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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장미 풍차 카바레의 1번 홀은 사람들의 성난 목소리로 가득했다.

       불과 반 시간 전까지 한데 어우러져 어깨를 맞붙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은 이제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악을 쓰고, 얼굴을 붉히고 모욕적인 손짓을 해댔다.

         

       이번 경찰의 체포 작전은 경영자인 브왈레는 물론, 소유주인 무스탕 후작도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귀족이 소유한 건물에 경찰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양해를 받는 게 원칙이었다.

       정말 급한 일이라 사전 고지를 못 했다 해도, 적어도 진입하기 직전에 언질이라도 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러나 경찰들은 그 선도 지키지 않았다.

       마치 떼강도처럼 우르르 난입해서는 객실의 문을 부수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사태를 파악한 무스탕 후작은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거의 검게 변했다.

         

       건방진 경찰 나부랭이들이 자신의 초대를 받은 손님을 멋대로 끌고 나가다니.

       귀족으로서 이런 엄청난 불명예도 따로 없었다.

         

       분노에 찬 그의 두 눈동자가 파티의 손님들을 훑었다.

       가슴을 쭉 펴고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즐기고 있는 기마경찰대의 애송이는 무시했다.

         

       이런 작전은 절대 일개 부사관이 행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뒤를 봐주는 고위 귀족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과연, 홀 구석에 자기네들끼리 모여 이쪽을 훔쳐보며 쑥덕대는 무리가 있었다.

       몇몇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시선을 피했고, 몇몇은 오히려 똑바로 받아치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작은 그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폈다.

         

       서커스 그랑프리를 유치한 현 시장의 공적을 깎아내리려는 반(反)시장 일파.

       장미 풍차 카바레가 샤를로티아의 대표 극장이 된 것을 시기하는 다른 극장의 소유주들.

       베르그송 상회와 경쟁 관계에 있는 상회의 주주들.

       그리고 그들의 후원을 받는 루즈의 고위 관료들.

         

       이번 사태는 그들의 합작품이었다.

         

       무스탕 후작은 이를 갈았다.

       젊은 시절부터 대귀족 주제에 창관을 운영한다는 조롱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자격지심 때문일까.

       그는 명예에 굉장히 민감했다. 자신에 대해 뒷말이 나오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잘도 나를 물 먹인단 말이지.

         

       이번 일을 획책한 무리와 무스탕 후작 사이에 싸늘한 기류가 감돌았다.

         

       귀족과 사교계 인사들은 이런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눈치가 빨랐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챈 사람들은 서둘러 자신의 위치를 정했다.

         

       일부는 이번 일을 비난하고, 일부는 옹호하고, 일부는 중립을 지켰다.

         

       -우리 때는 이런 비겁한 기습은 하지 않았어! 암! 그렇고말고! 귀족끼리의 예의가 있지!

       -비겁하다니! 위험한 용의자 아닌가? 나는 경찰들이 일을 잘했다고 보는데?

         

       -외국의 손님들도 와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꾸미다니. 부끄럽지 않소?

       -오히려 이런 범죄를 대충 덮은 극장의 행태가 더 부끄럽다고 봅니다만?

         

       -고작 부사관 따위가 작위를 가진 귀족을 체포하다니!

       -체포된 건 떠돌이 마술사고. 자작은 그저 참고인으로 동석한 것뿐일세. 규정상 문제없네.

         

       중립을 지키는 쪽은 타국의 인사거나 양 진영과 둘 다 관계가 원만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최대한 말을 아끼며 상황을 살폈다.

         

       무스탕 후작은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베르그송 자작에게 다가갔다.

         

       둘은 그동안 별 접점이 없던 사이였다.

       영지도 동떨어져 있었고, 활동하는 분야도 달랐다.

         

       하지만 이번 일에 있어서 둘은 같은 배를 탔다.

       상대가 뭉친 이상 이쪽도 협력해야 했다.

         

       “베르그송 자작, 극장의 주인으로서 이번 일을 막지 못한 점 사과드리오.”

