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8


    ​
    ​
    ​
    철컥.
    ​
    ​
    잠겨있던 문을 열고 나가자, 새하얀 복도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
    ​
    [ 기분 나쁜 곳이군. ]
    “그러게, 청소하기 힘들 거 같은데.”
    ​
    ​
    주부로 살아온 세월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소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
    ​
    “오, 그래도 관리는 잘되나 보네. 천장이 깨끗해.”
    [ 아마 마법이겠지. ]
    “그런가?”
    ​
    ​
    그리 말하며 복도 쪽으로 한 걸음 나갔다. 그러자 벽 쪽에서 푸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들려있던 마검이 순식간에 창의 형태로 바뀌더니 빙그르르 돌아 날아오는 무언가를 쳐냈다.
    ​
    ​
    “어엇? 방금 뭐 날아온 거야?”
    [ 독이 발린 화살인 것 같군. 쯧쯧, 귀찮은 짓을 해놨어. ]
    ​
    ​
    마검이 쳐낸 화살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마검의 말대로 화살촉에 검은색 액체가 발라져 있었다. 독으로 보였다.
    ​
    ​
    [ 아무래도 복도에 온갖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걸로 보이는데…정말 여길 통과해서 갈 건가? ]
    “그치만 여기 말고 길이 없잖아. 늦어지면 저녁도 못 먹을걸?”
   [ 그,그건 안된다! 하지만…파트너가 죽는 것도 싫은데… ]
    ​
    ​
    나는 손을 가볍게 저으면서 말했다.
    ​
    ​
    “에이, 그럴 일 없어. 그러니까 그냥 가자.”
    [ 끙, 그렇게 말한다면야. ]
    ​
    ​
    그렇게 나와 마검은 함정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복도에선 벼락이 떨어지기도 했고, 불덩이가 날아오기도 했다. 바닥에서 송곳 같은 게 솟아나거나 가시가 잔뜩 달린 식물이 몸을 감기도 했다.
    ​
    ​
    “휴, 정말 무서운 곳이네.”
    [ …함정보단 파트너가 더 무서운데… ]
    “응?”
    [ 아,아무것도 아니다! ]
    ​
    ​
    복도를 뒹구느라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겨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액자를 밀자 다행히 쉽게 열렸다. 
    ​
    ​
    밖으로 나오자 아까 봤었던 복도가 나왔다.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아까 그 할아버지는 병원에 가셨나 보네.’
    ​
    ​
    집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려다가 몸에 피가 너무 많이 묻어있어 소파에 걸쳐진 천으로 대충 닦았다. 천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대충 빨래통으로 보이는 곳에 던져두고 입구로 향했다.
    ​
    ​
    ‘가기 전에 옷 좀 갈아입어야지.’
    ​
    ​
    온몸이 피범벅인 꼴이라 저번에 신세를 졌던 노예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방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중간에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
    ​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내려가고, 내 방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나는 바로 방으로 향하지 않고 전에 도움을 받았던 노예의 숙소로 향했다.
    ​
    ​
    똑똑,벌컥!
    ​
    ​
    “히이이익!”
    ​
    ​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막 옷을 갈아입고 있던 건지 상의를 벗은 노예와 눈이 마주쳤다. 한 걸음 다가가자 마검 쪽을 바라보며 경기를 일으키려 했다. 
    ​
    ​
    이대로는 대화가 안 될 것 같아서 마검을 손등으로 돌려보낸 후 말했다.
    ​
    ​
    “아, 실례.”
   “왜,왜,왜에 -..”
    “샤워실좀 빌리려고 하는데..”
    ​
    ​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노예는 마구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손으로 샤워실 쪽을 가리켰다. 나는 곧바로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
    ​
    “어흐흐..시원하다.”
    ​
    ​
    깨끗하게 씻고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 옷이 준비되어있었다. 노예는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익숙하게 옷을 입고 방을 빠져나왔다.
    ​
    ​
    ‘다음에 사례라도 해야겠다.’
    ​
    ​
    아무리 저쪽에서 실례했다고 해도 몇 번이고 옷을 뺏어 입는 건 조금 미안했다. 
    ​
    ​
    ‘앞으로도 자주 쓸 것 같기도 하고.’
    ​
    ​
    앞으로도 실례할 것까지 계산해서 벌어둔 돈을 주머니에 넣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으로 향했다.
    ​
    ​
    요즘 관절이 욱신거리더니 키가 조금 큰 것 같았다. 전보다 조금 더 길어진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달칵.
    ​
    ​
    문을 열기 무섭게 무언가가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게 퇴근하는 아빠의 마음일까? 
    ​
    ​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
    ​
    “아이리스 나왔어. 미안, 생각보다 늦어버렸네.”
    ​
    ​
    함정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가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혼자 너무 오랜 시간을 둔 것 같아 미안하다 사과하며 안으로 성큼 들어가 문을 닫았다.
    ​
    ​
    ‘응…?’
    ​
    ​
    그런데 아이리스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굳은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
    ​
    ‘뭐지..? 나 뭐 실수했나? 아니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
    ​
    얼굴을 더듬어 보지만 딱히 묻어나는 건 없었다. 하지만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었다.
    ​
    ​
    “헉…”
    ​
    ​
    분명 깨끗하던 옷이 어느새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나는 식겁하며 옷깃을 잡아당겨, 옷 안쪽을 확인했다.
    ​
    ​
    ‘이런…’
    ​
    ​
    하얀 복도의 함정이 생각보다 더 강한 공격이었는지 상처가 전부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심한 상처가 남은 건 아니었다. 피부가 살짝 베인 정도?
    ​
    ​
    문제는 내 몸은 상처가 생겨도 딱지가 생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피부가 달라붙을 때까지 피가 끝없이 흘러나온다는 데 있었다.
    ​
    ​
    그 탓에 나는 어디 가서 연쇄 살인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꼴이었다.
    ​
    ​
    “으음…아이리스 그게..”
    ​
    ​
    아무래도 애들 앞에서 피를 보이는 건 교육상 좋을 것 같지 않은 데다가, 예전에 아이리스가 과하게 반응했던 게 떠올라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
    ​
    툭.
    ​
    ​
    등 뒤에 닫힌 문이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문을 닫는 게 아니었는데..’ 라는 후회가 들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
    ​
    “…피,냄새.”
    “아,으응 미안. 씻고 와야 했는데.”
   “그런 게…!”
    ​
    ​
    아이리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아이리스의 눈동자에 온갖 감정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감정인지 헤아려보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
    ​
    “그런 게…그런게 중요한,게..”
    ​
    ​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아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
    ​
    “미안해, 아이리스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니까 깜빡하고 처리를 못 했네.”
    ​
    ​
    나는 시간을 끌며 눈동자를 굴려 옷 안쪽을 흘긋거렸다. 상처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회복되고 있었다. 
    ​
    ​
    “아, 혹시 피 때문에 걱정한 거야?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
    ​
    내 말에 아이리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
    ​
    “이거 내 피 아니야. 봐봐, 옷도 내 옷 아니잖아. 그치?”
    ​
    ​
    옷에 묻은 피와 입고 있는 옷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떠오르는 말을 마구 뱉어내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리스를 달랠 뿐이었다.
    ​
    ​
    “..정말?”
    “응, 상처도 없다니까?”
    ​
    ​
    그러자 아이리스가 나에게 다가와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잽싸게 붙잡으며 말했다.
    ​
   
