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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이야, 이거 완전 제대론데?’

       

       일단 냄새부터 합격이다. 

       

       라면 특유의 알싸한 향을 스프 없이 이 정도로 구현한 게 신기할 정도. 

       

       출출한 밤에 맡으면 바로 찬장에서 라면 봉지를 찾아 꺼내게 할 만한, 위장을 자극하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비주얼도 좋고.’

       

       적당히 매콤해 보이는 국물에 떠 있는 면은 꼬불꼬불하면서도 꼬들꼬들해 보였다.

       

       ‘너무 푹 익지도, 너무 설익지도 않았어.’

       

       정말 아주 살짝 덜 익어, 딱 젓가락을 들고 면을 집어 먹기 시작하면 알맞은 상태였다. 

       

       ‘그리고 계란을 안 넣은 게 오히려 좋아.’

       

       라면이라는 음식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려 왔던, 계란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항상 계란을 넣지 않는 쪽을 선택해 왔다. 

       

       ‘계란을 넣으면 라면 고유의 국물 맛이 희석되니까.’

       

       라면도 다 같은 라면이 아니다. 

       시중에 나온 수많은 종류의 인스턴트 라면, 그리고 가게에서 직접 레시피를 연구해서 만들어 파는 라면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면에 계란을 넣는 순간, 그 특색은 가려지고 라면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 버리는 것이다. 

       

       ‘물론 넣어 먹어도 차이는 있고, 계란을 넣은 그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호불호 문제로 남은 거지만.’

       

       어쨌든 나는 라면 고유의 국물 맛을 느끼는 걸 좋아했고, 계란은 면 반죽에 들어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점에 있어서 꼬부랑매콤국수는 합격이었다. 

       

       ‘계란 대신 파나 버섯 같은 걸 잘게 썰어 더 넣은 것 같은데. 진짜 주인장 맛잘알이신가?’

       

       꼴깍.

       

       속으로 감탄사를 몇 번이나 읊으며, 나는 곧바로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라면을, 아니 꼬부랑매콤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 들어 후후 분 뒤 한 입 가득 후룩 흡입했다. 

       

       “…!”

       

       국물이 알맞게 밴 면을 먹자, 그리웠던 진한 매콤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누군가 이 말을 들으면 매운 건 맛이 아니라 통각이라며 딴지를 걸겠지만, 그래도 나는 꿋꿋이 매콤한 맛이라고 할 것이다.

       

       ‘어차피 여긴 매운 게 통각이라는 게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세계잖아.’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게 ‘맛’이 아니라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후룩.

       

       나는 너무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면서도, 바로 면을 한 젓가락 더 집어 후룩 흡입했다. 

       

       “와, 쥑이네.”

       

       나도 모르게 구수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인스턴트 라면의 진한 MSG맛은 나지 않지만, 그만큼 다른 재료가 풍부하게 들어가 있고 국물에 우러나와서 깊은 맛이 나.’

       

       참지 못한 나는 옆에 놓인 숟가락으로 바로 국물을 한 숟갈 떠 먹었다. 

       

       “크으…. 이거지.”

       

       진한 국물을 온전히 맛본 내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나왔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 꼬부랑매콤국수를 끓일 수 있는 가게는 많지 않을 것 같은데.’

       

       누군가는 이런 판타지 세계에 들어와 지내느라 라면을 오랜만에 먹어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도 난 꽤나 만족스러운 식생활을 했단 말이지.’

       

       그러니 입맛 기준이 낮아졌다거나 하는 이유로 이 꼬부랑매콤국수가 맛있게 느껴지는 건 아닐 거다. 

       

       즉, 주방장의 순수 실력이라는 소리지.

       

       호록.

       

       국물을 한 숟갈 더 떠 먹은 내가 다시 면을 먹으려 젓갈을 집어드는데, 문득 앞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고개를 들어 보니, 주인장이 왜인지 굉장히 감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인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 손님. 메뉴는 입에 맞으십니까?”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이렇게 맛있게 매운 면 요리는 처음 먹어 봐요. 면도 그렇고 국물도 그렇고 흠 잡을 데가 없는데요?”

       “저, 정말입니까?”

       “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저기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의 주인장의 눈에 눈물이 맺히자, 나는 일순 당황했다. 

       

       “크흡….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이 꼬부랑매콤국수는 제가 오랜 기간 동안 야심차게 개발한 신메뉴인데, 자신 있게 내놓은 것에 비해 손님들이 잘 찾지도 않으시고 한 번 먹어 보고 맵다며 재주문 비율도 낮아 굉장히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장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하도 주문이 없어 제가 단골 손님들에게 슬쩍 이런 신메뉴는 어떠냐고 말씀드려서 주문을 유도하거나 소량 시식하실 수 있게 해 왔었는데도 효과는 미미하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처음 오시자마자 꼬부랑매콤국수를 주문해 주신 데다가 더할 나위 없이 맛있게 드셔 주시기까지 하니…. 제가 이 가게를 열고 십 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오늘 일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그, 그렇군요.”

       

       솔직히 이 정도로 좋아하실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까지 좋아하시는데 조심스럽게 내 생각이라도 말해 볼까.’

       

       나는 뿌듯해하는 주인장에게 말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국물 맛 자체는 정말 훌륭하니 매운 맛 단계를 조절해서 팔아 보시면 어떨까요?”

       “단계를 말입니까?”

       “네. 0단계, 1단계, 2단계 이런 식으로요. 어떤 가게는 그렇게 해서 파는데 반응이 괜찮은 모양이더라고요.”

