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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제단.

       백단향이 쌓여서 만들어진 탑.

         

       그 위에는 불꽃이 봉화라도 되는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고, 그 불꽃은 자욱하게 깔린 연기 속에서 등대처럼 불길을 밝히며 신사를 밝혀주고 있었다.

         

       연기의 잎사귀가 드리워 어둠으로 가득 찬 신사에, 달을 대신해 하늘에서 몸을 불사르며 그렇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불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흔들리며 제 몸을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에 따라 종속된 그림자는 신사에 달라붙은 채 형상과 길이를 바꾸어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축제.

         

       지금 이곳에선 불과 그림자의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진성은 그림자가 추는 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림자는 마치 신나서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 덩실덩실, 덩실덩실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는 짝 달라붙은 듯 결코 제가 나온 것을 떠나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 길이와 넓이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마치 기뻐서 어찌할 줄 몰라 어깨춤을 추는 모습과도.

       너무 즐거워서 흥을 주체할 수 없어 보이는 악령들의 모습과 같았다.

         

       진성은 고개를 돌려 리세를 쳐다보았다.

         

       리세는 앞서 일어난 일이 충격적이었는지 몸이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진성을 기둥으로 삼아 그 공포를 이겨내려는 듯 그의 근처에 딱 달라붙은 채 오직 진성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감이 들기라도 하는지 스마트폰을 연신 만져대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에 걸린 고리가 마치 반지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손가락에 껴 있었다.

         

       진성은 용병들을 보았다.

         

       용병들은 지금 이 광경이 신기하기라도 한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특히나 바텐더는 백단향으로 만들어진 제단에서 타오르는 불이 신기하기라도 한지 그것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불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모습 대신에 무언가 과거라도 생각하는지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장 역할을 하던 용병은 재갈이 물린 채 단단히 묶여있는 요시아키의 위에 걸터앉은 채 실실거리며 그림자가 추는 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는 묘한 탈력감과 광기가 서려 있었다.

         

       진성은 품속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서 무어라 적더니, 용병에게 날렸다.

         

       『 키시모토 가문은 과거 태평양 전쟁에 군종병으로 참전을 하였다. 팔백만 신의 가호 아래 병사들을 보호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참가하였으며, 수많은 전리품을 분배받았다. 하지만 일제 패망 이후 C급 전범으로 기소된 후 꼬투리가 잡히는 것을 두려워했는지 전리품을 어딘가로 숨겼으며,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꺼내서 재산으로 바꾸는 것을 확인했음이니.

       처분하지 않은 전리품에 대한 정보와 그곳의 위치를 거친 수단을 써서라도 알아내 주게.

       만약 알아낸다면 거기서 얻은 금괴, 화폐, 보석, 국채의 30%는 자네들에게 돌아갈 것이네.

       다만 절대로 죽이지 말도록.

       할 수 있겠나? 』

         

       용병은 진성이 날린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겨우 이런 걸 가지고 걱정을 하냐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용병은 택티컬 펜에 키시모토가 흘리고 있는 피를 찍어 메모지의 뒷면에 글을 써서 허공에 던졌다. 허공에 던져진 메모지는 진성의 의지에 따라 그의 앞까지 무사히 배달되었고.

         

       『 소리가 다시 돌아오자마자 정보란 정보는 다 말하게 될 거요. 』

         

       배달된 내용에 진성은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른 용병들에게도 메모지를 보냈는데, 그 메모지에는 무인을 철저하게 구속하고 감시하에 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렇게 용병들은 제각기 일거리를 받고 흩어졌다.

       용병대장과 두 명의 용병은 요시아키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으슥한 곳으로.

       나머지 용병들은 제압된 무인을 향해서.

         

       그리고 그 모습에 리세가 약간 의아한 듯 진성을 쳐다보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메모지로 대화를 하는 것은 이상하지는 않았으나, 진성은 주술 의식의 주관자로서 유일하게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니 명령을 하고 싶다면 메모지가 아니라 그냥 말을 하는 것이 더 편했을 터.

       어째서 진성은 입을 열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성은 리세의 의문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그녀의 머릿속에 든 의문을 깨끗이 없애버렸다.

         

       풀어준 것이 아니라, 없애버렸다.

         

       리세가 보는 앞에서 그대로 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진성은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웃통을 벗었고, 그 모습에 리세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진성은 리세의 그 반응에 흘끗 한 번 보기만 할 뿐 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이윽고 바지와 속옷까지 모조리 벗어 던지고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알몸이 된 진성은 맨발로 천천히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는 진성의 뒤로는 물건들이 둥둥 허공을 날아왔다.

         

       진성은 입을 꾹 다문 채 경건한 마음으로 제단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허공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불로 집어 던졌다.

