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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7

    심장 적출을 마치고 루미의 집에서 빠져나온 루크가 시에나에게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길 무렵.

    어스름에 잠긴 골목 어귀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루크는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설마 심장을 소각시킬 때마다 그렇게 매번 나올 생각인가?”

    그러자 골목의 어둠 너머에서, 조용하게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가 형체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가르마타였다.

    형체를 완전히 갖춘 그녀는 특유의 웃는 표정으로 앞선 질문에 대답했다.

    -그대가 정녕 그것을 바란다면 얼마든지 그리 해줄 수 있느니라.

    “나는 그대가 자신의 딸이 죽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계약으로 이어진 우호관계라지만, 과거 제 손으로 죽였던 대상을 자꾸 마주하게 되는 건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그것도 상대가 자신따위는 얼마든지 손가락 하나로 눌러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체급차를 가졌다면 더욱 더.

    그런 루크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시가르마타는 어딘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후훗, 그거 참으로 눈물나는 배려심이로구나. 내가 계약자를 참 잘 두었지.

    “마음에도 없는 소릴…….”

    그런 루크의 중얼거림에 시가르마타는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어딘가에서 나타난 손가락 마디 크기의 흑색 보석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용종 특유의 보석에 대한 욕망외에도 어딘가 묘한 운명적 이끌림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마도 방금 전에 회수된 파르바티의 영혼조각이 죽음의 앞에 형상화된 것이리라.

    그녀는 그렇게 그것을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살펴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을 벌였더구나, 마법사여.

    그녀가 말하는 재미있는 일이라면, 역시 방금 전에 있었던 심장적출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묻겠다. 넌 어째서 그 아이를 살린 것이지?

    “…….”

    역시 그건가.

    그녀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실행된 루미의 심장 적출수술.

    충분히 심장만을 제거하고 떠날 수 있었음에도 루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루크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음에도 쉽사리 대답하지 않는 것에 그녀는 곧 흥미가 생긴다는 듯 입꼬리를 늘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 뿐 아니라, 그 아이도 원래 오늘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느니라. 꼭 그대가 파르바티의 영혼을 회수하지 않았더라도 말이지.

    “…….”

    루미와 그녀의 어머니가 오늘 죽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라는 시가르마타의 말은 분명 진실일 것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인 그녀는 모든 것의 죽음과 망각의 시기를 알테니까.

    -그대가 그리 공들여 목숨을 붙여놓지 않았더라도, 그녀들은 나의 인도아래 행복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너는 그녀들의 영혼을 현계에 붙잡아두었지. 그것도, 그대에겐 상당한 대가를 치러가면서까지 말이다.

    심장 적출이라, 사실 루크가 한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먼저, 루미의 신체 내부를 잠식하는 루체스트의 도플갱어를 더이상 신체를 대체하지 못하도록 비활성화시켰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을 옮긴다해도 오래지않아 영혼적인 관점에서의 죽음이 발생할테니까.

    그 다음에는 루미에게 심장을 이식했고, 마나라곤 축적해본 일이 없는 일반인의 평범한 심장이 루미의 몸에 가해지는 부하를 견딜 수 있도록 자신의 서클을 떼어 부여하면서도, 실생활과 감정선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섬세한 균형을 찾아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죽어가는 루미의 어머니에게서 의식을 추출해 갖고있던 인형군단용 코어에 이식함과 동시에, 자신이 시간에 쫓겨 루미에게 미처 설명하지 못한 마법사로서 살아가는데에 꼭 필요한 지식까지 알려줄 수 있도록 함께 전승했다.

    이 모든 일들은 단지 ‘행하기 어렵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모든 기술과 자원이 있다해도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렇다고 자신의 서클 일부를 희생해가면서까지 해야 할 정도로 값진 일도 아니었다.

    반면에 목숨을 연명한 아이는 그에게 그것을 해주기를 부탁하지도 않았고, 감사를 표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해 그가 무엇을 희생했는지조차 모른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에 소모하기엔 너무나도 큰 대가이지 않은가?

    지금의 그에게 ‘서클’이란 곧 ‘자신의 본질’이나 마찬가지.

