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79

       

       

       신룡이 떠나고 난 후.

       

       잡다한 대화를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땐 이미 패존은 객잔 안에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탁상 위에 뭐가 잔뜩 펼쳐져 있더라.

       

       “뭡니까 이건?”

       “보면 모르겠느냐.”

       

       알지. 

       아주 잘 알아서 문제다.

       

       “뭔 음식을 이렇게 많이 시키셨어요.”

       “싸갈 음식도 좀 있고. 궁금하지 않더냐?”

       “뭐가 말입니까?”

       “스님도 먹는 만두라니,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지.”

       “…”

       

       말을 듣고 살짝 멈칫해야 했다.

       

       ‘눈치챘구만.’

       

       이 노인네. 역시나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객잔에서 만두를 먹던 놈이 소림의 신룡이라는 걸 말이다.

       

       하기야, 내가 알아봤는데 패존이 몰라봤을 리는 없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곤 의자를 끌어 앉았다.

       탁상 위의 만두를 하나 집으며 물었다.

       

       “먹어도 됩니까?”

       “이미 더러운 손으로 만져놓고 뭘 물어 보느냐.”

       “더럽다니요. 저 잘 씻고 다닙니다.”

       “잘 씻고 다녀야지. 그거라도 안 하면 무얼 할 생각이냐.”

       “…”

       

       뭐지 이 짜증 나는 대화는.

       

       코를 잔뜩 찡그린 채 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래, 여전히 만두는 맛있네.

       

       모용희아에게 부탁해서 가져오게 했던 그 맛이었다. 

       감칠맛이 풍부하다.

       

       향도 좋고 맛도 좋다.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여기가 사라지면 좀 짜증 날 것 같은 수준이었다.

       남은 만두까지 한입에 욱여넣은 직후 패존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찌 됐습니까?”

       

       물음에 패존이 팔짱을 끼며 의자에 기댄다.

       

       “뭘 말이냐.”

       “아까 그 일 말입니다. 이후에 뭔 일 있었습니까?”

       

       신룡이 묵…. 뭐였지.

       아무튼, 그 사내를 기절시킨 직후의 일. 그것에 대한 물음이었다.

       

       “일이 뭐가 있겠느냐. 맹의 이들이 와서 챙겨간 게 전부지.”

       역시나 별다른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맹이 챙겨갔다라.’

       

       술 먹고 주정 부린 일류 무인을 맹이 끌고 갔다고 하면.

       나올 때 썩 좋은 꼴로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아마 못해도.

       

       ‘한동안 이 근처에선 안 보이겠네.’

       

       다행이었다. 

       

       객잔에서 행패 부리는 꼴을 보고 있으니….

       

       ‘슬쩍 처리할까 싶었는데.’

       

       손에 피는 안 묻혀도 될 것 같았다. 

       그런 의미로 만두나 하나 더 먹을까.

       

       그리 생각하며 손을 뻗으려는데.

       

       “얘기는 잘 했느냐.”

       

       패존이 말을 물어왔다. 

       그 말에 달궈지던 입맛이 순식간에 뚝 떨어진다.

       

       “예, 뭐.”

       “애는 안 팼지?”

       “…?”

       

       뭔가 이상한 물음을 들은 것 같아 인상을 찌푸렸다.

       

       “패긴 뭘 팹니까.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시네.”

       

       어처구니가 없네. 

       누굴 동네 양아치로 아나? 패긴 뭘 팬단 말인가.

       

       “팬다고 패질 놈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흐음.”

       

       내 말에 패존도 딱히 부정을 꺼내지는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신룡은 딱 봐도 말도 안 되는 존재였다.

       

       “확실히. 천안이 신기한 놈을 만들어 놨더구나.”

       

       신기한 놈.

       패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수준이 남다른 것이었다.

       

       그걸 듣곤 내가 픽 웃으며 말했다.

       

       “맘에 드셨습니까?”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싶어 말을 물으니, 이에 패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왜, 질투라도 나느냐?”

