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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3

        

       “뭐? 요정?”

         

       요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그래! 요정이 있었다니까! 내가 똑똑히 봤어. 날개 달린 자그마한 인간이 날아다니고 있었다고!”

         

       “날개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지고 어? 말도 했다고! 믿어져? 말을 했단 말이야!”

         

       당연하겠지만 농장 주인의 반응은…

         

       “…반짝이는 가루가 날개에서 떨어졌다고? 혹시 숲에서 반짝이는 가루를 코로 흡입을 한 게 아니고?”

         

       “이 쌔시 레드넥(Sassy Redneck) 새끼야! 진짜 봤다고!”

         

       …숲에 다녀온 이들이 단체로 약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리라.

       숲에 갔다 오더니 대뜸 요정을 봤다고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게다가 봤다는 요정도 흉측하거나 기괴한 요정이라면 또 몰라.

       어디 아침에 하던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일행과 함께 사악한 해적을 물리치는 깜찍한 요정 같은 것을 봤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믿음이나 가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약을 하고 환각을 보았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숲에 무슨 환각 물질이 있어서 단체로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도 곧 거두어졌다.

         

       요정을 봤다고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거, 진짜…?”

         

       한두 사람이 본 것이라면 모르되, 숲에 갔던 사람들 전원이 똑같은 묘사를 한다.

       요정을 본 것이 환각이라고 그냥 생각하고 싶어도, 이쯤 되면-

         

       “…오, 빌어먹을 숲이 문제야. 제기랄….”

         

       농장 주인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숲.

       숲이 문제였다고.

       항상 볼 때마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저 숲이 문제였다고 말이다.

         

       ‘어쩐지, 내 동물적인 육감이 경고하던 것이었군.’

         

       숲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래 걸리진 않았다.

         

       평소에도 숲을 꺼림칙하게 여겨왔었고, 저 빌어먹을 숲을 베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저 숲을 볼 때마다 느낀 감정이 단순히 나약해서 그런 것도, 다락방에 올라가기 싫어하는 어린 애새끼들 같은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동물적인 감각이 경고를 보낸 것으로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다 딱딱 맞아들어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농장 주인은 저 숲이 문제라는 사실을 거의 결론짓고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행동이 뭐냐고?

         

       간단했다.

         

       숲을 밀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 알 바가 아니고, 그냥 일단 저 숲을 밀어버리고 시작하자는 단순 무식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결론이었다.

         

       농장 주인은 결론을 내리자마자 평소 친분을 가졌던 농부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숲을 밀어버리는 데 도움이 될만한 중장비를 가진 농부들에게는 기계를 가지고 농장으로 와달라고 부탁했고, 중장비가 없는 농부들에게는 전기톱을 제공하며 나무를 베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그걸로도 부족해 아는 공무원에게 숲에 불을 지르면 안 되냐고 청탁했다가 단호하게 거절당하기까지 했으니- 농장 주인이 얼마나 숲을 밀어버리는데 진심인지는 말이 필요 없으리라.

         

       그렇게 기계와 사람이 모였다.

         

       부르르릉.

         

       어마어마한 크기의 타이어를 여러 개 달고 있는 벌목 기계가 움직인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기름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기계에서 풀풀 풍기고, 투박하고 커다란 크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와아앙-!

         

       집게가 있어야 하는 위치에 거대한 전기톱이 달린 기계.

       타이어 대신에 거미 다리 같은 것으로 움직이는 기계.

       벌목꾼이 일반적으로는 다룰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전기톱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양산형 외골격 보조장치까지.

         

       사람과 기계가 숲을 밀어버리기 위해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들에 의해서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

         

       하지만.

         

       [ 사악한 인간들! 이게 무슨 짓이야! ]

         

       그들이 숲을 파괴하기 바로 직전.

       숲에서 튀어나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반짝반짝 빛을 내는 자그마한 무언가였다.

       한낮임에도 묘하게 반짝거리며 사람의 시선을 끌었고, 자그마한 날개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날개 아래에서는 반짝이는 가루가 아름답게 쏟아져 내렸고, 자그마한 날개보다도 큰 몸을 무리 없이 허공에 띄우고 있었다.

         

       “요정…?”

       

       그래.

       그것은 요정이었다.

         

       귀여운 소녀 모습의 아주 자그마한 요정.

       사람들이 페어리(Fairy)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요정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 이 악당들! 당장 나쁜 짓을 멈춰! ]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요정에 모두가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전기톱을 들고 있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시동을 꺼버렸으며, 앞으로 잘 나아가던 벌목 기계는 거칠게 당겨진 브레이크에 멈추어 섰다. 말뚝과 드릴을 달고 앞으로 나아가던 거미 기계 역시 얌전히 다리를 접었다.

         

       “…이건 또 뭐야? 내가 지금, 어.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제기랄.”

         

       요정….

       요정…?

         

       집에서 마트에서 사 온 공주 드레스를 입고 뛰어다니는 딸도 아니고.

       이 나이에 요정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줄이야…?

         

       숲으로 진격하던 이들은 망연자실한 채 멈춰서서 요정을 바라보았다.

         

       …기분 탓일까?

