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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0

   자기도 반짝반짝해지고 싶다며 달려드는 요정들에게 하나하나 대응해주던 난 점차 포용의 권능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됐다.

   

   포용이라는 것은 상대를 끌어안는 것. 그 어떤 상대일지라도 품에 안아서 달래고 그 안에 머무는 응어리를 털어내게 만드는 것. 그리고 자신의 따스함으로 상대를 감화시키는 것.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내가 요정의 숲에서 벌였던 정화의 기적을 떠올리면 된다.

   

   수백년이란 시간 동안 어둠에 물들어있던 요정들이 기적의 품에 안겨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든 이 행위 자체가 포용의 행동이었던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랑은 안 어울리는 권능인 것 같은데요.’

   

   검정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요정들은 별빛을 흩뿌려가며 대지를 누비고 있었다.

   

   저들의 어휘로 표현하자면 참 반짝반짝거리는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항상 저런 반짝거림을 품고 살았겠지.

   

   사람들이 왜 요정한테 자주 홀렸는지 알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제가 포용이랑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파고 들어서 비꼬고 놀리고 짓밟으면서 웃음을 흘리는 메스가키랑 포용이란 단어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어.

   

   <이 말 또한 네 친구들한테 들려줘보거라. 재밌는 반응이 나올 거다.>

   ‘그야 걔네들은 소중한 친구니까 그렇죠.’

   <흠. 쉬이 인정하질 않는군. 그럼 이건 어떠냐. 리나님과 여신의 사도가 괴악한 짓을 해도 떨어트리지 못하는 네 자비로움 말이다!>

   ‘그건 자비가 아니라 체념인데요.’

   

   내가 혐오하면 오히려 더 좋아하는 변태새끼들을 상대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나도 마음 같아선 저런 놈들하고 엮이고 싶지 않아! 누가 저딴 성범죄자들이랑 엮이고 싶어 하냐!

   

   <…미안하다.>

   ‘알면 됐어요.’

   <크흠. 하여튼 네게 도움을 받은 이들에게 물어보거라. 그 누구도 네가 포용과 멀다 하지 않을 거다.>

   

   그러려나. 마음이 근질근질한 걸 무시하고 한 번 물어볼까 생각하던 나는 이걸 물어보는 것조차 어려울 것임을 깨닫고 머리를 긁적였다.

   

   “알른 영애. 권능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소모는 어떻습니까?”

   “…벌레치고는 그럭저럭 깔끔한 버러지들이니까.”

   

   소모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저들의 어둠을 받아들여 빛으로 바꾸는 과정은 걷는 것조차 힘든 내 몸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으니까.

   

   그나마 저들이 요정의 본질을 되찾은 상태라 어찌저찌 반짝이게 만들 수 있었던 거지. 처음 요정의 숲에 방문할 때 같았으면 포용하려다 쓰러졌을걸?

   

   “그럼 연습은 여기까지 하죠.”

   – 에?

   – 아직 나 반짝반짝 못 했는데!?

   – 치사해!

   “여러분께서도 알른 영애가 쓰러지는 걸 보고 싶진 않잖아요?”

   

   가뿐히 요정들을 설득한 변태사도는 웃으며 내 앞에 다가왔다.

   

   “후일 몸이 나으시면 포용의 한계를 검증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신의 권능은 개념적인 것이니 한계를 정하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거려나.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이 판타지 세계밖에 모르는 너희와는 달리 나는 현대의 광대한 문물을 마주하고 왔거든!

   

   “대화는 어땠습니까. 여왕님.”

   

   속으로 기세등등해하고 있던 중 에르기누스가 위쪽을 올려다보며 물음을 던졌다.

   

   “…잘 끝났답니다. 에르기누스님께서 말해주신 대로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요정여왕은 이야기했지만 정작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묻어있었다.

   

   여왕의 얼굴을 더했다. 항시 방긋거리던 그녀가 지금만큼은 웃음을 짓지 못했으니까.

   

   울음을 참는 것이 한계인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에르기누스가 그녀의 곁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여왕이시여. 제가 당신께 짐을 지운 탓에 요정들의 날개가.”

   “아뇨. 흑.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그냥. 과거의 풍경이 떠올라서.”

   

   새하얀 빛으로 반짝이는 요정들의 모습이 예전을 떠올리게 해서 멍하니 바라봤을 뿐이란 요정여왕의 말에 에르기누스의 표정이 씁쓸해진다.

   

   과정이 어쨌건 간에 요정여왕의 날개를 검게 물들인 건 그니까. 죄책감이라도 품는 거겠지. 동정답게.

