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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4

   루시 알른을 따라 아서가 도착한 곳은 파트란 공작 가문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전쟁이 끝난 것이 확실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트란의 마법사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서는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는 듯 눈에 불을 켠 이들을 살피며 의문을 품었다.

   

   대체 왜들 저러고 있는 거지? 무슨 일이 도사리고 있기에 저토록 기대감이 가득 찬 눈으로 숲을 바라본단 말인가.

   

   – 과연. 요정여왕께서 재밌는 거래를 하셨군.

   ‘알아듣게 설명해라.’

   – 공손하게 말해봐라. 그럼 기꺼이.

   

   건수 하나 잡았다고 조각이 어깨를 피려 하자 아서는 그를 내버려 둔 채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야. 멀리서도 찐따냄새가 풀풀 나지?”

   

   그렇게 도착한 천막의 앞에서 아서는 다리를 붙잡고서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공포를 느꼈다.

   

   귓가를 파고드는 원망 어린 목소리. 자신을 쳐다보는 이가 없단 걸 알고 있음에도 피부에 닿는 멸시의 시선들. 빗물 속에 뒤섞이며 들리던 함께 죽는 편이 나았을 거란 말. 그리고.

   

   “크헉?!”

   

   정확히 명치를 노리고서 날아든 타격에 배를 움켜쥔 아서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다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갤 치켜들었다.

   

   또 루시 알른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것이라 생각한 아서였지만 그녀는 이미 등을 돌린 채 천막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왔느냐. 기다리고 있었…”

   “찐따새끼가 힘을 얻었다고 나대는 꼴이 한심하네♡ 그렇게 자랑질을 하고 싶었어?♡”

   “갑자기 무슨 말을.”

   “푸흐흐흫♡ 지금도 이러면 나중에 동정 뗐을 때는 어떨지♡ 그 땐 미리 알려줄래?♡ 네가 얼마나 찐따 같은지 조목조목 짚을 수 있게 말야!♡”

   

   대뜸 쳐들어온 루시의 비난에 당혹스러워 하던 에르기누스는 입구 너머로 보이는 아서를 발견하고는 웃음을 흘렸다.

   

   “아. 이런. 미안하군. 고의는 아니었다. 격이 오르고 얼마 되지 않아 서툴렀을 뿐.”

   

   고개를 숙인 에르기누스가 무언가를 하자 아서의 몸을 타고 오르던 무언가가 사라진다. 속박에서 풀려난 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식은땀을 닦아냈다.

   

   – 어둠의 권능이다. 이전에 한 번 당한 탓에 쉬이 네 몸에 침범한 걸 테지.

   ‘…어제의 악몽을 말하는 건가.’

   – 버텨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이미 미쳐버렸을 터. 아마 네게 주어진 몇 가지 축복이…

   

   신화 시대의 인물 중 하나인 솔라딘의 조각이 하는 말엔 그만한 무게감이 있었지만 아서는 칭찬을 순수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눈앞의 루시 알른은 뭐냐. 그 누구보다 앞에 서서 악신을 마주했을 저 꼬맹이는 왜 멀쩡할 수 있는 건가.

   

   주신의 사도이기 때문에? 아니. 반대겠지. 저 녀석이 신격을 얻은 에르기누스님을 앞에 두고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주신께서 루시 알른을 사도로 택한 거다.

   

   “솔라딘의 왕자시여.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를.”

   

   어느새 아서의 앞으로 온 에르기누스가 고개를 숙였다.

   

   “아뇨… 아니. 괜찮다. 루시 알른이 미리 대처해 준 덕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니.”

   “관용에 감사드립니다.”

   

   에르기누스의 주변에 넘실거리는 어둠이 보인다. 인간으로 시작해 신의 격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니.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군.

   

   그러고 보면 눈 앞의 대마법사도 신화 속의 등장인물이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나.

   

   “당신을 이 곳으로 부른 까닭은 당신의 옆을 따라다니는 조각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에 대해선 들었다. 옆에서 재잘대는 것 밖에 못하는 이 놈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작금의 당신께선 알지 못하는 여러 의미가 있긴 합니다만, 거기에 더해 이번 일의 보수로 한 가지 의미를 더 추가하려 합니다.”

   

   에르기누스가 손을 뻗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조각이 도주하려 했지만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허공에 떠오른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왕자님께선 정령마법에 대해 아십니까?”

   “동화 속에서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은 있다만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지?”

   “이 아이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거든요. 겸사겸사 낡은 부분을 좀 수정하고요.”

   – 자. 잠시 기다려 보십시오. 에르기누스님. 이 자는 정식적인 루트로 시련을 통과한 놈이 아닙니다. 과한 권한이 주어져서는.

