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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9

        

        

       진성이 둘에게 시킨 것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둘의 능력을 사용해 농장을 잠시 마비시키는, 일종의 사보타주(sabotage).

       위치크래프트를 사용해 식물과 쥐를 조종하기 편하게 바꿨고, 리세의 신력으로 미흡한 점을 보완하였다.

        

       갑자기 짠 것이었지만 그리 나쁜 계획은 아니었다.

       사보타주에 많은 경험이 있는 진성이 짜낸 계획인데 그리 큰 허점이 있을 리도 없었고.

        

       그래.

       계획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진성의 뜻이라면 불구덩이조차도 기쁘게 미소를 지으며 들어갈 수 있는 리세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오딜리아는 달랐다.

        

       성질이 더럽기는 하지만 이런 사보타주와는 영 거리가 멀었던 터라 적응하지 못했고, 리세와 같이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식물과 동물을 조종해서 이런 짓을 벌인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식물과 동물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연기하고, 거기에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감정을 이입해서 연기를 하기까지 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이 나이를 먹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찾아오며 허탈하게 만들었다.

        

       마치 정말 부당한 일을 당해서 시위를 하는 것처럼 팻말을 높이 들어 올리게 만들 때의 부끄러움.

       쥐를 움직여 빽빽하게 스크럼을 짜서 농장 주인을 지나가지 못하게 했을 때, 괜스레 느껴지는 뿌듯함과 그 뒤에 찾아오는 ‘내가 이런 걸로 왜 뿌듯함을 느끼는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찾아오는 허무감.

       무기를 든 식물들을 움직일 때,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으로 병정놀이하는 듯한 느낌에 드는 허탈감 등.

        

       수많은 감정이 오딜리아를 이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수시로 얼굴을 가리면서 부끄러움을 달래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오딜리아와 합을 맞추며 식물과 쥐를 조종하고 있는 리세의 집중이 깨지는 건 물론이었고, 잘 이어지던 흐름이 끊기면서 일의 효율이 개판이 되어버리는 건 덤이었다.

        

       그렇기에 리세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위치크래프트를 사용하는 마녀와는 달리, 리세가 신력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서 조종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리세가 오딜리아의 머리채를 잡지 않은 것도 용했다.

        

       아마 오딜리아가 정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자신을 곤란하게 하려고 태업을 한다고 확신했겠지.

        

       그 경우에는 정말로 한판을 붙을 수도 있었겠지.

        

       그나마 지금까지 싸움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오딜리아가 이 상황에 익숙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태업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정말로 부끄러워서 그런 것인지,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더 이상 봐주기가 힘들어졌다는 것.

       계속 저딴 식으로 나오면 진성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리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리세는 조금 강압적인 수단을 써서, 마녀를 강제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냥….

        

       “신주님. 마녀 때문에 일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통제를 할 수 있을까요?”

        

       진성에게 찾아가 부탁하기만 하면 된다.

        

       리세가 보기에 진성은 저 대마녀를 통제할 수 있었고, 통제할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수도 있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리세의 판단은 정답이었다.

        

       “—.”

        

       리세의 말을 들은 진성은 명상을 멈추고 대마녀에게 다가갔고, 방긋 웃으며 몇 마디를 한 것만으로 마녀를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게 했다. 어린 마녀가 장난을 치는 것 같다며 내키지 않아 하던 오딜리아가 이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했으니….

        

       참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후우. 그래요. 당신한테 맞출 테니까, 이 일을 빨리 끝내죠.”

        

       아니.

       리세에게 맞추겠다는 대마녀의 표정이 묘하게 어두운 것을 보아….

        

       어쩌면 마법이어도, 사악한 것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 * *

        

        

        

       변수라는 것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통제를 할 수 없다면 거기서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옳은 것이요, 그 변수를 활용해 나의 이득으로 삼는 것이 옳다.

        

       이번 장난은 그러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성물’이 담고 있는 가치와, 그 가치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땅에서 발견되었을 때의 파급력- 그리고 거기에 대마녀 오딜리아와 대마녀 가브리엘라가 얽혀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진성이 이득으로 얻을 수 있는 것까지.

        

       가벼운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진성은 기꺼이 계획을 짰고, 대마녀와 리세가 함께 움직이게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마녀와 리세가 합을 맞추는 것 역시 이득에 속하는 것이었다.

