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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커허억! 내, 내 검이! 저게 얼마짜린데!”

       

       <신속>은 보았다.

       

       삐이이이이이———!

       

       귀가 먹먹한 이명. 원리를 알 수는 없었으나, 번쩍이는 전력의 힘과 그에 맞춰 막대한 운동 에너지를 뿜어내는 자신의 애병.

       

       <신속>이라는 이름처럼, 최영웅은 이 자리에 선 누구보다 자신의 검이 그린 궤적을 똑똑히 지켜본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빛과 함께……. 아니, 빛이 되어 날아간 자신의 애병이 산산히 부서진다. 허나 검에 휩싸인 막대한 에너지는 정확히 검은빛의 흑색 게이트에 적중했다.

       

       우우웅-!

       

       비산하는 철 조각, 일그러지는 대기, 찢어지는 공간.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망나니’라는 별명을 가진 최영웅은 어울리지 않게 입을 쩍 벌리고 <현상거절>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미 최영웅도 알고 있었다. 스스로가 라이벌이라 칭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저 D등급 히어로가 가진 힘이 Z급 히어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도.

       

       하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정말로 이건, 이건 진짜 아니다. 그게 최영웅의 생각이었다.

       

       스르륵.

       

       <현상거절> 임혜성이 보여준 수는 아주 간단했다. 잘은 모르겠으나, ‘일성’이 주도한 것 같은 작금의 사태… 그러니까 흑색의 게이트는 연막인 모양이다.

       

       ‘도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던 건데.’

       

       꿀꺽!

       

       그 증거로, 대뜸 자신의 검을 전자기력이라는,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쏘아낸 임혜성이 하늘을 갈라버리지 않았나.

       

       “귀여운 놈들. 이따위 수로 눈과 귀를 막을 셈이었나.”

       “……!”

       

       최영웅은 임혜성의 태연자약한 목소리에 괜스레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 남자를 ‘라이벌’이 아닌, ‘스승’으로 모셔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퍼어엉-!

       

       게이트가 폭발한다. 아니, 게이트라 부르기도 우스운 ‘환영’이 산산히 부서졌다.

       

       “혜성아, 설마 이거…….”

       “그래. 한유리를 빼돌린 놈들이 부린 수작이었어.”

       “유, 유리를? 정말 일성이 꾸민 짓일까?”

       “…….”

       

       송수아는 자신 없는 말투와 함께 시선을 툭 떨궜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한유리와 가깝게 지냈다. 그 과정에서 한유리의 아버지인 한석구를 비롯한 오너 일가의 비호를 받았고, 한유리와 송수아는 아카데미에 함께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한유리의 가족. 일성의 배신은 송수아에게도 크나큰 충격인 거겠지.

       

       “혜성, 내가 뭘 하면 좋을까?”

       

       처연한 얼굴의 송수아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봉쇄.”

       “봉쇄……? 그게 무슨 뜻이야?”

       “한유리를 빼돌린 일성이 바라는 건, 녀석을 서울로 호송하는 거겠지. 당장 제주도는 히어로 아카데미의 총본산이야. 언제든 학생회장을 되찾겠다고 불나방처럼 달려들 녀석들이 한가득이란 뜻이지.”

       “으응, 그렇다는 말은 항공과 선박의 이동을 멈출 수 있겠냐는 말, 맞지? 응?”

       “역시 이해가 빠르네.”

       “헤헤.”

       

       나름 칭찬에 약한 타입인 송수아는 혀를 빼고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이내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 모습을 보니 그녀가 지금 능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쿠르르릉-!

       

       “……이번엔, 내가 혜성이를 도울거야. 그리고 사라진 유리도 되찾을 거고.”

       

       후읍!

       

       깜찍한 소리와 함께 심호흡하던 송수아는 천천히 두 손을 모았다. 마치 기도를 하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이는 그녀의 모습은 자뭇 성서에 등장하는 성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쏴아아아-!

       

       조금 전만 하더라도 눈보라가 몰아치던 기숙사 옥상에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번쩍! 쿠르르릉! 휘이이이-!

       

       번개에 이어 천둥, 어마어마한 돌풍이 도시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현상거절.”

       

       혹여나 능력 발휘에 전력을 다하는 송수아가 감기에 걸릴까 싶어, 나는 간단히 능력을 개방해 그녀의 주변에 내리는 비를 막아주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니.

       

       후우우우웅!

       

       “이,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

       

       바람의 수준이 조금,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듯하다. 오죽하면 얌전히 상황을 관망하던 <신속>조차 불안에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을까.

       

       ‘……이건 항공편과 선박편을 막는 수준이 아니라.’

       

       쏴아아아아-!

       

       ‘태풍 그 자체잖아.’

       

       생각보다 대단한 송수아의 힘이다. 이제껏 몇번이나 경험했지만, 이렇게 피부에 닿은 적은 거의 없었던 덕분이었다.

       

       띠링!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갑작스레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세차게 울렸다.

       

       “……?”

