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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하늘섬 정박장에 비공정들이 날아왔다. 편입생들이 탄 비공정을 호위하듯이 둘러싼 모양새였다.

         

       고래를 닮은 비공정이 연착륙을 위해 날개 지느러미를 움직이자 큰 바람이 불었다. 정박장에 대기하던 아카데미 인원들의 옷자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학생회 대표로 나선 파스텔은 바람을 맞으며 손을 떨었다. 슬쩍 오른쪽에서 같이 대기 중인 엘리에게 말을 걸었다.

         

       “고, 공작 영애신데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해?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나야 제국 예법을 완벽히는 모르지만…….”

         

       엘리가 본인의 뾰족한 마족 귀를 슬쩍 문질렀다.

         

       “내가 너한테 존댓말을 쓰던가?”

         

       기억 되짚는 중.

         

       그런 적 없네!

         

       “같은 학생이잖아. 졸업 이후가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나서서 눈에 띌 필요는 없을 거 같아.”

         

       파스텔은 살짝 얼굴이 밝아졌다.

         

       “맞아맞아! 같은 친구끼리 서먹하게 지낼 필요는 없어! 친구처럼! 아니 우린 이미 친구야!”

         

       비슷하지만 어쩐지 다른 결론에 엘리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뭐 그리고 앨시어 벨라몬트가 작위를 받았다던가 하는 소식은 못 들은 거 같아. 받을 수 있었는데 거절했다던가? 마찬가지인 멜리사 캐머롯을 대하듯이 대하면 예법에 적당히 맞지 않을까? 더스틴, 어떻게 생각해?”

         

       왼쪽에서 같이 대기하던 더스틴이 움찔했다.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확연했다. 변두리 남작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험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그건, 그래도 벨라몬트는 왕족 혈통인데 상호 경칭을 쓰는 건 어때?”

         

       벨라몬트 공작가는 제국의 통일 전쟁 때 흡수된 왕가였다. 혈통을 존중받는 의미로 공작위를 얻었지만 대신 왕국의 일부 영토였던 공작령을 감독하는 의무까지 부여받았다.

         

       “친구끼리 상호 경칭?”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완전 처음 듣는 예법!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인 멜리사와도 상호 경칭을 쓰지 않는데?!”

         

       파스텔은 멜리사와 얼마나 절친한 사이인지 양팔을 벌리며 최대한 표현했다.

         

       “이마안큼 절친한 멜리사와 차별 대우를 하면 멜리사가 슬퍼할 거야!”

       “그, 그런가?”

         

       더스틴이 창피해했다. 본인의 부족한 지식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앗, 위로해 줘야지.

         

       “더스틴! 모를 수도 있지! 넌 친구가 거의 없으니 이런 친구 관계에 서툴 수 있어!”

         

       응응!

         

       더스틴은 노는 애 옆을 지나가다가 대뜸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됐다.

         

       친구가 없다 보니 이런 위로조차 낯선가 봐.

         

       파스텔은 배려심이 뿜뿜 생겼다.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게 해맑은 웃음소리를 냈다.

         

       아하하!

         

       엄지를 치켜세웠다.

         

       “넌 남 수발드는데 재주가 많으니 친구가 없어도 괜찮아! 학생회에서 잡무를 하며 증명해 냈잖아! 그렇지 엘리?”

         

       돌아보자 엘리는 입을 작게 벌린 채 경악 중이었다. 마족 소녀의 시선이 파스텔을 보다가 더스틴을 바라봤다.

         

       평소에 더스틴을 볼 때마다 답답해하고 떨떠름해하던 태도와는 다른 연민 가득한 눈빛.

         

       마족 소녀가 진심을 담아 더스틴을 위로했다.

         

       “괜찮아. 네 유일한 친구가 이 모양이라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원래라면 평생 어울리지도 못할 상대기도 하잖아.”

         

       엣.

         

       유일한 친구?

         

       방금 엘리, 자기가 더스틴과는 친구가 아니라는 선언을 무의식적으로 해버린 거 아니야……?

         

       경악하며 더스틴을 돌아보자 결정타였는지 더스틴은 격렬히 쭈그러들어 있었다. 반쯤 녹아 형상이 무너진 눈사람 같다.

         

       눈사람이 침울해했다.

         

       “나는 친구가 없어…….”

         

       허억.

         

       사실이지만.

         

       사실이지만……!

         

       그걸 그렇게 되뇔 필요는 없잖아아!

         

       “엘리! 어떻게 이런 짓을! 이건 범죄야, 범죄! 친구 범죄!”

         

       허억, 친구 범죄.

         

       파스텔은 상상도 못 할 중범죄!

         

       “어? 응? 내가 잘못한 거야?”

         

       엘리가 당혹스러워했다.

         

       엘리의 중범죄를 수습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공작 영애가 비공정에서 내릴 때쯤엔 해결할 수 있었다.

