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8

       

       

       

       

       

       

       

       

       《저, 정말 저를 용서하신다는 겁니까?》

       《그동안 고생했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대공녀님의 아픔에 비하면 감히 견줄 수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렇게 자신을 낮추지 않아도 돼. 널, 내 남편으로 인정한다는 거니까.》

       《정말… 이십니까?》

       

       시작부터 어긋났던 이야기가 바람대로 흘러갔다면 아마도 이렇게 됐었을 거야.

       작은 속죄로써 끝난 과거가 밝은 미래를 불러오지… 않았을까?

       물론 너에겐 어떤 미래일지 이제는 모르겠지만….

       

       《응. 여기.》

       

       늘 도움만 바랐던 손을 내밀어, 너의 손을 잡아주었을 거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호호. 이젠 그럴 필요없다니까?》

       《그, 그럼 이제 무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호칭 이전에… 말부터 편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겠지?

       우리의 이야기.

       어쩌면 나, 다른 애들의 반성 같은 거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너의 반성, 그거 하나면 족했기에 그토록 너에게 매달렸던 건 아닐까?

       너의 기권을 부정하며 그것이 거짓임을 밝히고자 집착했던 것도, 네가 없는 혼약대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그리 고집을 부렸던 건가봐.

       

       《펴, 편하게… 말씀이십니까?》

       《응. 우린 ‘부부’잖아.》

       《부부…?》

       《넌 나의 남편, 난 너의 아내. 그러니 말 편하게 해줘. 이제는 내가 너를 높여 부를 차례야.》

       

       참 웃긴 일이지 않아?

       지독한 학대의 방관자였던 너와의 밝은 미래를 나도 모르는 사이 품었다는 것이?

       예전에 책에서 보니… 인질이 납치범에게 사랑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하던데, 그런 걸까?

       황당무계한 헛소리라 여겼었는데, 어쩌면… 나도 그랬던 걸까?

       

       《르…미앙?》

       《응. 여보.》

       《여, 여보…!?》

       

       푸훗.

       매섭게 생긴 얼굴로 자꾸만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니 웃기잖아.

       아카데미에선 쳐다보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로 매섭던 얼굴이었는데 말이야.

       

       《호호호. 그렇게 놀라워? 부부 사이에 당연한 호칭인걸.》

       《크흑…! 고마워. 르미앙. 나, 정말 최선을 다할게!》

       

       번쩍!

       

       《꺄하하! 이, 이거 놔아-!》

       

       원래라면 결혼식에서 너에게 이리 안겨 들려야 했겠지만, 아쉽지 않아.

       이제라도 행복한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걸.

       내 선택이, 내 결정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걸.

       

       《응애! 응애! 응애!》

       《오오! 여보, 이 우렁찬 함성 들리오?》

       《호호호. 그리 좋아요?》

       《그럼! 이 용맹한 울음과 수려한 외모를 보아 하니, 당신과 나를 딱 절반씩 닮았나보오.》

       《호호. 난 당신을 더 닮았으면 좋겠는걸요.》

       《하하하! 난 당신을 더 닮았으면 좋겠는걸?》

       

       …이거였겠지?

       우리의 시작이자 결말,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이거였을 거야.

       달라진 너와, 달라진 나.

       서로의 장점을 빼어닮은 아이가 우리의 이야기를 새로이 써내려 갔을 거야.

       

       그렇지?

       

       근데 웃겨, 정말.

       

       진작 이 계획들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계획이 너를 위해 맞춰졌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하염없이 멀어지는 구름을 잡을 수 있었을까?

       

       나의 어리석음을 진작 눈치챘더라면, 어긋난 시작을 재조립할 수 있었을까?

       

       아니.

       

       이제 와 돌이켜보면 멀어지는 구름을 잡지 않는 게 나았을 거 같아.

       

       어긋난 시작을 재조립하지 않는 게 나았을 거 같아.

       

       어쩌면 괴인족장의 저주가 아카데미로 출발한 직후부터 시작됐을지 모르니까.

       

       이제는 끝났을 거라 여긴 저주가 지금을 위해 몸을 사리고 있었는지 모르니까.

       

       저주에 걸린 이에겐 고독이 어울리는 거 같아.

       

       지금을 봐도 그렇잖아?

       

       난 사랑 받을 자격도, 사랑을 할 자격도 없어.

       

       모두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이가 어찌 그런 걸 꿈꾸겠어.

       

       사람은 본래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댔어.

       

       사랑이란, 행복이란 과분한 꿈을 꾼 자의 말로가 이처럼 비참하고 처참한 건 당연한 이치겠지.

       

       《하하. 우리 아이 이름은 어찌 짓는 게 좋겠소?》

       《딸이니까, 당신의 ‘엘’과 나의 ‘르’를 합쳐 ‘엘르’는 어떤가요?》

       《오! 그거 정말 좋구려. 우리 엘르, 부디 엄마 닮아 예쁘게만 커다오.》

       《호호호. 이이도 참.》

       

       내겐 과분한 꿈이었어.

       내 분수에 맞지 않는 바람이었어.

       

       그래서 고마워.

       

       이렇게나마 내 꿈에 찾아와줘서.

       

       이렇게나마 내가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주어서.

       

       이렇게나마…….

       

       나를 웃게 해줘서.

       

       영원히 갇혀 있고 싶은 꿈을 꿀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깨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이곳에 머물고 싶지만, 이젠 깨어나야 할 순간이 온 것 같아.

