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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1

       

        

        

        

        

        

        

        

       “세상에, 장갑차가 따로 없구만.”

        

       “그러니까, 동력원이고 스프링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것도 없는 쇳덩어리를 몸에 착용했다고?  단순히 반동제어를 위해서 200kg에 달하는 쇳덩어리를 몸에 둘렀단 말인가?”

        

       “…저 육중한 장갑체가 통째로 뒤로 밀리고 있군. 50구경 미니건부터는 발현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꽤 버거운 건가.”

        

        

        

        드론캠 화면의 대부분을 덧칠하듯 화려하게 터져나오는 불꽃, 그리고 화염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거대한 존재감과 그 뒤에서 느릿하게 팔랑거리는 뱀의 꼬리.

        

        발사 소리에 반쯤 먹힌 탓에 초당 수십 개의 탄피가 우측으로 튀어나가 바닥과 맞닿는 소리는 들리지조차 않고, 반동으로 인해 몸이 통째로 뒤로 밀리며 유진의 발 밑에 평행선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우직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영겁과 같은 7초가 흐르고, 발사가 멈추며, 자욱한 화약 연기가 방 내부를 가득히 뒤덮다 천장의 환기 시스템에 의해 빠르게 빨려들어가 사라진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 곳곳을 뒤덮은 무게추 겸 방탄판이 바닥에 하나둘씩 떨어지고, 그 사이로 유진이 걸어나온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아름다운 곡선의 체형이었지만, 시청자건 목격자건 그 누구도 그것을 보고 감탄을 터뜨리지 않는다.

        

        그 시선에 살그머니 들어찬 것은 경외와 외포. 이마를 가리는 흑발을 옆으로 쓸어내린 그녀가 한숨을 후 하고 토해내는 모습은 고혹적이기보단 차라리 영화의 한 장면 – 남자 주인공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그냥…터미네이터 같았다.

        

        물론 불경죄 비스무리한 생각이 들었기에 아무도 그걸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어후, 팔이 다 지릿지릿하네요. 솔직히 이건 성능은 잘 모르겠고…그냥 부탁받아서 하는 거라 시청자 분들은 그닥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이런 걸 사려고 ATF 승인까지 받으실 부지런한 분은 없을 것 같으니까요.

        

       -그보다 막내, 저 바깥에서 로건이랑 로렌티나가 목을 쭉 빼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지. 네가 뭔가 적절한 말을 해주지 않으면 저 친구들이 아마 너를 미니건 배럴마냥 빙글빙글 돌려버릴 것 같은데.

        

       -…두 분한테 해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어차피 드론캠 뺄 예정이니.

        

        

        

        그러나 외부 반응이 어떻든 간에 화면 너머로 보이는 여러 명,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존재이자 오늘 광고의 메인인 유진은 그저 할 일이 끝났다는 듯한 반응만을 보인 채 의자에 주저앉았고, 그 순간 사격장 내부에서부터 또다시 굉음이 터져나왔다.

        

        방송을 시청하던 와중 한숨을 힘겹게 토해낸 각계각층의 고위직 중 한 명이 부하 직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개인 통신이었다.

        

        

        

       “…흡사 파워드슈트 같군. 지금의 스트리밍이 해당 시장에 유의미한 변화를 창출해내거나, 혹은 그보단 못하더라도 긍정적 영향을 창출할 수 있겠나?”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방금 목격한 형태로의 쓰임새를 찾기 위해서는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전장을 상정해야만 하겠으나….”

        

       “무슨 소리인지 알겠군.”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전장, 다시 말하면 시가전.

        

        그것도 폭격이나 그런 걸 얻어맞아 죄다 부스러진 저층 건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이른 바 빌딩이라고 불리는 초고층건물 등이 즐비한 대도심, 그리고 그런 곳을 실효적 지배가 가능한 정규군 혹은 그 이상의 무장을 한 이들과 교전할 때 제한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투입.

        

        반대로 말해서, 그 이외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생산 및 유지, 투입 코스트는 과도하게 높았으나, 그에 비해 기대되는 결과 자체는 일반적인 중장갑 차량을 투입하는 것보다도 훨씬 낮을 것이었다.