       

       뭐요?이게 무슨 미친 소린가.

       

       “어르신, 노망 나셨…!”

       

       말을 내뱉자마자 눈 앞으로 무언가 바짝 다가와 멈춘다.

       뭔가 했더니 젓가락이었다.

       

       “만두 대신 네 눈알을 집어주랴? 보아하니 눈깔이 고장이 난 것 같은데.”

       “…죄송.”

       

       짤막이 사과를 건네니, 그제야 패존이 젓가락을 회수해 갔다.

       이를 보며 내가 찝찝한 감정을 삭여야 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안 보였다.’

       

       문제는 심안을 켜고 있지 않다고 한들.

       패존의 동작을 제대로 잡지 못했음에 있었다.

       

       패존이 화경에 오르며 동작이 더 빨라진 것인가.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명확히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한동안은 못 깝치겠는데.’

       

       간신히 비벼볼 만하다 싶었건만, 이제 또 그럴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쉬이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짜증 나는 일이었다.

       

       “질투는 무슨 질툽니까. 질투할 게 따로 있지.”

       

       끌끌.

       감정을 담아 내뱉는 말에 패존이 웃음을 흘린다.

       

       “좋은 육체를 지녔음은 맞으나. 그런 건 부질 없느니라.”

       “왜요. 전 몸뚱이 하나는 기가 막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한데, 기준이 맞는 육신은 네놈뿐은 아니지 않더냐.”

       

       그건 맞다.

       

       회귀와 여러 기연을 통해 만들어낸 육신이지만.

       투아파천무를 익히기 위한 최소치를 지닌 이들은 수두룩했다.

       

       아, 수두룩까진 아니긴 해도. 찾자면 못 찾을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직접 배워보니 더 잘 알겠더라.’

       

       패존이 어마어마한 몸뚱이와 재능을 지닌 이를 찾던 것과 달리.

       투아파천무는 그렇게까지 재능이 필요한 무공은 아니었다.

       

       얼마나 고난도 무공인가 싶어 쫄아 있던 것과 달리.

       

       배워보니 그다지 어려운 힘이 아니었다. 

       초반엔 그렇게 느꼈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알 수 있었다.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던 내가 익히는 데 문제가 없는 것만 봐도 증명이 될 것이다.

       

       ‘솔직히 이건 패존의 덕이 좀 큰 것 같다만.’

       

       안 되는 건 될 때까지.

       그래도 안 된다면 방법을 바꿔서 다시.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

       

       그게 패존의 지론이었고.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니 정말 그렇게 되더라. 

       참 빌어먹게도 말이다.

       

       이걸 볼 때. 

       패존의 뜻과 달리, 투아파천무는 그리 어려운 무공이 아니지 않을까 싶던 찰나.

       

       “못난 제자야.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패존이 혀를 짧게 차며 내게 말한다.

       

       “네 말마따나 육체적인 조건이 맞는 이는 많은 편이나.”

       

       눈빛에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그득했다.

       

       “그 조건을 네 나이 때에 맞춘 이가 얼마나 있겠느냐.”

       “그거야 그렇지요.”

       

       투아파천무를 담을 만큼의 조건을 보유한 육신. 

       그거야 많기는 하겠지만, 그걸 젊은 나이에 이룬 이가 몇이나 있을까.

       

       이를 따지면 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를 세어봐야 넷?

       나를 포함해서 넷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공을 익히는 데 가장 중요한 재능은 육체도 아니고 무재도 아니다.”

       “그럼요?”

       “인내지.”

       

       인내라?

       

       패존의 표정을 보니 진심은 맞는 것 같은데, 별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니.

       

       무공을 익히기 위해선 그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당연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면, 나로선 그다지 공감이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생각이 얼굴에 티가 났는지. 패존이 날 보며 짧게 혀를 찬다.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별로 공감 가는 얘기는 아니라서요.”

       

       무슨 말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투아파천무를 익히며 느껴지는 고통.

       육체를 인위적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뼈를 움직이고 근육을 넘어 혈도까지 자극한다.

