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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크리켓은 야구와 비슷한 귀족들의 고급 레저 스포츠 중 하나이며, 동시에 평민들에게도 친숙한 스포츠 중 하나였다.

       폴로, 그러니까 마상 격구처럼 훈련된 말과 연습할 구장, 장비까지 있어야 하는 스포츠와 달리 공과 넓적한 방망이 등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까.

         

       덕분에 크리켓은 귀족과 평민을 아우르는 대중적인 스포츠였으며, 모두가 기본적인 룰은 숙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겨우 그렇게밖에 못 하냐!”

       “우리 노모께서 너보다 빠따질을 더 잘하겠다!”

       “왜, 왜 공을 못 잡냐고!? 바로 앞에서 떨어지고 있잖아…!”

         

       …뭐, 이런 편이다.

         

       크리켓 시합, 아니 크리켓 시험장에서 선수(생도)들이 열심히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며, 공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현재 시험을 치르는 두 팀은 우연치 않게도 각각 남부와 동부를 대표하는 귀족가의 자제들이 많은 바.

       거기다 운명처럼 팀마저 나뉘어져 있으니.

       남부와 동부가 고향인 이들은 어느새 출신지에 맞게 응원을 날렸고, 그 응원이 과열되어 금방이라도 난장판이 될 분위기였다.

         

       스포츠란 이름의 영지전이자 워 게임.

         

       이건 이미 스포츠 시합이나 일개 생도들의 시험 과목이 아닌, 영지민들의 자존심이 걸린 전쟁이었다.

         

       우연치 않게 크리켓 시험을 치르는 중인 아르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시합 지면 영지에서 봉기라도 일어날 것 같군요.”

       “일어날 것 같다가 아니라, 진짜 날 겁니다. 아카데미 선배들 중 갈등이 있던 영지끼리 크리켓 시합을 했는데, 패배한 영지의 시민들은 슬링(Sling)으로 무장한 채 영주 아들을 둘러싼 후 돌을 던졌다더군요.”

       “그, 그 선배님은 살아 있습니까?”

       “숨은 쉬고 있습니다. 그저 영지 최악의 역적 취급을 받으며 사는 중이라더군요.”

       “…….”

       “그러니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전 역적 취급받고 싶지 않습니다. …돌 맞아 죽고 싶지도 않고요.”

       “…으음.”

         

       이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크리켓 경기는 흥미롭게 흘러갔다.

       시험은 뒷전이고, 죽자 살자 이기려고 상대 진영을 두들겨 패려는 분위기.

       아르노를 비롯한 검술학부 인원들은 슬슬 언제 주먹싸움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러웠다.

       

       “이야, 이 세상에도 벤치 클리어링이 있던가?”

         

       이한은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하며 마냥 황당했다.

       그가 가르치는 생도들이 나오는 경기라기에 관람이나 할 겸 온 것인데, 훨씬 더 상황이 전투적으로 흘러간다.

       귀족들 스포츠라기에 고상하게 흘러갈 줄 알았거늘.

       웬만한 야구나 축구보다 더 흥미롭지 않은가.

         

       또한.

         

       “내가 유럽 축구를 보고 있나? 무슨 훌리건(Hooligan)들이 이렇게 많아?”

         

       관중마저도 하나같이 버서커들이 아닐 수 없다.

       이거 진짜 잘못하면 횃불 들고 귀족들 마차를 불사르는 놈들도 있겠다 싶었다.

         

       “난리다, 난리야.”

         

       즐길 거리가 극도로 적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스포츠에 상당히 진심이다.

       아마 크리켓이란 경기 자체가 친숙한 스포츠이기에 이런 면모가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예상된다.

         

       “축구를 한번 전파해 봐?”

         

       축구와 비슷한 게 있긴 한데, 그걸 좀 더 진지하게 도입해 본다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가 궁금하다.

       이게 바로 지적호기심이란 거려나?

         

       그렇게 악독하게도 현대 축구를 도입해볼까 싶을 때.

         

       “교관님?”

       “11번 곰돌이?”

         

       아는 얼굴을 마주했다.

         

       “배리입니다, 교관님. 훈련장도 아닌데 이름으로 좀 불러주시죠.”

