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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멜리나는 키엘과 마주한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자아가 분리될 수 있냐는 매우 고차원적인 질문. 그 질문이 마법사도 아닌 키엘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에서, 멜리나는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래, 흥미를.

       

       ‘……흥미?’

       

       멜리나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무언가 이상했다. 지금 상황에 흥미를 느껴서는 안된다. 

       

       ‘왜?’

       

       멜리나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흥미로운 질문에 흥미를 느낀게 도대체 뭐가 잘못이냐고. 

       

       그 당연한 명제를, 가슴 깊은 곳에서 틀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접견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키엘과 마주하기 무섭게 그를 망각해버렸다.

       

       ‘……뭐였지?’

       

       회의?

       

       아니다. 그건 그저 하루 일과일 뿐이다.

       

       멜리나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올리비아.’

       

       반년 만에 금의환향한 제자.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스테이크. 수행. 그리고 또…….

       

       “자아가 분리되는 이유가 뭐지?”

       

       멜리나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키엘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 말인가?”

       

       멜리나가 찜찜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키엘의 질문에 답해주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

       

       

       

       키엘의 질문을 듣는 순간 올리비아는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기억 따위가 아니라고.

       

       [……갑자기 훅 들어오는군.]

       

       기억은 언제까지나 기억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마모될 수는 있을지언정, 아예 새로운 내용으로 뒤바뀌는건 불가능하다.

       

       [미안하다. 지인의 일이라서.]

       [……흠.]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분명 새로운 광경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무수한 회차 중에서, 자아가 두 개인 행세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올리비아는 정신을 다잡고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안일했다.’

       

       단서 #2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개변을 완료한 단서 #1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단서 #1도 얼마든지 다른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텐데.’

       

       단서와 단서 사이. 

       

       올리비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기간 동안 회귀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 압축본’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아가 분리되는 이유가 뭐지?]

       

       이 순간, 올리비아는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기억 압축의 기준이었다.

       

       올리비아가 아는 내용들은 압축되어 빠르게 흘러가고, 알지 못하는 내용들은 본래 속도로 재생된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 못했는데.’

       

       아무리 올리비아가 고인물이라지만, 사소한 행동변화에서 생기는 모든 [분기]를 예측하는건 불가능했다.

       

       키엘도 기껏해야 황실 서고에 갔을 줄 알았는데, 금탑까지 직접 찾아갔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멜리나에게 자신에 대한 질문을 했으리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면 나가린데.’

       

       키엘과 멜리나는 앞으로 최소한 두 번은 더 엮인다. 한 번은 금탑에서 쓰러졌을 때, 다른 한 번은 대악마 벨페고르를 처치했을 때.

       

       그런데 만약, 키엘과 멜리나가 벌써부터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그것들이 전부 없던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둘은 지금 이 순간부터 합심하여 다른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올리비아를 구할 방법을 강구할테니까.

       

       하지만 대화가 흘러가는 양상은 올리비아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세월이 흐를수록 필멸자의 정신은 빠르게 마모되어 가지. 보통 그 한계는 천년…….]

       

       키엘이 물으면, 멜리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답해준다.

       

       ‘동요를 안해?’

       

       거기서 올리비아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를 나누는건 미친 짓이다. 둘 중 원래 자아가 뭐였는지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든.]

       

       멜리나는 태연해도 너무 태연했다. 마치 올리비아의 자아가 두 개라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혹시 네 지인이 엘프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인간인 이상 절대로 그럴 수는 없으니. 지인에게 돌아가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도록.]

       

       방금 발언으로 확실해졌다.

       

       적어도 지금 순간만큼은,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자아가 두 개라는 사실을 모른다.

       

       ‘이게 말이 되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자아가 두 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올리비아를 마중하기 전, 진리의 편린이 적힌 종이를 매만진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런데 또 지금은 모른다니.

       

       ‘압축본이 두 개인가?’

       

       지금 상황이 말이 되려면, 눈 앞에서 재생되는 것이 단서 #1의 압축본이어야 한다.

       

       만약 단서#2까지 적용됐다면, 멜리나는 답을 해주는게 아니라 그 지인이 누구냐며 추궁부터 했을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단서 #1만 압축됐다기엔, 멜리나가 방금 전까지 진리의 편린을 알고 있었다는게 말이 안된다.

       

       단서 #1과 단서 #2가 모호하게 섞여 있다.

       

       ‘설마…….’

       

       [현재 ‘멜리나 디비아에’를 관전 중입니다.]