       

       통신이 마비된 것이 아니었나? 분명 송수아는 전화가 걸리지도, 받을 수도 없다고 했었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렇구나, 하고 넘기고 있었는데.

       

       [ 부재중 전화 : 17 ]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레 통신이 복구됐다. ‘일성’의 인공위성이 쏘아대던 방해 전파가 송수아가 부리는 태풍이 막히기라도 한 걸까.

       

       “……한유리.”

       

       천천히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나는 마음이 차게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부재중 전화 중, 최상단에 자리하는 이름이 눈에 밟힌 까닭이었다.

       

       [ 한유리 ]

       [ 한유리 ]

       [ 한유리 ]

       [ 한유리 ]

       

       한유리는 사라지기 전, 다급하게 내게 전화를 걸려했다. 예측 가능한 건 ‘일성’과 관련된 사실을 전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후우우우.”

       

       이제껏 잠자코 있었던 송수아가 긴 한숨과 함께 눈을 슥 뜬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응? 일단은 급한대로 악천후를 일으켰어.”

       

       ……엄청난 사실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구나.

       

       “악천후라면 어떤?”

       “응! 일단 제주도에 태풍을 생성했어.”

       “……그래?”

       

       예상했던 바가 맞았다. 평소에 자신의 감정마저 날씨에 영향을 주는 송수아가 진심으로 능력을 발휘하자,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섬 서북단에 하나, 동북단에 하나, 그리고 섬 중앙에 하나.”

       “……셋이나?”

       “응! 녀석들이 유리를 납치하게 둘 수 없었어.”

       “그래. 잘했다.”

       

       잠깐 집중한 걸로 태풍을 만들었단다. 사실 인류에게 가장 위험한 건…… 송수아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동하지.”

       “어, 어디로? <현상거절>.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나는 이만…….”

       “공항과 항구가 있는 섬 북부로. 그 근처의 은신처에서 시간을 끌 가능성이 가장 높아.”

       “응! 알겠어. 나는 혜성이 뒤만 따를게!”

       “아니, 나 정말로 급한…….”

       “그만 쫑알대고 따라와라.”

       “비, 빌어먹을.”

       

       <신속>이 눈물을 삼키는 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허드렛일 할 사람은 하나쯤 있는게 좋으니까.

       

       * * *

       

       쿠르르르릉…….

       

       한반도 남단, 제주도의 중앙. 아카데미 상업지구의 고급 호텔 최상층의 스카이라운지.

       

       “어둡구나.”

       

       사정 없이 내리치는 천둥번개를 두눈으로 감상하며. 한석구는 천천히 양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꿀꺽.

       

       알싸한 알코올 향과 함께 화끈한 감각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예전부터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끔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위스키는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팔락!

       

       그런 그의 곁에는 한 중년 사내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한석구의 최측근인 그는 이번 거사를 주도하여 기획한 사람이었으며, 일평생 ‘일성’에 몸을 담군 중역 임원이었다.

       

       “물건의 상태는?”

       “다, 다행히 양호합니다.”

       “그래, 그런가.”

       

       꿀꺽!

       

       짧게 답한 한석구는 다시 술을 한모금 마셨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걸까. 사실, 아직까지 ‘일성’의 전략기획연구소가 내놓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정도 오차 쯤은 세계 최고의 두뇌가 모인 일성의 인재들이 예상치 못할 수가 있었겠나.

       

       다만.

       

       변수가 존재했다. 요근래 딸 주변에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현상거절>. 놈이 일성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큭큭! 하필 놈이 평범한 D등급 히어로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고약한 히어로 영화도 아니고.”

       

       냉소적으로 내뱉은 한석구는 손바닥을 들어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자신의 친딸을 실험 대상으로 이용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예상에 없던 불청객의 등장 때문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신의 씨앗.’

       

       모든 것의 시작은 수십 년 전에 일어났다.

       

       일성은 게이트와 몬스터에 의해 멸망한 중국 일대에 탐사대를 자주 파견했다. 그러던 와중, 우연치 않게 발견한 물질이 바로 ‘신의 씨앗’이라는 검은 액체였다.

       

       액체가 가진 힘은 대단했다. 투여 받은 자는 힘과 지능이 기적적으로 향상되었고, 저마다 독특한 초능력을 각성하기도 했다.

       

       일성은 그 기밀을 철저히 유지했다. 21세기 문명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 그들은 암살과 테러 따위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비밀과 이윤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한유리, 내 사랑하는 딸아.”

       

       한정적이던 신의 씨앗을 복제하는 일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간단했다. 그들의 직계. 한석구의 딸, 총학생회장 한유리가 <재창조>라는 창세의 힘을 각성한 것이다.

       

       쪼르륵!

       

       글라스에 양주를 절반 정도 채운 한석구는 멍하니, 진노해 번개를 흩뿌리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신인류의 여왕이 되거라.”

       

       ……그것이 한석구가 자신의 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소녀여, 신화가 되어라.

       

       그것이 ‘일성’의 뜻이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문 감사합니다.

    내일은 아마 휴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올릴 수 있다면 오늘처럼 심야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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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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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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