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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7

   날개 안에 깃든 어둠을 확인한 나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으에에엑. 몸 상태 진짜 최악이다.

   

   이 정도면 병약이라는 단어를 넘은 수준인데.

   

   이상하다. 분명 잠에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수준은 아니었는데. 그 뒤에 무슨 일이.

   

   <루시. 저들의 변화를 걱정할 필욘 없다.>

   ‘아. 할아버지라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대충 아시겠네요. 뭔가요?’

   <요정여왕이 에르기누스 그 놈과 함께 어둠의 부담을 나누어 받은 걸 테지.>

   ‘…넹?’

   

   내가 고개만 치켜 들고서 의문을 표하자 요정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할아버지가 어제 내가 쓰러지고 나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설마 권능이니 뭐니 하는 문제가 남아있을 줄이야. 그런 건 나도 몰랐다고. 게임 속에서는 허접들을 짓밟아주고 나면 다 끝났었으니까.

   

   <요정들의 겉모습은 변화했으나 심성은 변하지 않았다. 어둠에 잡아먹힌 것이 아니라 그를 나누어 받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게지.>

   ‘그렇다는 건. 에르기누스님과 요정여왕님이 신격에 올랐다는 건가요.’

   <여신의 사도께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그럴 거다.>

   

   어쨌건 위험한 난관은 돌파했단건가.

   

   하아아. 어떻게든 요정의 숲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긴 했고 수백년에 걸쳐 이어진 약속도 이루게 만들어줬지만 말이야.

   

   마냥 기쁘지는 않네.

   

   결국 내가 바라던 새로운 던전은 거기에 없었잖아!

   

   요정들이랑 놀고! 미쳐가는 요정여왕을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고! 중2병 걸린 병신한테 뒈질 뻔하고!

   

   던전! 던전은 어디에 있는데!

   

   준비부터 시작해서 고생은 잔뜩 했는데 정작 내 보상은 어디에 있냐고!

   

   임시로 만든 침대 위에서 발버둥을 치던 나는 순간 현기증이 오르는 것을 느끼고 다시금 침대에 누웠다.

   

   이래서야 제대로 걸어다닐 수나 있을까 몰라. 칼한테 탈 것 노릇을 하라 그럴까. 그 녀석이라면 좋아라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 그럴 것 같긴 한데.

   

   아! 보상! 그래! 이번 퀘스트의 보상! 이렇게나 고생을 했는데!

   

   기적에 가까운 일을 거듭해서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된 게 준비됐겠지!? 응?!

   

   [ㄱㅗㅁㅏㅂㄷㅏ.]

   

   푸른 창을 띄우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분해 되어 있는 글자였다. 오류가 난 것 같은 글자는 많이 봤어도 이런 건 처음이네.

   

   고맙다고?

   

   뭔.

   

   아. 아아아.

   

   에르기누스인가.

   

   권능이란 걸 얻자마자 그 사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거야?

   

   대마법사는 이런 부분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건가! 이래서 머리 좋은 사람이 부럽다니까!

   

   키득거리며 푸른 창을 옆으로 비켜내자 또 다른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예의 신이 당신의 고결함에 탄성을 내지릅니다.]

   [다만 지금의 당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노라 말합니다.]

   [힘이 대폭 상승합니다.]

   

   힘이라. 그것보단 중량의 부족이 거슬리는데.

   

   명색이 최전선을 지켜야 하는 탱커란 녀석이 이리 날아갔다 저리 날아갔다 하는 게 마음에 안 들거든.

   

   [미와 예술의 여신이 숲의 아름다움을 지켜 준 당신께 감사를 표합니다.]

   [스킬 [춤사위]가 당신에게 지급됩니다.]

   

   춤사위라면 게임 속에선 회피력을 늘려주는 스킬이었지? 내 요정의 춤에 응용하라고 준 거려나. 답잖게 괜찮은 보상을 줬네.

   

   …어쩌면 그냥 내가 좀 더 아름다운 춤을 추는 걸 구경하고 싶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감사히 받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자연의 신이 당신에게 깊고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스킬 [재생력]이 지급됩니다.]

   [스킬 [대지의 굳건함]이 지급됩니다.]

   [자연의 신은 숲이 언제나 당신을 도울 것이라 약속합니다.]

   

   이 쪽이 나타난 건 아무래도 요정의 숲을 본래대로 되돌린 대가인가.

