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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1

        

         

       오딜리아는 갑자기 몸을 잡아채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곤 넘어질 뻔했던 몸의 균형을 어떻게든 되찾고는, 대체 무엇이 자신을 잡아당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확인해보았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마자 보인 것은….

         

       “줄?”

         

       줄이었다.

       옅은 푸른빛으로 빛나는 그것은 리세의 손부터 시작해 그녀의 목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으며, 중간중간에 뚫려있는 구멍은 그녀의 목까지 연결된 줄이 사슬의 형태를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얇은 사슬.

       신력으로 이루어진, 옅은 푸른색의 줄.

       그리고…목을 감싸는 붉은빛의 초커(Choker).

         

       “이건…?”

         

       오딜리아는 거울로 자기 목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붉은색을 발하고 있었는데,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사슬처럼 신력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목을 감싸고 있음에도 아무런 촉감도 느끼지 않았는데, 이는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존재하는 리세의 신력의 특징을 그대로 품고 있어서 그런 듯 보였다.

         

       신력으로 이루어진 초커는 신기루와 같았다.

       그것은 존재하고 있지만 촉감이 없었고, 오딜리아가 손으로 그것을 만지려고 해도 만져지지 않았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잡히지 않았고, 만져지는 것은 오직 오딜리아 본인의 목뿐이었다. 거기다가 초커에 연결된 사슬 역시 만져지지 않았으며, 위치크래프트로 생명력을 약간 끌어올리고 나서야 약간의 저항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저항감이 있을 뿐, 그대로 통과하는 것은 같았다.

       생명력을 끌어올리기 전의 것이 홀로그램과 같았다면, 생명력을 약간 끌어올리자 느껴지는 감촉은 물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오딜리아는 자신이 생명력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리거나, 생명력을 정제해 집중한다면 이것을 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이 들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목줄을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의문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저 잔소리만 더럽게 많은 일본 여자가 자기 목에 감히 이딴 것을 걸어놓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오딜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리세를 바라보았다.

         

       “당신 이게 무슨 짓이야?”

         

       리세는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오딜리아의 목에 걸려있는 것과 똑같은 색상의 고리였다.

       붉은색으로 만들어진 고리는 그녀의 손에 얹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개 목줄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아니, 아닌 게 아니라 확실히 목줄이다.

       개들이 산책하러 나갈 때 착용하는 그것과 똑같지 않은가.

         

       “내 말 안 들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오딜리아의 불쾌감은 더더욱 커졌다.

         

       자기 목에 걸린 것이 목줄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오딜리아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고, 이윽고 폭발하기 직전이 되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것이 있었기에 그녀의 분노는 임계점까지 빠르게 끓어오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

         

       리세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래로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머리카락과 그늘에 가려졌던 눈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눈동자는, 광택이 없었다.

       마치 심연을 담아놓은 눈이 저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짝임이 없다.

         

       오딜리아는 생선 눈깔을 보는 듯한 그 눈과 마주치자마자 흠칫 놀랐다.

       터져 나오려는 분노는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몸을 태울 것 같은 분노는 사라지고 오한이 몸을 달렸다. 그리고 저 눈동자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눈깔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묘한 광기가 담긴 눈동자를 피해 슬쩍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렇게 슬쩍 피하려고 해도, 리세의 눈동자는 그녀가 피한 곳을 따라 움직였다.

         

       집요하게.

       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강조라도 하는 것처럼 리세는 집요한 시선으로 오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심연을 담은 것 같은 눈동자로 오딜리아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오딜리아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광기가 충만한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평소라면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이 보이자마자 피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목에는, 줄이 걸려있었다.

         

       저 광기 충만한 이의 손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신력으로 이루어진 얇은 사슬이 말이다.

         

       “….”

         

       “….”

         

       느껴진다.

       시선이 느껴진다.

       뜨거우면서 묘하게 서늘한 눈빛이.

       피부를 뚫어버릴 것 같은 시선이 느껴진다.

       줄을 타고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줄의 위를 타고 유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렬한 시선이 그녀의 목과 얼굴에 내리꽂힌다.

       기분 탓인지 목이 조여오는 느낌이 나고,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드는 듯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녀가 본능적으로 문 쪽으로 이동할 때마다 강렬해지고, 목을 조이는 느낌 역시 점점 강해졌다.

         

       “….”

         

       “….”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 눈동자를 움직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스치고, 눈과 눈이 마주친다.

         

       마주치는 두 눈.

       인력(引力)이라도 있는 것처럼 시선을 끌어당기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눈동자.

       말 한마디 없음에도 저 눈동자에 담긴 광기는 ‘나갈 생각 하지 말고 어서 이곳으로 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핏덩이나 다름이 없는 어린 여자일 텐데.

       오딜리아처럼 세계대전을 겪은 것도 아닐 터인데.

       어찌 저런 압박을 보낼 수 있는가.

