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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8

    거듭된 루크의 해명에 시에나는 그제야 식은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별 일이 없었다니 다행이지만, 하마터면 식겁할 뻔 했다.

    아무래도 루크가 예르나에게 발견되기 이전 폐쇄적인 실험실에서 무슨 짓을 당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달까.

    하긴, 생각해보면 자신도 가끔은 드라마같은 걸 보고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에 몰입해 거울을 보면서 별 낯간지러운 연기를 펼쳤던 어린시절이 있기는 했다.

    루크도 일단은 애니까, 이런 환경에 감수성이 터져서 잠깐 그런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는 거겠지.

    자신은 그저 잘못된 타이밍에 방문을 열고 들어오게 된 셈이다.

    그래도 그걸 들은 사람은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의 충격을 받을 수 있기에, 시에나는 루크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짜 장난으로라도 그런 혼잣말은 자제해줘. 그걸 예르나가 들었으면 진짜 말 그대로 애 떨어졌을거야.”

    “으으음……. 알겠네.”

    시에나는 이후 상당히 부끄러운지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멋쩍게 웃고있는 루크에게 물었다.

    “그래서, 루미는 지금 어때? 괜찮아?”

    사실 시에나는 루크의 행적을 뒤쫓던 중, 백금발의 외부인이 웬 어린아이 하나를 업고 다급하게 어딘가를 향했다는 목격담을 듣고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다.

    만약 그 외부인이 루크였다면 업혀있던 그 아이는 분명 루미였을 것이므로.

    시에나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 루크는 잠시 루미의 집이 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실, 루미는 괜찮을 수가 없었다.

    도플갱어는 진작 루미의 몸에 침투했고, 이미 신체를 대체할 정도로 깊이 먹혀버렸으니까.

    게다가 도플갱어가 이미 심장까지 침식했다면 그건 더이상 돌이킬 수 없다.

    왜냐하면 심장은 몸의 마나를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장기이자, 영혼의 방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계의 생물인 도플갱어에게는 운명의 흔적인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심장이 대체된 순간 이 육신은 더이상 영혼이 ‘깃들었다’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주도권을 잃은 채 ‘갇혀있게’될 뿐.

    움직이는 육체는 더이상 본인이라 보기 어렵고, 운명의 비호가 사라진 생물은 결국 육신적인 본능에 잠식되어 자기파멸로 향한다.

    이렇게 된 이상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죽음 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원래는 그럴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루미에게 흡수된 도플갱어는 파르바티의 영혼조각이 들어있던 특수한 물건이었던 덕분에 영혼을 품지 않는 일반적인 도플갱어처럼 루미의 영혼을 몸에서 완전히 몰아내지는 않았고, 드래곤하트와 마력시를 동시에 대체 및 유지해야했기에 그 부분을 제외한 다른 장기 대부분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마침 신기하게도 그 부모의 침식상황이 심장만큼은 다른 어느 장기보다 양호했다.

    덕분에 루미의 앞날은 꽤 희망적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직 도플갱어가 몸에 남아있기에 사령술은 조심해야하겠지만, 성장기인 루미의 몸은 앞으로 몇년동안 성장하면서 차츰 도플갱어가 침식된 부분을 대체해나가다보면 결국 본연의 육신의 주도권도 전부 되찾을 수 있으리라.

    “치료는 잘 끝났어. 아마 지금쯤이면 한창 어머니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알아보는 중이겠지. 이제 우린 더이상 신경쓸 것이 없을거네.”

    “그래? 운이 좋았나보네. 다행이다.”

    시에나의 안심한 목소리에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운, 운이라…….’

    하필 오늘 토레프거리에 자신이 있었고, 루미와 만났으며, 그녀의 어머니가 오늘까지 버텼고, 루미의 도플갱어 침식정도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중에 무언가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아무리 루크라고해도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겠지만, ‘운이 좋아서’ 루미의 운명은 바뀌었다.