       

       《여보? 무슨 생각을 그리 하오?》

       《미안해요. 여보.》

       《무엇이… 말이오?》

       《붙잡아서, 미안해요.》

       

       미련히 집착해서.

       괜한 고집을 부려서.

       

       《여, 여보-!!》

       

       넌 지금처럼 앞으로 나아가.

       난 지금처럼 뒤로 걸어갈게.

       

       정말.

       미안했어.

       

       “아가씨-! 저, 정신이 드시는 거에요?!”

       

       안녕.

       

       

       

       **

       

       

       

       “…….”

       

       마치 영겁의 세월간 잠들어있다 깨어난 듯한 느낌.

       모처럼 푹 잠든 듯한 느낌.

       실로 오랜만에 개운히 맞이하는 아침.

       그렇게 깨어난 르미앙이 힘없이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

       

       르미앙이 제 왼손을 보았다.

       아직 붕대가 감겨있었다.

       스륵.

       붕대를 풀었다.

       4개의 손톱자국이 깨끗이 아물어있었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괜찮으…세요?”

       

       마리엔이 그런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고, 르미앙은 아문 손바닥을 매만지며 되물었다.

       

       “얼마나… 잠들어있었던 거야?”

       

       꽤나 오래 잠들었던 듯한 느낌에 물었고, 답이 들려왔을 때, 르미앙은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껴야 했다.

       

       “…사흘이요.”

       

       3일.

       비를 맞으며 울다 웃었던 그날의 밤으로부터 벌써 3일이 지나있었던 것이다.

       혼약대전이 무사히 진행되었다면, 바로 내일이 그 성대한 막을 올릴 터였다.

       

       “어떻게… 됐어?”

       

       잠들어있던 사흘간 대공성이 조용하지는 않았을 터다.

       그에 물었고, 또 다시.

       

       “대공전하께서 이틀 전에 도착하셨어요.”

       

       르미앙은 그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껴야 했다.

       

       “아버지…께서?”

       “네. 수도성에 가시지 않고 돌아오셨더라고요.”

       “그렇구나….”

       

       겔우드 경이 긴급 서신을 부쳤던 모양이다.

       제 3 대공녀의 폭주를, 몰락을 제발 막아달라는 서신이었겠지.

       그리고 대공성에 행차한 이는 비단 아버지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리고… 펠론 켈리드 공작과 와이든 로스펠 후작께서도 어제 행차하셨어요. 아가씨,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쓰게 웃은 르미앙이 겨울꽃차를 마셨다.

       사흘간 공허로 가득했을 속에 따스한 온기가 차오른다.

       르미앙이 멍하니 겨울꽃차에 비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배움에 목말라 앙상히 말라가던 그날처럼, 수척해진 얼굴이 일렁이고 있었다.

       

       “다 끝났어.”

       “네…?”

       “복수, 해방, 그런 거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 다 끝냈어. 그들의 죄를, 나의 죄를 전부 밝혔거든.”

       “저, 정말요…? 그날 밤에 직접 하신다던 일이 그럼….”

       “맞아. 펠론 공작과 와이든 후작을 부른 거, 나야.”

       “…….”

       

       할 말을 잃은 마리엔이 놀란 눈으로 제 아가씨를 볼 뿐이었다.

       어떠한 결심으로써 그것을 해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다만, 위로를 해야 할지 응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어떤 말도 아가씨께 닿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께선… 별다른 말 없으셨어?”

       “아, 그, 대공전하께서 아가씨가 깨거든 알려 달라 하셨어요.”

       

       마리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됐어.”

       

       자신을 따라 일어서는 아가씨에 급히 부축해야 했다.

       

       “아, 아가씨 지금 움직이시면 안돼요.”

       “괜찮아. 직접 갈게.”

       

       부축을 마다한 르미앙이 힘겨이 몸을 일으켰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걸음을 떼기 힘들었지만, 직접 가야만 했다.

       죄인은 그래야만 하니까.

       

       “아, 아가씨….”

       “갔다 올게.”

       

       마리엔이 그런 그녀의 뒤에서 안절부절했지만, 르미앙은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

       

       

       

       똑똑.

       

       집무실 문을 두드린 르미앙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창가에 선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제 막내딸이 왔음을 인지하였을 텐데,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밖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르미앙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송…해요….”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으리, 어떠한 결정이라도 따르리란 말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태산과 같은 등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사흘간 벌어진 일과 피로 물든 이 혼약대전의 결말을 알려왔다.

       

       “두말할 것 없다. 내일, 너는 데론 켈리드와 혼약을 맺을 것이니 그리 알거라.”

       

       사흘만에 깨어난 자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아버지.

       

       3년 간 자신을 학대했던 이들을 주동한 자와 결혼하라는 아버지.

       

       모든 것을 알았음에도, 그날의 고통을 묻지 않는 아버지.

       

       사랑 받을 자격도, 위로 받을 자격도 없는 자신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 생각한 르미앙은.

       

       “네….”

       

       그리 쓸쓸히 대답을 해낼 뿐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인 결말이라 생각했다.

       

       북부령의 대축제 만큼은 지킬 수 있어서.

       

       아이의 방정과 어른의 환희를 지킬 수 있어서.

       

       그것을 위해서라면, 주동자와 함께 침몰하는 것 정도는 과분한 결말이리라 여기는 르미앙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완결이 아니니 걱정 마십시옷.
    다음화 보기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