         

       동전이 들어갔다.

       찰흙 뭉치가 들어갔다.

       허브 묶음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물건이 들어가고 나서야, 진성은 제단이 세워질 때부터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 소리를 내질렀다. 내뱉었다기보다는 내질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침묵에 빠진 신사 전역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이다.

         

       “지혜의 불이여! 정화의 꽃이여! 나를 빛으로 밝히소서!”

         

       그는 그렇게 소리치며 불을 향해 절을 했다.

         

       그리고 그가 절을 하는 와중에도 불에 들어가는 것이 있었으니.

         

       깨끗한 물이 불에 쏟아졌다.

       질 좋은 우유가 불에 쏟아졌다.

         

       하지만 액체가 부어졌음에도 불길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빛이 선명해지며 더더욱 크게 타올랐다.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데도 생각하지 않은 것을.”

         

       다시 일어선 진성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바로 앞에 자리 잡았다.

       그 불꽃이 자신을 태울 수 있음에도 말이다.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을.”

         

       진성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행해야 하는데도 행하지 않은 것을.”

         

       대신에 그의 눈동자에 자리 잡은 것은 순수함.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생각한 것을.”

         

       너무나 순수해서 광기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그런 감정이었다.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한 것을,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행한 것을!”

         

       그는 오직 또렷한 눈동자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제 몸에 기름을 부었다.

       향유 같은 치장을 위한 기름이 아닌, 무언가를 불태우기 위한 기름을 말이다.

         

       “그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그렇게 진성의 기도문이 끝나자 불꽃의 색이 변했다.

       아까의 불꽃이 또렷해진 색이었다면, 이제는 또렷하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색감이었다. 마치 그림에 쓰인 색채가 현실에 튀어나온 것 같은, 선명하다 못해 괴리감까지 느껴지는 그런 색채였다.

         

       특히나 백단향을 장작 삼아 맹렬하고 타오르고 있음에도 이제는 연기가 조금도 나지 않고 있으니, 더더욱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화의 불. 신성한. 신성한 조로아스터교의 불꽃.’

         

       하지만 몸에 기름을 붓고 그 앞에 자리한 진성은 괴리감 대신에 다른 생각을 했다.

         

       그가 떠올린 것은 회귀 전에 그가 맞이했던 최후.

       제 몸뚱어리를 인신공양하여 의문의 주술과 함께 산화했던 그의 마지막.

         

       ‘나는 무엇을 후회했던가. 나는 무엇을 원했던가. 나는 무엇을 갈망했는가.’

         

       진성은 그때 후회했다.

       주술을 더 익힐 수 없다는 것을, 주술을 더 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주술로 초월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제 몸뚱어리가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와중에도,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오직 자신을 매료했던 주술을 떠올렸다.

         

       그는 원했다.

       주술을.

       오직 주술만을 원했다.

         

       그렇기에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쉬이 할 수 없고, 숨을 쉬는 것조차도 고통인 상황에서도 그는 오직 주술을, 주술로서 초월하고 초월 끝에 다다를 주술의 세계를.

         

       찬란하게 빛나는 별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되기를 그토록 갈망했다.

         

       ‘정, 기, 신.’

         

       회귀 전에는 이루지 못했다.

         

       주술로 인해 망가진 육신은 영혼을 망가트렸다.

       고통으로 인해 망가진 영혼은 육신을 망가트렸다.

       정신이 멀쩡한들 무엇하랴.

         

       그렇기에 회귀 후의 진성은 육체를 강화하는 것을 원했다.

       육체를 강화해서 회귀 전처럼 영혼이 망가지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 때문에 그는 일본의 권력자들을 현혹하고 매혹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들의 권세를 휘두르고 육체 강화를 할 수 있는 곳까지 다다르기를 원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진성은 반드시 육체 강화를 받고 싶었고, 받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회귀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니.

         

       하지만 육체 강화만 받는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육체가 문제의 시작이었다지만, 진성을 죽게 만든 것은 육체만이 아니다.

       육체와 영혼이 같이 망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와 영혼을 둘 다 강화해야 한다.

         

       육체는 강화로.

       영혼은….

         

       ‘의식으로.’

         

       다행히 그에게는 운이 따랐다.

       일본에는 에너지가 넘쳤고, 의지를 갖지 않은 혼과 백이 가득했다.

       필요한 고가의 재료는 모두 권력자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부정이 끼지 않은 장소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주술이자 경배의 대상인 ‘성스러운 불’을 피울 수 있는 조건은 충분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각오뿐.

         

       “오직 순수함만이 지혜를 비추리라!”

         

       진성은 불을 향해 뛰어들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스러운 여섯 가지의 빛 중 마지막, 불.

       진성은 스스로 불을 상징하는 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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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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