       “저희가 더 송구스러울 따름이죠. 축하해야 할 자리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무스탕 후작은 그녀의 차분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상계의 재녀로 명성이 자자한 그녀였지만, 그래봤자 이제 갓 20살이 된 어린 여자였다. 행여나 패닉에 빠져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눈빛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절도 있는 것이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 같았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뭔가 아는 게 있소?”

       “저도 제대로 들은 게 없습니다. 다만, 저분이 무죄라는 건 확실합니다.”

         

       무스탕 후작은 경찰들 사이에 있는 금발의 청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한순간 부드러워지는 걸 눈치챘다.

         

       역시 소문대로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건가.

         

       공연계에 오래 후원 활동을 해온 무스탕 후작이었다.

       후원자와 예술가 사이에 마음이 오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현재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섣불리 옹호하고 나섰다간 추문만 더 커질 수 있었다.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오늘은 별일 없을 거요. 실력 좋은 변호사를 수배하고, 유리한 증언을 모으면 충분히 재판에서 이길 수 있소.”

         

       무스탕 후작의 조언에 아나이스는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물러나 사태를 조용히 관망하고 전략을 짜는 것이었다.

         

       지금 그에게 달려가 이분은 무죄라고 소리치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그건 전혀 대상회의 회장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자신이 통제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주면, 소문에 대한 사람들의 확신만 더해줄 뿐이었다.

         

       냉철해져.

       생각해.

       너는 이런 상황에 분노하고 짜증이 난 귀족이야.

       골칫거리에서 떨어져 손익을 계산하고 있는 상인이야.

         

       저 남자를 걱정하지 마.

       그런 표정도 짓지 마.

         

       아나이스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지금 그녀는 사랑에 빠진 여인이 되면 안 됐다.

       철가면이 되어야 했다.

         

       별일 없을 것이다.

       재판을 기다리면 됐다.

         

       상회의 후원을 받는 서커스단의 단장이 살인범으로 지목되다니.

       상회의 명예도 걸려 있으니 이사회에서도 변호인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자제하는 게 정답이었다.

       기다리면 일이 잘 풀릴 것이다.

         

       그러나 적들은 그들의 예상보다 더욱 악랄한 자들이었다.

         

         

       ***

         

         

       나는 아나이스가 쌀쌀맞은 표정을 짓고 나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다행이다.

       그녀도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여기서 그녀가 다가오는 것은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악수였다.

         

         

       *서브 퀘스트-재판

       : 당신은 카바레의 유령이라는 죄목으로 기소당했습니다. 누명을 벗고 서커스단의 명예를 회복하십시오.

         

       달성조건

       : 서커스단의 명성이 0이 되기 전에 무죄 증명. (현재 서커스단의 명성: 21)

         

       성공 시 보상

       : [서커스단의 명성 +50]

         

       실패 시 페널티

       : [서커스 그랑프리 활동 잠정 중지]

         

         

       사보가 날 카바레의 유령으로 지적했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황당해서 뭐라 대꾸하려는 그때, 퀘스트가 떠올랐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상황이 이해가 갔다.

         

       내가 카바레의 유령으로 오해를 받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다.

         

       퀘스트의 실패 시 페널티 역시 골치가 아팠다.

       서커스 그랑프리 활동 잠정 중지라니.

       설마 무죄가 증명될 때까지 계속 구속되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일단 마땅한 타개책이 없어 경찰들의 지시에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1 하락했습니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2 하락했습니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2 하락했습니다.]

         

         

       홀에 들어서자 명성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바레의 손님들이 나를 두고 수군거렸다.

       내가 살인범으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이미 퍼진 모양이었다.

       서커스단의 명성은 순식간에 5나 하락했다.

         

       이 속도라면 0을 찍는 건 금방일 것이다.

         

       행여나 아나이스가 여기서 나를 옹호한답시고 나서지 않기를 바랐다.

       대상회의 회장인 그녀가 이 자리에서 나를 두둔한다면, 내가 그녀를 조종한다는 소문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내 바람대로 얌전히 있어 주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퀘스트의 시한을 약간 연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0이 되기 전에 무죄를 증명하라.’

