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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3

    -쿵!, 쿵!, 쿵!

    “루크, 이 문 열어봐! 제발!”

    고든과 서드에 의해 강제로 개문된 엔진실에 들어서자마자 도로 닫혀버린 문을, 시에나는 계속해서 내리쳤다.

    그러자 그 모습을 참다못한 고든이 한마디를 꺼냈다.

    “이봐,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되잖아. 매뉴얼좀 읽게 조용히좀 해주지 않겠어? 안그래도 어두워서 글자가 잘 안보이는데 말이야. 아, 이건 선글라스 때문인가. 하하하.”

    그렇게 실없는 농담이나 하고 있는 고든에게, 시에나는 곧장 그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이에요? ”

    “무슨 짓이냐니?”

    “저런 상황에 11살짜리 여자애 하나만 툭 던져놓고 어른들은 여기서 이러고 있는게 말이 되는 짓이냐고요!”

    “말을 좀 이상하게 하는군.”

    그녀는 자신을 마치 언데드로 가득한 생지옥에 무력한 어린아이 하나만 던져놓고 도망쳐온 아동학대범처럼 말하고 있었는데, 사실을 따지고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합리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건 그냥 어린이가 아니라. 공간적으로 격리된 잠금장치를 손도 대지 않고 부수고, 워프중인 열차로 들이박을 줄 아는 11살이잖아.”

    심지어 각종 정보 수집능력과 계획 수립능력도 뛰어나고, 개인적인 전투기량 역시 수준급이며, 상황 판단능력도 훌륭하다.

    저걸 일반적인 어린이처럼 말하면, 솔직히 좀 억울하지않을까?

    “게다가, 그 아이에겐 나름의 정당성도 있잖나.”

    고든은, 이미 루크가 어디에서 나온 존재이고,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생명체인지 대강 예상하고 있었다.

    과거, 그 아이의 양어머니인 예르나와 함께 어떤 시설을 습격하여 보았던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의 반응을 살핀 시에나는 고든의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거칠게 몰아붙이며 말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군요.”

    “새삼 놀랄 일도 아니않아? 이쯤되면 너도 짐작하고 있었을텐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오늘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루크의 과거사가 일반적이지 않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애당초, 예르나에게 루크의 과거를 추측해 말해줬던 게 바로 그녀이기도 했고.

    하지만 역시나 루크의 과거에 대해 디테일한 추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는 걸 말해요. 당장.”

    “이봐, 일단 좀 진정하라고. 일단 아는 걸 말 해줄테니까.”

    고든의 대답에 시에나는 그제야 고든의 코트를 잡은 손을 놓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에 고든은 구겨진 코트를 손으로 털어 주름을 펴면서 말을 이었다.

    “한 시설에서 그 아이의 실험에 관한 문서를 봤어. 꽤나 흥미롭더군. 연구가 ‘니드호그’와 연관되어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무지막지한 생체병기와 관련된 것이었겠지. 만약 저 아이에게 실행되었던 실험이 그 실험과 관련된 거라고하면……. 저 아이의 설명하기 어려운 힘들도 어느정도 납득이 가겠지?”

    “……생체 실험.”

    “그래. 그러면 그런 실험을 뭐, 혼자서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아마 실험을 한 마법사도 있을 것이고, 그 마법사는 아마 저 아이를 ‘샘플’이라고 부르는 저 녀석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결국 루크의 과거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큰 틀은 다르지 않았다.

    실험을 한 녀석이 굉장히 이상한 취향을 가진 대부호에서, 굉장히 이상한 목적을 가진 대부호로 바뀌었을 뿐.

    이어 고든은 주머니에서 궐련형 마력초 하나를 꺼내 입가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네가 나서는 것이 정말 그 아이를 돕는 걸까? 복수는 나쁘니까?”

    고든은 과거 특수상황팀을 이끌며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희생되어가던 피해자의 모습을 많이 보아왔었다.

    만일 그 상황에서 피해자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의 그녀와 같은 행동을 하고 싶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의지를 그는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정의가 아닐까.

    하지만 시에나는 그런 고든을 향해 강하게 외쳤다.

    “그래서 더 안되는 거라고요!”

    경찰 아카데미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사적제제가 옳지 않은 이유’에 대해 들어온 시에나이긴 하지만, 솔직히 복수라는 행위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법이 닿지 않는 상황에선 복수는 나름대로 괜찮은 해결책이니까.

    스스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면, 복수도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물론, 법이 무용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법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할 사회적 규범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세상에 법의 허점을 노리고 독사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잘못된 법을 개정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것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아이가 직접 손에 칼을 쥐고 누군가를 죽여버리는 게, 감정에 앞서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게 정의일리 없다.

    “당신은 아이가 한 사람을 죽이는 게,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정말 올바른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법적으로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힘이 강하다고해서 마음까지 강한 것이 아니고, 적을 죽인다고 해서 근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복수는 끝이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운 시작도 아니다.

    복수의 과실은 비록 탐스러워보일지언정, 그 맛 또한 달콤할것이라 확신해선 안된다.

    “그럴바엔, 차라리 제가…!”

    그 순간, 고든은 현실을 내뱉었다.

