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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결국 학생회실을 찾아갔을 때도 그 찝찝한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못했다.

        

       뭐랄까, 꼭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뭔가 계획을 짜 일을 벌였는데 그걸 본 악당이 ‘사실은 전부 알고 있었다’하는 걸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뭐, 지금 생각해봐야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일단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눈앞의 일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처리해나가도록 하자.

        

       물론 내가 하는 말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벌어질, 회장과의 단체미팅을 말하는 거다.

        

       사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실로 별거 아닌 일이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무조건 나한테 이득이니까.

        

       “…….”

        

       타원형 안경을 쓰고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회장이다.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잘라 정리하고, 앞머리를 한쪽으로 넘겨 가르마를 만들었다. 나이 탓에 얼굴이 조금 앳되어 보이는 것만 빼면 훌륭한 직장인 머리였다. 드라마 속의 깐깐한 남주인공이 할 것 같은 헤어스타일.

        

       깐깐한 남주인공이라고 해서 생각난 건데, 나는 왠지 이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다.

        

       다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떠올린 사람……이라기보다는 ‘캐릭터’는 그림판으로 적당히 그려낸 캐릭터였으니까.

        

       그렇다. ‘If you wish’의 등장인물 중 하나, 그것도 세 명의 남주인공 중 하나에 해당하는 캐릭터와 인상착의가 몹시 흡사했다.

        

       문제가 있다면, 남자 캐릭터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는 스트리머가 어쩔 수 없이 클리어한 윤다호 루트, 그리고 위키 검색으로 조금이나마 알게 된 남다운에 대한 설정이 다라는 것이다. 그나마 인상착의를 기억하는 것은 ‘if you wish’ 메인 메뉴 화면에 등장하는 캐릭터라서 그럴 뿐,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위키에서 검색하며 몇 번 봤을 수는 있지만 따로 기억하지는 않았으니까.

        

       ‘If you wish’가 1인 개발로 유명하고, 나름대로 관련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유명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며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원래 이런 부류의 게임은 하는 사람들만 하는 법이다. 위키에 적힌 내용도 거의 한 사람이 작성한 듯, 작성하다 만 부분이 엄청나게 많았고.

        

       어쩌면 저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그 사람의 관심에서 멀리 있어서 아예 항목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학생회장이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어…… 그러니까, 유하늘 양?”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내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은 하늘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유하늘, 이라고 부를게.”

        

       학생회장의 말에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수아 양?”

        

       “저, 저도 이름만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배려 고마워.”

        

       그리고 학생회장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내 쪽을 보았다.

        

       ……첫인상이랑 이미지가 좀 아주 다른데. 깐깐한 직장 상사 같은 첫인상과는 다르게, 지금 저 표정은 뭐랄까…… 엄청나게 허술해 보였다.

        

       혹시 갭모에 캐릭터였던 걸까? ……뭐, 남캐인 이상 내가 갭모에를 느낄 이유가 없기는 하겠다만.

        

       아, 그러고 보니 예사라가 본격적으로 패악질을 부리던 윤다호 루트에서 학생회는 예사라 몇 마디에 그냥 짜져버리는 묘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의외로 이 사람은 겉보기보다 유약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주 잠깐 마주친 시선을, 학생회장은슬쩍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하늘이를 바라보면서,

        

       “너는 외부 입학생이지?”

        

       “네.”

        

       학생회장은 자신의 책상에 펼쳐진 서류를 읽었다.

        

       “입학시험 성적도 우수하고, 선생님들이 뭔가 물어보면 재깍재깍 대답하고. 학교는 전액 장학금으로 다니고.”

        

       “네.”

        

       “교칙 어긴 적은 없고?”

        

       “네, 당연히 없어요.”

        

       “그래, 열심히 하자.”

        

       “네……?”

        

       학생회장이 그렇게 문답을 마쳐버리자, 하늘이는 그것만큼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렇게 되물어버렸다.

        

       “회장님!”

        

       회장 옆에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도위원 손아름이 기겁했지만, 회장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수아 쪽을 보았다.

        

       “그럼 다음은 이수아.”

        

       “네? 아, 네.”

        

       하늘이와 회장의 문답이 어이없이 끝난 것에 당황했는지, 이수아는 잠깐 말을 더듬었다.