   “왜?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
    ​
    ​
    내 말에 아이리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럼 조금 서운한데….그래도, 아이리스가 걱정해서 그렇게 말해주는 거니까 조금만 보여줄게. 알았지?”
    ​
    ​
    나는 상처가 다 아문 것을 확인하곤 상의를 살짝 들쳐 복부를 보여주었다. 살이 붙은 지 얼마 안 되어 흉터가 남아있었지만, 피가 날 만한 상처는 없었다.
    ​
    ​
    “그치?”
    “….”
    ​
    ​
    아이리스는 말없이 내 배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납득해준 것 같았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옷을 추슬렀다.
    ​
    ​
    “벌써 저녁이네. 금방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알았지?”
    ​
    ​
    아이리스는 이번에도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다.’
    ​
    ​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옷장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
    ​
    “어? 내 옷이 왜…?”
    ​
    ​
    옷장에 잘 넣어뒀던 옷이 전부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아무거나 골라 갈아입었다.
    ​
    ​
    ‘내가 없는 사이 아이리스가 장난이라도 친 건가?’
    ​
    ​
    그리 생각하자 웃음이 슬그머니 지어졌다. 어느새 장난까지 치게 된 걸 보니 뿌듯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
    ​
    ***
    ​
    ​
    리안이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아이리스는 목 끝까지 차오른 뜨거운 말을 삼키고 있었다.
    ​
    ​
    ‘…상처,있었어.’
    ​
    ​
    아이리스는 항상 리안을 유심히 살펴왔다. 그가 언제 피 냄새가 나는지도, 언제 상처가 생기고 회복하는지도 살펴왔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
    ​
    그의 배에 남아있는 흐릿한 흉터가 얼마 전에 생긴 상처라는 걸.
    ​
    ​
    아이리스는 제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 많은 피를 흘리고도 웃어 보이는 리안에게 화를 내지도, 투정을 부리지도 못했다.
    ​
    ​
    ‘거짓말쟁이..’
    ​
    ​
    온갖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
    ​
    전부 너 때문이야.
    네가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리안이 저렇게 고생했을까?
    ​
    ​
    그녀의 마음이 약해지기 무섭게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이리스는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마구 저었다. 
    ​
    ​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생각을 끊어낸 탓이다.
    ​
    ​
    “아이리스 저녁 먹으러 가자!”
    “응..”
    ​
    ​
    아이리스는 언제 감정으로 격해졌냐는 듯 멍한 얼굴로 리안의 손을 잡고 방을 빠져나갔다. 
    ​
    ​
    고통에서 도망치고자 나아간 길 끝에 무엇이 있는 줄도 모른 채.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익명F님!, 익명G님! 혈소연님! foseja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 ٩( ᐛ )و //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원래 시련이 있어야 행복이 있는법 아니겠습니까?

