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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7

        

         

       그렇게 농장 주인은 도망쳤다.

         

       한때는 엿 같았지만, 안락했던, 하지만 지금은 끔찍하리만치 위험해진 자신의 농장에서 말이다.

         

       그렇게 위험지대가 되어버린 농장에서 탈출한 농장 주인은 치안이 좋은 지역에 숙소를 잡았고,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곳에 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제야 그는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CCTV!’

         

       방범용으로 설치해두었던 CCTV.

       자기 몸을 자신이 지키지 못하면 병신 취급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당연히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총과 같은 호신용 도구가 필요했고, 자기 행동이 정당방위임을 증명해주기 위한 CCTV도 필수였다.

       물론 그가 나가는 모임의 농부 중에서는 ‘그딴 카메라에 의존하는 건 여자랑 애새끼들로 충분하다. 남자라면 그런 거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12게이지 샷건을 들고 자신의 터전을 지키는 게 맞지!’라며 CCTV를 아예 설치하지 않는 멍청한 레드넥들도 꽤 있는 편이었지만, 적어도 그는 그런 멍청이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하는 몸이었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그는 공부를 안 했을 뿐이지 꼴통 레드넥들과는 다르게 머리가 좋은 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남자는 안전한 곳에서 천천히 CCTV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뭐, 어렵지는 않았다.

         

       미국은 인터넷 강국이었고, CCTV를 클라우드인지 뭔지에서 언제든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악랄할 정도로 끔찍한 서비스 품질을 자랑하는 데다가 쓸데없이 가격이 비싸고, 거기다가 사람 언저리만 취직한 것 같은 빌어먹을 인터넷 회사 직원 놈들 덕분에 속도부터 가격까지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기는 했지만-

       뭐 어쨌든 인터넷으로 CCTV를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남자는 CCTV를 확인했고….

         

       “젠장! 역시 이놈들은 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빵만 버리게 만드는 곰팡이 같은 새끼들!”

         

       이내 욕을 내뱉었다.

         

       클라우드에 백업이 된 동영상들이 죄다 노이즈가 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기계가 고장 나기라도 한 것처럼 노이즈가 가득하다.

         

       아니, 그래.

       기계야 언제든 고장 날 수 있다.

       집도 창고도 사람도 고장이 나는데 기계가 고장이 안 날 리는 없겠지.

         

       그런데 문제는, 이 노이즈가 그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다는 것에 있었다.

         

       노이즈가 낀다.

       …농작물과 쥐새끼들이 시위하는 부분에만!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언제 노이즈가 꼈냐는 듯, 자신이 언제 고장이 났냐는 듯이 말이다!

         

       오히려 기계는 멀쩡했고, 농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 평화로운 장면이 녹화되어 있기까지 하다.

         

       환장할 노릇이다.

         

       짠 것처럼 농작물과 쥐들에게 시달렸을 그 부분만 이렇게 노이즈가 끼다니.

       게다가 그 외의 장면은 평소랑 똑같은 농장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니.

         

       CCTV를 증거자료로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농장 주인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서 작정한 듯한 상황이 아닌가.

         

       “그래, 블랙박스. 블랙박스는…?”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블랙박스.

       차량에 연결된 카메라라면 멀쩡할 수도 있지 않은가.

         

       농장 주인은 희망을 품고 블랙박스를 확인해보았다.

         

       “Fuck!”

         

       하지만 블랙박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농작물들이 시위하는 그 부분만이 뚝 끊겨 있었다.

       마치 차가 방전이라도 돼서 블랙박스의 작동이 멈춘 것처럼 말이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정말로 말이다.

         

       “이딴 일이 대체 왜 일어났지? 제기랄…!”

         

       가장 명백한 물증인 영상이 없다.

       직접 찾아간다고 할지라도 외부인이 사라질 때까지 얌전히 평범한 농작물과 동물을 연기하겠지. 그리고 외부인이 사라진 순간 본색을 드러내며 시위하기 시작할 테고, 최악에는 들고 있던 창칼로 그를 해코지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코지한다면-

       그래. 그것 역시 증거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 경찰이 그랬듯이, 약에 취해서 스스로 상처를 낸 것으로 치부하지 않을까?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농작물이 알로에 칼과 알로에 창을 들고 덤벼서 상처를 입혔다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다수는 그를 잡아갔던 경찰들이 그랬듯, 저 새끼가 무슨 환각 성분이 가득한 약을 빨고 환상을 보고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여기겠지.

         

       빌어먹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이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답답해서.

       억울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영상 자료라는 희망이 사라진 후인지라, 가족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기도 망설여졌고.

         

       ‘설마 가족들도 나를….’

         

       이런 생각이 든다.

         

       가족이라면 내가 하는 말을 믿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것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믿어줄 리가 없다는 생각.

