?

       하지만 꿈인게 더 나을 것 같은 상황인데, 아무튼 엿같은 뭔가는 맞지 않을까?

         

       『 친환경 농업 보장하라! 』

         

       『 우리는 농약을 원하지 않는다! 』

         

       …그렇게 그는 받아들였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대신, 꿈 다음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떠올렸다.

         

       “와이프가 어느새 마약중독자가 되어 있었나 보군. 환각이 센 걸 보니 LSD인가? LSD를 소금 대신에 식사에 처넣은 게 분명해….”

         

       빌어먹을 약에 취해서 환각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다.

         

       “아닌가? 나를 마약중독자로 만들려고 하나? 빌어먹을. 어떤 놈이랑 붙어먹은 거지?”

         

       …그래.

       틀림없이 그게 맞다.

         

       농장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가?

       식물들이 지금 시위하는 환각이 보이는데?

         

       일단 잠을 자야 한다.

       잠을….

         

       그럼 약 효과가 끝나고, 저 빌어먹을 환상도 사라지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

       …

       …

         

       “이런 빌어먹을. 그대로잖아.”

         

       아.

       신이시여.

         

       시간이 흐르고, 꿀 같았던 단잠은 끝났다.

       하지만 그런데도 식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들을 무시한 그에게 화가 나기라도 한 듯이, 집 근처로 좀 더 다가와 있는 상태였다.

         

       『 농장 주인은 각성하라! 』

         

       『 화학비료 대신에 구아노를 달라! 』

         

       『 잡초 제거제 대신에 인력을 사용하여 잡초를 제거하라! 』

         

       『 울타리를 설치하여 사람의 출입을 막아라! 』

         

       『 무참히 밟히는 새싹! 짓이겨지는 꽃잎! 』

         

       『 농장 주인은 우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 』

         

       심지어 그를 규탄하는 글귀는 더 늘어나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 주워온 지 알 수가 없는 저 종이를 사용해서 만든 판때기에 적힌 글자들….

         

       하.

         

       “무슨 이런 미친 일이 다 있지?”

         

       소리 없이 이상한 내용의 판때기를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저 식물들이라니.

         

       무슨 극장에서 상영하는 만화영화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일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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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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