        

       “이원양행의 장녀. 중학생 때 성적은 중상위. 용모 단정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아서—”

        

       까지 읽었다가, 학생회장은 민망하다는 듯 크흠, 하고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나와 이수아가 가까워지면서 기존의 친구들과의 관계가 급격하게 소원해졌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 거다. 아무리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더라도.

        

       “……아무튼, 뭐. 내가 알기로는 딱히 교칙을 어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맞아?”

        

       “저, 저는…….”

        

       “수업을 듣는 도중에, 이제 막 취업한 젊은 교사가 칠판에 판서한 내용을 잘못해서 지워버렸고, 그래서 패닉에 빠져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는 게 목격자들의 증언이거든. 아무래도 너랑은 관계가 없는 모양인데, 선도위원이 착각한 거 같아.”

        

       “네에?”

        

       이수아의 입이 살짝 벌려졌다.

        

       “그러니까, 뭐…….”

        

       학생회장은 안경을 슥 올리며 말했다.

        

       “열심히 하자.”

        

       “회장님!”

        

       선도위원이 빽 소리를 지르며 회장 책상을 내려쳤다.

        

       쾅, 하고 엄청나게 아플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으아…….”

        

       그리고 진짜로 아픈지, 선도위원은 내리쳤던 손을 반대 손으로 감쌌다. 눈에 찔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 책상 엄청 단단하다니까. 양호실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진짜로 다쳤으면 중요한 거 아닌가……하는 말을 해봐야 안 들을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로 했다.

        

       “회장님,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지금 눈앞에 교내의 풍기를 박살 내고 있는 세 사람이 앉아있는데! 그리고 하신 말씀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랑 완전히 다르잖아요!”

        

       “맞아요! 저는 분명히 수업시간 내내 사라랑 끌어안고 있었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하늘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아니야…… 끌어안지는 않았잖아. 그냥 위에 앉아있었을 뿐이야…….

        

       그게 그건가?

        

       “아니, 조금 전에는 교칙에 위배되는 일은 한 적이 없다고 했잖아?”

        

       회장의 눈동자가 안경 너머에서 격하게 흔들렸다. 하늘이의 말이 갑자기 바뀐 것에 당황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교칙’을 어기지 않았다고 한 거죠!”

        

       “교칙 어겼잖아! 수업 시간에 그러고 있는 게 교칙을 어기지 않은 게 아니면 뭔데!?”

        

       하늘이의 말을 듣고 선도위원의 피가 거꾸로 솟은 모양이다.

        

       “교칙에 ‘수업 시간에 서로 끌어안고 있으면 안 된다’라는 말이라도 쓰여 있어?”

        

       하늘이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투척했다!

        

       선도위원의 입이 벌어졌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효과는 굉장했다!

        

       아니, 다른 사람이라도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말하는 걸 들어버리면 할 말을 잃어버릴 것 같기는 하지만.

        

       “…….”

        

       순간 학생회실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교, 교칙에 쓰여있지 않아도 당연히 지켜야 할 상식이라는 게 있어!”

        

       그래, 그렇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라는 게 있긴 하다. 내가 그 상식을 깨보겠다고 저지른 일도 맞고.

        

       “교칙에 따라 처벌한다며? 그럼 교칙에 적히지 않았으면 해도 된다는 소리지!”

        

       하늘아, 그런 말은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치켜든 채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 말이 아니란다.

        

       ……혹시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역시 어그로 끄는 실력이 압도적이다. 문제는 그 어그로가 다시 나에게로 토스 되어서 이젠 선도위원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거였지만.

        

       이렇게 두고 생각해보니까, 정말로 악역 영애를 두둔하는 최측근 같은 느낌이긴 했네.

        

       아까부터 최대한 상대방의 성격을 긁기 위해 꼬고 있던 다리를 까딱거리면서, 나는 하늘이에게 말했다.

        

       “그 정도만 해둬. 어차피 처음부터 들을 생각 없었던 것 같으니까.”

        

       “하지만……!”

        

       ……저거 연기지? 연기 맞지? 진짜 억울해 보이네.

        

       나는 우리 하늘이가 정말로 수업 시간에 나를 못 끌어안아서 화내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로 했다.

