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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김수한은 자신이 전이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당연히 나한테 처음으로 밝힌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박수민한테도 말했다니···.’

       

       생각보다 더 정신이 불안정했던 모양이다.

       

       이해는 갔다.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사람을 원했을 테니까.

       

       자신 곁에 끝까지 남아있는 박수민이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랐을 테지.

       

       ‘한아름한테는 말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네.’

       

       하지만.

       박수민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소설에서 박수민은 히로인 중 제일 먼저 죽게 된다.

       

       그만큼 비중도 많지 않았다.

       

       어떠한 성격인지 확실히 파악하기가 어려웠기에 설정집에 적힌 내용만으로 그녀를 파악해야 했다.

       

       ‘김수한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명시되어 있긴 했는데.’

       

       물론,

       한아름의 본모습을 알게 되니 설정집도 이제는 맹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박수민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맞겠지.’

       

       김수한은 박수민의 은인이었다.

       교수한테 상습적으로 성추행당하던 걸 해결해 줬으니까.

       

       그 교수를 사회적으로 매장까지 시키고.

       지옥 같은 아카데미 생활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구원자다.

       

       그러니 박수민은 한아름과는 다를 것이라 믿고.

       

       다시 김수한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

       

       *

       

       *

       

       

       

       

       

       

       “그러니까···. 너는 빙의자라고···?”

       

       김수한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돼.”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도 그래서였던 거구나. 이제야 납득이 돼. ······근데 원래 이름이 이영웅이라고 했지. 그럼 너는 이현성이 아닌 거야?”

       “아까 말했잖아. 이현성도 나고, 다른 세계에 있던 이영웅도 나라고.”

       “으음···.”

       

       김수한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의 초점을 흐렸다.

       

       불안에 떨었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확연히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게.

       

       ─크릉. 할짝.

       ─할짝, 할짝, 츄릅.

       

       리틀 워그들이 온몸을 구석구석 핥아주고 있으니까.

       

       김수한에게 있어서는 리틀 워그의 애정공세가 그 어떤 약보다도 효과가 뛰어났다.

       

       ‘주기적으로 처방해 줘야겠네.’

       

       김수한은 생각을 마쳤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현성. 다른 세계의 너도 지금이랑 똑같은 얼굴이었다고 했지?”

       “거의 비슷해.”

       “영혼이 반으로 나뉘어 있었던 건가 그럼···?”

       “모르지.”

       

       본래의 몸 그대로 넘어온 자신과 달리,

       영혼만 옮겨져 온 내가 신기하고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이야기가 자꾸 새는 것 같아 본론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김수한이 다시 몸을 떨며 질문했다.

       

       “···아무튼, 이 세계는 현실이 맞는 거지?”

       “고통 느껴봤잖아.”

       “그렇지···.”

       

       김수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너무 오랜만에 고통을 느껴서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거였지.’

       

       이렇게 직접 보니까.

       뭔가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김수한은 또 눈물을 글썽이며 고해를 시작했다.

       

       “나는 원래 세계에서 항상 빼앗기는 쪽이었어···.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빼앗는 쪽이 되고 싶었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어. 여긴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라고 생각했으니까.”

       

       저 얘기만 벌써 세 번째 듣는다.

       

       닥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대충 맞장구를 쳐주며 위로했다.

       

       ‘···뭐,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도 김수한의 일부는 맞지만.’

       

       이때까지는.

       이곳을 게임 속 세계로 여겨서,

       인터넷 여포로 활동했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

       

       현실이 아닌 인터넷에서는 전국구 일진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니까.

       

       그렇다고 그게 본모습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이런 과격한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하는 인물이더라도.

       

       “살인은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김수한처럼.

       실제로는 여린 성격인 경우가 많을 테니.

       

       그저 익명성 뒤에 숨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언사일 뿐이다.

       

       ‘그래도 김수한은 그나마 양반이지.’

       

       자유도가 높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할 때.

       별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거나, 차로 들이박거나 하는 게이머들은 널리고 널렸다.

       

       여자를 겁탈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아. 얘는 어차피 성행위를 못하지?’

       

       흠. 아무튼.

       

       게이머들은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현실이 아닌 게임일 뿐이니까.

       

       사람이 아닌 데이터 쪼가리에 감정을 이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으로만 여기고 비인류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는데, 사실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다고 진실이 밝혀진다면.

       

       없던 죄책감도 파도처럼 한순간에 밀려드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김수한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리버레이션 측 인물은 죽이는 게 맞다.

