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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하지만 잊어야 한다.

     

   ‘그 세계는 이제는 없는 세계니까.’

     

   「크라슈 님, 저는 욕심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슬란 님이 그렇게 됐는데 자꾸만 욕심을 부릴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저한테 잘해주지 말아요.」

     

   아슬란이 죽은 그 날 펑펑 울던 그녀가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가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참던 게 누구인 줄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크라슈는 그때 참, 기막혀했다.

   하지만 후에는 알았다.

     

   아슬란이 죽은 뒤 의기소침한 그녀를 데려와 자신의 직속 하녀로 들어오라고 한 뒤.

   얼마 안 가 발하임에서 발생한 세계 침식의 폭주로 청송관과 함께 그녀를 잃고 나서.

     

   자신은 욕심조차 부릴 줄 몰랐던 머저리라는 것을 말이다.

     

   ‘차라리 욕심을 부렸다면.’

     

   몇 번이고 되새겼던 아픔과 비통함을 크라슈는 잊지 못했었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건 참으로 묘하다.

   아픔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사라진다.

     

   리리나의 죽음은 세계 침식이 폭주하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 뒤 한참을 창공의 세대 속에서 여러 일을 겪은 결과 나름대로 리리나를 잃은 아픔을 잊었다.

   오죽하면 도저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그토록 따라다니던 여성이 신청한 데이트에 결국 나가볼 생각까지 했겠는가.

     

   ‘뭐, 다 의미 없어졌지만.’

     

   메리 다이아나, 그 망할 신창의 일 덕에 결국 데이트도 못 나갔고.

   그녀도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자신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들을 포함해 리리나와 있었던 일들도 이제는 전부 없던 일이다.

   눈앞에 있는 리리나는 자신이 알던 그녀와 다른 사람이니까.

     

   “아쉽게도 여자친구 건은 아니네요.”

     

   그러니 크라슈는 그녀에게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녀는 아슬란의 직속 시녀 리리나.

   그리고 이제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의 직속 시녀일 리리나다.

     

   크라슈의 첫사랑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끝마쳐 버린 사랑이었으니까.

     

   그녀가 죽은 그 날.

   크라슈는 그녀의 시체 앞에서 조용히 그 사랑을 끝냈었다.

     

   ‘눈인형.’

     

   아주 짧게 올랐던 감정의 폭이 눈인형에 의해 눌려 저 아래로 사라졌다.

     

   “리리나 씨.”

     

   덕분에 크라슈는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아슬란이 살아갈 수 있게 저랑 작당 좀 벌이죠.”

     

   더불어 그녀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크라슈가 그리 말하자 리리나는 침묵하다 이내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든 말하라고 했던 건 거짓말 아니니까요.”

   “예, 믿음직스럽네요.”

   “자, 뭐든 시켜 주세요. 그래서 전 무얼 하면 되나요.”

   

   

     

   명을 받들듯 치맛자락을 들어 올린 채 기다리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곧 그녀가 움찔거릴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일, 아슬란이 분신(焚身)을 시도할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리리나의 몸이 우뚝 굳었다.

     

   “그사이 크림과 함께 부가주의 방에 침입해 도로시의 결정을 찾는 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연이은 말에 또 한 번 그녀의 몸이 굳었다.

     

   “……정말로 뭐든 말해버리네요.”

     

   그 얼굴은 무척이나 얼빠져 보였다.

     

     

   * * *

     

     

   염주(炎主)

   애가사 이그리트

   7클래스인 아뎁투스 메조르의 마도사.

     

   오러로 치면 마스터 급의 무르익은 경지로 세계에 손꼽히는 마도사 중 한 명이다.

     

   나이가 들어 주름진 중년의 여성이 된 그녀는 방에서 펜을 쥔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최근 그녀는 이렇게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못난 아들 때문이었다.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애가사는 누구보다 자기 아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점차 자라나며 그는 아들에게 생긴 이상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월음지체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달의 음양을 지닌 월음지체를 가진 아슬란은 이그리트의 화염 마법을 배울 수 없었다.

