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82

    <582 – 맛있는 연계퀘스트(6)>

     

    그렇게 된 이유로 나는 이슈타르의 단짝친구 유피를 찾아가 리프에게 전수받은 부탁의 포즈, 두 손을 얼굴 밑에 모아서 앙증맞게 부탁하기를 시전했다.

     

    “도와주세요!”

    “싫어요.”

     

    유피는 웃는 얼굴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헉.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사람의 생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인데. 너무해요!”

    “성녀연합이라니, 그딴 걸 만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는 하나요?”

    “다굴을 맞겠죠?”

    “잘 알고 있네요.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은 엄청난 수의 신들에게 원한을 샀어요. 그 니알라토텝의 손에 깨진 신들 사이에서 신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용사파티에 합류한 것부터 엄청난 용기를 낸 저에게 다른 모든 신의 적이 될 것을 신님에게 부탁드리는 짓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무례인지 알고는 있나요?”

    “그걸 어떻게든 해주세요!”

    “싫어요.”

     

    유피는 역시나 웃는 얼굴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남을 곤란하게 만드는 부탁을 할 때는 성의라도 표현해야죠. 맨입으로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행동인가요?”

    “힝.”

    “싫어요. 안 돼요. 절대 안 해요. 안 도와주면 어쩔 건데요. 니가 부들부들 떨고 억울해서 눈물 맺힌 눈으로 흘겨보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는데요?”

     

    역시나 그 이슈타르의 동료다운 인성질.

    고인물도 욱하게 긁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재단은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뭐라는 건가요, 이 바보가. 얼른 어디로든 사라지세요. 그리고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당신의 속임수 때문에 이슈타르가 재단의 후원을 받게 된 것만으로도 당신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으니까.”

     

    유피는 쉽게 협력할 의사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이슈타르를 찾아갔다.

     

    “유피를 설득해주세요!”

    “힘들겠는데. 유피는 어릴 적부터 고집이 굉장했거든. 내가 용사가 되니까 어떻게든 용사파티를 따라가겠다면서 당대 골고다의 성녀를 두들겨 패고 성녀의 자리를 쟁취해내었어.”

    “헉. 성녀를 그렇게 쟁취할 수도 있나요?”

    “골고다가 좋아 죽어서 깔깔 웃으며 기립박수 하는 소리도 들렸다던데?”

     

    힘으로 성녀 자리를 쟁취해낸 유피!

    어쩐지 능력치 하나에 꽂히는 이슈타르가 ‘근력’에 꽂힐 때도 곁에 둔 성녀라서 이상하다 싶더라니, 어릴 때부터 근력 하나는 비범했나 보다.

    마른 몸매로는 숲지기 도로시보다 빼빼마른 유피가 이슈타르를 만족시킬 근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남자보다 몸이 굵은 헤스티아가 알면 굉장히 슬퍼하겠지?

    헤스티아한테는 반드시 비밀로 해야겠다!

     

    “아무튼 유피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다음 주부터 밤에는 기숙사에서 어디서 자야 할지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

    “감당되겠어요? 2학년의 강의를 혼자만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듣는 게.”

    “…어디서나 잘자기 강의를 추가수강 한다고 생각하지 뭐.”

     

    오잉?

    이슈타르가 뜻밖의 덤덤한 면모를 보였다.

     

    “작년 한해 많은 강의를 들으면서 힘들기는 했지만 안데르센 대공자의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듣고 반성하기도 했어. 양만 많은 것보단 양질의 강의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실제로 안데르센의 서귀연 일동은 아무데서나 대충 자고도 체력을 금방 회복하잖아.”

     

    비바람 맞고 밤공기 쐬는 노숙도 대책 없이 막 자면 몸이 상하지만 베테랑의 숙련된 솜씨가 더해지면 체력이 보존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교수의 검증된 강의법으로 착실하게 노하우를 다지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아카데미가 2학년에게 자연스럽게 겪도록 유도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면 기술도 생성된다.