         

       퀘스트의 명칭은 ‘재판’으로 되어있지만, 이것도 일종의 게임이었다.

       여기서 서커스단의 명성은 내 ‘체력’이라 보면 됐다.

       체력이 0이 되면 이 퀘스트는 실패인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어떻게든 내 무죄를 증명해야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경찰들에 의해 홀의 출입이 막힌 상태.

       2시간 뒤 손님들은 홀에서 나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완전 무죄’를 증명하지 않는다면 퀘스트는 실패였다.

       ‘유죄는 아닌 것 같다’나 ‘잘 모르겠다’는 결과가 나와도 안 됐다.

       그 정도 의혹만 있어도 신문이고 잡지고 곳곳에 내 이름이 실리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명성은 끝장이었다.

       바로 0을 향해 떨어질 것이다.

         

       제한 시간 2시간.

       그 안에 명성이 0이 되면 당연히 실패고, 명성을 어떻게 방어해낸다고 해도, 무죄를 증명하지 않으면 역시 명성이 0으로 떨어지는 건 확정이었다.

         

       물론 정식으로 재판을 받는다면 나는 범인이 아니니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날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몇 달,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메인 퀘스트도 실패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잘 될 거예요. 제가 최고의 변호인단을 섭외할게요.”

         

       아나이스가 일부러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와 다정한 말을 속삭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나에게 일을 그르친 것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반드시 무죄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저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내게는 별로 힘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때 가서 무죄가 되면 뭐하나.

       메인 퀘스트는 이미 실패한 거나 다름없을 텐데.

         

       그때, 도스빌 남작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이구, 자작님. 애인분을 위로하고 계신 겁니까?”

         

       그를 보는 아나이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오늘 뭔가 이상하게 구는 것 같다 했더니, 당신도 한몫했나 보군요, 도스빌 남작.”

       “제가 여러 가지 아는 게 많지 않지 않습니까?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영지도 없는 남작 나부랭이라 부담 없이 이용하기도 좋고요. 덕분에 제가 이번 재판의 기소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아나이스는 코웃음을 쳤다.

         

       “흥. 당신의 알량한 지식으로 우리 상회의 변호인단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나요?”

       “변호인단이요? 어라?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당연히 정식 재판에 온다는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도스빌 남작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식 재판이요? 무슨 정식 재판? 오늘은 여기서 즉결 재판이 열릴 건데요?”

       “그게 무슨……?”

         

       도스빌 남작의 뒤로 중후한 풍채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대머리에 흰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가 바로 루즈 지역을 담당하는 판사인 듯했다.

         

       “남작님의 말이 맞습니다, 자작님. 여기서 즉결 재판이 열릴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그건 전시 상황에서 군인들한테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도스빌 남작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혀를 찼다.

         

       “<집시와 떠돌이에 관한 법령> 제13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집시와 떠돌이에 대해서는 귀족의 기소로 즉결 재판을 할 수 있다.”

       “뭐라……고요?”

       “하나 더 말씀드릴까요? <즉결 재판법> 제4조. 즉결 재판은 단심으로 확정된다. 같은 법 14조. 즉결 재판에서는 즉결 처형 역시 가능하다.”

       “그런…….”

         

       아나이스가 나를 돌아봤다.

       그녀의 두 눈에는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미소지었다.

       웃는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

         

       “자작님,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나서지 마세요.”

         

       확실히 시스템이 공략할 길이 없는 퀘스트를 던져줄 리 없었다.

       살아날 길이 있는 것이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단장님?”

         

       그녀가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주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또 웅성거렸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1 하락했습니다.]

         

         

       이것 보라지.

       그녀가 나를 이렇게 위하는 행동을 하면 오해를 받는다니까.

         

       “서로를 위해서요. 포르슈 경, 자작님을 부탁합니다.”

         

       포르슈 경은 새삼 진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이스는 안색이 새파래져서는 포르슈 경의 부축을 받고 물러났다.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지금 벌어질 재판이었다.

       이 깜짝 쇼를 기획한 자들은 정식 재판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던 모양이었다.

         

       물론 내게는 역전의 기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래서 제목이 역전의 개막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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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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