       

       이 탓에 몸속에서 누군가 칼춤을 추는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 했고.

       

       동작을 표현함에 있어 내기는 물론이고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했으니.

       그 고통을 감내하며 같은 동작을 수만 번 반복해야 했다.

       

       ‘한 걸음 내딛는 걸 끝냈으면, 다음 걸 해야 했지.’

       

       그렇게 쌓이고 쌓이면, 내가 도대체 몇 번을 움직였는지 셀 수조차 없다.

       

       굳이 셀 거라면 날짜로 세어야 했다.

       주먹을 내미는 걸 열흘을 했고.

       허리를 비트는 거로 보름을 더 했다.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는 것이다.

       

       더딘 걸 패존은 재촉하지 않았고, 이에 나는 완벽해질 때까지 반복했다.

       누구도 조급해하지 않았고 답답해하지 않았다.

       

       시간은 더없이 촉박하고 부족하다 느끼면서.

       탓을 하려거든 전생에 못나게 산 나를 탓할 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이 됐다.

       

       그게.

       

       “뭐가 힘들었다는 겁니까?”

       대체 무엇이 힘들었다는 걸까.

       

       무공을 배우려면 인내는 당연히 있어야 하며.

       그걸 깨닫지 못해 전생을 버러지처럼 살았다.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 하고 있을 뿐이다.

       

       고통은 참으면 되는 일이고.

       답답함은 견디면 되는 일이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재능이라 부르겠는가.

       그냥 참으면 되는 걸.

       

       “…”

       

       덤덤히 뱉어내니, 패존은 가만히 날 쳐다본다.

       잠시 생각을 고르는 듯 보이던 패존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말한다.

       

       “멍청한 녀석.”

       “왜 갑자기 욕을 하십니까?”

       “그냥 오늘따라 유달리 못나 보이는구나.”

       

       말을 뱉어낸 패존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탁상 위에 준비된 음식을 대충 집어든다.

       

       “이만 가자꾸나. 밤이 늦었다.”

       

       그 말에 나 또한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결국 하실 말씀이란 게 뭡니까?”

       “음? 아.”

       

       패존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아까 내게 하려던 말, 그게 궁금해 물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일이니. 지금은 신경 쓰지 말거라.”

       “…더 신경 쓰이는데요.”

       

       저렇게 말하는데 대체 어떻게 신경 쓰지 말라는 걸까.

       특히 패존이 하는 말이라 더 그랬다.

       

       저 양반, 매일 나한테 사고 좀 치지 말라고 하지만.

       

       ‘본인도 그리 얌전한 인간은 아니잖아.’

       

       패존이 젊을 적. 무공을 시험해보겠다며 홀로 문파를 작살 내거나.

       

       사파 고수를 찾아다니며 상대를 재조립하고 다녔다는 얘기는 아직도 유명했다.

       오죽하면 패존의 젊은 시절 별호 중 광견이 섞여 있을까.

       

       내가 볼 때 저 인간은 무공에 미친 것도 있지만.

       

       ‘그냥 사람이 미친….’

       

       휘익-!

       

       “…!”

       

       갑자기 아까처럼 젓가락이 눈을 파고 들어왔다.

       급히 고개를 틀어 피했으나, 진짜 아슬아슬한 정도였다.

       

       그걸 보며 화들짝 놀란 얼굴로 패존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속으로 헛소리를 하는 것 같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

       

       젠장.

       

       속으로 혀를 찼다. 

       여전히 눈치가 참 빨랐다.

       

       다시 고개를 드니 패존은 이미 객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도 얌전히 패존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때.

       

       “저, 저…. 저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뭔가 하며 쳐다보니, 아까 희롱을 당하던 여인이었다.

       미순인가 미숙인가. 뭐 대충 그랬는데?

       ‘뭐든 상관 없지.’

       

       여인을 보며 말했다.

       

       “뭡니까?”

       

       무인이 아닌 인물이 말을 걸어오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던 지라.

       살짝 눈을 키우며 답했는데.

