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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0

    <580 – 맛있는 연계퀘스트(4)>

     

    고인물이라면 누구나 뉴비 시절에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이가 갈리는 상황이 있다.

     

    ━━━

    [그녀를 구하시겠습니까?]

    1. 예(근력 99, 민첩 99, 체력 99, 칭호 <세계의 수호자> 필요)

    2. 아니오

    ━━━

     

    더럽게 치사해서 안 구하고 만다 싶을 정도로 악랄한 조건을 덕지덕지 붙여놔서 1회차에는 절대로 구하지 못하는 NPC나 조직, 국가 따위들!

    네페르템 선배에게 딱히 특별한 유대관계나 소중한 인연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1층에서 신나게 놀다가 함정 박살 나는 소리를 듣고 내려온 벨벳 선배와 네페르템 선배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번 회차의 <불운의 성녀>가 네페르템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한 사람을 희생해서 지역 하나가 무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녀를 희생시킬 것이다.

    -그녀의 불운이 가엾다면 어찌 그녀가 구원받고 풀려날 불운에 고통받을 우리 지역의 모두는 가여이 여기지 않는가!

    -그대의 동정심이란 결국 가장 가까이에 선 사람만을 향할 뿐, 다른 모든 이의 불행은 개의치도 않는 잔인한 위선이었는가?

     

    불운의 성녀의 불운 저주를 해주하면 플레이어가 보게 될 스크립트.

    이것들은 사람의 양심을 제대로 후벼판다.

    한 학년 위로 월반하면 발견할 수 있는 월반전용 DLC 컨텐츠, <불운의 성녀>.

    랜덤파파처럼 매 회차 랜덤으로 지정되는 NPC가 플레이어를 홀라당 반하게 만들 귀염뽀짝한 애교를 부리며 이래도 저주를 안 풀어줄 거야? 하고 꼬시고 지역 주민들의 시간 차 탄원서로 멘탈을 망치로 한 방 크게 후려치는 골때리는 이벤트다.

     

    ‘이게 플레이어가 아니라 NPC가 알아서 풀어버리는 상황이 와버릴 줄은 몰랐네!’

     

    게임이라면 플레이어가 건드리기 전까지 특정 DLC 컨텐츠는 얌전히 제 자리에 있을 텐데.

    게임이 현실이 되어서 그런지 NPC인 벨벳 선배가 DLC 컨텐츠를 제멋대로 찍먹하고 있었다.

    이왕 먹을 거면 잘 먹기라도 하지.

    심지어 편식까지 했다.

    저주는 저주대로 써먹고.

    불운은 좋을 대로 떠넘기고.

    장차 돌아올 재앙은 나 몰라라 내팽개친다.

    억까 무서운 줄 모르는 뉴비 특유의 안쓰러운 객기에 고개가 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넌 이미 두 눈으로 봤잖니.”

    “뭐를요?”

    “피 도둑 테트라포스가 봐주기 없는 내 짓밟기에 처참하게 깨진 꼴.”

     

    벨벳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볼을 한 손으로 짚었다.

     

    “네가 아무리 탐나는 아이라도 건방지게 이를 드러낸 아이를 곱게 훈계하지는 않아. 뺨 정도는 때려야 다시는 이를 드러내지 않겠지.”

    “힝. 아픈 건 싫은뎅.”

    “고개 숙이고 사과해. 잘못했다고. 선배에게 다시는 거역하지 않겠다고.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어.”

    “근데 괜찮을 듯! 저도 선배 체면 생각해서 지금까지는 봐줬거든요.”

    “…봐줘? 이 나를?”

    “테트라포스 선배를 보낼 적에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그래도 이번엔 봐주기 없어요!”

     

    선배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럼 해봐. 봐주기 없는 전투.”

     

    <공간동조>

    <배율 1:100>

    <거대 손가락 누르기>

     

    임의의 공간에 신체와 감각을 연동시킨 거대물질을 구현하여 조종하는 공간지배술.

    벨벳 선배의 기술은 마법이 발현될 시에 발생하는 전조현상과 발동까지 걸리는 시간마저 극히 짧은데 위력은 장난 아니게 살벌하다.

    말이 좋아서 100배지, 170cm의 백배는 170m다.

    괜히 구두 앞굽에 사람이 꽥 하고 밟히고 손가락 하나에 으앙 하고 튕겨 나가는 게 아니지.