       “그래도 숫자는 정확히 외우고 있잖아.”

       “…이걸 감사해야 합니까?”

       “그보다 배리 생도는 왜 여기 있지?”

       “아, 생활비 좀 벌고 있었습니다. 나름 성수기인지라.”

         

       11번 대머리, 아니 배리 콥스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거대한 배낭에서 시원한 음료를 꺼내 들었다.

       주전부리 용도로 보이는 육포와 프레첼 등도 한가득이다.

         

       “호오, 그런 걸 팔고 다녀도 되는 건가?”

       “원래는 안 되지만, 다들 묵인해주는 편입니다. 저처럼 생활비가 항상 부족한 놈들은 특히 많이 하는 편이죠.”

       “그런가? 어쩐지, 술 취한 놈들도 보인다 싶더니….”

       “하하, 술 판매는 불법입니다. 아마 단속반 뜨는 순간 잡혀갈걸요?”

       “…단속반도 있냐?”

         

       이한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품에서 은화 두 개를 꺼냈다.

         

       “음료 하나랑 육포만 좀 내놔라.”

       “…돈이 너무 많은데요?”

       “나머진 팁이다.”

       “……교관님.”

       “시험기간에는 공부나 해, 인마. 자존심 상한다고 거절하지 말고.”

       “……충성하겠습니다!”

       “평소에 잘해라.”

       “예엡!!”

         

       그렇게 각진 경례와 함께 배리는 은화 두 개(4인 가정 한 달치 월급)를 받아들며 가방 전체를 넘겼다.

       하나만 달라니까 다 넘기고 가버린다.

         

       “말 좀 들으라니까.”

         

       누가 다 달라고 했었나.

         

       이한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가방 속 육포 하나를 입에 넣었다.

         

       “수제였어? 잘 만들었는데.”

         

       돈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맛이었다.

         

       * * *

         

       -일단 결과만 말하자면 이한은 마그누스 대공의 제안을 ‘감히’ 거절했다.

         

       대공의 제안을 평기사 따위가 거절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대공이 이를 모욕으로 여기며 그의 목을 베어라 명령해도 될 터이지만, 대공은 도리어.

         

       – 어째서 거절하는 것이지?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일 따름이었다.

       상당히 좋은 제안이거늘 왜 거절한 것이냐며.

         

       그도 그럴게, 잘만 하면 대공가의 데릴사위가 될 기회다.

       신분상승의 기회였으며, 라이오넬의 성을 쓸 수도 있는 바.

         

       한데 이를 왜 포기하는 걸까?

         

       그러한 의문에 이한이 내뱉은 답변은.

         

       – 안 끌려서요.

         

       …였고.

         

       이러한 걸작과 같은 답변에 마그누스 대공은 눈을 끔뻑였으며, 막시무스는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더라.

         

       – 크아하하하! 형님, 내가 말했지 않소! 저자 걸물이요, 걸물! 천하의 라이오넬을 이렇게 개 무시하는 놈이 있다니! 진짜 대단하지 않소!

       – …확실히 그렇긴 하구나, 하하!

         

       허나 대공과 북부의 기사는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유쾌하면 유쾌했지.

       북부인의 특성인 것일까.

         

       중앙 귀족들과 달리 속내를 감추기보단, 진솔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그들이었고, 호탕함을 더욱 높게 사는 듯했다.

         

       이후 폭소를 내뱉은 마그누스 대공이었고, 그는.

         

       -그래도 기사여, 항상 내 제안을 기억해라. 라이오넬은 그대를 항상 환영할 터이니.

         

       여전히 여지를 남겨두며 사라졌다.

         

       폭풍 같은 사내였다,

       나타났을 땐 당장에라도 모든 걸 휩쓸어버릴 포악함을 보이더니, 사라질 때조차 폭풍처럼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니까.

         

       – 다음엔 꼭 혈투를 벌이도록 하지, 기다리거나, 로한이여!

       –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 음?

         

       “…그 새끼는 다음에 만나면 턱을 깨버릴까?”

         

       리한, 라한 그 다음엔 로한으로 세 번이나 개명시킨 놈.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나름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긴 대공과 달리 끝까지 그를 긁어대던 놈!

