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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봄이 되었다.

        

       쌀쌀했던 날씨도 많이 따뜻해지고, 이제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코트도 벗어도 될 정도의 날씨가 되었다. 아무리 어깨에 망토처럼 걸치고 있었다고 해도 따끈따끈한 햇살이 내려앉다 보면 그 내부가 찜통처럼 달아오르게 된다.

        

       4계절이 뚜렷한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의 게임사에서 그 세계관을 짜서 그런지, 겨울이 끝나자마자 날씨가 순식간에 더워졌다. 하긴, 내가 살던 나라도 그렇긴 했지. 언제쯤 시원해지나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살을 도려낼 듯 추워지고, 덕분에 기껏 사둔 가을옷을 입어볼 기회도 없이 옷장 깊은 곳에 박아두었던 롱패딩을 꺼내입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반대이긴 했지만.

        

       사실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동계용 털을 끝까지 달아두고 있었기에 조금 더 더웠던 것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멋있으니까. 단순히 모양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정말로 제대로 된 짐승 털을 사용한 고급 가죽이라 끝까지 붙이고 있었던 것도 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많이 적응했다. 학교라는 곳에 다니지 않은 지 꽤 오래 지났는데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주변 인물들에 대한 내적인 친밀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게임을 하며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봐야 내가 봤던 캐릭터들은 저화질 텍스처로 만들어진 저폴리곤 모델링에 이미 입력된 대사만 내뱉는 문자 그대로의 ‘캐릭터들’이긴 했지만. 어쩌면 그런 캐릭터들과 내 주변의 실존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은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뭐 아무튼.

        

       사실 입학하던 시점에도 이미 초원에는 푸른색의 풀들이 파릇파릇하게 자라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완연한 푸른 빛이 되었다. 그 사이사이에 형형색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오른 모습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초원의 한가운데 서서, 나는……

        

       “하아.”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2주 전에 제니퍼에게서 포상으로 받은 불 속성의 마르마로스를 시험해보려고 바깥에 나와 있는 참이었다.

        

       제니퍼가 소개해 준 아카데미 근처의 공방은 정말로 그 실력이 훌륭했다.

        

       훌륭하긴 했는데……

        

       “이런 상급품 마르마로스를 굳이 총기에 사용하시겠다구요?”

        

       그 공방의 공방장은 나를 이상한 사람 보는 듯한 눈으로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안됩니까?”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에르겐센 소총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꽤 오랜 기간 써온 총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상태가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총으로 수만 발의 사격을 하며 사격 연습을 했지만, 그런 연습을 하고 나서는 꼭 시간을 되돌리곤 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꼭 필요한 순간에만 쓴’, 상태가 무척 좋은 총이 되었다.

        

       아마 전장의 군인들이 보면 코웃음 칠 정도로 상태가 좋다고 할 수 있을 거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눈이 실처럼 가늘어서 마치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인용 앞치마를 입고 있지만 않았다면 마치 힘을 숨긴 마왕군 간부처럼 보였을 젊은 남성은 장갑 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총기’니까요. 사실 굳이 이런 식의 개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총신을 강화하고 총탄의 화약량을 바꾸는 식으로 활용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보통 이런 마르마로스는 검이나 창 같은 근접 무기에 달려야 더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게임에서는 그냥 공격력 몇 퍼센트 증가, 특정 마법 사용 가능, 이런 기능만 붙어있었지만,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검기를 뒤따르는 불길이 생긴다던가, 검기 자체의 온도가 극도로 낮아져 공격당한 사람이 순식간에 동상에 걸린다든가 하는 무시무시한 성능이 따라붙는다는 것 같은데……

        

       “총알에 불이 붙어봐야 상대방한테 얼마나 큰 타격을 줄 수 있겠습니까?”

        

       “…….”

        

       음…….

        

       “총탄이 날아가 소규모 폭발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까?”

