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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이제는… 품고 살아가야하는 과거의 잔재를 옆으로 매정하게 치워버리고 헬레나의 상처를 살핀다.

         

         헤드라이트에 의존한 채로 핏물로 축축한 옷을 잡아 뜯으려니 아주 고역이었다.

         아니면… 틈새가 벌어졌다고는 해도 애당초 빈약한 내 근력으로 튼튼한 진압복을 찢는 건 무리였던가.

         

         “아…샤, 난… 정말…….”

         

         “입 다물고…! 의식 유지하면서 숨만 쉬어!”

         

         중환자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자꾸만 더듬거리면서도 말을 걸어오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이랬는데, 왜 피해자인 주제에 죄책감으로 뒤범벅이 된 목소리를 내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울리지 않게 갈라지고… 습기 찬 어조가 마음을 쿡쿡 쑤시고,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음에도. 배려라고 믿었던 내 결정들이 결국 파탄 난 결과로 되돌아온 것 같아서 쓰라렸다.

         

         하지만 당장은 헬레나나 내 정신건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헬레나의 생명.

         

         “읏…?!”

         

         정작 헬레나도 신음을 참고 있거늘.

         심상치 않은 출혈량을 확인한 내 입에서, 새된 소리가 멋대로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목숨만 붙어 있다면 살릴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하는 게 이곳의 의료기술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치료를 받기 전에 죽어버려서 뇌가 손상되면 거기서 사람은 끝.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에나마의 재생기술은 아직 민간에 상용화도 안됐을 뿐더러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

         

         그런 의미에서 이 출혈량은 위험하다. 헬레나가 오멘처럼 덩치가 산만한 것도 아닐진대 이렇게 생명수가 막무가내로 빠져나가다가는 실혈사나 쇼크사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근직 취급받는 엔지니어는 예외여도, 현장요원인 일반 전투경찰들은 기초적인 의약품이 보급목록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살아있는 현장 지침서(Field Manual)나 다름없는 그녀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자리에 지혈제나 압박붕대를 챙겨서 다닐….

         

         “헬레나…! 언니! 지혈제 같은 건 다 어쨌어?!”

         

         “아하하…… 미안, 이미. 써버렸어….”

         

         “대체 어디에다가…!”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찾는 응급처치도구가 안 나오기에, 혹시나 전투 중에 진압복이 찢어지면서 떨어트렸나 하고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거다.

         

         멋쩍게 웃는 소리를 내길래 나도 모르게 윽박질러버렸다.

         자기자신한테 쓴 것도 아닌데 없다면 보나마나 남에게 줘버렸겠지….

         

         안 봐도 뻔한 이야기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지혈이 일단 무리라면…? 그럼 감염을 유발할 수 있으니 총알부터 뽑아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상처부위를 지져서라도 응급처치를 해볼까? …그러고보니 수술 기계는 내가 모조리 공격용으로 쓰다가 망가트리지 않았나…?!

         

         “씨… 침착하자, 침착…!”

         

         모든 미래의 행방이, 지금 내가 내리는 판단에 달렸다고 생각하자 숨이 턱턱 막혔다.

         

         파라다이스의 적이 되어버린 헬레나의 흔적을 시스템에서 꼼꼼하게 지우고, 빠져나가는 걸 도울 생각만 했지 내가 손수 주도하게 되는 건 계획에 없었다.

         

         막중한 책임을 피할 마음은 없지만…. 아… 진짜!

         이럴 줄 알았다면 뭐라도 좀 남겨놓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아샤. 먼저 집에 가 있어…. 그러면 나도 금방….”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꺼내지도 말라니까?”

         

         공연히 비장미 넘치는 대사를 읊으려는 헬레나를 단호하게 막아버렸다.

         

         과연 나라는 일개 해커가 이 개박살 난 시설과 죽은 병사들보다 가치 있는지는 애매하나, 정 안되면 드레이퓨스한테 연락해 목숨 구걸을 해서라도 살아나갈 거니까… 사망 플래그 같은 건 정중하게 사양하겠다.

         

         그러려면… 우선은 간단하게라도 치료를 해야 한다.

         

         일단 물리적으로 몸을 조여서 혈류를 막기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팔이며 다리, 그리고 복부까지 확산탄이 무분별하게 적중한 탓에 애매한 상식과 약물 사용법만을 겨우 익힌 나로서는 함부로 손을 대기도 벅찼고.

         

         “……조금만 참아!”

         

         이게 과연 괜찮은 발상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시도는 해볼 수 있는 게 떠올랐다.

         결국 돌고 돌아 사람은 위급상황이 닥치면 가장 자신 있는 수단을 고르기 마련이다.

         

         스륵….

         

         살며시 찢어진 옷 사이로 손을 넣어 헬레나와 피부를 맞댄다.

         그녀의 몸 안에는, 위치도 부정확하고 이미 파손되었을 수도 있지만 신체를 강화해주는 여러 임플란트가 존재한다.

         

         행여나 뜻하지 않은 반작용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지만… 그걸 조작할 수 있다면 생존율도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실행에 옮겼고.

                                             

         “……어?”

         

         신호가 어디론가 연결되는 감각이 느껴짐과 동시에. 주변 풍경이 일변했다.

         딱히 엉뚱한 일은 아니다. 내가 디폴트라고 여겼던 심상 도서관이 언제나 나타나진 않는 걸 방금도 겪어봤으니까.

