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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설하연 타도 말곤 안중에 없던 윈터러.

        하지만, 유진과 마주한 후.

        그녀의 머릿속은 유진으로 꽉 차버렸다.

       ​

        보면 볼수록 짜증이 속을 갉아 파먹는 기분이었다.

        

        

        ‘뭐야, 저 덜떨어진 년이 왜 엄한 새끼한테 아빠라고 그래?’

        

        

        영문모를 감정의 원인은 간단.

        

        유진의 옆, 싱글벙글 웃으며 달라붙는 여성.

        예전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47번.

        이젠 하루라고 불리는 아이가 옆에 있어서였다.

        

        

        ‘세뇌가 풀리자마자 남자랑 붙어먹어? 더럽고 천박한 년. 차라리 인형일 때가 나았네.’

        

        

        윈터러 생각에 이 감정은 혐오였다.

        가지고 놀던 인형이 실은 더러운 창녀 인형이라는 걸 깨달은 자의 혐오.

       ​

        빌런에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지만…

        아니지. 아무리 가치 없는 인형이라도, 한 때 재밌게 가지고 놀았잖아.

        나름 추억이 담긴 인형이 더럽혀졌는데. 속이 편할 리 없지.

        짜증 날 만 하네.

       ​

        이리 납득한 윈터러였다.

        

        

        “응. 아빠랑 하루, 완전 사이 좋아.”

        “…….”

       ​

        

        분명, 납득했을 터인데.

       ​

        유진과 하루가 선보이는 스킨십.

        서로 볼을 부비는 와중, 자연스레 어깨에 뭉크러지는 가슴.

        그걸 보자마자 한층 더 분노가 차올랐다.

        

        설하연을, 한국을 향한 분노가 점점 유진에게 번졌다.

        

        

        ‘내가 빌런이 아니라고? 하, 대가리에 꽃밭이라도 피어있는 건가요. 죽여버리고 싶네.’

        

        

        심지어 자신더러 빌런이 아니라며 음해하기까지.

        윈터러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뭐? 내가 빌런이 아니라고?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반역의 그 날. 47번을 주운 그날.

        자신이 죽인 사람 수가 몇십 명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그날,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얼렸다.

        연구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고문하던 이들을.

        그걸 지시한, 어깨에 별을 붙인 군인을.

        

        

        [자, 잠깐. 난….]

        ‘연구 자료를 지키려는 건가? 역겹네. 쟤도 세뇌하고, 고문했을 거면서. 나처럼.’

        [너도 사형~!]

        

        -쨍그랑.

        

        

        47번과 마지막까지 붙어있던, 중년 연구자까지 전부.

        

        학살이었지만, 그녀는 그 과정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사람을 죽이며 희열을 느끼는 자. 빌런.

        윈터러가 자신이 빌런임을 확신한 순간이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뒈져봐야 정신을….”

        “설마 하루, 도망치게 해준 건가요?”

        “하아?”

        

        

        한데 어째서일까.

        눈 앞의 남자는, 47번은. 한치의 의심 없는 얼굴로 단언했다.

        그녀는 빌런이 아니라고.

        47번, 하루야말로 그 증거라고.

        

        사고회로가 갑자기 꼬였다.

        

        

        ‘내가 저 년을 도망치게 뒀다고?’

        

        

        멍해진 머릿속, 스쳐 지나가는 47번과의 과거.

        

        자신과 달리 멍청하게 세뇌당한 꼴이 웃겨 데려왔다.

        꼴에 능력은 좋으니. 여차하면 써먹고 버리기 위해서.

        

        식사 시간이면 짬통 대용으로 썼다.

        먹을 게 생기면 언제나 맛있는 건 그녀 것. 맛 없고 배부르기만 한 건 47번의 것.

        덕분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47번이 우스워 매일 비웃었다.

        

        겨울이면 잠자리에 들 때마다 멋대로 안고 잤다.

        따듯한 침대 따위 없으니, 대신 그녀를 인간 가구 삼아.

        

        그렇게 자신은 47번을 노예처럼 이용했다.

        무려 10년이 훌쩍 넘도록.

        

        

        [윈터러 님~ 저 윈터러 님 애착인형은 어쩌겠슴까? 저희랑 같이 습격함까?]

        [설하연이랑 싸우면서 저년한테 이리저리 지시까지 내리라고? 나 뒤지라고 고사를 지내시네요.]

        [아니, 그냥 싸우게 두면.]

        [멍청하면 닥쳐. 야, 넌 저기 담벼락이나 깨부수고 있어요. 우리 나갈 때 편하게.]

