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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안녕하세요!”

       

       술집에 들어선 오렌디가 쾌활하게 인사했다.

       

       이곳은 아까 아침에 카자다르가 말한 술집으로 오늘 전투학과 회식을 하기로 한 장소다.

       

       막 문을 열면서 이벤트로 맥주 오크통 하나를 그 자리에서 모두 마시면 술값을 공짜로 해준다고.

       

       당연히 보통의 인간이라면 오크통째로 술을 퍼먹으면 뒤지는 건 당연하고 일단 배에 들어가지도 않을 거니 괜찮은 어그로다.

       

       문제는 인간 외의 종족이 왔을 때.

       

       “어서오십쇼! 어엇?!”

       

       오크 브로그와 드워프 카자다르의 등장에 술집 주인의 낯빛이 퍼래졌다.

       

       브로그는 오크임을 감안해도 덩치가 상당했고 카자다르는 말할 것도 없지.

       

       드워프들은 갓난아기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술을 먹이는 종족이니까.

       

       “여기 분명 오크통을 비우면 술값이 공짜렷다! 당장 내와라!”

       

       “인간 한정이오!”

       

       카자다르의 호통에 술집 주인이 허둥지둥 안내판의 하단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인간한정’이라는 글씨가 깨알 같이 적혀 있었다.

       

       “이거 사기 아니냐!!”

       

       “나쁜 인간!! 우리를 속였다!!”

       

       흥분한 카자다르가 망치를 뽑아들고 브로그는 전투함성을 내질렀다.

       

       “겨, 경비대를 불러!!”

       

       “잠깐 기다리시오.”

       

       거의 실신 직전이 된 주인이 소리치자 모턴이 앞으로 나섰다.

       

       “오크통을 가져오시오.”

       

       “하지만 분명히 인간 한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져오라는 거요. 내가 마실 테니.”

       

       모턴이 맹금류를 닮은 노란 눈으로 빤히 보자 주인은 머뭇거리면서도 종업원에게 맥주 오크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자자, 다들 진정하고 들어가자.”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카자다르와 브로그를 밀며 술집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휴, 정말! 여기서 전투함성을 지르면 어떡해요!”

       

       “저놈이 사기를….”

       

       “사기든 뭐든요!”

       

       리나의 질책에 브로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만 긁적였다.

       

       “그래도 브로그 교수님 정도면 신사지. 보통의 오크였으면 아마 진작 여기 기둥 하나는 부러졌을 걸.”

       

       펠레미아가 웃으며 안경을 고쳐 쓰자 웨이버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전투함성을 지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때려 부수지.”

       

       그 말에 모턴을 제외한 교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턴은 차분하게 앉아서 종업원이 오크통을 굴려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벤트용 오크통은 사람 하나는 거뜬히 들어가는 보통의 오크통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인간이 앉은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 오크통이 놓이자 모턴은 뚜껑을 따고 빈 맥주잔 하나를 들었다.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마시고들 있어라.”

       

       그 말을 끝으로 모턴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오크통의 맥주를 잔으로 퍼서 마시기 시작했다.

       

       “화장실도 금지입니다. 안주도 안 돼요!”

       

       “알고 있으니 참견하지 마시오.”

       

       주인이 떽떽대자 모턴은 가볍게 대꾸하며 계속 술을 퍼먹었다.

       

       과연 모턴이 군단 장거리 순찰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 저 주인은 어떻게 반응할까.

       

       군단 장거리 순찰대는 엄청난 주당들이다.

       

       한번 작전을 뛰면 몇 주씩 적진을 휘젓고 다니기에 술을 마실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주둔지에 복귀하면 다음 작전 전까지 최대한 술을 많이 마시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다음에 또 언제 술을 마실지 모르고 혹은 이번이 마지막 술자리일 수도 있기 때문.

       

       모턴은 무조건 성공할 게 뻔하니 나는 마음 놓고 술 잔뜩에 온갖 비싼 안주들을 줄줄이 주문했다.

       

       “그나저나 교장님은 안 오시는 걸까요?”

       

       테이블 가득 안주와 술이 차려지는 것을 보며 리나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 드렸을 때는 일단 알겠다고는 하셨는데.”

       

       “오든 안 오든 마음대로 하시겠지. 바쁘시면 못 오시는 거고.”

       

       “그래도 우리 전투학과 교수를 겸하시잖아요. 이왕이면 같이 술 마시고 놀면 좋을 텐데요.”

       

       “그러게요. 교장님 솔직히 좀 짠해요.”

       

       저쪽에서 오렌디가 끼어 들었다.

       

       “저번에 한번 교장실에 간 적이 있는데 결재서류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불쌍한 분이시지. 워낙 착한 성격이라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고.”

       

       웨이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안 사실인데, 의외로 전투학과 교수들은 키르린에게 호의적이다. 그렇게나 전투학과를 축소시켰는데도 말이지.

       

       키르린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

       

       다크엘프 네마라 일족과 황제 사이의 일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니 교수씩이나 되는 자들이라면 충분히 그 속사정을 추론할 수 있겠지.

       

       “한 말씀 하셔야죠?”

       

       그때 펠레미아가 내 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그래.”

       

       술잔을 들며 대충 우리 학과를 더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다들 열심히 하자라는 취지의 건배사와 함께 잔을 들이켰다.

       

       잔을 비우자 펠레미아가 또 잔 가득 술을 따랐다.

       

       “늘 학과를 위해 고생이 많으세요.”

       

       “고맙다.”

       

       그 잔을 들이키자 바로 이어서 잔을 채우는 펠레미아.