    마법사라면 ‘자신의 본질 일부’가 의미하는 바를 모를리가 없을 텐데.

    그것을 나누었다는 건, 그야말로 파르바티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으로 대체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너도 알겠지만, 이건 결코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가 그리 행한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더구나. 불과 바로 몇 분 전에 수십명을 학살한 마법사가, 죽어야 할 아이를 죽이는 것만은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무엇이 너로 하여금 그 아이의 목숨을 네가 죽인 다른 이들의 목숨과 다르게 느껴지게 했느냐? 

    그녀는 천천히 그런 루크의 곁으로 다가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죽어야 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느냐? 

    “……그건.”

    이어지는 시가르마타의 질문세례에, 루크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돌이켜 생각해도, 정말 비이성적인 행동이었으니까.

    감정따위에 휘둘리지 않아야하는 마법사가 했다고는 믿기지도 않을 정도로 바보같은 행동이다.

    설사 운명의 내용을 몰랐다고하나, 루미와 그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만은 이미 한참 전에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꺼려지는 것도 아니다.

    만일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면, ‘영웅’에게 합리화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루크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충분히 감내할 각오가 있었다.

    그저, 방치된 육아일기의 마지막 한줄을 읽은 것 만으로 말이다.

    그 문장으로 전해진 것은 정말로 모성애인가, 아니면 아직 이름붙여지지 않은 다른 감정일까.

    사실 루크는 그것을 아직 정확히 모른다.

    감정이란 것은 비이성적이기에, 설명 또한 할 수 없었다.

    마법사는 설명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침묵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다만, 시가르마타에게 이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루크는 돌연 시가르마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그대에겐, 정말로 미안했네.”

    이전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현대에서 많은 걸 겪으며 막연히 생각하던 것들이 오늘날의 그 일기로 하여금 정돈된 느낌이다.

    감정 중에는, 상대가 어떤 형태와 상황이 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루크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5000년 전, 타락한 등대를 무너트리고 그 딸의 심장을 훔쳐 불사를 담는 그릇의 진흙으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해서.

    “그때의 나는, 그대가 무가치한 행동으로 스스로와 주변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네. 네겐 그것이 최선이었겠지.”

    그야말로 갑작스런 사과였지만, 시가르마타는 알겠다는 듯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훗, 그대는 사과 하는 법을 모르는건가.

    그 어중간하고 끔찍한 응급조치따위가 당시엔 ‘최선’이었을거라니, 그것은 사실상 도발하는 말이 아닌가.

    그래, 부정할 수는 없다.

    그때의 자신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아니.

    그 이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

    -확실히 조금 놀랐다. 그들을 살릴 때, 당시 내게 열등감마저 들게하던 그 솜씨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더구나. 

    그는 과거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해낼 수 없던 파르바티의 소생을, 단지 몇년의 연구로 불완전하나마 성공시켰던 마법사.

    그야말로 기적의 현신이었다.

    세상 이면의 지식까지 습득한 지금도, 당시 그가 행한 마법만큼은 흉내조차 낼 수 없다.

    마법의 주인이 드래곤이라는 말은, 그의 앞에서는 주정뱅이의 헛소리가 되어버린다.

    마계전쟁 최강의 전력이자, 최고의 지략가.

    최초이자 최후의 10서클 마법사이자, 온 지식의 정리자.

    여신의 축복조차 조작하고 마침내 신좌에서 떨어트린 모독자이자, 새로운 여신을 탄생시킨 순교자.

    정녕 이 위대한 업적들이 고작 한 명의 인간이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만에 이룩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그가 말년에 벌인 역천행위로 신화시대 전부가 잊히지만 않았더라면, 현대의 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실리지 않는 과목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당시에는 그 사실에 죽어서까지 열등감을 가질 정도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에게는 마땅히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했으므로.

    그런데 설마 그 마법사가 자신을 이해하는 날이 올 줄이야.

    과연, 세월이란 늘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모양이었다.

    오늘날의 자신 또한 그러했듯이.

    사과하는 방법은 어색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역시 받아주지 않을 수 없겠지.

    -5000년정도 늦기는 했지만, 받아주도록 하겠다. 나 또한, 그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기는 했으니…….