       

       그 어떤 가게가 이 대륙, 아니 이 세계에는 없는 가게긴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주인장은 진지한 얼굴로 턱을 감싸 쥐었다. 

       

       “사실 매운 맛을 약하게 하는 것도 개발 단계에서 고려하긴 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매운 걸 잘 못 먹는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 꼬부랑매콤국수의 진가를 보여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이렇게 출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오래 면 요리를 해 온 장인인 만큼 완성도에 대한 고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완성도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진입장벽을 낮추자는 거죠. 단계를 나누어 놓으면, 0단계 맛에 적응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1단계를 찾게 될 거고, 나중에는 2단계를 찾을 테니까요.”

       “호오…. 확실히 그럴 수는 있겠군요.”

       “그리고 그렇게 파는 요리사 중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매운맛 조절은 단순히 맵기만 다르게 해서 파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다른 요리를 개발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요. 그렇게 하면 완성도 있는 3가지 꼬부랑매콤국수가 나오지 않을까요?”

       

       후룩.

       

       나는 그렇게 말하고, 면이 불기 전에 얼른 한 젓가락을 더 먹었다. 

       

       “크으. 좋다.”

       

       면을 꿀꺽 삼키고 다시 고개를 드니, 주인장은 생각을 마친 듯 총기가 도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단계별 맛을 한번 개발해 보겠습니다.”

       “하하, 뭘요. 잘 됐으면 좋겠네요.”

       

       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옆에서 콩국수를 먹던 실비아도 거들었다. 

       

       “맞아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콩국수도 맛있는데, 레온 씨 먹는 거 보니 꼬부랑매콤국수도 먹어 보고 싶어지네요.”

       “쀼우, 쀼!”

       

       아르도 옆자리 의자에서 일어나 서서 테이블을 짚은 채로 쀼우 소리를 냈다. 

       

       “그래, 아르도…. 응?”

       

       아차.

       그제야 나는 아주 중대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바로 아르는 혼자 젓가락질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미, 미안. 아르야! 내가 너부터 챙겼어야 했는데.”

       

       아르는 안타깝게도 내가 ‘크으, 쥑인다’라고 하면서 꼬부랑매콤국수를 누구보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아르의 입에는 침이 가득 고여서 테이블에 똑,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빙의한 세계에서 맛보는 첫 라면에 매혹당한 나머지 잠시 정신줄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나는 얼른 의자에 서 있는 아르를 들어서 테이블 위에 앉혀 주었다. 

       

       의자에 서서 먹기에는 그릇이 너무 높았던 까닭이었다. 

       

       “저, 사장님. 죄송한데 작은 포크 같은 거 있을까요? 얘가 젓가락질을 못 해서 포크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이 정도는 진상 아니겠지, 하고 부탁한 말이었는데 주인장은 오히려 더 놀라 대답했다. 

       

       “아이고, 메밀국수가 이 사역마 몫이었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손님께서 신메뉴 맛만 좀 보고 메밀국수를 드시려고 하신 줄 알고…! 어쿠, 이거 이러는 동안 국수 다 불겠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메밀국수를 다시 가져가더니, 곧바로 새 면을 삶기 시작했다. 

       

       “제가 착각한 거니 바로 새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역마도, 옆에 계신 일행분도 꼬부랑매콤국수를 드셔 보고 싶어하시는 것 같으니 끓여서 반반씩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아, 이건 다 서비스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그렇게까지….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니요. 저희 신메뉴를 이렇게 궁금해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지요.”

       

       주인장은 자신의 신메뉴가 이렇게 관심을 받은 것이 진심으로 기뻤는지, 아까보다 빠른 박자로 콧노래를 부르며 메뉴를 준비했다. 

       

       “자아, 여기 꼬마 손님 몫이랑, 미인 분 몫 나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담한 그릇 두 개에 각각 뜨근한 꼬부랑매콤국수가 담겨 아르와 실비아의 앞에 놓였다. 

       

       바로 한 젓갈을 뜬 실비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오오, 괜찮은데요? 전 이것보다 더 매워도 맛있을 것 같아요.”

       “이, 이것보다 더 말입니까? 그렇다면 3단계도 한번 고려해 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주인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쀼우!”

       

       나와 실비아의 반응에 기대치가 아주 높아진 듯, 아르는 테이블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채 주인장에게 받은 쬐그만 포크를 야무지게 쥐고 꼬부랑매콤국수를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포크로 면을 조심스럽게 돌돌 말아 들어올렸다. 

       

       “아르야, 근데 너한테는 조금 매울 수도 있어. 괜찮겠니?”

       “쀼웃!”

       

       아르는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면을 말아 둔 곳을 입에 넣고 포크를 뺀 뒤 면을 쭈욱 빨아들였다. 

       

       “쀼우!”

       

       깊은 국물 맛이 밴 면을 씹어 넘긴 아르의 눈이 커졌다. 

       

       “맛있어?”

       “쀼우!”

       

       아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쀼, 쀼욱…?!”

       “아, 아르야?”

       

       나는 아르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기세로 빨갛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아르를 불렀다.

       

       ‘그래. 매운 음식의 후폭풍은 항상 늦게 오는 법이지.’

       

       그것도 말해 줬어야 했는데.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삐유우우우우…!!!”

       

       나는 팔을 바동거리며 입을 벌린 채 포효하는 아르를 보며 외쳤다. 

       

       “물, 물 좀 주세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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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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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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