   “말이 많구나.”

   

   일을 끝마치면 다시 찾아가겠단 말과 함께 에르기누스가 조각을 데려간 후 멀뚱히 그 광경을 보던 아서는 좀 더 공손하게 만들어달란 부탁도 할 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

   

   루시에게 대련 신청을 거부당한 프레이는 검성을 만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몰래 요정의 숲에 침투했다.

   

   정말 이 안에 검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설령 검성이 있다 쳐도 그녀를 찾아낼 방법은 없고, 심지어 숲의 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인 대책 없는 행동이었지만 프레이는 그런 걸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하고서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참 다행스러운 것은 숲의 요정들이 어제 자신들을 위해 검을 휘두르던 프레이를 기억했단 것이다.

   

   – 검성님?

   – 그 무서운 여성 분?

   – 알아! 저 안에 있어!

   – 따라 와!

   

   장난을 좋아할 뿐 타인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게 아닌 요정들은 기꺼이 프레이의 부탁을 들어줬다.

   

   “너 어떻게 들어온 거냐?”

   “잘.”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검성은 공터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언가 열이 받을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휘두르는 검은 여느 때보다 사나웠다.

   프레이가 평소에 휘두르는 것보다 더.

   

   “그래서 왜 온 건데?”

   “촤악! 하는 거 어떻게 하는 거야?”

   “촤악? 아아. 어둠을 베던 검 말하는 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프레이의 친구들이나 아버지조차 무슨 소릴 하는 거냐며 되물을 말이었지만 검성 유덴은 바로 프레이의 말을 이해했다.

   

   검의 재능이 비슷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둘의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이는 자신의 말이 통했단 사실에 신이 나 고갤 주억였다.

   

   “그거 엄청 대단했어. 나도 하고 싶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따지자면 검만으로 마법을 펼치는 행위라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해내서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유덴이 나불나불거렸지만 프레이는 이미 그녀의 말을 듣고 잇지 않았다.

   

   검으로 마법을 펼친다.

   

   음. 으으음. 마법이라.

   

   얼빵 조이랑 허접 왕자님이 쓰는 그거지.

   

   마력으로 휘리릭하면 되는 거잖아.

   

   그걸 검으로?

   

   고갤 갸웃하던 프레이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대단한 마법진을 검으로 그려보았지만 바라는 걸 이루진 못했다.

   

   “안 되는데?”

   “당연히 안 되지. 마법이란 말은 비유라고. 비유. 비유 몰라?”

   “알아. 검성님보고 아줌마같다고 하는 거잖아.”

   “…그건 비유가 아냐!”

   “아냐? 우움. 그럼 비유가 뭐야?”

   

   악의 하나 없이 순수한 의문을 내뱉는 프레이의 모습에 유덴이 이마를 짚는다.

   

   어떤 의미로는 이 꼬맹이가 알른 영애보다도 악질이야. 악의 없이 상대의 속을 긇어 놓으니까 제대로 화를 낼 수도 없잖아. 빌어먹을.

   

   “너는 멍청해서 복잡하게 설명해도 못 알아먹을 테니까 내 식대로 설명해줄게.”

   “응! 나 바보야! 설명해줘!”

   “…하아아.”

   

   지난번에 놀아줄 때도 느낀거지만 이 녀석이랑 말싸움을 해봐야 못 이겨. 대충 설명해주고 넘기자. 몇 번 하다 보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겠지.

   

   “잘 봐. 촤악하고 검을 휘두르면 휘익하고 허공이 베이잖아.”

   

   유덴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허공이 베여나가며 섬짓한 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진다.

   

   “휘익하고 베이는 범위를 극한까지 좁히는 거야.”

   “좁혀? 왜? 검성님이 촤악! 하는 건 엄청 넓게 베였는데?”

   “나도 정확하겐 몰라. 예전에 루카 그 새끼한테 보여줬을 때 뭐랬더라? 집중된 일념이 현상에 닿았댔나? 아무튼 좁혀. 난 그렇게 했어.”

   

   좁힌다. 유덴에게 들은 말을 되새기던 프레이는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고갤 끄덕였다.

   

   음. 대충 이런 느낌이려나. 휘익. 프레이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높고 사나운 소리를 낸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휘두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유덴이 보기엔 달랐다. 진짜 저딴 설명으로 감을 잡았다고?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휘익.

   

   휙.

   

   휘.

   

   프레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점차 소리가 작아진다.

   

   허공이 베어나가며 지르던 비명이 희미해진다.

   

   감탄하면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유덴은 어느 순간 아예 소리가 사라지려는 것을 보고서 기겁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저 생각 없는 꼬맹이! 숲을 향해서 그걸 휘두르면 어쩌잔 거야! 그랬다간 기껏 자라난 숲이 개판이 되잖아!

