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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2

        

         

       그렇게 오딜리아의 자그마한 반항은 진압되었다.

       리세가 주는 압력에 이기지 못한 오딜리아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자존심이 있기에 중간중간 터져 나오려는 성질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분노도 리세의 텅 비어버린 듯한 눈과 묘하게 묻어나오는 광기를 보고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어쩌면 평소의 성질은 어디 가고 이런 모습이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오딜리아는 리세가 보이는 모습이 단순히 성격이 드센 것이라거나 분노 조절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광기의 영역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에 얌전히 그녀의 말을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광기라는 것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극하면 어디로 튀어갈지 모르는 끔찍한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삶에서 저런 광기를 보여주는 이들과 나쁘게 얽히는 것은, 꼭 좋지 않은 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자리잡힌 최악의 악몽도 저런 광기와 얽힌 것이었고, 사사롭게도 저런 광기를 가진 이들과 얽혀서 일이 어그러지는 일도 꽤 많았다.

         

       아니, 당장 지금 오딜리아가 겪고 있는 일도 광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나쁘게 얽혀서 생긴 일이 아니던가.

         

       『 오디-!!!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 내가 말했잖아!!! 나는 너의 행운이 되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오디, 당장 나한테 한 말 취소해. 그리고 내 앞에 앉아!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

         

       …그래.

       성격이 어디로 튈지도 모르겠고, 더럽기는 어마어마하게 더러웠던 그 여자.

         

       그 여자 때문에 이런 상황을 겪게 된 것이 아닌가.

         

       가브리엘라, 그 여자만 없었더라면 오딜리아는 이런 연기니, 뭐니 하는 것을 하고 있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저 일본에서 온 묘하게 반의 반 정도 미친 듯한 여자와 얽힐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저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체통이라고는 갖다 버리고는 무슨 초등학교 갓 들어간 어린아이가 하는 연극 연습 같은 해괴한 짓거리를 하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오딜리아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리세의 요청대로 연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 여자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니까, 나쁘진 않은 일이겠지….’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오딜리아가 연습하는 동안 농장에서 행하던 사보타주는 멈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이라이트를 위해서 거기에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기에, 평소 행했던 사보타주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장 주인이 밖으로 피신한 상태였기에, 사보타주를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었기도 했고.

         

       그렇게 농장은 정상화가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그리고 이 정상화는…그들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농장 주인의 주장을 허황한 것으로 몰고 가는데 수월해진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익은 감정과 기억이 퇴색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은 흐려지고, 기억은 퇴색된다.

       이를 추억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추억이라는 것이 감정이 풍화되고, 기억이 미화되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메꾸어지면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평화로운 시간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했다.

         

       그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농장 주인 역시 사보타주로 인해 겪었던 감정과 기억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공포는 무뎌져서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변한다.

       분노는 형태가 변화하며 그를 행동하게 만든다.

       기억은 묘하게 왜곡되며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

         

       그렇게 ‘무서워서 농장에서 도망쳐야 했던 일’이 ‘그래도 한 번쯤 다시 가서 확인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솟아오른 용기가 머릿속을 메우기 시작하며, 마초로서 가져야 할 프라이드가 공포를 이겨내게 만든다. 그렇게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너무나도 쉽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동시에 예측하기 쉬운 일이기도 했고.

         

       그렇게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었다.

       너무나도 쉽게 말이다.

         

       “진짜 내가 약이라도 했던 건가…? 아니, 집이나 어디 밭에 이상한 약이라도 묻혀있어서 내가 그 영향을 받았나…?”

         

       밖으로 도망쳤던 농장 주인은 사람을 보내고, CCTV를 확인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키는 건 소송에 걸릴 위험도 있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겠지만, 농장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미국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위 말해서 그가 등쳐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았으니까.

         

       농장 주인은 갈 곳 없고 기댈 곳 없는 불법체류자에게 시켜서 농장을 순찰하게 시켰고, CCTV나 캠코더 같은 것을 농장 곳곳에 두고 오게 시켰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은 군소리 없이 농장 주인의 말에 따랐다.

         

       농장 주인이 작게나마 챙겨주는 돈을 챙겨 먹기 위한 이들도 있었고, 농장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농장에서 잘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인 이들도 있었고, 농장 주인이 한 말을 전혀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농장 주인은 멀리서도 농장을 확인할 수 있었고-

       농장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농장이 평화롭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농장 주인은 농장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상남자라고, 마초라고 떠들고 다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겁쟁이 같은 태도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 자신은 당당했다.