        

       “……그런 총탄이 있었다면 이미 군에서 쓰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물론 이 시대에도 대구경 소총은 있었다. 아직 전차의 장갑이 장갑차와 비슷하던 시절에는 무식하게 큰 소총으로 ‘대전차전’을 벌이곤 했으니까. 기관총용 고폭소이탄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하고…… 아, 이건 1차세계대전 이야기는 아니던가? 음, 사실 총기가 발전해온 순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저격용으로 그런 총탄을 쓸지 안 쓸지도 모르겠고.

        

       “장착하면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거라면 가능합니다만…….”

        

       젊은 장인은 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제거하는 비용이 따로 청구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장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결국 내 소총과 마로마로스를 들고 공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

        

       사람이 거의 없는 가도에 나와 사격 연습을 해보았다.

        

       총열 끄트머리, 나무로 된 총열 덮개가 끝나는 부분에 아래쪽으로 장착된 마르마로스 덕분에 내 소총탄에는 확실하게 불이 붙기는 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불이 붙은 것이 아니라 마법적으로 붙었기에 일단 그 불붙은 총알은 끝까지 날아가긴 했다.

        

       그리고 목표물 깊은 곳에 박혀서, 화상을 입혔다.

        

       그게 끝.

        

       그래, 상처를 덧나게 하기는 좋겠다. 일반적인 보병이라면 그럭저럭 쓸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럭저럭’으로 끝나기에는 마르마로스가 무척 비싼 물건이라는 거다. 애초에 소총탄을 맞으면 어디에 맞건 목숨이 왔다 갔다 하게 될 거고, 맞아서 목숨에 지장이 없을 곳에 맞으면 화상 조금 입어봐야 마법으로 치유하면 되는 게 아닌가. 마법적인 치료를 편하게 받을 수 없을 일반 병사들 기준으로는 무시무시하기는 하겠다만…….

        

       나는 능력의 특성상 고가치 표을 맡게 될 거고, 그러면 한 발에 즉사시키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을 텐데, 이런 기능이 필요할까?

        

       어차피 산산조각난 뇌 조각을 더 구워도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군에서 굳이 마르마로스를 제식화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황제나 다른 형제들이 나에게 굳이 그런 것을 권하지 않은 이유도 알겠고.

        

       아마 그 사복검은 마르마로스를 이용해서 만든 거겠구먼.

        

       “다시.”

        

       나는 묘하게 납득하면서, 시간을 돌렸다.

        

       *

        

       소총에는 탄이 한 발만 들어가니 불이 붙어봐야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산탄총이라면 혹시 모르지.

        

       실제로도 산탄용 소이탄도 있었고. 단발 화염방사기처럼 불길을 쏘아대는 총기는 무척 쓸모 있어 보였다.

        

       적어도 참호전이 기본인 이 세계에서는 말이다.

        

       “혹시 전장이라도 나가십니까?”

        

       장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가느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나에게 그렇게 물어봤을 정도다.

        

       “나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원작에서는 그런 전장 한복판에서 싸우는 것 보다는, 그 이면에서 전쟁 그 자체를 막아내는 데 스토리가 쏠려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장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습니까…….”

        

       내 능력에 대한 명성 자체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숫자로는. 귀족들에게는 알음알음 알려지긴 했지만, 적어도 황궁 바깥의 평민들은 잘 모르는 일이다.

        

       내가 ‘황녀’라는 것은 제니퍼가 이미 전달해 주었지만, 그뿐, 이 장인은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혹시 장교를 지원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에는 별다른 군말 없이 내가 내놓은 산탄총과 마르마로스를 주워 들며 그렇게 말하는 장인에게,

        

       “아직은 모릅니다.”

        

       나는 애매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

        

       “다 되었습니다.”

        

       몇 시간 후 다시 찾아왔을 때, 장인은 내 앞에 개조된 산탄총을 내놓았다.