        

        ………

        ……

        …

        

        [씨발, 생각보다 더 세네. 다들 튀어요.]

        [엥, 애착인형 년은 회수 안 하심까? 놓고 가면 붙잡힐 검다.]

        [그딴 장난감, 이제 버릴 때도 됐지.]

        

        

        심지어, 2달 하고도 2주 정도 전.

        그녀는 아카데미 1차 습격에서 47번을 버렸다.

        주변 빌런들이 감탄할 정도로 아무 미련 없이.

        

        즉 그녀는 47번을 잘 대해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노예처럼 부리다 헌신짝처럼 버렸지.

        

        한데, 이런 자신이 빌런이 아니라 하니.

        개소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는 건 당연했다.

        

        

        ‘시나리오 쓰고 있네, 병신 새끼가. 나한테 저 년은 아무것도 아닌데.’

        

        -방긋.

        

        “언니 덕분에 하루, 합체 놀이도 하구.”

        “…잠깐, 씨발 뭐?”

        

        

        ———분명, 개소리여야 할 텐데.

        문득 귓가에 들어온 말 하나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진 윈터러.

        빌런에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의 격류가 피를 뜨겁게 타고 흘렀다.

        

        

        “합체 놀이라는 게 뭔데.”

        “아빠 위에 하루 탑승.”

        “얘가 아직 성지식이 모자라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자 보채더라고요.”

        “아빠 너무해. 하루 소중한 곳 어쩌구 하면서 못 하게 해.”

        

        

        심지어, 둘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영문 모를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빠르게.

        

        속에서 천불이 났다.

        

        

        ‘저 년이 몸을 어떻게 굴려먹던 내 알 바 아닌데, 왜 내가 이렇게 열을….’

        

        -꼬옥.

        

        “언니도 할래? 합체 놀이.”

        “원하신다면 해드릴 수도?”

        “……!!”

        

        

        추가로 자신까지 범하겠다고.

        덕분에 분노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멈칫.

        

        ‘잠깐. 잘 보니 잘생기기도 했고. 다른 년들이 사람 죽이는 게 몇 섹스니 하는 거 듣다 보니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죽이기 전에 조금…?’

        

        

        그 와중에도 아주 약간은 혹한 게, 왜 빌런의 죽이고 싶은 남자 랭킹 1순위가 유진인지 알 수 있는 부분.

        

        물론 작은 호기심 따위는 금방 사라졌다.

        터무니없는 분노가 그녀의 모든 걸 집어삼켰으니까.

        고문당하며 세상을 저주하던 시절보다도 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 어떻게 자기더러 아빠라고 하는 애한테, 그딴 짓을….”

        “딸 같아서죠.”

        

        

        분노에 떠듬떠듬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

        

        …유진은 말 그대로, 딸 같아서 목마 태워줬다 한 것뿐이지만.

        그녀 듣기엔 사뭇 다르게 들린 말.

        

        한계까지 압축된 분노는 살의가 되었다.

        연구소 탈출의 날 그랬듯이. 모든 걸 얼어붙게 할 살의가.

        

        대인전으론 한국 최강이 유진을 덮쳤다.

        

        

        “죽어.”

        

        -파앗!!

        

        

        짧은 도약. 돌 튀기는 소리.

        살기가 번들대는 눈동자는 붉은 빛줄기를 남겼다.

        

        그 끝, 유진이 반응하지 못하고…

        

        

        ‘……!? 갑자기 왜 급발진.’

        “아빠, 위험.”

        

        -퍼억!!

        

        

        …유진이 반응하지 못했을 뿐.

        옆의 하루는 충분히 반응했다.

        

        윈터러의 발차기를 막아선 하루의 몸엔, 어느덧 붉은 기운이 무럭무럭.

        그녀의 고유 재능, 후유증을 대가로 순간 능력치를 증폭시키는 ‘각성’의 효과.

        

        윈터러의 눈이 번뜩였다.

        

        

        “———꺼져, 씨발!! ‘명령’이야!!”

        

        

        그녀의 입에서 나온 명령이라는 단어.

        하루의 세뇌를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단어.

        

        아빠를 지키려던 하루의 몸이 멈췄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덜컥.

       ​

       ​

        -멈칫. 바들바들.

        

        “……힉.”

       ​

       ​

        하루의 동공에 빛이 명멸하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유아 퇴행으로 회피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도사리고 있던 세뇌.

        세뇌와 최면이 서로 상충한 결과였다.

        

        유진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빠득.

        

        ‘저 망할 년이 선 넘네!?’