         

       그 건방진 고릴라를 다음에 마주친다면 그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턱주가리든 모가지든 따버리고 말 테니!

         

       이한은 갈라하드의 건방진 그래플러 놈 외에도 묵사발로 만들어버릴 새로운 타깃을 정하였다.

         

       하지만 그 전에.

         

       “그보다 정보길드 이 새끼들부터 조져야 하나?”

         

       그래플러와 고릴라보다 먼저 조져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정보길드였다.

       돈을 받았으면 일을 제대로 해야지, 어떻게 된 게 정보가 다 엉망이다.

         

       ‘살인귀인 줄 알았던 공작은 그냥 무난한 정상인이고, 강간범인 줄 알았던 놈은 생각보다 대인배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물론 한 번의 만남 가지고 모든 걸 판단할 순 없을 테지만, 이한은 제 눈과 직감을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공작이나 대공이나 천하의 못 써먹을 쓰레기는 아니었다.

       도리어 그가 지금껏 만난 귀족 중 가장 귀족이란 호칭에 어울리는 위엄과 능력이 있었으니.

         

       하여 이한은 정보길드가 이따위 정보만 넘긴 이유를 크게 둘로 잡았다.

         

       하나는 정말 대충 정보를 수집했거나, 그도 아니면.

         

       ‘둘 모두가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조작했거나.’

         

       무어가 됐건.

         

       “…지친다.”

         

       어찌 된 게 기사단에 있을 때보다 사건 발생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 같다.

         

       …아카데미에 있어서 그런가?

         

       “아니지, 아카데미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겠구나.”

         

       그거 아는가?

       어느 아카데미물이건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까진 평화롭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하필 그의 직장에는 주인공급 주연이 둘, 아니 셋이나 있다.

         

       ‘회귀자랑 정체모를 망나니 왕자에다, 그리고….’

         

       “-교관님!?”

         

       “……”

         

       “어머, 우연이네요?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고, 호호….”

         

       “…흠.”

         

       눈앞의 빙의자까지.

         

       이한은 침음을 내뱉으며 새삼 생각한다.

         

       얘 정말.

         

       ‘연기 더럽게 못하네.’

         

       아이린 윈들러, 그녀가 어설픈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접근했다.

         

         

         

         

         

       [아린아, 알지? 오늘만큼 좋은 기회가 없어! 오늘이야말로 목적을 이루는 거야!]

         

       ‘시끄러, 너 때문에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이린 윈들러는 자기가 대체 무슨 짓을 하나 싶었다.

       매일같이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드는 유령 동거인 때문에 아침부터 화장까지 해야 했으니까.

         

       [응? 난 딱히 화장하라고 안 했는데? 네가 뜬금 한 거면서.]

         

       ‘거, 거지꼴로 만날까, 그럼!? 내, 내가 다 너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이 기집애야.’

         

       [흐음~?]

         

       ‘왜,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야, 아무것도. 어쨌든 네가 무슨 음흉한 마음을 먹었건 상관은 없는데, 내 부탁은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거다, 알겠지?]

         

       ‘음흉한 마음 같은 건 없거든! …근데 그 부탁 진짜 들어줘야 해?’

         

       [시험 망치고 싶으면 안 들어줘도 상관없고.]

         

       ‘으음…!’

         

       유령 소녀가 모든 과목을 암기하는 걸 믿고 공부라곤 전혀 하지 않은 아이린 윈들러는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들어줘야만 하는 처지임을 상기했다.

         

       어차피 마법학부 수석인 그녀는 성적이 낮더라도 퇴학당할 우려가 없기에 시험이야 못 치면 어떠냐 싶기도 하지만.

         

       ‘시험은 망치면 안 되지!’

         

       여전히 수능을 치지 못한, 수험생의 영혼을 가진 소녀로선 성적이 낮은 것만큼 공포스러운 상황도 없었음이다.

         

       하여.

         

       ‘허, 허벅지만 만져보는 거야, 허벅지만….’

         

       소녀의 허리보다 더 굵은 것 같은 기사의 허벅지를 힐끔거리며 소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섬찟!

         

       “…?”

         

       기사는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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