        

       소총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르마로스는 산탄총 특유의 관형 탄창 앞부분에 설치되었다. 그렇다고 분해조립에 방해될 것 같지는 않았던 게, 마르마로스가 달린 부분 자체도 탈부착이 가능한 형태로 되어있었다. 나사를 돌려서 빼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붙인 형태가 아니라 그럭저럭 원래부터 그렇게 생긴 것 같은 모양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 괜한 참견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완성된 개조 산탄총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장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흠칫 떨면서도,

        

       “전장이라는 곳은 무척 끔찍한 곳입니다. 혹시라도 명예 같은 낭만적인 것을 찾아서 가실 생각이시라면, 그,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는 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장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전장에 있다가 오셨습니까?”

        

       “아, 예.”

        

       사실 알고는 있었다. 원작에서도 인물 카드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척 자연스럽게 걷고 있기는 했지만, 한쪽 다리는 의족이다. 같은 중대 출신인 제니퍼가 후원해준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아주 비싼 물건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톱니바퀴와 스프링으로 이루어져 있고, 걸음걸이에 따라 자동으로 감기는 태엽으로 움직인다고 했던가. 후에 이 물건에 관련된 서브 퀘스트도 있었고.

        

       “……그렇습니까.”

        

       나는 산탄총을 어깨 뒤에 걸면서 말했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퇴역 군인에 대한 예의로 부동자세를 취하며 말하자, 장인은 엄청나게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북부 전장은 나름대로 민간인 보호와 정당한 정부인 리클란트 자치국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실제로 자치국 쪽에서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기도 했고. 그래서 아직 전면전까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아니고, 이렇게 퇴역 군인도 우대해 줄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전황이 많이 바뀌게 된다.

        

       적어도 지금 전장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낭만에 젖어 입대했다가 현실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다.

        

       내가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고 어쩔 줄 모르는 퇴역 군인을 뒤로 하고, 나는 공방을 나왔다.

        

       *

        

       그리고, 다시 아까의 그 가도.

        

       내가 있던 곳까지 가자, 이번에도 역시 짐승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멀리서 쏴서 맞췄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건 산탄총이다. 산탄 자체의 거리가 있으니 다소 떨어진 곳에서 쏴도 마르마로스의 위력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의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할 거다. 총구에서 직접적으로 뿜어지는 화력은 닿지 않을 테니까.

        

       “크르르…….”

        

       지난번에 봤던 엘리멘탈 독처럼 거대한 녀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이 아무 무장 없이 다가가도 될 정도의 짐승도 아니다.

        

       두 발로 일어나면 내 가슴께 정도까지 올 크기일까? 다만 기다란 귀 끝부분까지 포함하면 내 키보다 더 클지 모르겠다.

        

       양옆으로도 꽤 크고, 신체 자체도 그럭저럭 근육질이다. 아마 맨손으로 싸웠다가는 목숨을 보장하지 못할지 모른다.

        

       토끼……라고 하면 토끼다. 좀 많이 흉포하게 생기고, 좀 많이 크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통 사람들도 다니는 가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괴물이 살고 있다는 게 어이가 없다. 그래도 게임에서처럼 대놓고 길 한가운데를 돌아다니지는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크르르르르…….”

        

       ……토끼 주제에 그런 소리 내지 마라.

        

       철컥.

        

       나는 토끼를 향해 산탄총을 겨누었다.

        

       “크아아!”

        

       전혀 토끼답지 않은 소리를 내며 그 근육질 뒷다리가 땅을 박차고—

        

       나는 즉각 방아쇠를—

        

       펑!

        

       “으갹!?”

        

       —당기다가 총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화염에 기겁했다.

        

       그 화염은 약 3~4미터 앞을 그대로 덮쳤다.

        

       털썩.

        

       그리고 내게 달려들던 토끼는 그대로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12발의 산탄을 맞은 채 아래로 툭 떨어졌다.

        

       털이 새까맣게 탔다.

        

       고기 탄 것 같은 냄새가 났다.

        

       “…….”

        

       어…… 음.

        

       그래, 왜 산탄에조차 마르마로스가 사용되지 않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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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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