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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푸른 섬광이 휘몰아치는 공간.

         

       비탄을 겁집에서 완전히 뽑아든 나는 가장 먼저 ‘초감각’을 발동시켰다.

         

         

       “비탄이여, 깨어나라.”

         

         

       -키이이익!!

         

       파르르 떨려오는 자루를 꽉 쥐며 시동어를 읊자 비탄이 다시 한 번 괴성을 내질렀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비명을 뒤로 익숙한 기계들이 들려왔다.

         

         

       -띠링!

         

       [신물 ‘비탄’의 고유 스킬 1번, ‘초감각’이 활성화됩니다.]

         

       [※초감각의 사용 제한 시간은 최대 10분입니다.※]

         

       [남은 지속 시간:9분 58초]

         

         

       피로에 의해 무뎌졌던 감각들이 사납게 눈을 떴다.

         

       흐릿하던 시야가 또렷해지고, 흉폭한 대기의 흐름이 피부를 통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귓가로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을 수 없었던 작은 소음들이 전부 들어오고 있었다.

         

         

       “흐으, 하아…”

         

         

       나는 감각 기관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각성의 기운에 깊은 날숨을 토해냈다.

         

       몸에서는 짙은 청색 오라가 흩날리고 있었다.

         

       온전히 비탄을 사용하는 중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초감각의 효과가 훨씬 날카로운 것 같았다.

         

       나는 폭발적인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비탄에게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며 적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

         

         

       눈길이 닿은 곳에는 돌처럼 굳어있는 검은 기사들이 있었다.

         

       대장격으로 보이는 녀석은 말없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신물… 그것도 꽤나 상위격의 검이군.”

         

         

         

       역시 바로 알아보는구나.

         

       나는 얕은 침음을 흘리며 미간을 굽혔다.

         

       하긴, 이렇게 요란하게 광고하는데 못 알아보면 그것도 이상한가.

         

         

       “하아…”

         

         

       이래서 되도록이면 검집에서 꺼내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말이야.

         

       나는 한숨과 함께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지형이 깊은 숲이어서 그런지 신물 특유의 기운이 외부로 노출되지는 않은 듯 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을 테니, 그마나 다행이네.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분명 일이 복잡해질 테니까.

         

         

       “분위기가 달라졌군. 재미있겠어.”

         

       “뭐라는 거야. 썩은 시체 새끼가.”

         

         

       섬짓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꼬리를 비트는 언데드들.

         

       나는 녀석들의 질적한 시선을 향해 중지 손가락을 날려주고는, 이어서 상태창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상점에서 특수 효과 ‘고통의 망각’과 ‘강철의 육체’… 그리고 ‘중급 나마 포션’ 3병 구매해줘.”

         

         

       -띠링!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총 소비 포인트:1050P]

         

       -띠링!

       [특수 효과 ‘고통의 망각’이 발동됩니다.]

       [앞으로 30분 간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고통이 99% 경감됩니다.]

         

       -띠링!

       [특수 효과 ‘강철의 육체’가 적용됩니다.]

       [앞으로 20분 간 몸상태를 극상으로 끌어올립니다.]

       [대신 효과의 지속 시간이 끝난 직후, 축적된 모든 피해를 3배로 돌려받습니다.]

         

         

       피로와 부상으로 엉망이 되었던 전신이 특수 효과로 보정된다.

         

       상처에서 출혈이 멈추고 늘어져 있던 근육들이 팽창한다.

         

       동시에 통각이 잘려나가며 머리를 괴롭히던 몸의 적신호들이 사라진다.

         

         

       “이제야 좀 살겠네…”

         

         

       포인트가 많이 아깝기는 하지만.

         

       가치 있는 소비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나는 허공에서 나타난 마나 포션들을 거침 없이 입압으로 쏟아부었다.

         

         

       -띠링!

         

       [‘중급 마나 포션’을 섭취했습니다.]

         

       [고갈되었던 마나가 일부 회복됩니다.]

         

       [스킬 ‘단거리 순간 이동(Blink)’의 사용 가능 횟수가 6회 충전되었습니다.]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브링크의 스톡까지도 일부 복구한 상태.

         

       이 정도면 시간을 살짝 빠듯해도 할만한 싸움이었다.

         

       나는 가볍게 한 발자국을 앞으로 딛으며 자세를 잡았다.

         

       검푸른 검신이 기사들을 향해 겨눠졌다.

         

         

       녀석들에게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빌빌거리고 있던 놈이 급 멀쩡해져서 그런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싸움판 위로 감돌던 팽팽한 적막을 일방적으로 잘라냈다.

         

         

       -콰앙!

         

       지면을 박차니 딛고 있던 땅이 움푹 패였다.

         

       뒤를 이어 언데드들을 향해 나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기습에 반응한 기사들 중 하나가 거대한 방패를 들이밀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돌진하는 나를 그대로 들이받을 생각처럼 보였다.

         

         

       나는 가벼운 조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 판단, 후회하게 될 텐데.

         

         

       -쐐애애애액!!

         

       검날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고 검과 방패가 격돌하는 그 순간.

         

       나는 얼핏 보이는 얼굴을 향해 소리쳤다.

         

         

       “뒤져…!”

         

         

       비탄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허공으로 아름다운 실선이 그어진다.

         

       나는 순간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황홀한 일격은 장면을 베어내며 주변의 모두를 매료되도록 만들었다.

         

       매혹적인 잔상은 방패를 두부처럼 잘라내더니, 이내 너머에 있던 기사마저 양단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언데드가 바닥으로 널부러졌다.