   

   굳이 따지자면 요정들은 자연의 신 아래에 속한 존재니까. 손주같은 녀석들을 구해줬으니 고마워할 만도 하지.

   

   근데 그걸로 준 보상이란 게 좀.

   

   재생력이라는 건 말 그대로의 재생의 기능을 담당할 텐데 이건 원래도 신성마법으로 얼마든 보충할 수 있는 영역이고.

   

   대지의 굳건함이란 것도. 아니. 아니지. 이거랑 늘어난 근력을 합하면 재밌는 일이 가능해질 것 같아.

   

   고맙습니다! 자연의 신님! 혹여 만날 일이 생기면 아마 엄청 괴상한 말을 할 것 같긴 한데 그 부분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연의 관대함을 보여 주세요!

   

   마지막에 숲은 언제나 날 도울 거라는 건 무슨 이야기려나.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서 추측도 안 가네.

   

   [역사의 신이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 준 당신께 감사를 표합니다.]

   [이미 보상은 지급되었습니다.]

   

   보상이란 건 어둠의 악신에 관한 그 이야기인가. 확실히 보상 취급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약점이긴 했지만.

   

   그래도 말야. 명색이 신이라는 작자라면 여기서 더 베풀어야 하는 거 아냐?

   

   하여간 도서관에 처박힌 곰팡이는 치졸하네. 분명 속에 든 것도 쪼잔할 거야.

   

   [당신은 또 다시 기적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다음은.

   

   허접 주신인가.

   

   [서로를 수백년동안 기다려 온 사랑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스러져갈 요정의 숲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세상의 숲에는 또 다시 요정들이 피어날 겁니다.]

   [악에 물들었던 어둠은 다시금 달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신들을 감탄시키고 후대에도 길이길이 전해질 업적입니다.]

   

   오늘따라 혀가 빠르게 움직이네. 뭐가 그렇게 후달리는 거야? 설마 이만한 고생을 했는데 변변찮은 걸 보상이랍시고 지급하는 건 아니지?

   

   그러기만 해 봐. 내가 주신의 사도라는 지위를 내걸고서 당신의 본성을 세상에 퍼트릴 테니까!

   

   [당신에게 빛이 지닌 포용의 권능이 주어집니다.]

   

   …

   

   권능?

   

   권능!?

   

   내 몸상태도 잊어버린 채 퍼뜩 몸을 일으킨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을 견디며 푸른 창을 바라봤다.

   

   드디어 내게도 권능이 주어지는구나!

   

   흐흐흫. 드디어 평범한 성기사가 아니라 주신의 사도 다운 싸움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근데 있잖아. 권능을 준 것까지는 좋은데!

   

   표용의 권능이라니!?

   

   그게 뭔데?!

   

   자세한 설명을 해줘야 할 것 아냐!

   

   이런 의미심장한 단어를 혼자 어떻게 분석을 하냐!

   

   뭐 줄 거면 제대로 주라고! 이 말 예전부터 엄청 많이 했잖아! 왜 이런 건 개선이 안 되는 건데 이 개허접아!

   

   [용사의 혼이 개화하여 당신에게 불굴의 정신이 깃듭니다.]

   

   불굴의 정신이란 건 아마 정신의 개입에 저항하게 만들어주는 스킬인 것 같긴 한데.

   

   여태 내가 얻었던 스킬이 그랬던 것처럼 정신의 댐이 무너지는 걸 조금 더 늦춰주는 효과겠지.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번처럼 강대한 적을 상대할 땐 크게 의미 없을 것 같은데.

   

   자. 다른 거. 다른 거.

   

   상태창이라거나. 세이브 기능이라거나. 키가 자란다거나. 지능이 대폭 상승한다거나 뭐 그런 거 없어!?

   

   이게 끝이야?!

   

   포용의 권능이라는 게 그렇게.

   

   – 띠링.

   – 띠링.

   – 띠링.

   – 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

   

   짜증을 내며 푸른창을 내리자마자 알림음이 귓가를 가득 채우다 못해 고막을 찢어버릴 기세로 맹렬히 울린다.

   

   그 곳에 자리 잡은 것은 악신 아그라와 주신 아르마디간의 치열한 대결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아그라가 전혀 개입하질 않았었지. 이번 싸움이 상당히 위태위태했었단 걸 고려하면 아그라가 여기에 개입했을 경우에 무슨 일이 일어 났을지.