         

       편입생 무리가 사용인들과 함께 내리며 정박장이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사용인이라 읽고 무장 병사라고 부를 인원들을 대동한 은발의 소녀였다. 소녀를 쫓으며 병사의 창날이 하늘을 찔렀다. 차가운 은색 눈동자가 정박장을 훑어봤다.

         

       은색 시선은 어느 지점에 멈췄다. 편입생 안내와 환영을 위해 모인 학생회들이었다.

         

       선두의 분홍 소녀가 트럼펫을 들고 뿌뿌~ 불었다.

         

       “아카데미 학생 일동은 편입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파스텔은 외치곤 트럼펫을 입에 물었다.

         

       뿌뿌~!

         

       옆에서 더스틴이 학생회가 준비한 안내 책자를 사용인들에게 건네주고 설명했다. 뭔가 물어오는 편입생들은 엘리가 직접 상대했다.

         

       일정은 어떻고, 기숙사는 어떻고, 학교 분위기는 어떻고 등등.

         

       소란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바쁜 와중에 파스텔은 무슨 역할을 했냐면, 그냥 트럼펫을 불며 눈에 띄기 담당.

         

       뿌뿌~!

         

       웬 분홍 소녀가 이러고 있자 누구나 시선을 줬다. 후작 각하가 체면 없이 이러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악기만 불고 있지만 안내역인 학생회가 눈에 안 띄면 이탈자가 발생하니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놀랍게도 진짜임.

         

       뿌뿌~!

         

       하선 절차가 완전히 끝나자 본격적으로 대이동을 시작했다. 어차피 자질구레한 영역은 사용인이 해결할 테니 편입생을 기숙사로 안내해 주면 됐다.

         

       파스텔은 계속 트럼펫을 불며 앞장서다가 슬슬 매우 창피하다는 엘리의 의견을 반영해 그만 불었다.

         

       잉.

         

       아쉬워하며 악기에서 입을 떼자 할 일이 없어졌다.

         

       편입생 무리가 졸졸 뒤따랐지만 엘리가 지나치는 교내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더스틴이 자잘한 일을 해결하는 식으로 움직이니 선두의 파스텔은 굳이 할 일이 없었다.

         

       환영 분위기나 띄울 겸 트럼펫을 슬쩍 다시 입에 물었지만 엘리에게 괜한 눈초리만 받아서 포기했다.

         

       으잉.

         

       부하직원들에게 인수인계를 너무 잘해도 문제.

         

       파스텔은 선두에서 할 일 없이 뒷짐 지고 걸어갔다.

         

       에헴.

         

       할 일이 없군!

         

       나, 완전 유능.

         

       후후.

         

       이것이 부장님의 심정?

         

       슬쩍 거만하게 돌아봤다.

         

       “학생 식당이 저기만 있는 건 아니라서 위치가 마음에 안 든다면 다른 곳을 이용하는 게 좋아.”

         

       뒤따르는 편입생 무리와 열심히 교내를 설명하는 엘리.

         

       잘하니 중요한 부분은 아니고.

         

       “주인 도련님께 좋은 기숙사를 배정해달라고 아무리 말하셔도 그럴 순 없고요. 정 불만이라면 학생 본인이 학생회로 직접 찾아오시면 됩니다. 이렇게 사용인을 거쳐 의견을 전달하면 동등한 학생으로서 곤란하다는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중간에 끼어서 괴로워하는 사용인과 의외로 단칼에 거절하는 더스틴.

         

       응응.

         

       다 잘하고 있네!

         

       이러면 사적인 일을 살짝 해볼 만한 상황?

         

       파스텔은 편입생 무리를 살폈다. 무리와 은근히 떨어져 걸어가는 은발의 소녀가 눈에 띄었다.

         

       어차피 좋은 기숙사로 배정받을 거라 도중에 대열에서 이탈하니 미리 떨어져서 걷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같은 학생 무리와 어울릴 생각이 없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태도였다.

         

       교내를 살피던 은색 눈동자가 문득 돌아봤다. 은색 머릿결이 흐트러졌다. 북부 산맥의 눈보라 속에서 건져낸 듯이 하얀 은색에 감싸인 소녀.

         

       이런 애가 창술을 잘 쓰는 준기사급이란 말이지.

         

       파스텔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내 친구고!

         

       헤헤.

         

       멜리사처럼 소중하게 친구 목록에 넣어야지!

         

       “안녕, 앨시어! 이게 얼마 만이야!”

         

       대뜸 다가간 파스텔은 진짜 절친인 것처럼 인사했다.

         

       “완전 반가워! 와아!”

         

       폴짝폴짝!

         

       소녀의 앞을 정신없는 분홍색이 뒤덮었다.

         

       뜬금없는 상황에 앨시어가 당혹스러운지 기억을 더듬으며 살짝 눈빛을 흐렸다. 그러다 구면이 절대 아니라고 확신했나 보다.