       

       올리비아는 알림창을 띄웠다. 이 빌어먹을 알림창은, 올리비아가 스스로 답을 알아낼 때까지 절대로 답을 먼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모든 단서간의 기억은 공유된다.]

       

       간단해보이는 이 명제에는 한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만약 내가 한 회귀자를, 똑같은 시점에 두 번 만나면 어떻게 되는거지?”

       

       조금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대충 단서 #8 정도를 사용해서 993년 1월 1일 자정에 싸이코패스 살인마와 처음 만났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첫 만남에서, 살인마를 폭행했다고 치자.

       

       그러면 단서 #8의 사용이 종료된 순간, 살인마는 올리비아를 ‘초면부터 사람을 개패듯이 팬 미친년’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서 #9를 사용하여, 정확히 993년 1월 1일 자정에 맞춰서 살인마를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폭행하는 대신, 살인마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면 살인마는 폭행당한 단서 #8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평범하게 대화한 단서 #9를 기억하는가.

       

       두 상황을 동시에 기억하는건 불가능하다.

       

       왜냐면 두 사건 모두 정확히 같은 시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개패듯이 맞는 것과 평범하게 대화하는건 공존할 수 없지.’

       

       이런 딜레마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단서든, 그에서 비롯된 분기든, 적용되는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올리비아는 확신에 찬 얼굴로 알림창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 띠링!

       

       [당신은 별도의 설명 없이 단서의 비밀을 모두 파악했습니다!]

       [단서에 대한 설명이 갱신됩니다!]

       

       +

       

       <단서 사용 규칙>

       – 1. 한 번에 두 명 이상의 회귀자를 만날 수 없다.

       – 2. 단서 사용은 스킵이 가능하다.

       – 3. 두 단서가 충돌할 경우, 나중에 사용한 쪽으로 덮어씌워진다.

       – 4. 단서에서 비롯된 분기가 충돌할 경우, 먼저 만들어진 분기가 우선시 된다. 단, 이는 충돌하는 당시로 한정된다.

       

       +

       

       알림창을 확인한 올리비아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게, 키엘 공작.]

       

       그리고 지금 상황은, 분기였다.

       

       키엘은 퇴짜를 맞았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처음에도 이러했을 것이다.

       

       

       

       *****

       

       

       

       멜리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키엘을 내쫓았다. 사람이 저렇게 광적인 얼굴을 할 때는, 대화 자체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멜리나는 품 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언젠가 돌아올 그녀의 제자가, 자신을 위해 남긴 유산. 

       

       얼마나 많이 펴보았는지, 끝 부분이 닳아 있었다.

       

       비록 1년 반 동안 아무런 진전도 없었지만, 멜리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해선 안 됐다.

       

       멜리나는 책상 위에 종이 여덟장을 나란히 펼친 다음, 첫 번째 종이에 적혀있는 편린부터 차례로 해석해나갔다.

       

       노트가, 칠판이, 허공이 수식으로 메꿔져갔다. 멜리나는 지치는줄도 모르고 해석을 이어나갔다. 예전에는 시간이 부족해 한 개씩 끊어 해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완벽히 적응한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다.

       

       다음 단계가 뭔지 어렴풋이 보였지만, 그뿐.

       

       아직은 부족했다.

       

       ‘……이거였구나.’

       

       멜리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망각하고 있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진리에 도달하여, 언젠가 돌아올 제자의 짐을 덜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흠칫한 멜리나가 몸을 벌떡 일으켜세웠다.

       

       ‘……!’

       

       잊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올리비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멜리나는 본능적으로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예, 탑주님. 무슨 용무십니까?]

       “내, 내가 방금 너한테 뭐라고 했느냐?”

       

       비서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내일부터 키엘 공작 전하께서 방문하시면, 출타중이라고 둘러대라고 하셨습니다.]

       “…….”

       [……역시 그만둡니까?]

       

       돌아오는 비서의 말에, 멜리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다. 시켰던대로 둘러대거라.”

       

       멜리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은 키엘을 다시 만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다음 만남은 불과 열흘 만에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은 정말 죄송스러운 내용이었네요.

    다만 시간선 정리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단서의 규칙은 이제 앞으로 더 추가되지 않을겁니다. 앞으로 기다리는건 여러분이 기다리시는 가스라이팅뿐일겁니다.

    쉽게 설명해드리면

    단서 -> 단서 1과 2가 동시 적용될 경우, 나중 것인 2로 덮어씌워짐

    분기-> 단서 1에서 비롯된 분기와 단서 2에서 비롯된 분기가 충돌할 경우, 먼저 만들어진 1의 분기가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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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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