    용사로서는 훌륭한 발상이지만 퀘스트도우미로서는 빵점인 태도였다.

     

    “그럼 지령을 내릴게요!”

    “지령?”

    “이슈타르도 재단의 후원을 받았잖아요! 그러니 상급자의 지원을 받아야죠.”

    “…쪼잔하게 구네.”

    “흥. 그러게 누가 무인도 경매에서 지원 받으래요?”

    “재단의 요청이라면 도와주겠어.”

    “얏호!”

    “근데 넌 수석‘장학생’이지 내 상관이 아니잖아.”

    “앗?”

    “재단의 정식지령서를 내놔. 그걸로 빚을 털겠어. 하지만 네 말뿐인 부탁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이 정도면 어때?”

     

    한 방 먹였지? 라며 뿌듯해하는 이슈타르의 모습은 분하게도 기프트 아카데미에 무사히 적응한 2학년의 표본과도 같았다.

     

    “힝. 어쩔 수 없죠. 그럼 공식라인을 통해서 지령을 내릴 테니까 기다려요.”

     

    이슈타르가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내게도 장학생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상부와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플라잉 스켈레톤으로 전직한 변신술사 파시블 예프.

    인간의 외면을 연성마법으로 재현하여 되찾은 그는 겉모습만 보면 언데드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가끔 눈동자에서 빛나는 스켈레톤 특유의 새파란 귀화만 잘 숨길 수 있다면 말이다.

     

    “감독관님. 아카데미 지부에서 온 연락입니다. 오크노디가 용사 이슈타르에게 특정지령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오, 이거 반가운 연락이 왔군요. 이사장의 직속삼장 중 한 명인 집사장의 조우를 위한 특별 간부회의 참석을 희망하는 줄 알았는데 그 건에 대한 연락은 없습니까?”

    “이미 나중에 놀러 갈 테니까 간부회의에 대동할 수인보디가드 자리를 둘 비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째서 두 자리입니까?”

    “친구를 한 명 데려갈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베스트프랜드를 데려간다고 합니다.”

    “맙소사! 인간의 감정을 잃은 살인기계지만 아카데미에서의 동기들과의 생활로 인간의 정이 무엇인지 깨닫고 교우관계를 얻은 킬데레살육기계어린이미소녀라니, 저 파시블 예프의 가능점수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득점했군요! 재단의 미래가 아주 밝습니다.”

     

    창가에 걸터앉아있던 보디가드 겸 암살자 부엉이수인 둘이 질린다는 눈으로 파시블을 째려봤다.

     

    “죽엉.”

    “싫엉.”

    “나가 죽으랍니다, 감독관님.”

    “하하하. 언데드라서 이미 죽은 몸입니다만?”

     

    숨쉬듯이 펼치는 자학개그에 파시블 예프의 충직한 비서이자 까마귀수인 까망의 얼굴에 죄책감이 드리웠다.

    흑단처럼 고운 검은 깃털보다 더욱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을 내려다보며 파시블이 자신의 비서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런. 제 농담이 소중한 비서의 마음을 상하게 했군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우리 작은 주인님도 매력적이지만 언제나 제 곁을 지키는 냉정침착계 오피스비서 까망만큼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사다코 교수의 데스필드에서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연성마법의 제물로 1년 간의 감정을 바쳤던 파시블에게 부하를 아끼던 감정은 없다.

    그러나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다.

    과거의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몸으로 흉내만 내는 그였지만 까망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지, 알고도 더욱 감동하는지 마냥 싫지만은 않은 얼굴로 괜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까짓거 지령서 한 장 써준다고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시원하게 써줍시다. 특별히 서비스로 경고까지 평소보다 강하게 적어주죠.”

     

    오크노디가 부탁한 지령서는 부탁한 것 이상으로 순조롭게 작성됐다.

    그러나 잘못된 충성심은 때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한다.

    오크노디가 파시블 예프의 작은 주인님이라면 그의 큰주인님은 중간고사 시즌에 데스필드에서 파시블 예프의 육신을 파괴하고 그를 언데드로 부활시켜 일으켜준 사다코 교수이니.