        

        물론 완전히 속단하기엔 일렀지만은.

        

        

        

       “…에너지원을 무엇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 정도의 생존력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고, 그럴 바엔 이카루스 다이나믹스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병사 쪽이 훨씬 유용하지 않을지.”

        

       “역시 그렇겠어. 진즉 파워드 슈트 시장을 축소한 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겠지…후, 요즘 되는 일이 없구만 그래. 컨소시엄 쪽에서는 뭐라 하든가?”

        

       “정해진 답변 이상의 말은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리 말함과 동시에 시선은, 그리고 화면은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한다.

        

        유진과 매우 닮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외형. 흡사 유진의 종족을 안드로이드로 변경한다면 저렇게 될까 싶은 모습, 그런 이들이 무려 셋 –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임원들은 이들이 누구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식 명칭은 UES였지만, 죄다 메카비얌, 메카 스네이크, 시스터를 비롯한 오만가지 별명으로 불러대는 진과 레인, 그리고 근래 새로이 합류한 마브가 그 주인공이었다.

        

        본래라면 저런 건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저 존재들이 안드로이드 혹은 휴머노이드 시장 전반의 주가를 몇 개월 안에 두 배 이상으로 뻥튀기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시는커녕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 꼬라지를 바라보고 있던 타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어떻게든 그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한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대략 10개월 가량 남았나. 저들이 현실에 UES를 구현하겠다고 말한 지. 현실성이 있다고 보나?”

        

       “자사는 기본적으로 블러핑이라고 여기고 있고, 타 회사들 역시도 마찬가집니다만…이카루스 다이나믹스가 내년에 있을 휴머노이드 엑스포 및 차세대 군납용 휴머노이드 입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나?”

        

       “내부 회의에서는 데이터 수집을 제외하면 이카루스 다이나믹스의 행보에 제동을 걸거나, 혹은 경쟁을 시도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방침을 정했습니다. 대신 언론 대응용 보여주기식 연구까지는 막을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흐음….”

        

        

        

        당연하겠지만, 총기 제작 및 판매는 이들이 맡은 일의 일부일 뿐이었다.

        

        완전히 총기 제작만으로 먹고 사는 회사는 없었으며, 으레 이들은 비물질적으로는 군용 소프트웨어 및 방화벽, 혹은 프로그램 개발 등을 손댔고, 물질적으로는 오만가지 재래식 무기들을 개발하여 납품하고는 했고, 그마저도 모자라 민간 시장 역시 이들의 파이였다.

        

        그 중에서는 근래 뜨고 있는 휴머노이드와 관련된 것도 있었으나, 적어도 실시간으로 입을 열고 있는 – 당연하겠지만, 타 회사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 – 그는 그저 숨을 토해낼 뿐이었다.

        

        

        

       “눈에 단추만 달아놓은 친구들이 한가득일 거라고 생각했더니, 꼭 그렇지도 않군. 차라리 잘 됐어. 내년 모든 분기에 배정된 예산을 이상한 곳에 삽질하느라 쏟아부을 일은 없어서 다행이야.”

        

       “…그렇습니까? 일각에서는 뒤처질 수도 있단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군.”

        

        

        

        한숨을 내쉰 그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메카 유진들을 포함한 이들이 정겹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뒤로 한 채, 그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이카루스 인터내셔널의 기업 규모는 그렇다고 쳐도, 개발기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지속적으로 대외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심하게 걸려. 게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싱크탱크와 이카루스 다이나믹스 간의 컨소시엄도 있고…앤드리슨 호로위츠도 엮여있지.”

        

       “자산운용규모만 어지간한 개발도상국 1년 예산에 맞먹는다는 벤처캐피탈 말이로군요…이걸 다른 회사가 모를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미끼를 물어버린 놈들은 죄다 휴머노이드 사업부 규모가 자사의 두세 배 가량 되거든. 어떻게든 맞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빠르면 내년 3분기 말, 혹은 4분기 즈음에 폭탄이 터질 것 같단 말이지.”

