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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0

        

         

       진성은 시간이 뒤틀리기 전을 떠올렸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던 중국과의 마찰.

       유적을 찾는다는, 주술과 주물을 찾는다는 목적이 같았기에 필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마찰들.

         

       떠오른다.

         

       그때의 기억들이.

         

       언제였던가.

       코스타리카 정글에서 원주민에게 흥미로운 원시 주술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독을 품은 생물들이 멀리하게 되는 주술.

       독을 품은 생물들에게서 힘을 얻어 독에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는 주술.

       독을 품은 생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주술.

       만지면 해를 입는 나무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주술.

       위험한 곤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무를 만져도 해를 입지 않고, 만지면 끙끙 앓다가 죽어버릴 정도로 위험한 독을 품은 나무를 자기 집처럼 삼을 수 있는 주술.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담긴 것이었으며, 독을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시련이었으며, 독을 자연재해처럼 여기며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구분 지으며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이들을 신격화하는 의도가 담긴 것들이었다.

       그것은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주술이라는 점에서는 더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그 능력은 여러 곳에서 활용하기 충분한 것이었으니 진성이 그 주술들에 대해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진성은 그 주술을 얻을 수 없었다.

         

       원주민이 말했던 주술에 대한 실마리는 모조리 박살이 나 있었고, 의식을 행했을 제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파헤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흔적만이 그 자리에 남아, 진성을 허무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이러한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났다.

         

       코스타리카에 있는 대석구(大石球)에 인신 공양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그리고 찾아가자마자 발견한 것은 주술에 대한 기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칠게 잘려 나간 단면이었다.

         

       알제리의 잉크 호수에 저주 주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하지만 무슨 개수작을 부려놨는지, 그곳은 중국 회사가 관리하고 있었으며, 오직 중국인 관광객만을 받는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진성은 입장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술과 주물에 관한 연구에 어찌나 진심을 보였는지, 주술로 소동을 일으켰음에도 주술 기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있는 중국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을 도통 하지를 않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진성은 주술을 사용하며 그들을 모두 쓰러트린 뒤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본래 있었을 기록의 절반도 손에 넣지 못했다.

         

       이집트에서 새로 발견된 지하도시에서 주술에 대한 기록을 얻기 위해 찾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이집트 정부와 중국 정부가 손을 잡고 합동 조사를 이루는 형태로 지하도시에서 머무르고 있었기에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말만 ‘합동’일 뿐이지, 실제로는 중국에 주술과 주물에 대한 자료를 넘기는 계약이었다. 그 대가로 막대한 이권과 권력자들의 호주머니를 무겁게 하기 충분한 재물이 있었을 테고.

       운 좋게 타이밍이 맞게 호주에서 중국에 엿을 먹이기 위해 비밀리에 의뢰를 넣었기에, 진성은 그 의뢰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용병들과 함께 그들을 습격한 뒤 자료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 능력자 몇몇이 자폭하면서 자료가 훼손되어버리는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었다.

         

       몽골에서 중국인 능력자들로 이루어진 도굴꾼 집단과 부딪쳤다.

       에콰도르에서 수력발전소 관리라는 명목으로 파견된 중국 특수부대와 부딪쳤다.

       스리랑카에서 중국 정부가 눈엣가시인 진성을 처리하기 위해 암살자들을 보냈다.

       …

       …

       …

         

       이러한 일들이.

       이러한 끔찍한 일들이,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고.

       계속.

       계속….

         

       그때 진성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와 중국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상, 그가 주술을 쉬이 수집하기 위한 길은 두 개가 있으리라고.

         

       하나는 중국에 힘을 실어주며 그 대가로 그들이 모으는 주술을 모두 습득하는 것이요.

       하나는 중국의 힘을 약화하고, 그들이 연구라는 이름으로 들고 간 다음 깊은 곳에 처박거나 아예 말소시켜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 * *

         

         

       리세의 결심 이후로 일은 제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오딜리아는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아도, 귀가 어디 한 번 삶아지기라도 한 것처럼 새빨개졌음에도 이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작전을 진행했다.

         

       “오딜리아 씨. 더 싱그럽게, 더 활발한 느낌으로 해주세요.”

         

       위치크래프트로 만들어낸 요정을 매개로 농작물에 주입되는 생명력을 세밀하게 조절하기도 하였고.

         

       “오딜리아 씨. 요정을 더 잘 조종해주셨으면 해요. 혹시 녹화될 수도 있고, 누가 볼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자신이 요정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생각이 아니죠. 오딜리아 씨. 지금 요정을 조종하는 지금, 이 순간은 당신이 요정이에요.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깜찍한 페어리라고 생각해주세요. 장난기만큼이나 정의감이 넘치고, 동심을 가득 담고 있는 페어리요. 당연히 말투에는 꿈과 희망이 담겨 있어야 하고, 요정 특유의 어린애 같은 그런 느낌이 묻어나오도록 말투를 해주세요.”