       

       “히익…!”

       

       여인은 날 보며 겁을 먹으며 뒷걸음질을 친다.

       

       “…”

       “죄, 죄송, 죄송해요….”

       

       어지간한 일로는 그냥저냥 넘어가겠는데. 방금은 진짜 상처였다. 

       내 얼굴이 그렇게 문젠가?

       애들은 다 괜찮다고 했는데 말이지.

       

       아무튼, 아무리 그래도 일반인에게 짜증을 낼 순 없으니 간신히 참아내며 되물었다.

       

       “…그래서, 뭡니까?”

       “아, 아…저, 저기…그….”

       

       여인이 어딘가를 가리킨다.

       

       이미 객잔을 빠져나간 패존이다. 

       뭔가 급한 발걸음으로 패존은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다.

       

       뭐야, 그렇게 배고픈가?

       의외로 패존이 식탐이 있었나 싶었는데.

       

       “…아, 아직….”

       

       여인이 내게 말했다.

       

       “계, 계산을…안 하셔서….”

       “…?”

       

       계산을 안 했다고?

       

       방금 음식을 들고 갔는데? 

       말을 듣고 눈이 좁혀진다. 

       

       ‘잠깐, 설마….’

       

       서늘한 생각에 여인을 다시 쳐다본 순간.

       

       “같은…일행분이…. 계산 하실 거라고.”

       “…”

       

       여인이 울먹이며 그리 말하더라.

       

       하하.

       

       이런 옘병할 노인네….

       

       

       

       

       

       ******************

       

       

       

       

       

       언제부터였을까.

       

       오래되진 않았으나, 근래 들어 종종 꿈을 꾸고는 했다.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꿈이야 원래 자주 꾸고는 했다.

       

       대부분이 악몽이어서 문제일 뿐.

       전생에 내가 저지른 일을 떠올리거나.

       구하지 못했고 날 위해 죽은 이들을 떠올리는 꿈이 대부분이었다.

       

       참 지독한 악몽이다.

       그래서 나는 꿈을 싫어했다.

       

       꾸는 꿈이라곤 전부 그런 것들뿐이었으니까.

       

       한데.

       

       요즘은 좀 다른 꿈을 꾸고는 했다.

       간신히 꿈을 꾸지 않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제야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됐나 싶을 즈음.

       나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전생에 관련된 꿈은 아니다.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황들이었다.

       

       심지어 항상 보는 광경이 달라지고는 했다.

       

       그나마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면.

       꿈에는 내가 나온다는 것이고. 그 옆에 있는 인물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도 그랬다. 

       

       오늘도 나는 어딘가를 거닐고 있었으며.

       그 옆엔 항상 있던 인물이 걷고 있었다.

       

       [손이 차갑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뱉은 말이다.

       고개가 돌아가 옆에 있던 이를 쳐다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인물이 여인이라는 점과.

       항상 꿈에 나타나는 인물이라는 점만을 알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한다면.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냥 알 수 있었을 뿐이다.

       

       내가 조심스레 손을 잡자.

       여인이 웃는다.

       

       [하하. 지금은 가을이야. 춥지도 않아.]

       […내가 추우면 추운 거다.]

       

       저 새끼 개수작 부리고 있네.

       내 얼굴로 저런 짓을 하고 있으니 토가 나올 것 같다.

       

       뭐 이런 개꿈이 다 있지?오늘은 유달리 기분이 나쁘다.

       

       그런 꼴값에도 여인은 좋은지 웃는다. 꿈이라서 그런 것 같다.

       저런 개수작에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 꿈이니까 저러는 거지.

       

       [단풍이 피었어.]

       [예쁜가?]

       [올해는 유독 예쁘네.]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길을 이끄는 건 여인이었다.

       

       나는 이를 따라가며 우습게도, 더 천천히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년에는 더 예쁠 거야.]

       [그걸 네가 어찌 확신하지?]

       [나는 다 알아. 똑똑하니까.]

       […그래.]

       [안 믿는 눈치네?]