        

       “그렇습니까.”

        

        

        

        잠시 말이 없던 옆의 직원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는 이사님이 영전하기 전까지 제 유능함을 증명해야겠군요.”

        

       “자네는…아니, 이런 말을 하기도 그렇군. 그래.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 정도는 물색해보지.”

        

       “하하, 농담입니다. 저는 오프 더 레코드는 믿지 않습니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것이 곧 대답이었다.

        

        화면 너머로 여전히 이어지는 미약한 진동과 굉음, 그리고 그것으로도 숨기기 꽤 어려운 한 여성의 광소를 떨떠름한 눈길로 흘려들은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번 광고에 저 개틀링건이 나왔다고 판매량이 드라마틱하게 늘지는 않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더 이상은 볼 필요가 없겠어…피곤하군. 먼저 들어가지. 계속해서 지켜보게. 혹시나 무언가 특기할 점이 있다면 연락하게.”

        

       “알겠습니다. 무탈히 들어가시길.”

        

        

        

        그와 동시에 눈녹듯 사라지는 늙은 중년 남성의 아바타.

        

        그것을 잠시 흘겨본 부하 직원은 계속해서 스트리밍을 시청했고, 어느덧 사전에 계약하였던 영상 길이인 1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푸-하고 숨을 내쉬며 책상에 엎드린 채 방송을 눈에 담았고, 영상을 실시간으로 녹화한 프로그램이 각 광고 섹션별로 동영상을 분할하는 것을 확인하며 화면 너머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나지막하게 열렸다.

        

        

        

       “나도 저기서 좀 쉬고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연말이자 1년의 마지막 달은 많은 회사에게 지옥같은 일거리를 선사해주었다.

        

        일상이었다.

        

        

        

        

        

        

        

        

        

        

       “아우, 드디어 도착했…우와악! 뭐야!? 메카비얌!”

        

       “드디어 도착했군요, 카토! 현실로 도망가면 저희가 못 쫓아올 줄 알았습니까!”

        

       “…아니, 요즘 카토 씨를 동네북으로 만드는 게 취미야? 다들 왜 이래?”

        

       “카토는 모두의 아이돌이니까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딱히 진지하게 그 말을 신경쓰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튼, 카토 일행.

        

        다크 존 타운 도착.

        

        

        

        

        

        

        

        

        

        

        

        

       

        

        

        

        

        

        

        

        

        

       “아니, 진짜 쓸데없이 잘 만들었네…!”

        

       “그래도 이건 되게 무난무난하네요. 지난 번에 우리한테 보여줬던 건 무슨…완전 일본 저어기 어디야, 아키하바라? 그런 곳에서나 팔 법한 물건이든데. 유진 씨도 한 번 봐봐요. 안는 베개 같은 것도 있어요.”

        

       “아니, 뭐. 그런 것까진 굳이 안 보여줘도 되는…아, 생각보다 잘 나오긴 했네요.”

        

       “왜 그런 걸 보여주고 품평하고 있어요, 거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토다키마쿠라’라는 파워워드wwwww

       -진짜 어질어질하다 ㅋㅋㅋㅋㅋ

       -소신발언)좀꼴림

       -아니 꼴리게 만들었으니까 꼴리긴 한데 비얌은 왜 그걸 품평하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그치만 보여줬으니까 품평 정도는 할 만하지 않을까, 카토의 허락을 받아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세상에 나오게 될 물건들의 라인업을 눈으로 살피며 원하는 대로 평가를 해주던 와중 그리 생각했다.

        

        물론 그걸 내게 보여준 건 리밋이었다. 카토 성격을 고려해보면 저런 걸 나에게 보여주지는 않겠지. 그리고 남이 보여주었을 때 와아악-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이쪽으로 달려들 거란 것도 얼추 예상은 했다.

        

        이리 말하긴 뭐했지만, 쓸데없이 히로인 같았다.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본 일본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지만 일단 그런 느낌이었다.