       수행자의 성향을 보이는 리세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어 견문을 넓혀주는 것도 이득이요, 리세가 일본이라는 무대를 넘어서 좀 더 넓게 활동할 수 있도록 성장케 한다는 장점도 있으며, 마녀와 함께 합을 맞추며 신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이득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이득.

       거기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보를 알게 하는 것도 좋은 것이요, 우연이기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다르게 말하면 ‘대수롭지 않게’ 숨겨왔던 것을 밝힘으로써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충격을 줄이고, 오히려 긍정적인 느낌의 충격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이득이었다.

        

       그 외에도 이득은 많다.

       이득, 이득, 이득.

        

       리세에게 이익이 될 것이 넘쳐났다.

        

       그렇다면 대마녀는 어떨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마녀 역시 이득을 본다.

       자신에게 엿을 먹였던 농장 주인에게 복수를 할 수 있으니 이것도 이득이고, 신력이라는 특이한 힘을 다루는 이와 합쳐서 작전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이것도 이득이었으며,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와 괴롭히는 악연으로 얽혀있는 대마녀에게 엿을 먹일 수 있으니 이 또한 이득이고,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높은 확률로 농장을 헐값에 사들이거나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도 있을 테니 금전적 이득도 있다. 거기다가 친해질 수 있다면 일본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리세라는 사람과도 친분을 나눌 수 있기까지 했으니 이 또한 이득이다.

        

       대마녀에게는 이 일은 이득이었다.

        

       물론 꼬마 마녀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않았더라면- 좀 더 뻔뻔하기만 했더라면 리세가 진성을 찾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리세가 그녀에게 품고 있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첫인상도 지울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성격이 더럽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별개인 것은 뭐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겠지.

        

       그래.

        

       둘은 이득을 보았다.

        

       충분히.

        

       그렇다면 진성은?

       진성은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가?

        

       갑작스레 찾아온 이 변수를, 그리 크지는 않으나 분명히 미래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는 이것을 어찌 이득으로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그리 바꾸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Om tupikaya tupipra vardi svaha.”

        

       눈이 어두운 이에게 빛이 찾아오는 것처럼.

       달빛 한 점 없는 한밤중에 숲속을 거닐 때 빛줄기를 바라듯이.

       간신히 켠 성냥의 불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주위를 밝혀주는 등불로 향하기를 바라듯이.

       그렇게 진언을 외우며 바라나니 이는 이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요.

        

       그 이득이란 자신의 목적에 닿아있는 것이니 이는 지극한 마음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비는 것이니 지혜가 깃들고 광명이 가득하여 자신이 바라는 미래가 저 너머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나니.

        

       다만 보살도 부처도 없이 비나니 이는 스스로 행동하는 자에게 미래가 찾아옴을 말하는 것이나니.

       이것이 바로 진성이 바라는 것이라.

        

       “Om tupikaya tupipra vardi svaha.”

        

       그리하여 진성은 진언을 외웠다.

       주술이라고 하기에는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중얼거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의미가 없고, 그냥 의미 없는 잠꼬대 같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으나, 그렇다고 그 가치에 매몰되기에는 한없이 가볍기 짝이 없는 진언을.

       그 진언엔 의미가 없으니 그 속이 비어있음이요, 그 비어있는 속은 무엇이든 차오를 수 있으니 오물이 보석으로 치장한 것과 같고, 다 썩어가는 괴물이 신수(神獸)의 가죽을 뒤집어쓴 것과 같은 형국이라.

        

       다만 이는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

        

       그리하여 그는 원한다.

       또 다른 대마녀 가브리엘라가 타격을 입기를.

       그리하여 사람에게 손익을 따지지 않게 하고 자기 자신조차 통제하기 어렵게 만드는 열병과도 같은 감정을 추스르게 만들어 오딜리아를 찔러보며 변수를 늘리지 않기를.

        

       저 농장에 잠들어있을 ‘공산주의자의 성물’을 손에 넣고 그것을 귀한 선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중국이 유적을 탐사하기 어렵게 만들기에 나쁘지 않은 시기이니,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음이로다.”

        

       중국에 대한 악소문이 널리 널리 퍼져, 미국 안에서 중국이 유적을 찾아다니기 어렵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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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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