         

         

       -서걱…

         

       뒤늦게 울리는 절단음이 우아하게 뻗어나갔다.

         

       그것은 전율을 일으키는 무언가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으며 곧장 다시 스탭을 밟았다.

         

         

       다음 목표는 방패병의 뒤에 위치해 있던 궁수였다.

         

       녀석은 쾌속으로 접근해오는 내 모습에 경악하며 황급히 시위를 당겼다.

         

         

       -팅, 슈우우욱!

         

       뒤이어 발사된 화살이 내 목을 노리며 쇄도해왔다.

         

       허나, 나는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었다.

         

       비탄으로부터 느껴지는 전능감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저런 화살 정도는 여유롭게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콰악!

         

       “……?!”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채자 궁수가 당황하는 기색과 함께 물러난다.

         

       나는 그것을 역수로 움켜쥐며 뒷걸음질 치는 녀석의 얼굴에 꽂아넣었다.

         

         

       -콰드득!!

         

       투구 사이의 틈을 비집고 정확히 들어가는 공격.

         

       손끝으로는 궁수의 눈깔이 뭉개지고 뇌에 구멍이 나는게 느껴지고 있었다.

         

       얕은 호흡과 함께 비틀거리는 갑주를 걷어차니, 녀석의 몸뚱아리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하.”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20초.

         

       아직 초감각이 꺼지기까지는 9분 정도의 잔여가 있었다.

         

       나는 바닥에 뒹구는 궁수의 머리통을 무심히 썰어내며, 아직 남아있는 기사들을 응시했다.

         

       녀석들은 한층 짙어진 살기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뺨에 튄 썩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시간 없다… 후딱 끝내자.”

         

         

       직후, 나는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들 또한 각자의 병기를 휘두르며 나를 향해 접근했다.

         

       숲 안으로는 한동안 수풀을 뒤흔드는 굉음이 번쩍였다.

         

         

         

       ***

         

         

       한편,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기 몇 분 전 즈음.

         

       루시와 아론은 무탄강의 협곡을 타고 달리며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라이덴! 라이덴! 들리면 대답해!”

         

         

       애타는 마음을 담아 그리 외쳐보는 루시.

         

       하지만 아무리 소년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메아리 뿐이었다.

         

       루시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고삐를 더 꽉 쥐었다.

         

       그때, 루시의 옆에서 달리던 아론이 협곡의 한 군데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하! 저 앞에 누군가가 있습니다!”

         

       “어디요?!”

         

         

       루시는 급하게 반응하며 아론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100미터 정도 되어보이는 거리 앞으로,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소녀 하나가 보였다.

         

         

       “저건…?”

         

         

       선명하지 않은 실루엣 사이로 얼핏 보이는 은색의 머리칼.

         

       루시는 그것을 보자마자 소녀의 정체가 마하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파일러 공녀에요! 다들 이 근처에 있나 봐요!”

         

       “다른 조원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일단 가보시죠.”

         

         

       두 사람은 달리는 말머리를 틀어 마하렛에게로 향했다.

         

       소녀와는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말은 속도를 줄이며 그녀의 앞에 멈춰섰다.

         

       루시가 먼저 안자에서 뛰어내리고, 아론과 호위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파일러 공녀!”

         

       “마하렛 학생!”

         

         

       마하렛은 협곡의 낭떠러지 앞에 얼어붙은 채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무슨 생각에 빠져있는 것인지.

         

       아론과 루시가 지척까지 다가왔음에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였다.

         

         

       “파일러 공녀! 정신 차려봐요!!”

         

         

       루시는 넋이 나가있는 마하렛의 어깨를 흔들며 그녀의 의식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냈다.

         

       마하렛은 그제서야 반응하며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들을 바라봤다.

         

         

       “황녀 저하…? 그리고 아론 교수님…?”

         

       “예, 접니다. 마하렛 학생.”

         

       “두 분께서 여기엔 어떻게…?”

         

       “4조의 통신이 끊긴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다른 조원들은 어디에 있죠?”

         

         

       주변을 둘러보며 마하렛이 혼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아론은 그리 물었다.

         

       마하렛은 그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떨었다.

         

         

       “마하렛 학생…?”

         

       “……습격이, 있었어요.”

         

         

       소녀가 힘겹게 꺼낸 한 마디는 가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습격이요?!”

         

       “젠장, 역시인가… 혹시 상대가 누구인지는 보았습니까?”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아론은 침착하게 추가 설명을 요청했다.

         

       허나 마하렛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그런 아론조차도 당황시키는 것이었다.

         

         

       “언데드… 검은 기사들이었어요.”

         

       “언데드라고요…?”

         

         

       아론은 마하렛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언데드라니.

         

       분명 마기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론은 자신들의 예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 설명을 조금 자세하게 부탁하겠습니다.”

         

       “……”

         

         

       침묵하는 마하렛.

         

       그때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시가 결국 참지 못하며 끼어들었다.

         

         

       “라이덴… 아니, 리시트 공자는 어떻게 된 건가요? 여기에 없는 나머지 조원들과 함께 있는 건가요?”

         

         

       라이덴이라는 이름이 귓가에 닿자 멍하던 마하렛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리, 리시트 공자는……”

         

         

       소녀의 손끝이 가늘게 떨려왔다.

         

       생기를 잃어가는 적안과 피가 날 정도로 꽉 쥐여진 양손의 주먹.

         

       심상치 않은 마하렛의 모습에 루시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한 직감은.

         

         

       “죽었, 어요…”

         

         

       애석하게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마하렛의 고백에 뒤이어 루시의 벙찐 중얼거림이 허공을 맴돌았다.

         

         

       “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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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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