     

   그 말은 즉. 자기 아들은 이그리트 가문의 총애는 물론 가주 또한 될 수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애가사는 아들을 아꼈다.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열심히 마법을 공부하고 있었고, 마법에 재능을 보였다.

   월음지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인 그녀의 생각일 뿐.

   주위의 시선은 달랐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이자 아슬란의 할아버지인 천하십강 중 한 명, 염왕의 말을 듣고 그녀는 비로소 모두가 아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깨달았다.

     

   「아슬란은 이그리트 가문의 승계를 그만둔다.」

   「아버지!」

     

   평생 가주라 더 많이 불렀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은 물론 아슬란도 염왕의 핏줄이었다.

     

   「아슬란은 아버지의 손자입니다! 승계를 포기한다니요! 그럼 아슬란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요!」

     

   비록, 염왕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자식으로서 살갑게 대한 적이 없었으나.

   그 사실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애가사는 더더욱 아슬란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마음속에서도 부디 자신과 아들을 아끼는 마음이 있기를 바랐다.

     

   「하아, 부가주.」

     

   그러나 염왕은 애가사와 전혀 다른 이였다.

     

   그는 애가사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이그리트의 가주였다.

   자식과 손자의 사랑보다도 그는 이그리트와 붉은 마탑의 미래를 더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다.

     

   오직 마법 만능주의가 만연한 붉은 마탑이다.

     

   그곳에서 이그리트가 평생 가꿔온 화염 마법을 쓰지도 못하는 이가.

   과연 이그리트에서 그 이름을 날릴 수 있을까.

     

   오히려 창피를 당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염왕은 이미 진작에 아슬란을 향한 생각을 닫았다.

     

   「마탑에서 삼 년이면 개도 마법을 읊는다. 하지만 아슬란은 마탑 개조차 되지를 못하는 놈이다. 그런 놈을 승계시키면 이그리트의 명성에 먹칠하게 될 뿐이다.」

     

   애가사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손자인 아슬란을 마탑 개 취급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자식을 그렇게 낳은 네 책임을 물 수도 있었다. 내가 번번이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데려온 그 남자는 필히 이그리트 가문에 도움 되지 못할 아이를 낳을 거라고.」

     

   부릅뜬 애가사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염왕은 애가사가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편을 보고, 몇 번이나 반대했었다.

     

   그러나 애가사는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정을 나눠 끝내 아슬란을 가졌고, 결국 식까지 올렸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월음지체까지는 아니어도 음기를 타고나 몸이 원래도 약한 편이었다.

     

   그 결과 그는 이그리트 가문의 압박과 눈총 속에 점차 마음에 병이 들어갔고, 얼마 안 가 몸에도 병이 들며 끝끝내 젊은 나이에 죽었다.

     

   남편의 그런 죽음을 알기에 그녀는 지금 아버지의 발언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편이 죽은 이유는 자신의 욕심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이그리트와 아버지는 자기 아들마저 죽이고자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분노가 흘러나오고, 치가 떨렸다.

     

   「네 입으로 다른 이의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하였지. 그렇다면 붉은 마탑에 한 여자아이가 있다. 화염 마법의 자질을 타고났더군. 그 아이를 양녀로 들이겠다.」

     

   연이은 충격적인 발언의 애가사는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염왕은 정말로 아슬란을 버린 것이었다.

     

   그 뒤로 그녀는 염왕이 들이겠다고 한 아이를 알아보았다.

   이름은 아벨라, 아직은 양녀로 들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재능은 진짜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화염 마법을 제 손처럼 다루는 그녀는 이그리트 가문에서도 나오기 힘든 천재였기 때문이다.

     

   애가사는 그녀를 알게 된 이후로 초조해졌다.

   자기 아들이 정말로 이그리트 가문에서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버지만은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가문만을 위하는 이니까.

