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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1.

       

       그리고 나는 어련히 잘하겠지- 정도의 마인드로, 절반 정도를 실피아에게 떠넘기고 남은 책들을 읽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건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었군.”

       

       음, 시간 낭비였어.

       

       방금까지 삼십 분 정도 집중해서 끝까지 읽어 내려가던 책을 덮어서 내려놓고, 침침한 눈을 비볐다.

       

       거의 일주일 동안 내내 조그만 활자를 집중해서 읽으려니 눈에 쌓인 피로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별 쓸모가 없었다는 점도 그 피로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고.

       

       “……그냥 어디 찌라시가 담긴 책들이나 훑어서 보물 같은 거나 찾아볼걸.”

       

       무심코 그렇게 투덜거릴 정도로 영양가가 없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마법적인 지식을 익혔으니 아예 쓸모가 없던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정보는 황궁 도서관에도 없었다.

       

       “……여기보다 장서가 많은 곳이 있으려나?”

       

       손톱 끄트머리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일단 황궁 도서관에서는 내가 놓친 책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으면 죄다 털어온 참이다.

       

       그 이외에 생각나는 후보는 아카데미 도서관이나, 그게 아니라면 마탑이 소유하고 있는 장서 정도.

       

       아카데미 장서야 내가 원한다면 내 선에서 협조 요청을 해도 언제든 읽을 수 있었고, 마탑도 권력의 힘을 빌린다면 어렵지 않게 소유하고 있는 장서를 대여받을 수 있겠지만…….

       

       쉽지가 않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뭐가 있겠느냐마는, 적어도 내가 날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아쉽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세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으니 이걸로 됐다. 애초에 바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한 적 없고.

       

       시간은 많았다.

       

       “당장 내가 뭐 앞으로 몇 개월밖에 못 산다. 아니면 일 년 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거라면 그때는 좀 당황했겠지만…….”

       

       말꼬리를 흐리면서 뇌까렸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의연한 게 아니라, 그게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라서 쉽게 실감이 되질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그 먼 미래가 가까운 미래로 바뀌기 전에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었고, 아르웬도 정말 쓰고 싶진 않지만 최후의 방법이 있다는 걸 보면 보험도 하나 들려 있는 셈이었으니.

       

       읽던 책을 덮고 길게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연구실 문이 벌컥하고 열리더니 스승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루드릭 군, 바쁜 와중에 미안하네만…….”

       “아뇨, 방금 다 읽어서 바쁘진 않았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손님이 찾아왔다네. 그 날이 돼 버렸군.”

       

       떨떠름한 얼굴의 스승님이 자리를 비키자, 열린 문 사이로 싱글거리는 얼굴이 새로 눈에 들어왔다.

       

       “여어, 우리 루드릭 씨는 잘 지내고 있었나?”

       “라실 경……?”

       “그렇게 부르면 딱딱하기도 하고, 황녀 전하가 생각나서 조금 그렇단 말이지. 그냥 평범하게 라실이라고 불러도 좋아. 라실 누나라고 불러도 좋고.”

       

       금태양 제독이었다.

       

       아니, 금발에 태닝은 맞지만 양아치가 아니니 이렇게 부르는 건 엄밀히 따졌을 때 실례였지만.

       

       어감이 너무 착착 달라붙는 바람에 라실이라는 이름보다 금태양 제독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했다.

       

       “어…….”

       “아하하, 부담스러우면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그러면 금태양 제독님……?”

       “아.”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라실의 웃음이 뚝하고 그쳤다.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고, 여러모로 필설로 형용하기엔 복잡미묘한 표정. 이내 라실이 씁쓸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루드릭 씨…… 아니, 내가 연상이니까 그냥 루드릭이라고 불러도 되지?”

       “……네, 저는 괜찮아요.”

       “미안한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나도 알아. 금발에 태닝한 양아치를 줄여서 금태양이라고 부른다면서.”

       “죄송합니다.”

       

       라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생각해 보면 무슨 의미인지 내가 회귀하기 전에 알려 줬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는데, 뇌에서 제대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무심코 내뱉었더니 이런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라실은 이내 손사래를 치면서 만류했지만.

       

       “아니야.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이번에도 네가 그 말을 하는 걸 보니까, 그냥 너구나 싶어서 말이야.”

       

       쓴웃음을 지은 라실이 덧붙였다.

       

       묘한 회한이 어린 목소리와 표정.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에 저절로 분위기가 숙연해졌고, 자연히 나도 입을 다물었다.

       

       가볍게 건드리기엔 다소 무거운 주제였지만, 일단은 그랬다.

       

       나는 단순히 한 번 반짝하고 사라진 시스템으로 인해 그녀들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인지만 하고 있을 뿐, 회귀 전의 과거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다만 가끔씩 아르웬 같은 경우를 보면, 혼자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녀들에게 지나간 과거는, 이 세상에서 누구와도 추억을 공유할 수 없는 흩어져 사라진 시간이기에.

       

       “……음, 뭐. 무거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까? 괜히 분위기만 더 어두워지니까.”

       “…….”

       “아하하, 너무 그렇게 어두운 표정 지을 필요 없어. 그냥, 잠깐 예전 일을 떠올렸던 것 뿐이니까. 아무튼 그러니까 의기소침할 필요 없어, 소년.”

       

       어깨를 으쓱인 라실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멀뚱멀뚱 그 손을 바라보자, 안 잡고 뭐 하냐는 듯이 라실이 재촉했다.

       

       “이제 슬슬 이 황궁에서 탈출할 시간이야, 루드릭.”

       “……아, 맞다. 그 계획에서는 라실이 그 역할이었죠?”