    “그러면 어쩔거지? 지금 그 아이가 간단히 열어젖힌 저 문 하나도 열지 못하면서? 거기에 있었으면 도움이 됐을 거다?”

    “…….”

    -후우.

    그는 폐에 쌓인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말을 이었다.

    “날 아무리 납득시키려 해봤자, 그 문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여기서 못나가. 그리고 우리가 그 문을 여는 유일한 방법은 워프를 끝내는거고. 그러니까 그만하고 차라리 여기와서 우릴 도와 비상정지 주문 매뉴얼이나 좀 해석하지그래?”

    “……좋아요.”

    결국 시에나는 그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은 언제나 현실의 벽 앞에 가로막히기 마련이니까.

    —–

    그 무렵, 식생칸.

    루크는 이미, 대부분의 언데드를 무력화시킨 뒤였다.

    세이어는 바닥에 실 끊어진 인형처럼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호오, 이건 꽤나 인상적인데.”

    워프트레인은 보통 한칸에 15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운송수단이고, 꼬리 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이동하며 약 20%의 인원들이 언데드화 하였으니 못해도 수백명은 되는 물량이었을 터.

    헌데 그걸 별다른 전조도, 움직임도 없이 단번에 처리해버리다니…….

    “과연. 그 힘이 바로 인형사가 우리에게서 찬탈해간 권능인가?”

    사실, 그에게 이 힘은 굉장히 익숙했다.

    그것은 이미 한 적하장의 의식으로 잠시나마 목도하기도 했고, 잠깐이지만 손에 넣었던 힘이기도 했으니까.

    정작 죽음을 확보하지 못한 적하장의 의식 이후 그 권능이 과연 누구의 손에 들어갔으려나 했더니……

    세이어는 재미있다는 듯 안경을 고쳐쓰며 루크의 왼손 약지에 채워진 반지를 보고 눈을 빛냈다.

    역시나 거긴가.

    “좋아, 우리 거래하자. 네가 반지를 내게 돌려주면, 나는 너와 네 친구들을 건드리지 않을게. 어때?”

    “내가 대체 왜 그래야하지? 그냥 널 죽이면 간단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데.”

    루크는 시가르마타와의 계약이 없었더라도 그와 어떤 거래도 응할 생각이 없었다.

    그 입에 레니에와 관련된 단어를 올린 순간부터, 그의 최후는 이미 생각해둔 상태였으니까.

    애초에, 흑마법사의 제안따위를 믿을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러면서, 루크는 계약이 끼워진 손을 쥐며 해방했던 권능을 갈무리했다.

    ‘그나저나, 역시 그리 간단히 끝낼 순 없었나.’

    레니에의 ‘영원’의 개념과 성질은 다르지만 시가르마타의 권능또한 ‘죽음’의 개념을 이룬 신성이기에, 기전은 다르더라도 언데드에게 작용하는 결과 자체는 동일했다.

    따라서 반지에 담긴 그녀의 기백을 조금 풀어놓기만 해도, 죽음을 거부하고 움직이고 있는 시체따윈 전부 본래 주어졌어야 할 죽음의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힘도 결국 만능은 아니다.

    결국 세이어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강한 권능을 끌어낼 수는 없었으니까.

    레니에의 신격인 ‘생명’이 깃든 신성과는 달리, 시가르마타의 ‘죽음’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생명과는 달리, 죽음은 모두에게 오직 공평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강한 출력을 흘렸다간, 기껏 엔진실로 보내둔 시에나와 서드, 고든도 위험해졌겠지.

    허나, 이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죽음 권능따위 없어도, 사역마 없는 흑마법사 하나쯤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신경이 쓰이는 건, 그 권능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 저 로브 쓴 형체…….

    서드가 한차례 이야기했던 ‘술자’였다.

    루크는 그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키는 130 초중반 정도로, 꽤 작은 편이다.

    다만 아직 종족을 알 수는 없으니 키가 작다고해서 섣불리 어린아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리라.

    몸이 얇은 걸 보면, 순수 드워프일 가능성은 적겠지만.

    성별은 알 수 없다.

    모든 신체적 특징이 은폐용 로브에 가려져 추측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만 로브 밖으로 빠져나온 머리카락이 조금 길기는 했으나, 머리를 자른 적 없는 남성이라고 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마나의 형상은, 조금 특이하다.

    변형되지 않은 순수형태의 마나가 심장을 비롯한 모든 장기에 일정하게 퍼져있는 형태.

    이는, 부족한 마나를 충당하기 위한 생체배터리로의 역할을 위해 형성된 마나패턴이었다.

    그외의 특징은, 발목에 채워진 구속구다.

    과연, 저 구속구의 영향으로 세이어의 명령을 통해 제어되는 건가?

    그렇게 루크가 그 술자에 대해 분석하는 사이, 세이어는 ‘술자’를 내세우며 한걸음 물러섰다.

    “으음, 조금 아쉽네. 오랜만에 조금은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으려나 했더니만…….”

    세이어는 거래가 파토난 것이 진심으로 아쉬운 듯 안타까워했다.

    “흑마법사가 이런 말을 하기엔 좀 뭐하지만, 사실 강제로 하는 건 취향이 아니란 말이지.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찌어찌 제가 약속한 시간을 맞췄네요…….
    다행입니다.

    그럼 내일도 뵐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보죠.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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