        

        

        

       “후, 이카루스에 이건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아까비.”

        

       “뭘 아까비에요, 진짜. 그것보다 이 사람, 얼마 전부터 자꾸 이상한 거 알려주려고 한다니까요.”

        

       “후…카토 씨, 제 예리한 육감으로 보았을 때 당신은 충분히 이쪽으로 올 수 있습니다. 강제TS권위자인 저, 리밋이 직접 보장…아아악,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어요, 악, 악…!”

        

        

        

       -리밋레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빙포인트)리밋은 백만원과 VR정체성을 교환한 상남자다

       -상남자였던 무언가겠지 ㅋㅋ

       -카토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비얌은 작년에 저런 카토쉑 아바타 면상에 단검을 집어던졌단거죠? 진짜 미친사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

        

        좌우지간 주변에서 벌어지던 난장판은 머잖아 원만하게 수습되었고 – 상황을 지켜보던 호떡이 두 명을 수거해 데리고 갔다 – , 나는 코트를 갖춰입으며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는 바깥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눈이 쌓이지는 않았다.

        

        추운 날씨를 매우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눈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이리 말하긴 뭐했지만 여전히 눈사람을 만들거나 하는 건 즐겁단 말이지. 지금 와서 하기에는 조금 자주 많이 바쁠 뿐이다.

        

        이렇게 바깥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토 일행이 이곳에 도착한 지 어느덧 2~3일 가량이 지났고, 반쯤 백수처럼 지내던 와중 유일하게 존재하던 빅 이벤트가 기어코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근데 유진 씨는 오늘 어디 가시나요?”

        

       “…앗.”

        

       “어…아니, 잠깐만. 분위기가 왜 이래. 다들 왜 나를 향해 다가오는-우와아악!”

        

       “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쇼, 선생님. 드론캠은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그래요, 잘 부탁하죠. 그렇게 유난을 떨 일은 아니니 카토는 놔주시고.”

        

        

        

       -?????????????

       -아니급발진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사람은 미리 언급한 스케줄을 뜬금없는 타이밍에 실행하는 걸 왜 이렇게 잘하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그것이…약속이니까(끄덕)

       -진짜 타이밍 무지 뜬금없네 ㅋㅋ 누굴 만나러가려고

        

        

        

        허공을 붕붕 떠다니던 드론캠의 카메라 부분과 시선을 한 번 맞추고, 작게 미소를 지어준 후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현관으로 향한다.

        

        아쉽겠지만 이 시간부터는 시청자들에게 송출이 금지되는 부분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두꺼운 어그부츠를 신은 채 문을 열고 현관을 나선다.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오늘의 컨디션은 중상 정도였다.

        

        그렇게 슬그머니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온다.

        

        키신저였다.

        

        

        

       “내가 놀라게 한 건 아니겠지?”

        

       “진즉 알고 있었으니 괜찮아요. 설령 없었어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잘 알고 있군. 가세나. 슬슬 이곳에서 철수하고 싶거든.”

        

       “어련하시겠어요.”

        

        

        

        목표는 1층 로비…가 아니라 지하 2층 주차장.

        

        아직 새 건물 냄새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것만 같은 미약한 콘크리트 냄새, 그러나 그런 와중 엘리베이터 건너편에 새카맣게 선팅이 된 자동차 두 대가 대기하고 있다면 품어야만 하는 감상은 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차량에 탑승하지 않은 채 대기 중이던 요원들이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즉각 각자 자리에 문을 열고 탑승했고, 키신저는 조수석에 탑승했으며, 나는 뒷좌석에 슬그머니 몸을 구겨넣었다.

        

        출구 게이트가 별다른 번호판 식별 없이 자동으로 열리는 가운데, 광학미채가 작동되는 미약한 소음이 귓전을 웅웅 울렸다. 현재 나는 차 안에 탑승해있었으므로, 바깥의 차량이 어떤 외형을 하고 있을지는 꽤 궁금했다.