       

       “네가 죽인 인간들은 범죄자잖아. 죄책감 가지지 마.”

       “그래도···.”

       “악인은 사람으로 분류할 필요 없어.”

       

       히어로의 마음가짐 5항.

       악인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마라.

       그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일 뿐.

       

       머릿속에 각인된 그 사상이 습관적으로 튀어나왔다.

       

       “사람으로 분류하지 말라고···?”

       “살인이 아닌 정의집행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네가 그놈들을 안 죽였으면,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갔을 테니까.”

       

       나는 김수한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 부분에서 충격을 꽤 크게 받은 것 같으니,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살인에 대한 죄책감부터 덜어주기로 했다.

       

       앞으로도 죽여야 할 리버레이션 놈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일종의 사상 주입을 시작했다.

       

       

       

       

       

       

       

       *

       

       

       *

       

       

       *

       

       

       

       

       드디어 조금은 죄책감을 덜었는지,

       김수한의 상태가 눈에 띄도록 호전되었다.

       

       폐인에서 점점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뿌듯하게 김수한을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다시 질문했다.

       

       “근데···. 우리는 대체 뭐지?”

       “뭐가?”

       “나는 한석호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었고, 너는 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었다고 했잖아···. 이곳이 현실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또 심오한 얘기를 꺼내드는 김수한.

       

       자꾸 주제를 바꾸는 게 수준급이었다.

       

       “그건 내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신경 꺼.”

       

       물론 김수한이 꺼낸 얘기도 무시하고 넘길만한 내용은 아니다.

       

       나 또한 따로 조사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 꺼내들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일에는 다 순서라는 게 있는 법.

       

       당장은 눈앞의 위험요소인 리버레이션을 와해시키는 것에만 몰두하면 된다.

       

       모든 미래 지식을 총동원해서.

       스토리가 후반부에 접어들기 전에 조기 완결을 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수한도 하루빨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했다.

       

       “우선 트라우마부터 씻어내야 하니까 복수부터 하자.”

       “복수···?”

       “일단 따라와.”

       

       보호 아티팩트로 김수한을 중무장시킨 뒤.

       

       우리는 함께 기숙사를 나섰다.

       

       

       

       

       

       

       

       

       

       

       ***

       

       

       

       

       

       

       녀석과 함께 강남 번화가에 도착했다.

       

       “여기는···.”

       

       김수한은 익숙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익숙할만하지.

       

       여기서 골목길로 좀만 들어가면,

       김수한이 이 세계로 전이된 장소가 나오니까.

       

       그리고 복수 대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복수라기보다는, 트라우마 해결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김수한의 발기부전을 고쳐주려고 온 것은 아니다.

       

       녀석이 원래 살았던 세계.

       그곳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부모와 학교 동급생들.

       

       그 자들에 대한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이 세계에서 강제로 자신을 겁탈한 게이들을 대체재로 활용하려는 목적이었다.

       

       트라우마를 심어준 존재 중 하나를 직접 마주하고 이겨낸다면 깨달을 것이다.

       

       힘을 얻은 지금.

       더이상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음···. 불법 클럽답게 수시로 영업장을 바꾼다고 했던가?’

       

       핸드폰의 지도 어플을 확인했다.

       

       이 도시에 있는 불법 게이 클럽은 총 다섯 개.

       

       백소아의 도움으로, 협회의 정보망을 통해 알아냈다.

       

       김수한은 몸을 한껏 움츠렸다.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모양이다.

       

       소설에서 이곳에 방문했다는 스토리는 없었으니, 애써 기억을 지우고 살았던 거겠지.

       

       “내, 내가 주인공인 소설에 이곳에서 있던 일도 쓰여있었어?”

       “···어.”

       

       이번 한 번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비뇨기과에서 엿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시, 시발······.”

       

       김수한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자세히는 안 적혀있었어.”

       “···그래? 그럼 다행이긴 한데, 설마 여기에 온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녀석의 동공이 떨렸다.

       붉었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트라우마가 도지기 일보 직전.

       다급히 리틀 워그를 소환해 김수한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제야 떨림이 멎은 김수한.

       

       나는 골목길로 들어서며 얘기했다.

       

       “겁먹지 마. 이제는 예전의 네가 아니잖아.”

       

       그리고 김수한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협회에서 소탕 허가는 받았어. 난 되도록이면 생포를 우선시할 거지만, 네가 원하면 죽여도 돼. 인신매매를 하는 범죄자들이니까.”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 허가.