    무려 5000년만에 그의 사과를 받아들인 시가르마타는 가만히 눈을 감고, 5000년 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느때처럼 마족을 토벌하고 돌아온 레어에 처참히 죽어있던 파르바티, 그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 사체를 수습하고 아이를 다시 살리기위해 온갖 영약과 마법, 금지된 사술까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전부 동원했지만 간신히 연명만 이어가던 우둔했던 자신의 모습을.

    시가르마타는 그때의 타락과 과오를 끊었던 남자의 분신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 나 역시 사과해야겠구나.

    “……그대가 내게? 무얼?”

    -그 아이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공포가, 그 몸속에 그 아이를 가둔 너로 하여금 발생한다고 오해했던 것을 말이다.

    “오해라……?”

    오해라는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루크는, 곧 깨달았다.

    지난 1년간의 모든 대비가 전부 그녀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

    그녀를 상대하기 위해 지난 1년간 급히 심장이식을 준비하고, 아티팩트를 보수하고, 아세릴 갑주를 고쳐 인형군단을 편성하고, 아린세이아를 개조하고, 레니에를 제작한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전부…….

    ‘오해’때문이라.

    ……이것은, 좋아해야하는 걸까?

    허망해하는 루크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시가르마타는 그 또한 재미있다는 듯 웃음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오늘날의 대비를 하지 않았더냐? 이 또한 운명이겠지.

    “….그래,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겠지.”

    실제로 지금 그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되기는 했으니까.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그것이 정말 운명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말이다.

    시가르마타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루크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네게 남아있던 파르바티를 현계의 수많은 조각들 중, 유일하게 행복한 조각으로 만들어준 것에 감사를 표하마. 부디 남은 조각들에게도 이처럼 안식을 선사해주기를.

    그 말을 끝으로, 시가르마타는 조용히 사라졌다.

    루크는 시가르마타가 사라진 어둠 속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그런가….”

    그러니까 파르바티가 줄곧 두려워했던 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조각들이 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내 안에 있던 아이만큼은 행복했던 건가…….”

    루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슴에 주먹을 갖다대었다.

    루미의 시술 이후 어색하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무언가 조금 안정된 것 같이 느껴진다.

    비록 지금 자신의 가슴 속에서 뛰고있는 심장은 파르바티가 아닌 칸타시스의 복제품이긴 하지만, 그 고동은 여전히 아린세이아에 잠들어있는 본체와 동기화되어있다.

    그릇의 몸을 빌린 1년이라는 시간, 심장 속에 잠든 파르바티가 느꼈을 감정이 공포가 아니라는 사실은 상당한 안심감이었다.

    파르바티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마법사에대한 공포감은 지금의 루크에게도 선명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때였다.

    -텁!

    “꺅!!”

    돌연 어깨에 느껴지는 감촉에 루크는 기겁하며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다크엘프가, 무어라 굉장히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루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 시에나. 대체 왜 여기에 있나? 저택을 지키라고 했잖은가.”

    “저, 저택 상황은 대충 정리 됐어. 그, 고든쪽도 연락이 왔는데, 네가 하도 돌아오지 않길래 찾아온거야.”

    “그, 그런가.”

    시에나의 대답에 루크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루미에게 시간을 꽤 많이 소모한 건 사실이니까.

    “본의아니게 걱정을 끼쳤군, 미안하네.”

    루크는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 자신을 걱정했을 시에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런데, 시에나는 왜 아직도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걸까.

    자신의 비명소리에 잠깐 놀랐던 게 아니었나?

    “나한테 뭔가 할 말이라도?”

    루크가 묻자, 시에나는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우물쭈물거리며 주저하다가, 결국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듯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루크야, 너 방금…. 그거 아니지?”

    “아니라니, 대체 뭐가 아니라는 소린가? 알아듣게 좀 설명해보거라.”

    그러자 시에나는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속삭이듯 물었다.

    “아, 아까전에 네 안에 아이가 어쩌고…. 그러지 않았니?”

    시에나의 말에 자신의 혼잣말이 시에나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깨달은 루크는 뒤늦게 기겁하며 외쳤다.

    “아, 아닐세! 절대 아니야!”

    맙소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매번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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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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