         

       “언제 봤던가?”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우리 오랜만이 아니었던 거야?!”

         

       충격.

         

       “설마 나의 착각?!”

         

       허억.

         

       양팔을 벌리고 놀라는 포즈를 취했다.

         

       “어쩐지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알려줘서 고마워!”

         

       파스텔은 그러며 자연스럽게 옆에서 걸었다.

         

       좁혀진 거리에 앨시어가 당혹스러워하며 훑어봤다.

         

       “하지만 앨시어 그거 알아? 난 널 처음 본 순간 삐슝~! 하고 깨달은 부분이 있어!”

         

       삐슝~!

         

       파스텔은 입으로 효과음을 낸 다음 양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선언했다.

         

       “바로 우리가 절친이 될 거라는 사실이야!”

         

       충격적인 진실.

         

       굉장한 비밀을 속닥이듯이 앨시어의 귀에 속닥였다.

         

       “이 깨달음을 헷갈린 나머지 이미 절친인 것처럼 느껴버린 거야. 허억. 엄청난 진실! 너만 알고 있도록 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앨시어는 상황을 못 쫓아가겠는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보다가 자신의 사용인을 돌아봤다. 얘와 자신이 어디서 만난 적이 있냐고 묻는 시선이었다.

         

       사용인이 고개를 저었다. 앨시어는 다시 얼떨떨하게 파스텔을 돌아봤다.

         

       “우리가 언제 봤던가……?”

         

       정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

         

       파스텔은 진지한 얼굴로 비밀을 속닥였다.

         

       “지금 이 순간 봤어.”

         

       허억.

         

       완전 절친 트리거.

         

       정적이 흘렀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들려오는 엘리의 안내 목소리와 편입생 무리의 북적임은 둘 사이를 방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파스텔은 정적을 음미했다.

         

       아, 이 분위기.

         

       친구 사귀기 백단으로서 확신할 수 있어. 절친 사이에만 흐르는 대화 없이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져.

         

       파스텔은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흐렸다.

         

       “우리 사이니까 조심스럽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들어줄래?”

         

       앨시어가 말없이 쳐다봤다.

         

       흐윽.

         

       네 마음은 나도 알아.

         

       무엇이라도 말해보라는 심정이겠지.

         

       하지만 난 절친에게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아.

         

       파스텔은 천천히 부탁했다.

         

       “우리, 대련해 보자.”

         

       준기사급과 안전하게 수련해 볼 기회.

         

       놓칠 수 없어.

         

       앨시어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전혀 파악이 안 된다는 얼굴로 혼란스러워하다가 입을 열었다.

         

       “거절할게.”

         

       허억.

         

       거절당함.

         

       폭풍의 설한 같은 냉혹한 거절……!

         

       어느새 지정된 기숙사의 갈림길에 당도하자 앨시어는 도망치듯이 떠났다.

         

       사람 없고 추운 북부에서 지내느라 또래 친구 사귀기가 낯설었는데 웬 이상한 애한테 갑자기 친구 어택을 당하자 혼비백산 달아나는 모양새였다.

         

       허윽.

         

       파스텔은 털썩 주저앉았다.

         

       엘리가 슬쩍 시선을 주고 더스틴이 걱정하며 다가왔다.

         

       “파스텔?”

       “더스티이인.”

         

       울상이 된 파스텔은 더스틴의 다리에 매달렸다. 내려보던 더스틴이 움찔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더스티이이인.”

       “마, 말해.”

       “네 무례한 대결 신청법을 전수해줘어!”

         

       대뜸 손수건 던지기, 완전 필요!

         

       더스틴은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얼굴로 변했다.

         

       슬쩍 보던 엘리가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가 서둘러 수습하더니 웃지 않은 척했다.

         

       흐윽.

         

       파스텔은 바닥을 짚으며 절망했다.

         

       “그래도 역시 너나 레너드처럼 무례하게 대결을 신청하는 건 나쁜 짓이겠지.”

         

       더스틴은 한 대 더 얻어맞은 얼굴로 변했다.

         

       “하지만 원래 사람 간엔 파장이 안 맞을 때도 있는 거야.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순 없는 거지. 이럴까 봐 나도 확실한 서브 플렌을 준비해 뒀어!”

         

       파스텔은 씩씩하게 일어났다.

         

       냉혹한 부학생회장 겸 총무부장 겸 기획부장 겸 홍보부장 겸 봉사부장 겸 선도부장의 눈빛을 했다.

         

       친구 최면 빔이 안 통한다면!

         

       팔을 번쩍 들었다.

         

       “오늘부로 학생회는 학생의 실력과 의욕 향상을 위해 일대일 토너먼트를 추진하겠습니다!”

         

       누가누가 강한지 가려보아요!

         

       초면에 친한 척했다가 실패하고 살짝 창피해진 파스텔은 권력 남용을 시전했다.

         

       권력 남용 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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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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