         

         그러나 과거에 지냈었던 공간이 나온 건 처음이었고.

         나만이 존재해야 할 세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정착지에 있는 한 작은 구멍 가게, 오소독스 머시너리 샵.

         그 안 쪽에 있던 방의 침대위에 쪼그려 앉은 헬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원주인과 한 때의 세입자, 발렌타인의 이름을 쓰는 자매가 같이 있는다면 도시내의 그 자취방이 더 어울리지 않나…?

         

         왜 나는, 그녀는 난데없이 이런 곳에 떨어진 걸까.

         

         “……별 이상한 주마등도 다 있네. 이러면 할아범은 한창 일하고 있나?”

         “아?! 잠…깐!!”

         

         와락…! 하고.

         이게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헬레나의 손에 이끌려 일종의 애착인형처럼 품에 껴안겼다.

         

         아무래도 그녀는이게 꿈이나 환각 비슷한 거라고 여기는지, 내 불분명한 거절 이후로 과도한 스킨십은 자제하던 태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샤는 상상속에서조차 까칠하네… 언니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도 틱틱대기나 하고….”

         

         “…힘들다고?”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 손을 제지하려는데 묘한 저항이 느껴졌다.

         마치… 이 심상과 공간을 제어하는 능력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듯한 감각.

         

         “그럼 유일한 친구가 사실은 나를 속이고… 상처 입히고… 믿음을 비웃으며 몇 년을 옆에서 맴돌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괜찮겠어…!”

         

         “…….”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정수리 부근에 놓인 얼굴로부터 축축한 감촉이 전달되었다.

         …원리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건 아마… 헬레나의 내면, 차마 표출하지 못하던 약해진 마음을 투영한 정경이 분명하다.

         

         게다가 유령인 나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반응을 바라지는 않는듯 무거운 독백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은… 절대 죽이고 싶지 않았어.”

         “내가 미리 알아주지 못해서 화가 났던 걸까…?”

         “…모르겠어.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어.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잘 모르겠어.”

         

         “윽…!”

         

         마냥 유하기만 하던 손길에 돌연 강렬한 압박감이 주어졌다.

         그녀의 머리색처럼 밝은 은빛을 띠던 방이 점차 어두워지고, 검은 연기가 내부를 좀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신뢰할 수 있는 건, 역시 없나 봐.”

         

         조용히 고개를 들자 살짝 탁해진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

         …검정이 불안과 슬픔, 절망을 상징한다면. 지금 헬레나의 홍채에 감도는, 늑대를 떠올리게 하는 노란빛은 불신과 경멸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물감이 더해지자 내가 아는, 네오 헤이븐의 헬레나 발렌타인이 언뜻언뜻 보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문점이 생겼다.

         

         과연,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게 꼭 한 마리의 맹수여야 할까?

         

         ……실마리를 잡았다면 그걸 최선을 다해 더듬어가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게 발견자의 의무다.

         목청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자기혐오와 의심의 늪에 빠진 사람도 들을 수 있도록 질문을 내던진다.

         

         “나 대신 사람들을 살려주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바보 언니는 어디 갔어?”

         

         “…그거야 아샤가 힌트를…. 아니, 실은 난 그것마저도 끔찍한 고민을…!”

         

         쩌적… 쩌저적….

         

         “으왁?!”

         

         연장자로서 가벼운 훈수부터 두려고 했더니 방과 눈동자가 침식되는 속도가 오히려 두 배는 빨라졌다.

         방금 그거는 취소…! 한 번만 물러주세요!

         

         나 같은 우연의 산물이 누군가를 가르칠 재목이 안 되는 건 알았지만 이런 역효과 덩어리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아…!! 어울리지 않는 짓은 때려치우고 정면에서 들이받는 게 차라리 속 편하겠다.

         

         급하게. 이번에는 내 쪽에서 몸을 돌려 떨리는 헬레나의 얼굴을 양손으로 강하게 붙잡는다.

         아예 허튼 생각으로 우울함의 하강 나선을 타지 못하도록 뒤로 밀쳐버리고 올라탄다.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나는…! 완벽한 성인군자 따위를 언니로 둔 적 없어! 돌부리 정도는 걸려 넘어지더라도 금방 다시 일어나서 밟아 부숴버리는…! 냉정한 척하면서도 잔정을 숨기지 못하는 헬레나 발렌타인을 좋아했다고…!!”

         

         “…아샤?”

         

         멍한 되물음이나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표정이 우스웠으나 대충 뜻은 전해진 모양.

         얕은 수면을 넘어, 깊은 곳까지 닿는 파문에 헬레나의 심상이 지진 난 듯 흔들리고 연결이 약해진다.

         

         세세한 방의 인테리어나 문틈사이로 보이던 가게 구조가 일그러지며 마감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온다.

         

         원래 계획이랑은 좀 많이 다르지만… 환자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건 살고자 하는 의지라고 배운 기억이 나니까 쫓겨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것까지만 토해내야겠다.

         

         “그러니까… 무슨 망할 주마등이니, 세상에 믿을 거 하나 없다느니! 거지 같은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일단은 날 위해서라도 살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 이걸 에피소드 마무리를 못 짓고 한 두 장면을 더 남겼네요.
    제가 손만 빨랐어도…!! 죄송합니닷!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도 눌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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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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