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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5

        

       알 수가 없다.

         

       『 언제까지 농작물의 말을 무시할 것인가! 』

         

       이해할 수도 없다.

         

       『 농장주는 어서 나와 협상하라! 』

         

       이해하기도 싫다.

         

       이해할….

         

       하.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농장 주인은 창밖에서 눈을 돌리곤 성경을 꽉 쥐었다.

       그리고 신실한 이들이 그러하듯, 기도하면서 빌었다.

         

       제발 저 사악한 마귀들이 물러나기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빌어도 빌어도 저 살아 움직이는 불경한 농작물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저 농작물들의 눈-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리처럼 움직이는 꽃의 적당한 부분에 있는 점 같은 부분-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자신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차오르곤 하였다.

         

       『 고작 저딴 풀떼기에 덜덜 떨고 있는 거야? 』

         

       미국인.

       마초다움을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인으로서의 자아가 그에게 속삭인다.

         

       어째서 고작 저런 것 따위에 겁을 먹었냐고.

       계집애도 아니고 저딴 것에 겁먹어서야 어디 남자라고 떠들고 다닐 수야 있겠냐고.

       저딴 걸로 겁을 먹는다면 너는 남자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학창 시절에 그렇게 무시했던 게이나 멍청이 같은 놈들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속삭임은 그의 감정을 참으로 자극하는 것이라서.

       그래서 발끈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그 순간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딱 봐도 맞으면 아플 것 같은 철퇴와 창칼.

         

       꽃 대가리는 양손에 철퇴를 들고 있었다.

       아니, 저것을 들고 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그래.

       손 자체가 철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줄기로 이루어진 팔의 끝에는 둥그런 주먹이 달려 있었는데, 안에 돌덩이가 들은 것인지, 아니면 식물들을 극도로 압축을 하기라도 한 듯 단단하고 무거웠다. 그 자체의 무게만으로도 꽤 위협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당장 저 식물의 몸에서 팔을 뽑아다가 붕붕 휘두르면, 음. 뼈를 부러뜨리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시퍼렇게 멍이 들게 만들 수는 있겠지.

         

       그리고 다른 농작물은…. 창과 칼을 들고 있었다.

         

       알로에를 뽑아다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

       날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멀리서도 그 예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짧게 자른 알로에는 칼.

       길게 자른 알로에는 창.

       짧은 알로에에 나무막대기를 꽂아서 만든 장창.

         

       알로에를 든 농작물들은 그렇게 세 가지 종류의 무기를 든 채 진영을 이루고 있었는데, 장창을 든 농작물이 가장 앞에 서 있었고, 그 뒤로 창을 든 농작물이 있었으며, 가장 뒤쪽에는 칼을 든 농작물들이 보기만 해도 눈에 거슬리는 글귀를 높이 쳐들며 그에게 무언으로 시위하고 있었다.

         

       아마 저 안에 뛰어든다면….

       알로에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걸레짝이 되는 것은 기본이겠지.

         

       그렇기에 농장 주인은 감히 저 농작물들에 달려들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머리가 안 좋은 게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안 했을 뿐이니까.

       그의 나쁘지 않은 머리가 내놓는 답으로는…. 저 안에 뛰어든다면 좋은 꼴을 보기가 어려웠다.

         

       독충이 우글거리는 구멍에 몸을 던지는 것은 용기가 있는 행동이 아니다.

       멍청한 것이지.

         

       그는 다윈 상을 받는 명예를 얻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렇기에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 농장주는 협상하라! 협상하라! 』

         

       물론 숨는 것과 무시하는 것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있긴 했다.

       저 농작물들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뭘 믿고?

         

       뭘 믿고 저 농작물과 협상하겠답시고 밖으로 나간단 말인가?

       저 농작물이 실제 말을 하는 게 맞는 건지도 의심스러운데?

       그냥 사람 뜯어먹는 것을 즐기는 흉포한 농작물일지도 모르는데?

         

       아무 생각 없이 협상하겠다고 나갔다가, 그대로 뜯어먹히게 된다면 누가 책임을 지냐 이 말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저 농작물들이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남자는 계속해서 기도를 외웠고….

         

       어느 순간, 그는 꾸벅 졸기 시작했다.

         

       사람의 정신이라는 게 강철과 같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렇기에 피로를 이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남자는 꿈나라로 향했고….

         

       …

       …

       …

         

       바스락.

       바스락.

       사각.

         

       집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를 듣고, 퍼뜩 눈을 떴다.

         

       “무슨 소리지…?”

         

       몸이 무겁다.

       강에 들어갔다가 나온 청바지처럼 몸이 무겁고, 몸 이곳저곳에 통증이 느껴진다.

       머리가 멍하고, 약간의 두통마저 느껴진다.

         

       졸다가 깨어났을 때의 그 느낌이다.