         

       그런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

         

       하지만 이내, 남자는 결심했다.

         

       뚜르르르.

         

       [ 예. ]

         

       “…아들아.”

         

       공부를 잘- 음.

       공부를 좀 열심히 하는, 똘똘한 아들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겪은 이 기묘한 일을 말하기로 말이다.

         

       …

       …

       …

         

       [ 음.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가 말한 것이 아니라면 믿기 힘든 이야기이긴 하네요. 솔직히…. 예.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약을 한 것이라고 단정을 짓기 충분한 이야기 같은데요. ]

         

       “…그래, 그렇겠지.”

         

       [ 하지만 저는 압니다. 아버지는 약을 할 사람도 아니고, 실없이 이상한 이야기를 지어낼 사람도 아니라는 걸요. 아니, 저만 아는 게 아니죠. 우리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알고 있어요. 우리 가족이 아는 아버지는 절대로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가 겪은 일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믿습니다. ]

         

       “오, 아들아….”

         

       [ 그리고 아버지가 겪은 일이 사실이라면- 음. 짐작이 가는 것이 있습니다….]

         

       …

       …

       …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농장 주인의 아들은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거기에 더해서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들었던 것들을 토대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주기까지 하며 아버지를 돕기까지 했다.

         

       그 가능성이라는 것은 농장 주인이 떠올리지 못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범인일 확률이 높은 사람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마녀 같으니! 내가 영국 놈들처럼 신사적인 태도로 대응해주기까지 했는데, 이딴 장난질을 쳐?!”

         

       그 가능성이라는 것은 능력자가 개입했을 가능성이었다.

       그것도 무생물을 움직일 수 있는 대표적인 이능을 다루는 이들.

       ‘마녀’가 개입해서 소동을 일으켰을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마녀가 된 지 얼마 안 된 애새끼처럼 이딴 짓을 벌여! 당신은 나잇값도 못 해?!”

         

       그래.

       위치크래프트라면 가능하다.

         

       꽃이 갑자기 미쳐서 시위하는 것도.

       풀떼기들이 알로에를 들고 그를 위협한 것도.

       쥐들이 미식축구를 취미로 즐기는 것도.

         

       모두!

       모두 가능하다!

         

       그리고, 농장 주인은 알고 있다.

       이딴 짓을 벌일만한 마녀를!

         

       “당장 내 농장에서 흉물들 치워! 고소를 하기 전에, 당장!”

         

       직접 농장에 찾아왔음에도 매몰차게 쫓겨난 마녀.

       경쟁기업의 사주 때문에 헛걸음을 하고 만 마녀.

       척 보기에도 성깔이 만만찮아 보였던 바로 그 마녀-!

         

       오딜리아!

         

       오딜리아가 바로 범인이다!

       아니, 그녀 말고는 범인이 있을 리가 없다!

         

       농장 주인은 확신을 담아서 오딜리아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

       아니, 어쩌면 항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설움과 분노를 모조리 말로 배설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농장 주인은 아낌없이 욕설을 사용하며 감정을 퍼부었다. 오딜리아가 전화를 받았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오딜리아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격렬하게- 화산이 참고 참았던 화를 폭발시키며 용암을 사방으로 퍼부어대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그리곤 그렇게 한바탕 감정을 쏟아내고는-

       그제야 숨을 고르며, 오딜리아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답변은….

         

       [ 하,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당신 미쳤어요? ]

         

       기가 찬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 * *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선입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능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무인은 무식하고, 머리보다 육체를 쓰는 것을 선호한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마법사는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한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주술사는 신비스러운 존재이며,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 괴짜들이 많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연금술사는 연구에 미친 미치광이들이 많으며, 이상한 골렘이나 로봇들을 만든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녀는, 생물을 이상하게 개조해서 부리는 성질 더럽고 귀찮은 여자들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했다.

         

       그래.

         

       선입견이다.

       이 선입견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이미지는 꽤 강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선입견이 있기에.

         

       농작물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

       농작물들이 이상한 팻말을 들고 시위할 때.

       알로에로 만든 창칼을 들고 집을 포위했을 때.

       쥐들이 명백히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행동했을 때.

         

       언제든 마녀의 존재를, 위치크래프트를 떠올려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농장 주인이 그 사실을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은 상황이 너무 급하게 돌아갔기에, 제대로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했기에 그런 것일 뿐, 언제든 농장 주인은 지금 이 상황은 마녀가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만한 마녀는 오딜리아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겠지.

         

       그래.

       

       잠시 골탕을 먹일 수는 있지만 금방 잡힐, 너무나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라는 이야기다.

       

       누가 봐도, 오딜리아가 범인이었다.

       

       …그래.

       만약 그 농장과 얽힌 마녀가 오딜리아 한 명이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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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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