   

   “안 그래도 방금 전에 알른 영애가 부여받은 권능에 대한 시험을 했습니다.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요정들이 다시 하얀 날개를 되찾는 것도.”

   “…에르기누스님.”

   

   에르기누스가 또 다시 답답한 소리를 하기에 끼어들까 생각했지만 그보다 먼저 요정여왕이 차디찬 목소리를 냈다.

   

   방금 전의 울음이 겨울을 맞이해 얼어붙은 듯한 목소리는 날 선 눈초리가 되어 에르기누스에게 꽂힌다.

   

   “그건 저와 아이들이 선택한 일입니다.”

   

   – 맞아!

   – 반짝반짝도 좋지만 우린 여왕님이랑 똑같은 게 최고야!

   – 눈치 없어!

   – 동정!

   – 동정이 뭐야!?

   – 몰라! 아무튼 동정!

   – 찐따!

   

   여왕의 말에 호응하듯 요정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에르기누스가 당황해선 손을 휘젓는다.

   

   저 인간은 신이 된 후에도 달라지질 않는 구나. 요정여왕이 고생이 많겠어.

   

   한참 동안 집중공격을 당한 끝에 에르기누스가 무너져내린 후 다시 여느 때처럼 방긋거리는 미소를 되찾은 요정여왕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순에 표정이 변모하는 그녀의 모습은 요정보단 어둠의 여왕이란 설명이 더 잘 어울릴 것처럼 음험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의 영웅이며 용사 되시는 분이시여.”

   

   어… 넹? 뭐요? 영웅? 용사? 그런 말이 왜 나와?

   

   그건 저기 널부러져 있는 찐따마법사한테 가야 하는 호칭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저의 모든 걸 당신의 생에 바치고 싶으나 이미 제겐 인생의 계약자가 존재하는지라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그. 뭐시냐. 괜찮습니다. 그 정도까진 필요 없어요.

   

   애초에 이번 일에 끼어든 이유부터가 더한 기적을 일으키면 키가 커지지 않을까하는 욕망과 새로운 던전이 있길 바라는 사사로운 기대에서 시작된 일이라서 무거운 은혜를 들이미시면 도망치고 싶어진답니다!

   

   생각해보니까 나 왜 키 안 큰 거야!? 이만한 기적을 일으켰으면 1센치 정도는 커야 정상 아냐?!

   

   허접 주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설명해! 당장!

   

   “바라시는 요정을 곁에 두시라 말씀드리고 싶어도 이미 당신의 곁엔 세 요정이 있군요.”

   

   얘네? 확실히 얘넨 좀 이상하긴 해.

   

   생긴 게 귀엽다는 걸 떼놓고서 본다면 얼빠여우나 변태사도같은 느낌이 드는 걸.

   

   지금만 해도 다른 요정들은 여왕처럼 검은 날개로 복귀했는데 얘네만 반짝반짝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잖아.

   

   “그렇다 하여 지금의 제가 당신께 힘을 나누어드려도 방해가 될 분이겠죠.”

   

   네?! 아뇨!? 아닌데요! 저 완전 간절하게 스킬이 필요한데요! 요정여왕이 어떤 축복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꼭 받고 싶은데요!

   

   “그러니 옛 동화 속의 요정이 하던 역할을 제가 하겠습니다. 영웅이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는 건 언제나 요정의 역할이잖아요?”

   

   요정여왕이 두 손을 끌어모으고서 눈을 감는다. 그녀가 노래를 부른다. 영웅을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시를 읊는다.

   

   – 과거의 영웅은 저마다 후세를 위한 미련을 남기고 떠나갔다네.

   – 신을 모시던 성기사는 자신의 모든 걸 무기에 남기긴 채 사라졌고.

   – 고결을 위해 살던 기사는 자신의 성에 뜻을 남긴 채 눈을 감았고.

   – 신에 도전하고자 했던 마법사는 대지 아래에 무수한 가능성을 남겼고.

   – 기적을 의심하지 않았던 용사는 요정조차 닿지 못하는 곳에 희망을 담았으니.

   – 용사의 혼을 이은 아이야. 그들의 꿈을 마주하고 저들이 남긴 의지를 향해 웃음을 짓거라. 영웅이 남기고 간 게 헛되지 않았음을 증빙해 주거라.

   

   신탁을 연상케 하는 여왕의 기도가 끝난 후 나는 방금 전에 들었던 노래를 되새겼다.

   

   신을 모시던 성기사는 역시 할아버지를 말하는 거겠지. 할아버지가 남겼다고 말하는 건 내가 들고 있는 메이스일테고.