    뉴비들은 이 기술의 대항책을 고위력의 마법에서 찾겠지만 힘대 힘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

     

    ‘벨벳 선배의 기술은 그 거대함이야말로 약점!’

     

    너무 큰 기술은 실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하더라도 극히 일부의 신체부위만을 거대화로 구현하게 된다.

    실내에선 피할 길도 없는 거대한 신체의 압박을 남들은 두려워하지만, 역으로 생각해서 저 선배가 실내라는 공간의 제약이 없는 실외에서 진심을 드러내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면 된다.

     

    손가락 하나 대신 손바닥 전체를.

    구두 앞굽 대신 다리 전체를.

     

    실내에서와는 크기도 위력도 차원이 다른 <최상의 풀파워>는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이 아닌 이상에야 감히 대적조차도 할 수 없다.

    남자형태의 나였다면 그 제한적인 신체가 발휘할 수 있는 파괴력의 최대치를 뛰어넘는 근력으로 실내에서 선배를 압도하고, 훗날 풀파워의 선배를 압도할 업적을 쌓고 2차전을 또 벌였겠지.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만큼의 근력은 없다.

    대신 둥글게 몸을 말면 근력 모드의 내 팔뚝 크기의 작은 몸을 지녔지.

     

    <연속 도약>

    <고속 구르기>

     

    빠르기만 해서는 앞서 두 번이나 선배의 발에 붙잡힌 것처럼 호된 꼴을 겪는다.

    그걸 위해 앞서 아스타로트가 보는 와중에 신기술까지 꺼내면서 빠른 구르기를 뽐내기도 했지.

    하지만 내 노림수는 속도가 아니었다.

     

    <체술>

    <일격기:강력투검>

     

    쾅!

     

    선배의 거다이맥스 손가락이 짓뭉개는 공간 너머의 ‘벽’을 몸 전체에 마나소드를 둘러 ‘검’ 판정을 끌어내어 일격기를 발동, 벽을 부순다.

    학생회의 강력한 방호술식은 함정을 부순 구르기로도 부술 수 없다고 주장하듯이 남겨두었던 벽이 깨지자 벨벳 선배의 눈에 놀람의 감정이 일었다.

     

    <공간동조>

    <배율 1:100>

    <거대 손가락 뻗기>

     

    선배의 손가락이 뒤늦게 벽을 뭉텅이로 부수며 시야에서 사라진 내 뒤를 쫓았다.

    하지만 늦었다.

     

    <도약>

    <마나부스터>

    <신속기동>

    <마나제어술>

    <초가속술식 전개>

     

    작지만 튼튼한 몸조차 견디기 벅찬 속도에 머리가 핑 울린다.

     

    <감각차단>

    <균형감각>

     

    그래서 감각을 끊고, 장난감을 조종하듯이 균형감각 기능에 의지해 몸을 조종했다.

    선배의 손가락이 벽을 뚫고 쫓아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손가락이 뚫는 벽의 면적보다 높이 뛰어올라 다시금 시야 너머로 숨는다.

     

    <영역전개>

    <강제탐지>

    <마나파동>

    <쇼크웨이브>

    <비전 레이더>

    <피어스아이Pierce Eye>

     

    거대한 손가락이 살을 누르는 감각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확신하기 무섭게 겹겹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하는 다양한 탐지 수단들!

    호수의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탐지마법과 마법 사이를 여섯 번의 각기 다른 파장을 내뿜어 모두 돌파하며 회심의 마법을 전개했다.

     

    <중력전개>

    <프리다이빙 암살술>

     

    지난 겨울방학의 끝을 맞이하며 륭 노사에게 사사받은 프리다이빙 암살술!

    다만 연습 때와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절벽에 걸린 표적지를 향해 단검을 날렸지만, 이번에는 온몸으로 벨벳 선배에게 낙하 돌격을 한다는 사실이다.

    효과만 놓고 보면 이슈타르 수준의 실력자에게도 보호막 하나는 가볍게 빼먹을 수 있는 완벽한 기습!

     

    <영역돌파>

    <오토실드 파괴>

    <쇼크웨이브 중화>

     

    반사적으로 펼쳐지는 자동방어기술은 돌파했다.