       왠지 저 요정이 이들의 시선에 움찔한 것 같기도 한데…

         

       [ 숲을 파괴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야! 너는 지금 이 숲에 있는 수많은 동물 친구들과 식물 친구들을 해치려고 하고 있다구! ]

         

       …아닌가?

       …아닌 것 같다.

         

       저렇게 당당하게- 아니, 똑 부러지게- 아니.

       음…이 자리에 모여있는 상남자들은 시켜도 하지 못 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면, 저 요정이 그들의 시선에 움츠러들었다는 것은 착각이 분명하리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쓸 정도라면 저런 말을 할 수 없지 않겠는가.

         

       [ 이 숲에는 수많은 친구가 있어! 그 친구들이 지금 너희 악당들이 오는 소리를 듣고 벌벌 떨고 있단 말이야! 이 숲은 모두의 것인데! 너희는 악당이야!!! ]

         

       요정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당찬 태도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훈계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으며, 어린아이들을 주 시청자로 삼는 애니메이션에서 볼법한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느낌의 말이기도 했다.

         

       “수많은 친구….”

         

       “동물 친구, 식물 친구…”

         

       “…오, 신이시여. 내가 뭘 듣고 있는 거지?”

         

       물론 아저씨들이 듣기에는 너무 낯간지러운 느낌이기는 했지만…

       뭐 그게 무슨 상관일까.

       적어도 저 깜찍한 요정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는 어울렸는데 말이다.

         

       [ 이 숲에 사는 다람쥐 가족은 너희가 오는 소리 때문에 놀라서 체해버렸어! 먹던 아침도 그대로 내팽개치고 나무 위로 도망갔다구! 얼마나 급하게 올라갔는지 새끼 다람쥐가 삐끗해서 나무에서 떨어질 뻔하기까지 했어! 이게 다 너희 악당들 때문이야! ]

         

       “다람쥐….”

         

       [ 게다가 두더지 아저씨는 또 어떻고! 그 아저씨는 양지바른 곳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너희 때문에 깨버리고 말았어! 그 아저씨는 지금 예정에도 없는 땅파기를 하면서 저 멀리 도망을 가고 있어! 너희는 그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해! ]

         

       “두더지….”

         

       [ 용맹한 늑대의 피가 흐르는 울프독 언니도, 그 늑대에게 반해서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오빠도 너희 때문에 놀랐어! 만약 너희가 숲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너희는 이 커플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거야! 울프독 언니가 늑대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너희를 혼내줄 수도 있어! ]

         

       요정은 숲을 파괴하려는 악당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호소 같기도 했고, 훈계 같기도 했다.

       요정은 숲에 사는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잘못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로 저 숲을 파괴한 자신들이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괴롭히는 어른이라니.

       누가 봐도 악당 느낌이다.

         

       “울프독…아니 잠깐만. 울프독이랑 늑대는 죽이는 게 맞지 않나?”

         

       [ 뭐?! 지금 죽인다고 했어?! 이 나쁜 악당이! ]

         

       …물론 그 ‘동물 친구’ 중에는 좀 위험해 보이는 게 있기는 했는데…

       어쨌든 요정이 하는 말만 들어보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악당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거 벌목해도 되는 거 맞아?”

         

       “쓰읍.”

         

       당연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숲을 밀어버리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물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감수성이 풍부하다거나- 요정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숲을 파괴하는 것은 나쁜 일이야! 그리고 우린 나쁜 놈이고!’라면서 숲을 못 베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저 요정의 말에 딱히 공감하지도 않았으며, 저 숲에 사는- 요정들이 말한 ‘동물 친구들’에게 동정심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작업을 멈춘 것은 저 요정의 존재 그 자체.

         

       이능과 관련이 되지 않았다면 자연적으로는 존재하지는 못할, 저 특이한 무언가가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저거 무시하고 지나가면 우리 공격하는 거 아냐?”

         

       “동물 친구 어쩌고 했는데…무슨 동물을 방사능으로 변이시켜서 괴물로 만들어서 우리를 덮치게 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저기 외계인이 만들어낸 비밀 실험 시설이 있을지도 모르지. 저 요정은 홀로그램이고, 우리가 저 숲에 들어가는 순간 첨단 무기가 우리의 머리통을 날려버릴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저주와 관련된 물건일 수도 있지. 사악한 샤먼이 남긴 물건에 귀신이 깃들어서 저런 형태로 나타난 걸 수도 있다고.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도 있어. 끔찍한 일이지…”

         

       그렇게 서서히 ‘적어도 숲을 밀어버리는 건 그만하는 게 좋겠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기계를 몰고 온 이들은 방향을 돌려 숲에서 멀어지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요 며칠 사이 기묘하고 무서운 일을 겪었으며, 자신이 겪은 경험을 말해도 ‘약을 한 것이 분명하다.’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의심받아 억울해했던 사람.

         

       농장 주인이었다.

         

       “요정, 동물 친구들, 식물 친구들…?”

         

       퍼즐이.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가 겪었던 일들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있던 것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unfuckingbelievable holy shit! 저 요정이 문제였군!”

         

       …빌어먹을 일을 겪게 만든 범인이 바로 저 요정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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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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