       [믿는다.]

       

       나이는 어디쯤이지.

       굳이 따지면, 전생에 내가 죽기 직전. 그 나이대처럼 보였다.

       

       내가 대충대충 대답을 꺼내 드니, 여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정말 나는 모르는 게 없는데. 왜 믿지를 못하지?]

       [분명 믿는다고 하였지 않나.]

       [아니야. 당신은 안 믿고 있어.]

       

       살짝 삐진 것 같은 목소리기도 했다.

       동시에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감촉이 사라지니, 내 마음속에 아쉽다는 생각이 스쳤다.

       

       가볍게 걸음을 옮겨 나아간 여인은 부드럽게 몸을 돌리며 내게 말한다.

       

       [그럼 한 가지 더 알려줄까?]

       [무얼 말인가.]

       

       행복한 목소리다.

       

       나도.

       저 여인도.

       

       피어있는 단풍조차도.

       

       유달리 그리 느껴졌다.

       

       [이 아이, 아들일까 딸일까?]

       

       여인이 제 배를 쓰다듬으며 뱉는 말에.

       나는 헛숨을 삼켜야 했다.

       

       그러고 보니 여인의 배는 살짝 부풀어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어쩐지 속이 답답해졌다.

       

       [모르겠군.]

       [바라는 것도 없어?]

       […상관없다. 누구든.]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

       적어도 자신의 아비보단 나은 아비가 되리라.

       

       꿈속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멍청한 날 보며 여인이 웃는다.

       

       [그래.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인지 활짝 웃는 것 같다.

       

       미소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잡고 싶다.

       

       손을 뻗어 다시 여인의 손을 잡고 싶었다.

       

       움직여라.

       꿈이라면 내 뜻대로 움직여라.

       그리 간절히 바라니, 내 몸뚱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웃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간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민다.

       

       그렇게, 다시 여인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안 돼.]

       

       여인이 내게 거리를 벌렸다.

       어째서지? 왜 갑자기 거리를 벌리는 걸까.

       

       당황스러운 반응으로 여인을 바라보니, 여인이 미소를 유지한 채 내게 말한다.

       

       [이러면 안 돼.]

       [왜지…?]

       [당신은 이걸 기억해내면 안 돼.]

       [갑자기 무슨 말인가.]

       [그게. 우리 약속이야.]

       

       걸어간다.

       이해하지 못할 말을 무시한 채. 여인을 붙잡고자 걸었다.

       

       하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조급해진다. 

       어째서 좁혀지지 않는 걸까.

       손을 뻗어보고, 이내 달려보지만. 여전히 똑같은 거리였다.

       

       [무슨…!]

       [있잖아.]

       

       악착같이 뛰는 날 보며 여인이 말한다.

       

       [제발 행복해줘.]

       

       웃으며 말하는 말 ㅁ치곤, 슬픔이 가득하다.

       

       [그래야. 나도 괜찮을 것 같아.]

       [대체 무슨 말을…!?]

       

       그때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아름답던 풍경은 사라지고, 새까만 어둠만이 주변에 남아 있음을 말이다.

       

       점차 내려앉는다.

       어둡고 무서운 어둠이,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여인을 붙잡고자 어떻게든 뛰어보지만, 여인은 그런 날 보며 조용히 속삭일 뿐이다.

       

       [안녕.]

       

       그게 끝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어둠이 날 집어삼키고. 

       

       “허억…!!”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커헉…헉….”

       

       벌떡 상체를 일으켜 숨을 몰아쉬었다.

       

       “…뭐야…뭐야 씨발….”

       

       지독히도 기분 나쁜 감정에 생각을 돌렸다. 뭐 이런 좆같은 꿈이 있나 싶어서였다.

       

       “어?”

       

       한데.

       

       ‘…무슨 꿈이었지?’

       

       방금까지 꾸던 꿈이, 어째서인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꿈을 꿨던 게 거짓말이라는 듯, 아주 조금의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정말 미칠 듯이 기분이 나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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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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