         

       리세의 요청대로 요정을 조종하기도 하였다.

         

       “오딜리아 씨. 요정 말투는 그게 아니에요! 저건 요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그렇잖아요. 아니, 저것도 요정이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하지만 오딜리아 씨, 우리가 만든 요정은 깜찍하고 귀엽고 예쁜 어린아이 요정이잖아요? 좀 살집 있는 아줌마 요정이나, 곱게 늙은 할머니 요정 같은 그런 게 아니라고요. 몰입해주세요. 어? 그렇게 보셔도…. 몰입하시라고요.”

         

       리세의 요청대로 요정을….

         

       “오딜리아 씨!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아왔어요.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 및 훈련법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인데, 메소드 연기에 대해서 쓰여 있어요. 이 책을 읽고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처럼 요정을 조종해주셨으면 해요. 네? 제가 조종하라니…. 죄송한데 저는 연료 같은 것을 공급하는 게 효율이 높잖아요? 그러니 세세한 조종은 오딜리아 씨가 해야 하는 게 맞고…. 애초에 위치크래프트를 사용하시는 분이니까 조종은 익숙하실 텐데, 그러면 그쪽이 맡는 게 작전에 좋지 않을까요?”

         

       리세의 요청대로….

         

       “오딜리아 씨! 신주님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어요. 지역 신문사에서 관심을 가지고 농장에 방문했다고요! 이제 한두 번 정도 여지만 주었다가, 요정이 자연스럽게 찍히도록 하셔야 해요! 요정이 농작물들을 상대로 선동하는 장면을 연기해주셔야 해요! 네? 요정이 알아서 하도록…. 농담이시죠? 오딜리아 씨가 조종하지 않으면 말을 못 하잖아요! 자, 아시죠? 말투랑 행동에 장난기가 담겨야 하고, 자료를 보는 사람들을 한눈에 사로잡을 정도로 깜찍하고 귀엽게-어? 어디 가세요?”

         

       리세의….

         

       …

       …

       …

         

       “그만! 그만해! 당신 잔소리 때문에 귀에 피가 날 것 같아!”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 폭발했다.

         

       오딜리아는 자신의 말마따나 ‘귀에 피가 날 것 같은 잔소리’에 빼액 소리를 질렀고, 맑은 눈으로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지?’라는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리세의 모습에 진저리를 쳤다.

         

       “당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너!”

         

       오딜리아는 임무를 해야 한다면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날리는 리세에게 소리쳤다.

         

       그놈의 연기, 연기, 연기!

       자연스러운 연기니 메소드 연기니….

         

       배우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체 왜 그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연기론을 배워야 한다며 책을 읽게 만들지를 않나, 감정을 뭐 적당히 담으면 되지 이렇게까지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하다못해 리세가 연기에 재능이 있거나, 연기를 늘리기 위해 강사라도 붙여주었으면 몰라

       리세가 하는 일은 계속 연기 어쩌고 하면서 잔소리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태도도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

       ‘신주’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박진성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잔소리 같기도 했고, 임무에 완벽히 성공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자나 결벽증 환자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고, 일부러 오딜리아가 부끄러워하도록 괴롭히는 것 같기도 했고, 오딜리아를 교묘하게 비꼬는 것 같기도 했다.

         

       오딜리아로서는 화를 내는 것이 당연했다.

         

       잔소리만 하더라도 짜증이 나는데,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들을 때에는 진저리를 치게 만들고, 시간이 살짝 지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러워지고, 그렇다고 내용상으로 문제가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심증조차도 애매한데 묘하게 짜증이 나게 만드는…그런 느낌의 말들이었으니까.

         

       그 모호함 속에서 어떻게든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이제는 한계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의 지휘를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런 유치한 일을 하는 것도 그랬고, 체통을 지키기는커녕 쓰레기통에 내다 버려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연기도 하기 싫었다. 게다가 쉬지 않고 일하라는 리세의 무언의 압박도, 왜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냐는 비난 섞인 눈빛도 짜증이 난다.

         

       아니, 그냥 리세의 존재 자체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질대로 할 수는 없다.

       진성이 짠 작전이고, 진성이 빤히 보고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리세라는 여자는 진성과 가볍지는 않아 보이는 관계로 보였고….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스트레스의 근원에게서 잠시 멀어지며 정신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후, 지금 상태로는 나 더 이상 못해. 알겠어요? 커피 마시면서 잠시 휴식하고 올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오딜리아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곤 일방적으로 통보를 내리듯 툭 말을 던졌다.

       그리곤 핸드백을 챙기고 밖으로 향했고, 등 뒤로 리세의 시선이 느껴짐에도 거침없이 문까지 향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밖으로 나가려 하는 그 순간.

         

       “꺅?!”

         

       목이 살짝 졸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무언가가 그녀의 몸을 뒤로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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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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