         

       거기에 현실감도 잘 느껴지지 않고, 왠지 모르게 몸이 휘청이는 느낌도 든다.

       몽롱하고, 지금 들리는 소리가 꿈에서 나는 소리인지 현실에서 나는 소리인지도 제대로 구별이 되지를 않는다.

         

       바스락.

       바삭.

         

       하지만 그 의심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무를 긁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쥐…?”

         

       그 소리는 그가 익히 아는 소리였다.

         

       쫓아도 쫓아도, 죽여도 죽여도 쥐가 나오는 빌어먹을 창고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

       열심히 고쳐놔도 쥐가 심심할 때마다 갉아대며 구멍을 뻥 뚫어놓는 그 빌어먹을 곳에서 나는 소리다.

         

       소리.

       쥐가.

       쥐가, 집을 긁는 소리….

         

       “…잠깐만. 밖에는 그것들이 있는데…?”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남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쥐가 집을 긁어서 구멍을 뚫는다고?

         

       불경하기 짝이 없는 농작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벽에 걸어둔 총을 집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미친 듯이 뛰어가며, 잠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제대로 말을 들어 먹지를 않는 손으로 어떻게든 탄환을 넣었다. 그리고 쥐가 보이자마자 쏠 준비를 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소리가 나는 쪽은 뒷문이 있는 쪽…이었는…데.

         

       “…이거, 꿈인가?”

         

       뒷문에 도착한 남자는 장전된 총을 쏘지도 못한 채, 황당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뒷문.

       아니.

       뒷문이었던 것에 있는 것은, 쥐였다.

         

       그래.

       거기까지는 이상하지 않았다.

         

       쥐 소리가 들렸으니까, 당연히 쥐가 있겠지.

         

       그런데….

         

       그 쥐가, 잔뜩 있었다.

         

       잔뜩.

       음, 대충 세어봐도 20마리는 넘어 보이는 숫자의 쥐가, 뒷문을 박살을 내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쥐 떼는 이빨이 무슨 금속으로 되기라도 한 것인지 쉴새 없이 뒷문을 갉아먹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가 직접 달았던 꽤 두꺼운 두께의 나무 문은 걸레짝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강도가 샷건을 들고 쳐들어와서 문에 난사한다고 할지라도 저 정도는 안 망가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

         

       찍.

         

       저 쥐새끼들이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것인지, 도망을 안 간다.

         

       평소에는 사람 발소리만 들려도 혼비백산하며 도망을 가던 놈들이 그가 있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무시만 하면 다행이지.

       개중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를 가진 큼지막한 쥐 한 마리는 ‘뭘 봐? 가던 길 가쇼.’ 라고 말하는 것처럼 건방진 태도로 ‘찍’ 하고 울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어서 안 꺼지냐는 듯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기까지 하다.

         

       “당장 꺼져!”

         

       게다가 더 놀라운 건 말이다.

         

       찌-익.

       

       고함을 지르면서 총을 겨눴는데도, 그 건방진 태도가 그대로라는 것이다.

       도리어 ‘그거 쏘면 감당이 될까?’라고 역으로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찍 하고 울더니, 여유로운 태도로 몸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정말 기가 차는 광경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반란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어디 뭐 이상한 거라도 먹고 저러고 있는 건가….

         

       남자는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약을 빤 것도 아닌데 약을 빤 것 같은 현실이 다가오다니.

       이게 대체, 대체 무슨….

         

       남자는 도무지 믿기 힘든 현실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스트레스 때문인가.

       감기인가.

         

       그의 이마가 왠지 뜨겁게도 느껴졌다.

         

       남자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였는데….

         

       그 순간, 쥐들이 꺼내는 팻말을 보고, 숨을 토해냈다.

         

       『 농장주는 농장에 사는 모든 생명의 생명권을 존중하라! 』

         

       씨발.

         

       “너네도 시위대냐?”

         

       찍.

         

       남자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듯 찍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존나게 큰 쥐.

         

       이건….

       이건…!

         

       “오, 신이시여.”

         

       울고 싶다.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남자는 눈을 감았고, 이내 현실을 외면하려는 듯 등을 돌렸다.

         

       방으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

         

       “…너희는 또 뭐냐?”

         

       가는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왔던 길은 쥐들로 막혀 있었다.

       뒷문으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어디 다른 경로로 해서 들어온 별동대라도 되는지.

         

       사람 머리통만 한 쥐들이 빼곡하게 그가 왔던 길을 막고 있었고, 몸을 일으킨 채 어깨동무하고 있었다.

         

       그래.

       어깨동무.

       그것도, 미식축구에서 볼 수 있는 어깨동무다.

         

       미식축구 선수들이 어깨를 맞대고 버티는 것처럼, 그들은 단단하게 붙은 채 길을 막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F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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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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