핫 핫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철컥.

잠겨있던 문을 열고 나가자, 새하얀 복도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 기분 나쁜 곳이군. ]

“그러게, 청소하기 힘들 거 같은데.”

주부로 살아온 세월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소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 그래도 관리는 잘되나 보네. 천장이 깨끗해.”

[ 아마 마법이겠지. ]

“그런가?”

그리 말하며 복도 쪽으로 한 걸음 나갔다. 그러자 벽 쪽에서 푸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들려있던 마검이 순식간에 창의 형태로 바뀌더니 빙그르르 돌아 날아오는 무언가를 쳐냈다.

“어엇? 방금 뭐 날아온 거야?”

[ 독이 발린 화살인 것 같군. 쯧쯧, 귀찮은 짓을 해놨어. ]

마검이 쳐낸 화살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마검의 말대로 화살촉에 검은색 액체가 발라져 있었다. 독으로 보였다.

[ 아무래도 복도에 온갖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걸로 보이는데…정말 여길 통과해서 갈 건가? ]

“그치만 여기 말고 길이 없잖아. 늦어지면 저녁도 못 먹을걸?”

[ 그,그건 안된다! 하지만…파트너가 죽는 것도 싫은데… ]

나는 손을 가볍게 저으면서 말했다.

“에이, 그럴 일 없어. 그러니까 그냥 가자.”

[ 끙, 그렇게 말한다면야. ]

그렇게 나와 마검은 함정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복도에선 벼락이 떨어지기도 했고, 불덩이가 날아오기도 했다. 바닥에서 송곳 같은 게 솟아나거나 가시가 잔뜩 달린 식물이 몸을 감기도 했다.

“휴, 정말 무서운 곳이네.”

[ …함정보단 파트너가 더 무서운데… ]

“응?”

[ 아,아무것도 아니다! ]

복도를 뒹구느라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겨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액자를 밀자 다행히 쉽게 열렸다.

밖으로 나오자 아까 봤었던 복도가 나왔다.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그 할아버지는 병원에 가셨나 보네.’

집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려다가 몸에 피가 너무 많이 묻어있어 소파에 걸쳐진 천으로 대충 닦았다. 천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대충 빨래통으로 보이는 곳에 던져두고 입구로 향했다.

‘가기 전에 옷 좀 갈아입어야지.’

온몸이 피범벅인 꼴이라 저번에 신세를 졌던 노예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방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중간에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내려가고, 내 방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나는 바로 방으로 향하지 않고 전에 도움을 받았던 노예의 숙소로 향했다.

똑똑,벌컥!

“히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막 옷을 갈아입고 있던 건지 상의를 벗은 노예와 눈이 마주쳤다. 한 걸음 다가가자 마검 쪽을 바라보며 경기를 일으키려 했다.

이대로는 대화가 안 될 것 같아서 마검을 손등으로 돌려보낸 후 말했다.

“아, 실례.”

“왜,왜,왜에 -..”

“샤워실좀 빌리려고 하는데..”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노예는 마구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손으로 샤워실 쪽을 가리켰다. 나는 곧바로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어흐흐..시원하다.”

깨끗하게 씻고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 옷이 준비되어있었다. 노예는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익숙하게 옷을 입고 방을 빠져나왔다.

‘다음에 사례라도 해야겠다.’

아무리 저쪽에서 실례했다고 해도 몇 번이고 옷을 뺏어 입는 건 조금 미안했다.