         

       오딜리아는 그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감히 어디서 건방지게 어른한테 저런 눈을 해?’라는 생각과, ‘저런 눈깔 가진 족속하고 나쁘게 얽히면 답이 없던데….’라는 생각이 동시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감자튀김에 소스를 뿌려서 먹느냐 찍어서 먹느냐보다도 더 결정하기 힘든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

         

       오딜리아는 고민했고.

       결정했다.

         

       “크흠.”

         

       오딜리아는 핸드백을 그대로 들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핸드백을 한 곳에다가 놔두고, 리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물론 그냥 간 것은 아니었다.

         

       생명력을 잔뜩 끌어올려, 언제든 사슬을 부수거나 리세를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렇게 리세와 오딜리아의 거리가 가까워졌고…아까와 비슷한 위치가 되었을 때.

         

       방긋.

         

       리세가 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어지고 눈이 호선을 그렸고, 와줘서 기쁘다는 것처럼 환한 미소가 얼굴에 피었다. 그리고는 아까의 압박은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신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미소가 내뿜는 생기가 그 자리를 메꾸었다.

         

       리세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귓가를 쓸었다.

       검은 생머리가 귓가를 스치고 움직이며 뒷바퀴 뒤로 움직였고, 그와 함께 손가락 끝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발해진 신력은 자연스럽게 솟아난 신력으로 이루어진 꼬리와 접촉하였다.

       그러자 마치 끈끈한 물질이라도 발려있는 것처럼 꼬리의 털 몇 가닥이 손가락 끝에 붙었다.

         

       리세는 그렇게 뽑아낸 꼬리의 털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는 검지로 휘휘 젓기 시작했다.

       마치 스파게티를 말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리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꼬리털은 말리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자그마한 털 뭉치가 되었다.

         

       리세는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신력으로 이루어진 털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구슬을 손에 쥔 채, 오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오딜리아 씨. 아직 하실 게 많이 남았잖아요?”

         

       …상쾌한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 중독자나 할법한 말을 너무나도 가볍게 내뱉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준비해도 모자라요. 준비는 아무리 해도 모자란 법이잖아요. 특히나 그것이 연기를 해야 하는 거라면,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은 여유를 부리기보다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연습을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시기인데-”

         

       그 말은 아까 전까지 오딜리아가 수없이 들었던 잔소리와 똑같은 말투였지만…. 기이하게도 강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말에 무게가 있다면 분명히 지금 리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무거운 것이겠지.

         

       “-왜. 계속. 게으름을. 피우려고. 하세요?”

         

       그리고 덤으로, 무섭기도 하고.

         

       리세는 말을 툭툭 끊으며, 오딜리아를 바라보았다.

         

       “….”

         

       리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일본어이기 때문일까?

       영어로 듣는 것과는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기 때문일까?

         

       그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오딜리아가 느끼는 리세가 발하는 압박은 색다른 것에 속하는 것이었다.

         

       익숙하게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외국어로 듣는 압박이라-

       독일어로 듣는 것도, 영어로 듣는 것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듣는 말보다도.

         

       더 새롭고, 이국적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왠지….

         

       더 오한이 드는 것 같았고.

         

       “…당신. 지금-”

         

       “오딜리아 씨.”

         

       오딜리아는 리세에게 느껴지는 은은한 광기에 눌리지 않기 위해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여는 그 순간, 리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말을 툭 끊어버리고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오딜리아의 목에 걸려있는 목줄을 실체화시켜 촉감이 느껴지게 했고, 그것을 당기려는 듯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우리, 열심히 연습해봐요.”

         

       방긋.

         

       아까처럼 환하게, 꽃처럼 피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목줄을 없앴다.

         

       신력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허공에 녹아들었고, 모여들었던 반딧불이가 어둠 너머로 흩어지며 사라지는 것처럼 목줄이 부서졌다. 오딜리아의 목에 감겨있는 붉은색의 신력은 흐릿한 붉은 먼지가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가 그대로 증발했고, 리세의 손에 감겨있는 손잡이 역시 먼지가 흩어지듯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자아. 오딜리아 씨. 이거 받으세요.”

         

       그렇게 목줄을 없앤 리세는 선물이라는 듯 오딜리아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구슬을 내밀었다.

         

       “그게 뭔데…?”

         

       오딜리아는 휙휙 바뀌는 리세의 표정에 질리기라도 한 듯, 작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리세는 오딜리아의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는지, 미소를 지은 채 구슬을 내밀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서 받으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오딜리아는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 받을 생각이 없다는 듯 그 구슬을 받지 않았고.

         

       “흐-음.”

         

       리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받을 생각이 없다면 되었다는 듯 그것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는 귀엽게 응원이라도 하려는 듯 주먹을 쥐더니.

         

       “오딜리아 씨, 우리 열심히 연습해보죠.”

         

       -그렇게 말하며, 오딜리아를 자리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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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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