        

        

        자신을 공격할 것 정도야 예상했건만.

        설마 하루의 세뇌를 건드릴 줄이야.

        하루는 건드리지 않을 거란 판단이 잘못이었나.

        이런 후회가 뒤를 이은 건 덤.

        

        그러나 후회는 지극히 짧았다.

        후회해 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유진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루야. 귀 막고 멀리 가있어.”

        “명, 령? 하루, 는. 기계. 니까. 명령에.”

        

        

        그리 좋아하는 아빠의 말에도 혼란스러워하는 하루.

        그러나,

        

        

        “명령이 아니라 부탁. 아빠 말 잘 들으면, 나중에 아무거나 소원 들어줄게.”

        “……!!”

        

        [격의 차이에도 불구, 대상이 ‘강한’ 최면에 걸려듭니다!]

        

        

        유진의 황금색 눈과 마주치자, 경련은 감쪽같이 사그라들었다.

        붉은 눈에 빛이 돌아왔다.

        

        

        “아빠, ‘나’랑 약속한 거다?”

        “약속. 그러니까 빨리 가있어. 귀 막고.”

        “응.”

        

        -후다닥.

        

        

        정신을 되찾은 하루는 빠르게 후퇴.

        

        유진은 그제야 마음 놓고 전투를 준비했다.

        눈 앞의, 빌런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소녀와의 전투를.

        

        

        “…휴우.”

        

        -꽈악.

        

        

        윈터러 역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째선지 살짝 안도감 섞인 한숨을 내뱉고서는.

        

        그리고,

        

        

        “뒈져!!”

        “이게 진짜, 하루 너 때문에 깜짝 놀랐잖아!! 우리 애 이런 데 민감하거든!?”

        

        -콰앙!!!

        

        

        전투가 벌어졌다.

        자칭 최면 교배 아저씨, 유진.

        한국 최강 빌런, 윈터러.

        

        둘 사이의 전투가.

        

        

        -웅성웅성.

        

        “협회장님, 싸우는데요!!?”

        “혼자선 위험할 겁니다!! 가세하겠습니다!!”

        

        

        그에 술렁이는 주변.

        하지만, 설하연과 아이카는 요지부동이었다.

        끼어들 생각 따윈 없다는 듯이.

        

        

        “……? 니노미야. 저건.”

        “뭐 하는 짓이래?”

        

        

        아니, 오히려 뭔가 이상한 걸 본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하기까지.

        

        각성자들한텐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멀리선 잘 안 들렸지만, 유진이 최면으로 윈터러를 제압하고 있었음은 확실.

        그런데 전투가 벌어졌다?

        최면 풀린 거잖아. 당장 도와주러 가야 하잖아.

        당장 안 뛰어들고 뭐 하는 거냐.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앞으로 향했다.

        두 S급들이 지켜보는 그곳.

        무려 일급 빌런이 생도를 습격 중인 현장을.

        

        

        “네 아랫도리를 짓뭉개서….”

        “조용히 하세요!!”

        

        -덥썩. 콰앙!

        

        “……케흑!!?”

        

        

        윈터러가 5초 만에 제압당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급 빌런 씩이나 되는 그녀가 어깻죽지부터 번쩍 들려 땅에 메다 꽂힌 것.

       ​

        팔다리를 게처럼 벌리고 쓰러진 꼴이, 일전 유진을 습격했던 다섯 빌런들과 똑같았다.

        

        

        “어, 어떻게….”

        ‘능력은 최면으로 봉인당했지만, 신체 능력은 여전한데. 어째서.’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굳은 윈터러.

        

        자칭 최면 교배 아저씨는, 그런 그녀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녀린 손목을 턱 붙잡으며. 단호하게.

        

        

        -꽈악.

       

        “이, 이게 뭐 하는 짓.”

        “———윈터러. 참교육이라고 들어봤니?”

        

        

        그리고,

        

        

        “그게 무슨… 서, 서, 설마!!?”

        “빌런이라면 교화가 안 되겠지만, 넌 평범한 각성자 여자애니까.”

        “이, 이거 놔!! 이 발정 난 개새끼가, 죽어! 죽어!!”

        “그런 못된 말, 다신 못 하게 만들어줄게.”

        

        

        설리번 선생님도 감탄할, 몸으로 배우는 예의범절 수업이 시작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이파리 님 10코인, Jisss 님 10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갸루피스를 웨이~

    + 이 자까는 전투씬을 쓸 시간이 없어요
    그는 5초 스킵으로 빠른 참교육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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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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