‘앞으로도 자주 쓸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실례할 것까지 계산해서 벌어둔 돈을 주머니에 넣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으로 향했다.

요즘 관절이 욱신거리더니 키가 조금 큰 것 같았다. 전보다 조금 더 길어진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달칵.

문을 열기 무섭게 무언가가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게 퇴근하는 아빠의 마음일까?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아이리스 나왔어. 미안, 생각보다 늦어버렸네.”

함정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가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혼자 너무 오랜 시간을 둔 것 같아 미안하다 사과하며 안으로 성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응…?’

그런데 아이리스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굳은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나 뭐 실수했나? 아니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얼굴을 더듬어 보지만 딱히 묻어나는 건 없었다. 하지만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헉…”

분명 깨끗하던 옷이 어느새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나는 식겁하며 옷깃을 잡아당겨, 옷 안쪽을 확인했다.

‘이런…’

하얀 복도의 함정이 생각보다 더 강한 공격이었는지 상처가 전부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심한 상처가 남은 건 아니었다. 피부가 살짝 베인 정도?

문제는 내 몸은 상처가 생겨도 딱지가 생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피부가 달라붙을 때까지 피가 끝없이 흘러나온다는 데 있었다.

그 탓에 나는 어디 가서 연쇄 살인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꼴이었다.

“으음…아이리스 그게..”

아무래도 애들 앞에서 피를 보이는 건 교육상 좋을 것 같지 않은 데다가, 예전에 아이리스가 과하게 반응했던 게 떠올라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툭.

등 뒤에 닫힌 문이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문을 닫는 게 아니었는데..’ 라는 후회가 들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피,냄새.”

“아,으응 미안. 씻고 와야 했는데.”

“그런 게…!”

아이리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아이리스의 눈동자에 온갖 감정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감정인지 헤아려보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게…그런게 중요한,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아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미안해, 아이리스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니까 깜빡하고 처리를 못 했네.”

나는 시간을 끌며 눈동자를 굴려 옷 안쪽을 흘긋거렸다. 상처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회복되고 있었다.

“아, 혹시 피 때문에 걱정한 거야?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내 말에 아이리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내 피 아니야. 봐봐, 옷도 내 옷 아니잖아. 그치?”

옷에 묻은 피와 입고 있는 옷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떠오르는 말을 마구 뱉어내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리스를 달랠 뿐이었다.

“..정말?”

“응, 상처도 없다니까?”

그러자 아이리스가 나에게 다가와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잽싸게 붙잡으며 말했다.

“왜?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

내 말에 아이리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금 서운한데….그래도, 아이리스가 걱정해서 그렇게 말해주는 거니까 조금만 보여줄게. 알았지?”

나는 상처가 다 아문 것을 확인하곤 상의를 살짝 들쳐 복부를 보여주었다. 살이 붙은 지 얼마 안 되어 흉터가 남아있었지만, 피가 날 만한 상처는 없었다.

“그치?”

“….”

아이리스는 말없이 내 배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납득해준 것 같았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옷을 추슬렀다.

“벌써 저녁이네. 금방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알았지?”

아이리스는 이번에도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옷장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어? 내 옷이 왜…?”

옷장에 잘 넣어뒀던 옷이 전부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아무거나 골라 갈아입었다.

‘내가 없는 사이 아이리스가 장난이라도 친 건가?’

그리 생각하자 웃음이 슬그머니 지어졌다. 어느새 장난까지 치게 된 걸 보니 뿌듯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

리안이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아이리스는 목 끝까지 차오른 뜨거운 말을 삼키고 있었다.

‘…상처,있었어.’

아이리스는 항상 리안을 유심히 살펴왔다. 그가 언제 피 냄새가 나는지도, 언제 상처가 생기고 회복하는지도 살펴왔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그의 배에 남아있는 흐릿한 흉터가 얼마 전에 생긴 상처라는 걸.

아이리스는 제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 많은 피를 흘리고도 웃어 보이는 리안에게 화를 내지도, 투정을 부리지도 못했다.

‘거짓말쟁이..’

온갖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전부 너 때문이야.

네가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리안이 저렇게 고생했을까?

그녀의 마음이 약해지기 무섭게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이리스는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마구 저었다.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생각을 끊어낸 탓이다.

“아이리스 저녁 먹으러 가자!”

“응..”

아이리스는 언제 감정으로 격해졌냐는 듯 멍한 얼굴로 리안의 손을 잡고 방을 빠져나갔다.

고통에서 도망치고자 나아간 길 끝에 무엇이 있는 줄도 모른 채.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