       정부와 협회에서 받을 수 있는 탐색꾼의 특권이다.

       

       전선과 가까운 강원도나 경기도, 그리고 서울은 정부보다 협회의 권력이 더 막강했기에 손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 백소아 덕이지.’

       

       물론 반발은 있었다고 한다.

       

       협회에는 협회장 라인 말고도 여러 세력이 있다.

       

       그리고 그중.

       불법 게이 클럽의 뒤를 봐주고 있는 세력도 있던 모양이다.

       

       ‘백소아와 적대하고 있는 세력이라고 했지. 협회장 세습제를 반대하는.’

       

       백소아는 조만간 싹 다 숙청할 예정이라고 얘기했다.

       

       역시 독재자답다.

       

       그렇게 김수한을 이끌고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도감이 자동으로 띄어지더니 검은빛이 튀어나갔다.

       

       ─위험 감지. 주인님의 순결이 위험한 곳입니다.

       

       제멋대로 나온 철밥통 뒤로.

       

       ─깡통아! 멋대로 나가지 말라고 했지! 혼날래?!

       

       깨비도 덩달아 따라 나왔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니까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았다.

       

       내 신변이 위험하다 판단되면,

       눈치 보지 말고 바로 튀어나와도 된다고 얘기한 적도 있고.

       

       “얘들아. 근데 지금은 너희 필요 없는데.”

       

       오늘의 주역은 김수한.

       나는 옆에서 보조만 할 예정이다.

       

       최근 도감작으로 인해 기본 능력치도 많이 상승했으니 웬만해서는 당할 일도 없을 터.

       

       ‘게이들 중에 직업 보유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 위험한 녀석들은 아니라고 하니까.’

       

       이참에.

       아직 활용해보지 못한 다른 소환수들의 전력을 확인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깡통이는 필요 없어! 난 필요해!

       

       깨비는 떼를 쓰고.

       

       ─경고. 제 존재가 필요 없다는 걸 확인. 자폭하겠습니다.

       

       철밥통은 협박을 해왔다.

       

       ···이거, 언제 한 번 날 잡고 정신교육 들어가야겠네.

       

       자폭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일단은 동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골목길을 가로지르고.

       지하로 이어지는 음습하고 칙칙한 계단 앞에 도착했다.

       

       “밥통아. 깨비야. 무고한 사람을 해치면 안 되니까, 이 명단들 잘 숙지하고 있어.”

       

       진입하기 전.

       철밥통과 깨비에게 불법 게이 클럽 관계자들의 얼굴 사진이 있는 명단을 건넸다.

       

       -숙지 완료.

       -우웩···.

       

       김수한한테는 골목길을 걷는 도중에 명단을 보여줬었다.

       

       녀석은 명단에 오른 인물들을 확인할 때마다 오물 덩어리라도 본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지만, 자신을 겁탈한 놈들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상관은 없었다.

       

       김수한의 외모는 꽤나 강렬하고 특이한 편이다.

       

       김수한이 기억하지 못해도.

       상대방 쪽에서는 김수한을 기억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게이 클럽을 전부 습격하다 보면, 김수한을 보고 반응하는 게이가 하나쯤은 나오겠지.’

       

       만약 상대 쪽에서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다.

       

       이 도시에서 영업을 하는 게이들이 거점을 옮겼다는 정보는 없었다.

       

       즉, 김수한을 겁탈한 놈들이 다섯 곳 중 한 곳에는 무조건 있다는 뜻.

       

       그냥 다 잡아버리면,

       복수는 자연스럽게 끝난다.

       

       ‘되도록이면 상대방이 기억해주는 게 트라우마 해결에 더 도움이 되겠지만···. 그건 운에 맡겨야지 뭐.’

       

       나는 선두로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자.”

       

       불의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협회 직원들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으니까.

       

       지하로 내려온 나는 거침없이 첫 번째 게이클럽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오? 큐티 보이들이네? 관장은 제대로 하고 왔니?”

       

       분홍색 삼각팬티 한 장만을 걸친 대머리 남자가 와인잔을 닦으며 우리를 반겼다.

       

       동시에.

       

       

       탕!

       

       

       -제거 완료.

       

       철밥통이 발포한 탄환이 대머리 남자의 이마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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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아카데미 유일급 마물 소환사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a madman in the novel who confessed to the heroines and was dum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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