        

        

        아쉽다면 아쉽겠지만, 이 시점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설령 같은 차량에 탑승해있는 키신저마저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러한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아무리 내가 많이 활달해졌다고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에서조차 잡담을 하거나 남에게 말을 걸기는 그랬으므로, 나는 의자에 몸을 깊숙하게 기대며 바깥 광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유리창이 아니라 자체적인 디스플레이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게 만들도록 그러는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부자연스럽게 시골 풍경을 보여주면 싫어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단 말이지.

        

        

        

       ‘…그때 이후로 벌써 1년인가.’

        

        

        

        작년 이 즈음…은 아니고, 작년 기준에서라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주일 정도 후의 일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뉴욕 맨해튼에 있었고, 목에는 메달 오브 아너가 걸렸었지. 그 당시의 밤은 아직도 잊을 수조차 없었지만, 그게 벌써 1년이나 된 일이라니. 이리 생각해보면 시간이 참 빠르기 그지없다고 느껴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나 헨리 그 양반이나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꽤나 많아졌다는 것 정도. 아마 이 양반이 날 부른 이유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사실에 기반하고 있겠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대략 30분 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내리시면 됩니다.”

        

       “여긴…온타리오 호수로군요. 그 사이 오대호까지 왔을 줄이야.”

        

       “비교적 먼 곳으로 왔습니다. 경호 문제로 인해 비교적 한적한 곳을 선택했지요. 정면에 보이는 갤러리로 들어가면 됩니다. 안에서 피닉스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새 대통령의 코드네임이 정해졌나보군요.”

        

       “…어서 들어가게, 유진.”

        

        

        

        아쉽게도 농담할 타이밍은 아니었나보다. 물론 피닉스…헨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크기의 온타리오 호, 그런 호수를 배경으로 세워진 갤러리. 이런 곳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다기엔 상당히 유려하고도 근미래적인 느낌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근방 도로에 누군가가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 공사인력으로 위장한 이들과 풀숲 안쪽에서 보이는 저격수들, 녹슨 컨테이너처럼 보이는 공간 안에서 혹시나 모를 상황 대비를 위해 대기 중인 시크릿 서비스 산하 타격팀, 저 멀리 호수에서 보이는 조각배와 그 안에 탄 저격수들.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나는 건물에 올라 계단을 올랐고, 그 안에선 꽤나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제법 비싸보이는 그림과 조각상 등을 가로질러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을 걷는다.

        

        우중충하고 구름이 잔뜩 낀 날씨로 인해 차단된 햇빛. 덕분에 갤러리 내부는 흡사 새벽처럼 보이기도 했기에, 그런 적막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뚜벅거리는 소리를 보태고 있었을까,

        

        

        

       “빅 애플 뿐만이 아니라 이곳 역시 뉴욕의 일부라네, 유진. 어떤가?”

        

       “적막하지만 아름답군요. 이런 분위기는 싫지 않습니다.”

        

       “그렇지. 절대 잠들지 않는 도시도 좋지만, 민의를 얻어 한 나라의 조타권을 쥔 자라면 이런 고요함을 항상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어야만 하거든.”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늘 속에서 어렴풋이 들린 목소리는 지난 번에 만났을 때보다도 한층 가라앉아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자네와의 식사 장소로 선택했네.”

        

       “그렇군요. 작년이랑 달리 이번 년도에는 좀 조용한 곳을 선택한 걸 보니, 제법 많이 시달리셨나봅니다.”

        

       “그 말대로. 꽤 오래 시달렸지.”

        

        

        

        뚜벅.

        

        그가 걸어나오며 덧붙였다.

        

        

        

       “더 늦기 전에 점심식사라도 하지. 할 이야기가 아주 많으니.”

        

       “영광입니다.”

        

       “그런 시시한 사탕발림을 들으러 나온 건 아니니 편하게 말하게. 쟁여놨던 비장의 와인 컬렉션을 소개해줄 테니.”

        

        

        

        뚜벅, 뚜벅.

        

        그렇게 두 명분의 발걸음이 멀어지고, 갤러리는 다시 적막으로 물들었다.

        

        조용한 점심식사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평범?한?한끼?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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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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