    오늘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던 루미의 운명이, 운으로 바뀐 셈이다.

    하지만 정말 운 뿐이었을까?

    시가르마타는 루미가 죽어야 할 운명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운명을 바꿀지도 모를 재료들을 치워두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의도는 처음부터 자신을 시험해본 것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던 루크는 문득 고개를 들며 시에나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저택의 볼일은 끝났다고 했던가?”

    “아, 응.”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듯한 루크의 표정에, 시에나는 좀 더 차분히 저택에서의 일들을 정리해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택 상황은 거의 정리됐어. 네가 ‘제단’이라고 말했던 그 약품들은 인형들이 전부 회수해갔고, 그 외에 수상쩍어보이는 물건들도 많이 압수했어. 동시에 그들의 범죄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자료도 꽤 수집했고. 이제 저택 쪽에서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아.”

    “그런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순조로웠던 저택의 상황에 루크는 살짝 안심했다.

    하지만, 시에나의 말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로제프라는 인물에 대해 석연찮은 점이 있어.”

    “석연찮은 점이라?”

    “난 로제프라는 사람이 실존인물인지 의심스러워.”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보이는 듯한 루크의 모습에 시에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저택에서 나간 뒤에, 난 곧바로 우리가 제압했던 조직원들을 찾아가 좀 더 많은 것들을 물어봤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제프에 관한 이야기 만큼은 일치하는 게 없더라?”

    루크가 의심스런 약을 발견하고 저택에서 서둘러 뛰쳐나온 뒤, 저택에 남아있던 시에나는 조금 더 조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자 조직원들에게 한층 더 심화된 신문을 가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로제프에대해서는 알고있는 정보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생김새, 연령, 성격, 인상, 체격 등등등…….

    인상착의같은 기본적인 정보들조차 하나같이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탓에, 처음에는 그들이 일부러 가짜정보를 흘려서 혼선을 주려나보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지어낸 것 치고는 그들이 각자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일관적이었으며, 그들조차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 탓에 시에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로 시에나는 저택을 뒤져 몇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을 더 발견했다.

    4년 전 그와 함께 토레프에 왔다던 조직원들이 현재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점.

    로제프가 사용하던 방이라는 곳은 겉보기엔 깔끔해보이지만 막상 손이 자주 닿는 서랍 손잡이 뒤편엔 먼지가 쌓여있거나, 병에 담긴 잉크가 완전히 굳어있는 등 사람이 생활했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저택 어디에서도 로제프의 초상을 기록해둔 사진이나 그림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

    이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어쩌면, ‘로제프’는 누군가가 조직의 통제를 용의하도록 하기위해 그들의 머릿속에 남은 개념이거나, 다수의 인물이 인지방해를 통해 자신을 조직의 수장인 ‘로제프’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일지도 몰라.”

    시에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있던 루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일리있는 의견이야.”

    확실히, 로제프라는 인물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기는 했다.

    그가 이 도시에서 벌인 일에 비해, 이상하게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네.”

    만일 ‘로제프’가 세뇌의 트리거일 뿐이라면, 자신이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다.

    마법에 관련해서만큼은 절대 속일 수 없는 루크에게 세뇌의 흔적이란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저택뿐 아니라 토레프 어디에서도 세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즉, 로제프는 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통제개념이 아니라, 일단은 실체가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다수의 인물이 본인을 로제프로 인식하도록 하는 마도구를 사용해 거리를 조종했다는 의견은 어떨까?

    가능성은 있으나, 그럴만한 당위성이 부족하다.

    이곳이 루체스트의 비밀 실험장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마 로제프는 루체스트에서 파견되었거나, 그들에게 고용된 관리인원일 것이다.

    그러면, 금세 또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이 작은 도시의 관리자가 그렇게 많아야 했을까?