   

   마법사가 남기고 간 건 지하에 있는 여러 인형들.

   

   고결한 기사가 남기고 갔다는 건 가라드의 성에 남아 있는 기록에 대한 부분이겠지.

   

   여기까진 알겠어. 게임 속에서 한 번 쯤은 다 봤던 것들이니까.

   

   근데 용사의 희망이라는 건 뭐야?

   

   나 저런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여기에 더해서 설명은 또 왜 쓰잘데기 없이 멋진거야!

   

   요정조차 닿지 못하는 곳에 희망을 담았다니! 내 안의 중2병이 날뛰려고 그런다고!

   

   – 띠링!

   

   무언가 단서를 더 주길 바라면서 눈을 빛내고 있으려니 알림음이 내 귓가를 스쳤다.

   

   [퀘스트가 업데이트됩니다!]

   

   퀘스트? 나 새로 퀘스트 지급 받았었어!?

   

   [용사가 남기고 간 것.]

   [이 세상에 새롭게 피어난 영웅이며 과거의 맹자들이 남기고 간 미련을 끝맺을 자격을 얻은 이여. 과거의 유산을 손에 넣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소서. 길었던 이야기의 끝에 도전하소서.]

   [루엘의 메이스 습득하기!(성공)]

   [에르기누스가 남긴 인형들에게 인정 받기!(진행중)(2/4)]

   [가라드의 성에서 메모 입수하기!(진행중)]

   [용사의 유체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진행중)]

   [보상 : 용사의 혼의 개화.]

   

   우아아!

   

   뭐야! 쓸데 없이 장대하네!

   

   메인 퀘스트의 냄새가 나!

   

   업데이트가 몇 년이나 멈췄던 망겜에는 존재치 않았던 히든 트루 엔딩의 향기가 난다고!

   

   눈을 반짝이며 퀘스트 창을 바라보던 난 입술을 두드리면서 머릿속에 대륙의 지도를 떠올렸다.

   

   다른 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 이미 다 공략이 끝난 장소니까. 지금 고민해야 할 건 어디까지나 용사의 유체가 있는 곳 뿐!

   

   일단 게임 속에서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을 기점으로 생각해볼까.

   

   으으음. 양이 너무 많은데? 카리아한테 부탁해서 탐색을 진행한다 그래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뭔가 단서가 있으면 좋을 텐데.

   

   “동정찐따님?”

   “미안하다. 나도 무언가 알려주고 싶다만 이 이상은 제약이 걸린다.”

   “저도 이게 최선입니다. 영웅이시여.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칫! 방금 신이 된 초짜 주제에 이제와서 의미심장한 척이야!?

   

   됐어! 너희 같은 게 없어도 나한테는 방법이 있다고!

   

   ‘할아버지! 용사의 친우로써 그 분에 대한 단서를 주세요!’

   <…나한테 무작정 물어봐도 말이다. 그 녀석은 어느 순간 휙하고 사라져버렸으니 나도 잘 모른다.>

   

   젠장! 할아버지까지 무능할배가 되어버리다니!

   

   어쩔 수 없네.

   

   첨언!

   

   도움!

   

   헤에에엘프!

   

   [좀 더 추궁하라.]

   

   좀 더 추궁하라고? 음. 이 경우에는 할아버지 쪽이겠지?

   

   ‘솔직하게 말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할아버지의 흑역사를 파고들 거에요!’

   

   에르기누스가 할아버지의 흑역사를 잔뜩 담아 만들어낸 인형이 기다리고 있다고요!? 괜찮겠어요?!

   

   <그렇게 말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내가 알면 입을 다물겠느냐!>

   ‘그치만 간슈님의 권능이 추궁하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다고 모르는 게 아는 것이 되진 않는다!>

   ‘의심 가는 게 뭐 있을 거 아니에요!’

   <없다! 몇 번 말하느냐! 포용의 권능을 지닌 자라면 내 무지도 포용해라!>

   

   …진짜 모르는 건가?

   

   무능한 곰팡이의 힘에 뭔가 착오가 생겼다고?

   

   아님 내가 무언가 해석을 잘못한 걸 수도 있고.

   

   음. 으으음. 손에 든 게 너무 부족해. 뭔가 트집 잡을 거리가 있다면 뭐라도 뱉어내게 만들 수 있을 텐데.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내게 바라던 정보가 들어온 건 전혀 의외의 인물에게서였다.

   

   “루시. 루시. 오늘은 루엘님이랑 교대 안 해?”

   “…뭔 헛소리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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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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