   

   무음과 무음이 부딪힌다. 의념과 의념이 서로의 크기를 겨룬다. 눈 앞의 것을 베겠다는 마음이 자신의 크기가 더욱 크다고 소리친다.

   

   검이 닿지 않았음에도 닿은 것처럼 이루어지던 힘겨루기는 힘없는 소리와 함께 세상에서 흩어졌다.

   

   “으음. 이거 아냐. 좀 달라.”

   “야! 좀 조심해서 써! 나 아니었으면 숲이 잘려 나갈 뻔 했잖아!”

   “안 잘렸으니까 된 거 아냐?”

   “그런 의미가. 아아악! 진짜아아아!”

   “너무 화내지마. 검성님. 그럼 주름 늘어난대.”

   “내가 누구 때문에 이 난리를 치는 건데!”

   

   얼굴이 벌개져서는 버럭거리는 유덴을 당연하다는 듯 무시한 프레이는 하늘을 향해 다시금 검을 휘둘러보려다 자신의 앞에 떠오른 푸른 창을 보고서 고갤 갸웃했다.

   

   [무예의 신이 당신을 바라 봅니다.]

   

   그 푸른 창은 대지에 머무는 모든 무인이 간절하게 바랄 것이었지만, 프레이에겐 아니었다. 그녀는 손을 휘젓는 것으로 가뿐히 푸른 창을 지워버렸다.

   

   [무예의 신이.]

   “저리 가.”

   [무예…]

   “방해야.”

   [무…]

   “됐어. 그냥 무시할래.”

   

   *

   

   [무예의 신이 당신의 친구를 마주하길 바랍니다.]

   

   …응? 내 친구? 그걸 왜 나한테 말해? 그냥 그 녀석한테 가서 말을 걸면 되는 거잖아?

   

   무예의 신이 말을 거는 거라면 누구라도 환영할 텐…

   

   아. 프레이는 아니겠다. 그 녀석이라면 메시지를 읽어보지도 않을 거야.

   

   원래라면 공짜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나지만 무예의 신한테는 빚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특별히 움직여줄게.

   

   다음번에는 부디 보상과 함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안 그러면 반송할거에요.

   

   “무능 왕자님. 바보검사가 또 어떤 멍청한 짓을 하는지 알아요?”

   “글쎄다. 나는 오늘 그 녀석을 본 일이 없다만.”

   “으. 무능해.”

   “못 봤는데 어쩌란 거냐!”

   

   아서의 짜증을 한 귀로 흘리며 팔짱을 낀다. 으음. 그 바보 녀석이 갈만한 곳이라면.

   

   – 숲에 있대!

   – 다른 애들이 안내해줬대!

   – 무서운 여자랑 같이 있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요정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즉각 대답이 돌아왔다.

   

   무서운 여자라면 검성이겠지?

   

   좋아. 다시 숲 안 쪽으로 가보자. 신격한테 은혜를 쌓아 둘 기회는 흔하지 않다고!

   

   어느 정도 기력이 돌아왔기에 의욕을 잔뜩 담아 몸을 튼 나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이를 발견하곤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어라? 공사가 다망하신 1왕자님께서 왜 여기에?

   

   1왕비가 정령마법 때문에 부른 거려나?

   

   그럼 모른 채 하고 슬쩍 옆으로 도망을.

   

   <네게로 오는 것 같다만.>

   ‘1왕자님이 왜 저한테 와요?! 저 사람 저 싫어한다고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서 기겁하며 고갤 돌리자 훌쩍 가까워진 1왕자와 그 호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진짜야?! 저 인간이 왜 나한테 와!?

   

   지난번에 던전도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보복을 하러 온 건가?!

   

   치! 뭐. 좋아! 덤벼봐! 내가 다치면 내 주변사람들이 가만 있지 않을 걸!

   

   어깨를 피며 당당한 체를 하던 나는 내 앞에 정지한 1왕자를 마주하고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형님. 여기는 어쩐 일로.”

   “할 일이 있어 왔다. 아우야.”

   “할 일이 루시 알른과 관계되어 있습니까?”

   “그래.”

   

   뭐. 뭔데! 빨리 말해! 입술 달짝이면서 마음 졸이게 만들지 말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알른 영애. 여신의 재현이라 불릴만큼 경외스러운 미는 날이 지날수록 더 짙어져 가는 군요.”

   

   …

   

   이 새끼 무슨 이상한 저주라도 걸린 거야?

   

   정화!

   

   “정순한 신성이 따스해서 좋긴 합니다만. 이걸 왜 제게?”

   

   저주가 아냐?!

   

   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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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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