   

   – 띠링.

   [어둠의 신이 당신에게 전언합니다.]

   

   어둠의 신!? 갑자기 그 새끼가 왜 나한테…

   

   아. 맞다. 이거 에르기누스지. 참. 내가 아는 어둠의 악신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없잖아.

   

   [숲의 중앙으로 와라. 전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신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말을 하는 게 굉장히 담백하네. 마음에 들어.

   

   뭐. 좋아. 페도 주신이 허접인 게 하루 이틀일은 아니니까. 여기에 대한 불평은 나중에 하고 일단 동정 찐따를 놀리러 가볼까?

   

   – 띠링

   [새로운 퀘스트가 지급됩니다.]

   

   *

   

   자연의 신이 선사한 숲이 나를 돕는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아니했다.

   

   칼의 품에 안겨 알른 기사단과 함께 안으로 향하는 도중 숲이 알아서 길을 터 준 것이다.

   

   나무뿌리가 자리를 비키고, 수풀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바람이 우리에게 상쾌함을 선사하며, 그 속에 담긴 꽃의 향기가 마음을 달래주는 광경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요정 같다는 표현마저도 아가씨께 실례가 될 듯 하군요.”

   

   나를 안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이 기쁜지 칼이 주접을 떨어댔다.

   

   어제 죽어라고 구른 건 이 녀석도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힘이 넘치는 거야.

   

   보통 이런 건 어린 쪽이 펄펄하고 늙은 쪽은 지쳐서 비틀거리는 게 정상 아닌가?

   

   비꼬아서  웃음을 울상으로 바꾸고 싶단 생각이 마음에 스쳤지만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제 목숨을 걸고 함께 움직인 상대니까. 이 정도 포상은 있어도 괜찮겠지.

   

   – 요정 같단 말이 왜 실례야?

   – 루시는 정말 요정 같은 걸!

   – 맞아! 우리랑 같이 숲에 있어야 할 정도야!

   

   뭣보다 나 대신 칼의 주접을 혼내는 애들이 있으니까.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기도 하고.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자연의 사랑을 받는 요정인 아가씨께 요정 같다는 표현은 이상하단 소리입니다.”

   – 으음.

   – 그건 그래!

   – 루시는 요정인 걸!

   – 우리랑 똑같아!

   – 히히. 루시랑 똑같다.

   

   어제 여왕의 곁을 벗어난 세 요정은 계속해서 내 주변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내 어디에 그렇게 마음에 든 건지는 몰라도 저 녀석들끼리 노는 걸 보고 있으면 치유되는 느낌이라 마음에 들어. 어느새 애완동물로 따라붙은 변태랑은 다르게 말야.

   

   숲이 길을 허락해준 덕에 간단히 숲 안에 진입하게 된 나는 숲의 중앙에 자리한 무거운 분위기를 보고 고갤 갸웃했다.

   

   뮤러 쟤는 왜 나무 아래에 찌그러져서 침울해하고 있는 거야?

   

   검성도 뭔가 짜증나는 것 같은 눈을 하고서 검만 바라보고 있고.

   

   원래 같았으면 내가 오자 마자 기행을 저질렀을 변태사도랑 얼빠여우도 입술을 꾹 깨물기만 하고.

   

   뭐야? 여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여기에 불청객이 왔었거든.”

   

   귓가를 파고 드는 음험한 목소리에 고갤 돌리자 그림자와 동화된 듯 존재감이 흐릿해진 에르기누스가 보였다.

   

   모습 자체는 이전과 다를 바 없지만. 음. 뭐랄까. 좀 더 대하기 어려운 느낌이네.

   

   “자세히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반푼이라도 신이 돼서 기쁜 건 알겠지만 꺼드럭거리진 말아주시겠어요? 벼락출세한 쓰레기 같아서 괴롭히고 싶어지거든요. 동정찐따님.”

   

   호칭은 여전하구나 생각하며 고갤 주억이고 있으려니 에르기누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뭔데. 너. 어둠을 받아들이다 성적취향이 왜곡됐어? 얼빠여우랑 변태사도 반열에 끼어들게 된 거야?

   

   “하고 싶은 말은 많다만 일단 이 곳에서 있었던 일부터 설명하지. 주신 교회의 교황이 내게 개입했었다.”

   

   교황?

   

   교황!?

   

   그 미치광이가 여기 왔었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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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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