        

       팔짱을 낀 채, 꼬고 있는 다리의 발끝을 까딱거리며, 나는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에 해본 적이 없던 일이라서 제대로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학생회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학생회장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회장, 저에 대해서도 한번 말해보세요. 어디 가서 회장이 저한테 말을 걸었다고 얘기는 안 할 테니까.”

        

       저렇게 보여도 일단 남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나름대로 남주인공으로써의 강단 정도는 있겠지.

        

       “…….”

        

       회장은 한동안 나의 눈을 피하다가,

        

       “그, 그럼, 징계 위원회는 이걸로 마치겠다…….”

        

       라면서 황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회장!”

        

       “너는 잠깐 나 좀 보고.”

        

       자신을 부르는 선도위원을 보고, 회장이 다소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선도위원은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회장이 얼른 걸어서 학생회장실을 나가버리자, 당황해서 우리와 회장이 나간 문 쪽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황급히 뒤를 따라 나가버렸다.

        

       “…….”

        

       허, 참.

        

       아무리 그래도 학생회장이 학생회장실에 다른 학생들만 두고 나가버리냐.

        

       “…….”

        

       자리에서 일어나있던 하늘이는 다시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당당하다는 표정은 싹 지워지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무표정이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무섭네. 하늘이 화나게 할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니까, 이게 진짜 현실인 거네.”

        

       하늘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완전한 투명 인간이지만, 하늘이와 수아는 ‘일단은’ 투명 인간까지는 아니다. 무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와 연관되어있는 부분까지. 물론 하늘이는 그것과는 별개로 재벌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무시의 종류가 다르기는 하다.

        

       하늘이를 무시하는 것은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히고도 사과하지 않거나 비웃고 지나가는 것.

        

       나를 무시하는 것은 그냥 내가 그곳에 없다고 가정하는 것.

        

       후자의 경우에는 다소 비정상적일 정도로 그 ‘없다’라는 사실에 집중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봐…….”

        

       이수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대우를, 지금까지 받아왔던 거구나.”

        

       “…….”

        

       나는 거기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물론 이쪽 세계로 와 2달 남짓한 기간은 그렇게 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인생의 대부분은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아왔다. 예사라의 기분을 상상하려고 해도 제대로 떠올릴 수 없다.

        

       아마, 원작에서의 예사라의 행동과 지금 나의 행동이 이렇게 다른 것도 그런 정보 차이 때문에 생기는 거겠지.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더니,

        

       갑자기 하늘이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라야!”

        

       “엫.”

        

       그리고 갑자기 큰 소리로 나를 불러서 깜짝 놀랐다.

        

       “지금부터 더 열심히 하자!”

        

       “……뭐?”

        

       순간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하늘이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이는 나를 마치 열혈 슈퍼로봇물 남주인공처럼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더 붙어 다니고, 더 눈에 띄고, 더 열심히 소문을 퍼뜨려서! 사람들이 절대로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야지!”

        

       “……엫?”

        

       순간 굉장한 말을 들어버려서 대답이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채로 튀어나왔다.

        

       “그래, 사라야.”

        

       갑자기 내 옆자리에 있던 이수아가 내 손을 잡았다. 이수아는 마치 순정만화 속의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촉촉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 함께 힘내자.”

        

       …….

        

       어, 음.

        

       그러니까, 여기서 더요?

        

       대체 어디까지 가시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판나님, 후원 감사합니다!

    작가로써 모든 후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게 후원해주시는 금액이 얼마이건 원래는 저에게 굳이 주지 않으셔도 될 돈이었으니까요. 저를 그만큼 응원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되는지 모릅니다. 제가 매일 글을 쓰면서도 질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매일 올라가는 조회수, 그리고 선작수나 추천수를 보면 그만큼 힘이 나요.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읽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소설을 읽다보면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나오거나, 이런 소재로 소설을 보고 싶은데 왜 없는걸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보고 싶었던 내용들을 소설로 쓰게 되었네요.

    하지만 그렇게 보고 싶은 내용을 쓰게 되었더라도, 누군가가 읽고 호응해주지 않으면 그만큼 힘 빠지는 일도 없습니다. 혼자 쓰는 글은 결국 본인이 생각했던 부분까지 쓰고 나면 그대로 끝날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전개를 계속 생각하게 하고 쓰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은 독자 여러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께서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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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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