     

   그 일 뒤로 애가사는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슬란의 머리를 칭찬해주고자 쓰다듬어 주던 손은 그를 냉혹하게 내려쳐 마법을 익히게 했고.

   그의 월음지체를 해결하고자 세상의 영약이란 영약은 죄다 찾아 아슬란이 토를 할 때까지 먹였다.

     

   「약하게 굴지 마! 넌 이그리트 가문을 이끌어 나갈 이그리트의 미래야! 일어나! 아슬란! 당장 마법을 써!」

     

   마나를 다 쏟아내어 주저앉은 아슬란의 앞에 그녀는 그리 외쳤다.

   이대로 둔다면 자기 아들은 이그리트 가문에서 영영 버려진다.

     

   애가사는 그걸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먼저 간 남편에게 미안해서라도 그렇게 둬서는 안 되었다.

     

   그러니 모질게 굴었다.

   혹독하게 그를 가르쳤고, 혼냈으며 체질을 바꾸게 강제로 노력 시켰다.

     

   그럼에도 아슬란은 꿋꿋이 견뎠다.

   자신을 닮은 강한 아이였으니까.

     

   그러나 그의 안이 점차 썩어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애가사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속 또한 마찬가지로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아슬란이 불타 버린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정령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을 본 그날.

   그녀는 앞뒤 상관없이 달려들어 그 정령을 제 손으로 불사 질렀다.

     

   자기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아슬란은 그 뒤로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뒤늦게 알았다.

   아슬란이 그 정령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쌓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냐하면 그 뒤로 아슬란이 얼마간 수많은 정령과 관련된 도서를 미친 듯이 뒤졌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이그리트 가문에서 정령은 금기다.

     

   그런 정령과 어울렸다는 사실은 오히려 아슬란의 인생이 정말로 끝장날 수 있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염왕에게 그 소식이 들어갔다간 어떤 꼴이 날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의 눈에 정령은 아슬란의 미래를 망가트리는 침식종일 뿐이었다.

   그러니 아슬란을 몇 번이고 타일렀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단지, 정령을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결국 아슬란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는 식음을 사실상 거의 전폐했고, 방에 틀어박혔다.

     

   애가사는 그런 그를 찾아가 몇 번이고,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밥을 먹이려 했다.

     

   이제 그녀는 아슬란에게 상냥히 대하는 법을 몰랐다.

   10년 가까이 그를 모질게 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가사를 바라보는 아슬란의 눈에는 생기조차 없었다.

   그는 실 끊어진 인형과 같았다.

     

   그리고 아슬란의 자살 기도가 시작됐다.

     

   “아, 아.”

     

   애가사는 자기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세상은 넓고, 위험하다.

   그렇기에 이그리트 가문의 비호 없이 살아간다는 건 월음지체를 타고난 아슬란에게 있어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그러니 자신이 아슬란에게 미움받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을 이그리트 가문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최악의 사태를 낳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르겠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린 너무 많은 게 잘못되어 버려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이 서랍으로 향했다.

   다 타버린 정령의 잿가루에서 발견했던 결정.

     

   어쩌다 보니 그것을 챙기게 되었지만, 아슬란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부가주님!”

     

   그러는 순간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애가사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시녀장이 있었다.

     

   “시녀장?”

   “아, 아슬란 님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애가사의 얼굴도 굳었다.

   그녀가 이렇게 급히 찾아온 것만 해도 이번 달 동안에만 벌써 두 번이다.

     

   이제는 시녀장이 이런 표정만 지어도 알 수 있었다.

   아슬란이 또다시 자살 기도를 한 것이다.

     

   “분신자살하시려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들려온 이야기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분신자살, 자기 몸을 불태우는 자살.

   다른 자살들과 달리 실패한다 해도 큰 후유증이 남는 것이 분신자살이다.

     

   그런 끔찍한 자살을 아들이 택했다는 말에 애가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장, 당장 안내해!”

     

   애가사가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녀가 뛰어나간 사이 그녀의 방문 앞 복도 사이로 누군가가 조용히 나타난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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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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