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76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농작물들이 시위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방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쥐들이 길을 막고 있으니까.

         

       …어떻게 하지?

         

       농장 주인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넋이 나간 듯 스크럼을 짠 쥐들을 바라보았고, 저 쥐들을 지나치면 나올 자신의 낙원이 있을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포기하기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위로 들고는, 한숨을 푹푹 쉬고는.

         

       하아.

         

       콰앙!

         

       벽에 머리를 세게 박아버렸다.

         

       쾅!

       쾅!

         

       제발 제정신으로 돌아오라고 애원이라도 하듯이 머리를 쾅쾅 벽에 박았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자신이 보는 풍경이 변함이 없자, 그는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쥐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명백히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 우리는 하나로 뭉쳐서 투쟁한다! 』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쥐들이 팻말을 들어 올렸다.

         

       시위 문구처럼 보이지만, 협박이나 다름없는 글귀였다.

         

       자신들을 건드리면 그 순간부터 농작물과 쥐들 전부 너에게 덤비겠다는 협박 말이다.

         

       그 협박을 본 농장 주인은 입매를 비틀었다.

       하지만 그저 표정만 썩어갈 뿐, 그들에게 덤비지는 못했다.

         

       저들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가는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데….

       배가 뒤틀리는 느낌이다.

         

       배가 뒤틀리고,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동시에 미국인들의 DNA에 자리 잡은 반골 정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 너희가 뭔데? 」

       「 응 안 해. 안 따라. 시키는 대로 안 할 거야. 」

       「 어 안 할 거고, 엿 먹어. 」

         

       찍어누르면 더 강하게 반발하고, 위에서 시키면 안 한다는 말부터 튀어나오게 만드는 바로 그 정신이다.

         

       그 정신이 지금, 농장 주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저 새끼들이 시키는대로 정말 할 거냐고.

         

       그리고 농장 주인은 마땅히 미국인의 습성에 따라 ‘엿 먹어.’라고 외치면서 저 새끼들의 의지에 반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고.

         

       스윽.

         

       쥐들이 먼저 양보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이 정도는 배려해 줄 수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차피 볼 일이 많은데, 굳이 오늘 끝장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농장 주인은 그런 쥐들의 태도에 짜증이 나면서도, 쥐들을 지나쳐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일을 했다.

         

       “Hello? 911입니까? 신고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자신의 세금을 빨아먹는 빌어먹을 놈들이 그 돈으로 하는 평점 낮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 * *

         

         

         

       남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 신고가…. 음.

       제대로 접수되기는 힘들었다.

         

       [ 911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 예. 침입자가 농장에 들어왔다고요. 집에도요? 예. ]

         

       [ 침입자는 몇 명인가요? 많다고요? 예. 그들의 인상착의와 무장 상태를 알려주시겠어요? ]

         

       [ 예. 무장 상태는 원시적인 창칼 수준이고…. 네? 인상착의를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

         

       [ 그러니까 창칼을 들고 있는 침입자는 걸어 다니는 식물이고, 집 안에 침입한 침입자는 쥐…라는 말씀이신가요? 아, 쥐들 크기가 사람 머리통만 하다…? 단체로 스크럼도 짰다…? 네. ]

         

       [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창칼을 든 다수의 식물, 사람 머리통만 한 쥐가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침입했다는 말씀이시죠? 네, 농장에. 농장에…. 네. 저항하기 위해서 총을 들고 계시다? 싸우면 문제가 일어날 것 같으니까 참고는 있는데, 위험하다고 판단이 될 때 총으로 싸우시겠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

         

       [ 예. 신고하신 내용대로 관련 부서와 연결을 하였고, 담당 경찰이 곧 방문할 예정입니다. 예. 경찰에게 협조를 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전화 끊지 말아 주시겠어요?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편이 더 안전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통화를 끊지 말고, 담당 경찰이 올 때까지 대기해주세요. ]

         

       …

       …

       …

         

       [ 네, 네. 경찰이 도착하는 게 좀 늦었다고요? 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침입자’들이 농장에 있나요? 네. 아직 있군요. 알겠습니다. 네? 아, 침입자가 존재하냐에 따라서 무장해야 하므로 질문을 한 겁니다. 네. 창칼을 들고 있다고 하셨으니까, 방검복을 입어야 하겠지요. 네? 아무리 봐도 방탄복 같다고요? 네, 잠시만요. 아, 신고자분. 손에 들고 있는 총을 좀 내려놓으시겠어요? ]

         

       …

         

       [ —Put the gun down! Fucking! gun down!! ]

         

       [ —-잠깐, 왜 나한테 총을 겨누—! ]

         

       [ 총 내려놓고 손 올려! 손 머리 뒤로! 천천히 무릎 꿇고! 오케이! 허튼 생각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반항할 시 총알을 맞을 줄 알아! 오케이, 수갑 채웠고! 키트로 피 검사할 거니까 움직이지 말도록! ]

         

       [ 뭐?! 피 검사?! 내가 무슨 약쟁이인 줄 알아?! 이 미친 짭새 새끼— ]

         

       [ 닥쳐! 반항하지 말라고 했지! ]

         

       [ 검사 끝났습니다. 약물 반응 음성입니다! 키트로는 검출이 되지 않습니다! ]

         

       [ 그래? 디자이너가 손을 댄 약물이라도 했나? 경찰서로 데리고 가야겠는데? ]

         