    토레프거리는 그렇게 인구수가 많지도 않고, 외부와의 교류도 적은데다 관리자에대한 지지도도 높아 변수가 발생할만한 장소도 아닌데?

    루체스트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인이상 관리자를 최소화하면 최소화했지, 불필요하게 더욱 늘리는 낭비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토레프는 이미 다수의 관리인력이 필요할 정도로 어지럽지 않았고, 이런 상태에서 여러명의 관리자는 곧 비용과 혼란만을 발생시킬 뿐이니까.

    “아마 로제프는 한명의 누군가를 지칭하는 이름이 맞을걸세. 인지방해를 사용한 건, 단순히 그가 신원노출을 꺼리는 탓일거야.”

    “……음, 그런가.”

    그렇게 루크에게 추리를 반박당한 시에나는 살짝 머쓱해진 표정으로 헛기침하며 콧잔등을 훑었다.

    로제프가 세뇌로 심어진 통제개념이 아니라는 건 마법에 대해 루크만큼 공부한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쳐도, 로제프가 다수의 인물이 아닐거라는 추측은 반박하기 어렵다.

    왜 그 관점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지?

    한번 생각이 꽂히면 그 이외에는 잘 떠올리지 못하는 게 보통이기는 해도, 조금 성급한 결론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고작 11살밖에 안되는 애가 몇십년동안 경찰로 현장에서 일해온 자신보다 침착하게 상황과 증거를 분석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원점이다.

    로제프는 대체 누굴까?

    그렇게 시에나가 의문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루크가 물었다.

    “아, 참. 아까 고든에게서 연락도 왔었다고 했지? 그건 무슨 내용이었는가?”

    “아, 그거.”

    다시 추리에 깊이 빠지려던 찰나 들어온 루크의 질문에 시에나는 문득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쪽도 화물을 거의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모양이야. 무장인원들이 특별히 취급하는 물건을 발견했대.”

    “그래?”

    루미의 일도 나름 깔끔하게 끝났고, 이정도면 썩 나쁘지 않은 하루였나.

    로제프라는 인물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르바티의 영혼도 회수할 수 있었고 루체스트의 ‘제단’도 꽤나 회수해서 의식도 차질을 빚게 만들었으니, 이 또한 나름 만족할만한 결과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

    “아, 고든에게서 연락이다.”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신호에 시에나는 주머니에서 통신기를 꺼내들었다.

    “고든? 거기 무슨 일이죠?”

    그러자 통신기 너머로 급박한 고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에나. 화물을 손에 넣기는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라니요? 무슨 일이죠?”

    -우리 번개돌이가 사고쳤어.

    “서드가?”

    들려온 내용에 경악한 루크는 곧바로 시에나의 손에서 통신기를 빼앗듯이 낚아채며 외쳤다.

    “거기가 어디인가? 내 바로 가겠네!”

    그러자 통신기 너머로 어딘가 체념한 듯한 고든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말은 고맙지만, 우린 지금 워프트레인 위에 있거든. 이제 워프까지 한 5분정도 남은 것 같은데, 정말 가능하겠어?

    워프트레인이라고?

    역시 그쪽인가!

    “알겠으니 거기서 기다리게!”

    -오, 자신만만한걸 보니 뭔가 방법이…….

    -툭.

    순식간에 방법을 떠올린 루크는 곧바로 통신기에 답신한 뒤, 통신을 끊어버렸다.

    그 후, 시에나는 자신에게 떠넘기듯 건네어지는 통신기를 받으며 물었다.

    “겨우 5분만에 거길 어떻게 가려고?”

    “일단 저택으로 감세!”

    그렇게 말하곤 곧장 저택을 향해 달려나가는 루크의 뒷모습을 보며 시에나는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택으로 돌아가자고?

    왜?

    잠깐, 설마.

    “야! 그 지하통로는 미완성이야!”

    무슨 생각이지?

    쟤, 혹시 워프트레인이 뭔지 모르는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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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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