    그러나 돌파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자극이 벨벳 선배의 기감에 걸렸다.

     

    스르륵.

     

    선배의 머리가 위로 젖혀졌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선배의 손이 위로 향했다.

     

    <위력동조>

    <위력 1:10000>

     

    선배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왔다.

    인지, 그리고 움직임.

    프리다이빙 암살술을 막기엔 너무 늦은 대처.

    그러나 선배에겐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느릿한 손가락의 움직임은 선배와 내 사이에서 1만 배의 엄청난 위력 증폭을 통해 소방차의 물대포가 우스울 압력을 선사했으니까.

     

    콰아앙!

     

    건물 천장이 뻥 뚫렸다.

    몸을 비트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건물 밖에 내던져지고 풀파워 벨벳선배에게 한방 먹는 아픔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감해야 했겠지.

    하지만 수 싸움은 내가 이겼다.

    선배의 손가락에서 비롯된 마력풍이 자연마나를 뒤흔들며 마력의 흔적을 어지럽히는 사이, 흐트러진 영역의 틈새로 달려들 수 있었으니까.

     

    <6단계 피구공 – 데굴데굴볼>

    <절명기:탈혼귀검>

     

    1학년 2학기 암스트롱 교수님의 강의 <전투기능 테크트리> 시험 도중, 푸른늑대 검객단 단주 <좌수검의 가엘>에게도 인정받았던 기술.

    살벌한 위력의 절명기가 지척까지 파고들어 벨벳 선배에게 꽂혔다.

     

    “이게 아니야.”

    “어…?”

     

    일전, 탈혼귀검을 처음 선보였을 때.

    단주 가엘은 평범한 호신강기를 상회하는 고유호신 <늑대의 갈기>를 펼쳐 그 내구력만으로 탈혼귀검을 펼친 시험용 장검을 깡 부러뜨렸다.

    하지만 지금 뻗는 무기는 검이 아닌 온몸이며, 대련이나 시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벨벳 선배는 푸른 늑대 기사단의 단주 가엘보다 약했다.

    그러니 당연히 먹힐 것이다.

    그런 내 예상과 달리, 벨벳 선배는 내 육탄돌격을 멀쩡하게 받아내었다.

     

    <물질동조>

    <배율 1:100>

    <서련마갑>

     

    제국의 마갑을 서귀연에서 자체적으로 모방하여 제작해낸 하이테크 마도구.

    생산학부의 정점을 달리는 기술력으로 빚어낸 갑옷을 100배 더 확장한 거대갑옷이 내 몸 크기로 우그러들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뚫지는 못했다.

    미세한 구멍 너머로 눈을 마주친 벨벳 선배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춘기 남학생이라면 자신의 강함으로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들겠지. 넌 남학생이 아니잖니? 그러니 네페르템의 저주를 해결할 다른 가능성을 이 전투에서 보여줘야지.”

     

    툭. 툭. 툭.

    깨진 거대갑옷의 표면을 손으로 두드리는 것만으로 일격에 벽을 뭉갤 위력의 거대손가락이 연달아 갑옷을 쿵쿵쿵 두들겼다.

     

    “저주에 사각은 없어. 잔재주를 부려도 반동은 반드시 돌아와. 그런 저주는 어떻게 ‘눈속임’을 할 건지, 충분히 고민은 했겠지? 그렇다면 보여봐. 그 눈속임을 내게도.”

    “아, 그거라면 이미 했어요!”

    “뭐?”

    “옆이 허전하지 않으세요?”

     

    벨벳이 무언가를 깨달은 기색으로 옆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있어야 할 네페르템 선배가 없었다.

     

    <가속잔상검>

    <일격기:유령쇄도>

    <분신술>

     

    륭 노사의 특훈을 받은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다.

    즈앙도 있고, 지젤파티도 있고, 히스클리프도 있었다.

    그들 모두의 기술을 곁에서 보았는데 분신술을 어깨 너머로 배울 시간이야 충분했지.

    덕분에 완성됐다.

    잔상을 남기며 타점을 속이는 기술에 ‘분신술’이라는 마스터피스가.

    마나를 가득 불어넣어 진짜 나처럼 혼동시켰던 분신이 선배의 눈앞에서 퐁 사라졌다.

    벨벳 선배는 학생회 건물 밖으로 열심히 달아나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추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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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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