       위험할 거 뻔히 알면서도 들어가는 건 용기가 있는 게 아니라 멍청한 것이라고, 나는 멍청한 것이 아니라 그냥 공부를 많이 안 했을 뿐이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농장 주인은 농장으로 돌아왔고, 돌아온 후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이 헛것이거나 일시적인 일이라는 확신이 드는 그 순간, 다시 농장을 열고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는 한편, 자신이 겪은 일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마녀 오딜리아에게 따졌을 때 오딜리아가 했던- 찝찝하기 짝이 없는 말을 검증하기 위해서.

       항상 자신을 기분 나쁘게 했던 숲을 조사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혹시 정말로 자신이 환각제나 어떤 화학 물질에 취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농장 주인은 돈을, 인맥을 써서 사람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자신이 팔았던 밭으로는 불법체류자들을 보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위험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 위험수당을 챙겨주어야 하고, 혹시 겁쟁이처럼 겁을 먹고 그곳에 가지 않겠다면서 난리를 피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법적으로 그곳은 다른 사람 소유였는데, 괜히 직원들을 보내거나 자신이 직접 가면 무슨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가장 만만하고 문제가 일어나면 내칠 수 있는 불법체류자들을 동원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항상 볼 때마다 기분 나빴던 숲으로는 미국인 직원들을 보냈다.

       숲을 밀어버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뭐가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일단 직원들은 그의 말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농장 주인이 항상 숲을 못마땅해하고 있던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짐승이 나올지도 모른다면서 사냥꾼들을 몇을 붙여주기까지 했으니, 큰 위험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기도 했다. 사냥꾼들이 들고 있는 곰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총을 본다면 없던 용기도 살아날 판이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농장 주인이 보낸 직원들이 아웃도어에 익숙한 이들이며, 자신이 마초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마지막.

       혹시 농장이 무슨 화학 물질이나 약으로 오염이 되지 않았나를 조사하게 만들기 위해, 사람을 데리고 왔다.

       마약사범을 주로 상대하던 경찰이었는데, 현재는 그만둔 상태였다.

       듣기로는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돈을 많이 주는 핑커톤 정부 서비스(Pinkerton Government Services)에 들어가기로 약속된 상태라고 했다. 경찰을 그만둘 때 퇴역 경찰견을 데리고 왔는데, 마약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아다니던 녀석이라고 한다.

         

       농장 주인에게는 딱 맞는 인재였다.

       마약 탐지견으로 활동했던 개에, 마약과 관련해서는 잔뼈가 굵을 경찰 출신이라….

       산책하는 느낌으로 농장 한 바퀴 산책하면, 뭐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지불할 금액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곧 핑커톤에 들어가기 전에 소일거리 하는 느낌으로 싸게 해주겠다고 했던가?

         

       농장 주인으로서는 행운이었고, 바라마지않던 일이었다.

         

       그렇게 농장 주인은 사람을 보냈고-

       곧 그들이 조사한 결과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흠? 경찰견이랑 자신은 아무것도 이상한 걸 찾지 못했다고? 더 자세히 조사하고 싶으면 농장을 폐쇄하고 사람을 더 고용해서 대대적인 전수가 필요할 것 같다…. 쯧. 말은 쉽지. 그러면 돈이 얼마인데….”

         

       가장 먼저 그를 찾아온 것은 경찰견을 대동한 남자였다.

       그는 농장 주인이 짠 루트를 돌아다녀 봤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적어도 약과 관련된 부분은 말이다.

         

       농장 주인은 그의 보고를 듣고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이내 더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꽤 많이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다음 온 보고는 불법체류자들이었다.

       그들은 얼마 전 농장 주인이 팔아넘겼던 곳을 몰래몰래 관찰하고 왔는데-

         

       “…거기 조금 이상했습니다.”

         

       “농작물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데, 뽑았다가 다시 심은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어요. 흙 촉촉하고 마르지 않았고, 흙이 한 번 뒤집혔다가 나왔다. 그런 것 같습니다.”

         

       “냄새가 났어요. 땅속에 있는 흙냄새.”

         

       “거기 심어진 작물들, 상태 좋았습니다. 따로 관리합니까?”

         

       “약간 쓸린 자국 같은 것? 있었어요. 망가진 농작물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좀 수상했다.

       하지만 수상한 정도이지, 엄청 이상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농장 주인은 그들의 보고를 ‘조금 의심이 가긴 하네.’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대로 넘겼다.

         

       아니, 넘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우리가 요정을 봤다니까?!”

         

       …숲에 다녀온 이들이, 이상한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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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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