       

       “오늘 많이 드세요.”

       

       “너도 많이 마셔.”

       

       “그나저나 아까 하신 말씀은 뭔가요?”

       

       “어떤 거?”

       

       “이브로니크 성의 독기랑 지뢰 관련해서요. 저는 처음 듣는 거라서.”

       

       “그러고 보니.”

       

       안주를 집어 먹은 오렌디가 끼어 들었다.

       

       “저도 궁금하더라고요. 설명 좀 해주세요.”

       

       “아, 그거? 옛날에 전쟁 때 마족들이 이브로니크 성 지킨다고 앞에 지뢰 깔고 독기 뿌리고 그랬잖아. 그게 아직도 남아 있는 줄 알았어.”

       

       “거의 십 몇 년 전 일이네요. 이미 관광지 된 게 언제인데.”

       

       “그러니까. 나도 듣고 깜짝 놀랐다.”

       

       “혹시 이브로니크 탈환전 때 거기 계셨나요?”

       

       “어. 맞아.”

       

       “에엑?! 정말로요?! 거기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리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몰라몰라. 그냥 정신 없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야. 거기 진짜 끔찍한 곳이었어.”

       

       “이제야 독기니 지뢰니 하신 게 이해가 되네요. 탈환전하시고 종전 후에 바로 브룬스웰로 가셨으면 당연히 옛날 그대로 있는 줄 아셨겠어요.”

       

       그러며 리나는 펠레미아를 힐끔 쳐다봤다. 마치 ‘맞잖아요’라는 듯한 눈빛.

       

       “그럼 교수님께서는 12군단에 계셨던 건가요? 이스브루크 성 탈환에 투입된 게 12군단이었으니까요.”

       

       펠레미아가 또 살살 눈으로 웃으며 내 잔을 채웠다.

       

       “글쎄다. 8군단인가, 5군단인가? 아니, 12군단이었나? 흐음… 1군단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거짓말이 아니다. 병사 시절에는 8군단, 특임대 시절에는 여러 군단을 돌아다녔으니.

       

       “소속이 바뀐 것을 보아하니 그럼 병사로 시작해서 장교까지 가셨나 보네요.”

       

       “뭐, 그런 셈이지.”

       

       “그럼 이브로니크 탈환전 외에 또 어떤 전투에 참여하셨어요?”

       

       “너무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나.”

       

       이것 역시 사실. 굵직한 거 빼고 자잘한 전투들은 그게 그거 같아서 말하라고 해도 말을 못 한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왜 브룬스웰에 정착하셨나요? 10년을 사셨으면 고향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냥 유유자적 살고 싶어서. 거기 정말 좋거든. 인구 적당하고 나름 있을 거 있고.”

       

       “그렇군요…. 군단병에서 장교가 되었고 이브로니크 성 탈환전에도 참여하셨고 종전 후 지금까지 브룬스웰에서….”

       

       펠레미아는 마치 퍼즐의 조각들을 모으는 것처럼 내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귀에 담고 있었다.

       

       “자아, 드세요.”

       

       그리고는 또 방금 막 비운 잔에 술을 채운다.

       

       “수석교수님. 말 나온 김에 이브로니크 성 탈환전 이야기 좀 해주시죠.”

       

       웨이버의 제안에 다른 교수들이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싫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단칼에 거절했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거기는 정말로 입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거든.

       

       “끔찍한 기억이었나 보네요. 술 쭈욱 들이키고 모두 잊으세요.”

       

       펠레미아가 막 비운 내 잔에 술을 꼴꼴 따랐다.

       

       

       # # # # #

       

       

       약 한 시간 후.

       

       어느새 펠레미아는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술을 권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내게 반강제로 먹인 맥주가 벌써 수십 잔.

       

       “배부른데.”

       

       “공짜잖아요. 저것 보세요.”

       

       펠레미아가 이미 텅텅 빈 모턴의 오크통을 가리켰다.

       

       쉬지 않고 꾸준하게 잔으로 퍼담아 마시더니 결국 바닥을 냈군.

       

       “대단하네….”

       

       “자아, 교수님. 그러니까 원없이 드세요.”

       

       그러며 펠레미아는 술잔을 들이키는 나를 유심히 살폈다.

       

       흐음, 저것 봐라…. 또 수작질을 하려는 것 같은데. 어디 한번 낚아 볼까….

       

       “그만 마셔야겠다. 핑핑 돈다….”

       

       일부러 이마를 짚으며 휘청이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펠레미아의 눈에서 아주 짧게 안광이 번득였다.

       

       보이지 않는 송곳 같은 기운이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고 나는 일부러 그것을 막지 않았다.

       

       이참에 확실히 알려줘야지. 더는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특정 과거를 회상하며 내면을 파고드는 펠레미아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인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내 기억을 들춰 보도록 해라, 펠레미아.

       

       그리고 깨닫도록 하라고.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곳에 함부로 머리를 들이미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말이야.

       

       심리전 개시 몇 초 후.

       

       “우욱!”

       

       펠레미아가 테이블의 술잔을 엎으며 주저앉아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웨 그러셰여, 겨슈니뮤…?”

       

       리나가 술에 취해 헤롱대며 혀 꼬인 발음으로 물었다.

       

       “너뮤 마니 마시션나…?”

       

       펠레미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면서 경악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봤다.

       

       “교, 교수님은… 누구시죠…?”

       

       “방금 봤잖아.”

       

       “하지만 그건… 우웁!!”

       

       펠레미아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를 넘어뜨리며 황급히 바깥으로 뛰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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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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