    그가 작성한 지령의 내용은 사다코 교수가 지닌 <꼭두각시 기록의 서>라는 특수아이템의 효과로 사다코 교수의 집무실 양피지에 고스란히 똑같이 적혔다.

     

    ━━━

    재단장학생 이슈타르는 성녀 유피를 설득하여 오크노디가 바라는 <성녀연합회>를 출범시켜라.

    이 지령을 지키지 못할 시, 유피의 신상에 닥치는 모든 위험은 너의 책임이다.

    ━━━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된 내용을 보며 해골교관은 신이 나서 사다코 교수를 찾아갔다.

     

    “이걸 보십시오, 사다코 교수. 재단 놈들이 굉장한 지령을 하나 보내려고 합니다!”

    “…용사를 협박하여 성녀연합회를 출범해?”

    “오크노디에게 이 소식을 전하여 사령술을 다루는 장점을 어필하고 언데드화 시술을 벌여줍시다!”

    “시끄러워.”

     

    귀여운 제자를 언데드로 만들 생각까지는 없었던 사다코 교수는 해골교관의 입을 막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파시블 예프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그 몸의 주인이 된 사다코 교수 본인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이미 고지받았다.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여태까지는 수인비서 까망과 꽁냥거리는 모습이 눈꼴 사나워서 행동 감시를 해골 교관에게 짬 때리고 있었지만, 오늘에서야 유의미한 사건이 벌어졌다.

    용사를 협박하는 재단 감독관.

    자신이 용납하지 않을 짓을 그가 저질렀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재단상층부. 지령을 내릴 보다 상위기관의 지시. 재단총본부에서의 직통지령.”

     

    누군가 용사를 이용하여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다코 교수는 그리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추측은 절반은 옳았다.

    실제로도 파시블 예프는 자신이 쓰는 지령이 사다코 교수에게 전달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크노디의 부탁이 사다코 교수와는 당연히 합의가 되었다고 여겼다.

    오크노디에게 접근을 시도했다가 사다코 교수에게 찍혀 언데드가 되었으니, 둘을 사제지간이자 긴밀한 관계라 여기는 것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

     

    “해골교관. 디스트로이어에게서의 연락은?”

    “겔겔겔. 없습니다. 아카데미에서의 활동 및 재단감시임무는 모두 맡긴다는 전언이 마지막입니다.”

    “그럼 내 식대로 하면 된다는 거네.”

     

    하얀소복 위로 물감을 끼얹은 것처럼 드리운 불길한 검은 머리카락.

    그 사이로 사다코 교수의 시뻘건 눈동자가 번뜩였다.

    뼈만 남은 그와 달리, 살가죽을 가진 녀석들이 사다코 교수의 잔혹한 괴롭힘에 시달릴 예정이라는 사실에 신이 난 해골 교관이 재촉하듯이 물었다.

     

    “어디를 건드릴 생각이십니까? 오크노디? 용사? 파시블 예프? 재단상층부?”

    “…원인을 먼저 분석해. 언데드는 이미 생의 시간을 잃어버린 존재. 같은 실수를 반복할 이유는 없어. 성녀연합회는 세 명의 성녀가 필요해. 아카데미에 재적중인 성녀를 성녀연합회로 끌어들인다면 다른 성녀가 최소 두 명은 필요해.”

    “그렇군요!”

    “오크노디의 주변을 수색해. 그리고 성녀 자격을 지닌 인물을 찾아. 그중 하나를 우리가 손에 쥐고 있으면 재단이 성녀연합회를 노리는 이유를 알 수 있어.”

     

    조사를 하러 나갔던 해골교관이 아주 함박미소를 지으며 겔겔겔! 폭소를 했다.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성녀 한 명이.”

    “그게 누군데.”

    “2학년 수강생 티토소가입니다.”

     

    티토소가가 오크노디의 무차별 주변인 피폐 폭탄에 피폭당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고한 티토소가의 피폐…!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