       [ 뭐?! 경찰서? 나 약 안 했어! 안 했다고! ]

         

       [ 피 더 뽑아서 샘플 채취한 다음에 검사 한 번 해보고, 이 약쟁이는 빈 철창에다가 던져 놓자고. ]

         

       [ 알겠습니다…. 이봐요, 보호를 위해 잠시 동행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약물의 효과가 끝나면 훈방 조치를 해드릴 테니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환각 상태에서 뭐 문제라도 일으킬까 봐 그런 거니까요. 제정신이 드시면 재활센터와 연결을 해드리겠습니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곳이니까 보험 걱정은 안 하셔도 되는 곳입니다. 가시죠. ]

         

       [ What the…!!! 나는 약 안 했다고! ]

         

       [ 하 누가 봐도 약을 한 것처럼 말해놓고 약을 안 했다고 주장하면 그게 먹히나. 가자고. ]

         

       …

       …

       …

         

       남자의 신고는 무시되지는 않았다.

       반대로, 제대로 일하는 경찰들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남자의 뜻과는 다르게, 경찰이 체포해간 것은 농장 주인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농작물들이 갑자기 창칼을 들고 시위한다고, 사람 머리통만 한 쥐들이 단체로 집에 침입해서 팻말을 들고 시위하더니 스크럼을 짜서 길을 막았다고 신고하면 경찰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 이런, 이런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 있다니! 당장 경찰들을 단단히 무장시켜야겠군! 한시가 급하니 ‘Make a hole’이라고 쉴 새 없이 외치면서 꽉 막힌 도로를 뚫고 농장으로 출동해야 해! 』

         

       …라고 생각하겠는가.

         

       『 미친 약쟁이 같으니. 뭔 약을 했길래 이딴 신고를 하는 거야? 음? 총을 들고 있다고? 이런 빌어먹을, 얌전히 약만 할 것이지 총은 왜 들었다고 고백하는 거야? 제기랄. 출동해야겠군. 바빠죽겠는데….』

         

       …라고 생각하겠는가?

         

       당연히 후자의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심지어 농장에 도착했는데 신고자가 말했던 ‘창칼을 든 식물’도, ‘머리통만 한데다가 미식축구를 취미로 삼고 있는 멋쟁이 쥐새끼들’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경찰들은 상식적으로 ‘이 미친 약쟁이 새끼.’라고 욕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게 맞다.

         

       하지만 잡혀간 당사자인 농장 주인으로서는 환장할만한 일이었다.

         

       농작물들이 갑자기 시위한 것도 미치겠는데.

       쥐새끼들이 문을 다 갉아먹고, 못 들어가게 막은 것도 열받아 죽겠는데.

         

       경찰이 약쟁이 취급하면서 끌고 가고, 입이 비뚤어질 것 같은 차가운 바닥에 자신을 집어던져 놓았다. 게다가 철창 너머로 보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경멸어린 시선은…그야말로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약을 진짜로 했으면 모를까, 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저딴 시선을 받다니.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게다가 몸도 불편하다.

         

       환각 상태라는 오해 때문인지 이 빌어먹을 경찰 놈들은 수갑을 풀어주지를 않았다.

         

       경찰로서는 혹여 자해하거나 난동을 부릴 수 있으니 이렇게 한 것이겠지만….

         

       농장 주인으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모멸감과 분노가 몰려오게 만드는 일이었다.

         

       ‘Fuck! Fuck! 공짜 도넛만 처먹고 일이라곤 할 줄 모르는 세금 도둑놈들 같으니! 여기서 나가면 반드시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걸고 말 테다! 소송을 하고 말 거라고! 제기랄!’

         

       그렇게 농장 주인은 고초를 겪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일단 괜찮으신 것 같으니 풀어드리겠습니다. 재활센터에 데려다 드릴까요? 아, 사양하신다고요. 알겠습니다. 돌아가셔서 천천히 고민하세요. 언제든 편하신 시간에 센터로 가시면 친절하게 맞이해줄 겁니다. 아, 의료 보험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기는 대기업이 후원하는 곳이라서 약간의 돈만 내면 되거든요. 그나마도 돌아갈 때 이것저것 챙겨주니까, 공짜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부담 느끼지 말고 센터에 방문해주세요.”

         

       …하.

         

       그렇게 경찰서에서 나온 뒤 본 하늘은…참으로 맑았다.

         

       빌어먹을.

         

       ‘엿 먹을 경찰 새끼들. 아주 나를 약쟁이라고 확신하고 있군.’

         

       농장 주인은 경찰에게 이를 갈면서도, 기분을 잡치는 친절한 모습에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렇게 돌아간 농장은 평화로웠다.

         

       ‘빌어먹을. 경찰이 왔을 때 이런 모습이었으니, 나를 당연히 약쟁이로 생각하겠지.’

         

       그래.

       평화로웠다.

         

       정말로.

         

       경찰이 신고받자마자 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았다면, 당연히 그를 약쟁이로 확신할 수밖에 없었겠지….

         

       농장 주인은 자신을 이런 시련에 들게 만든 빌어먹을 풀과 쥐새끼들에게 이를 갈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지갑과 스마트폰을 챙겨 들고는, 차를 끌고 농장 밖으로 나왔다.

         

       이 빌어먹을 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

       …

       …

         

       …그런데.

       차를 타고 나올 때.

         

       왠지, 농장 구석에서, 풀과 꽃이 꿈틀거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