       “맞아. 그래서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경비병들 교대 시간이랑 황실 기사단 순찰 시간까지 일일이 체크했지만…… 아무튼! 오늘이 딱 탈출하기엔 적기란 말이지. 앞으로 두 시간은 기사단이 경비를 서지 않거든.”

       

       얼떨결에 내민 손을 붙잡자 라실이 멀뚱멀뚱 서 있던 스승님을 지나쳐서는 별궁의 복도로 나를 이끌었다.

       

       얼떨결에 손을 붙잡고, 얼떨결에 이끌려서 복도를 지나치는 동안에는 복도 모퉁이에서 누가 보더라도 이질적이고 수상한 고양이와 강아지 한 마리가 모습을 내밀었다.

       

       고양이 한 마리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르웬?”

       “계획대로구나. 좌측을 돌던 경비병들은 잠시 내가 이지를 빼앗았느니라. 앞을 그대로 지나쳐도 의심하지 않을 게다.”

       “좋아, 나이스 어드바이스야.”

       

       새침하게 앞발을 핥으며 말하는 아르웬에게 엄지를 치켜든 라실이 모퉁이를 돌았고, 자연스럽게 나는 어버버 하는 사이에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며 내 옆에 따라붙은, 브릿지처럼 붉은 털을 가진 강아지는…….

       

       “입구까지 남은 경비병은 모두 수면 마법으로 잠시 재웠어요. 그냥 그대로 쭉 지나치면 될 거예요.”

       “도마뱀 아가씨도 수고했어!”

       “누구보고 도마뱀이라는 거에욧!”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라실과 실피아가 만담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아니, 잠깐 저 강아지는 실피아였어? 분명히 복도에서 몇 번 지나친 기억이 있는데……!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고 당황할 새도 없이, 실피아의 말대로 선 자세 그대로 잠든 경비병들을 지나쳐 순식간에 황궁을 빠져나왔다. 그것도 굉장히 유유히.

       

       멀찌감치 입구 쪽에 선 실피아가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약속 꼭 지켜요! 어차피 오늘은 당신 차례 아니니까 허튼 생각 품지 말고!”

       “거참, 내가 당신처럼 그렇게 음험하게 숨어들고 그럴 것 같아?”

       “누가 누구보고 음험하다고 말하는 거야, 이 사람이!”

       

       뒤에서 실피아가 빽하고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라실이 키득거렸다. 그리고 여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쇼생크 탈출에 필적하는 황궁 탈출을 끝낼 수 있었다.

       

       황궁 근처의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며,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라실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뭐예요? 이게 계획대로 된 거였어요?”

       “그럼그럼, 당연하지. 우리 계획은 처음부터 이랬잖아? 대공 나으리가 여러모로 힘을 써주고, 내가 너를 데리고 도망치고, 그 과정에서 잡음이 없도록 그 두 명이 마법을 써서 눈을 돌리는 계획으로.”

       “우리 이 정도면 거의 대놓고 황궁에서 깽판을 치고 나온 거 아니에요? 이건 모르면 바보 수준인 것 같은데…….”

       “에이, 걱정하지 마. 우리가 황궁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그 정도도 모르겠어? 대충 소란이 번지지 않을 정도로만 조절을 잘 해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닌 것 같은데…….”

       

       라실의 손에 이끌려서 수도 거리 한복판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의심스럽기는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에서 경비병을 수면 마법으로 재우고, 최면을 거는 짓을 벌였으면 자연스럽게 난리가 나야 정상.

       

       그래도 아르웬과 실피아가 인간 대마법사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마법 실력의 소유자라 긴가민가 싶은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지금쯤 황궁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믿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전히 벌집을 건드린 것만 같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자, 내 표정을 본 라실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참 쓸데없는 걱정은. 아무튼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아쉽게도 오늘은 대공 나으리 차례고 내 차례는 내일이거든.”

       “……근데 제가 애도 아니고 그냥 혼자 있으면-”

       “쓰읍.”

       

       도중에 내 말을 끊은 라실이 혀를 찼다.

       

       이 세상이라고 딱히 남자와 여자의 평균적인 키까지 바뀐 건 아니지만, 라실은 키가 큰 편이고 나는 키가 작은 편이라 언뜻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신장 차이.

       

       덕분에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혀를 찬 라실이 손가락을 가로저었다.

       

       “그러다 위험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저한테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하는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래 봬도 마법사인데.”

       “그건 그렇긴 한데…….”

       

       대번에 말문이 막힌 라실이 할 말을 찾는 듯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누군가를 보자마자 라실이 반색했다.

       

       “아, 왔네.”

       “네?”

       “저기 대공 전하 오셨거든? 오늘은 가서 대공 전하랑 같이 놀고 있어. 혹시 저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고 들면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뿌리치는 거 잊지 말고?”

       “……뭐라고요?”

       “그럼 난 이만!”

       

       그 말과 함께 부리나케 사라진 라실의 뒷모습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계획대로군.”

       

       평소의 무표정한 표정에 생겨난 미세한 균열. 만족스럽다는 것처럼 슬쩍 입꼬리를 작게 올린 미소.

       

       에일린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열이 조금 더 올랐어요.

    목은 안 아픈 거 보면 코로롱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몸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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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로판 주인공 하기 싫습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reincarnated as the eldest son of a noble family with nothing to do.

Even if I put aside the fact that the world I was reincarnated into is a little strange.

– Northern Grand Duchess Eileen is confused after realizing she has regressed.

– Admiral Lassiel realizes she has regressed and immediately turns the fleet around.

– Princess Elena prepares to inspect the Weiss County, chewing over the past.

What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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