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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4

    세이어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술자’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앗-!

    그는 앞으로 크게 도약하듯 돌진했다.

    신체로 마나를 제어한다기보단, 마나가 신체를 제어하는 이질적인 움직임.

    신체의 근육기억을 토대로 구속구가 명령을 제어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작은 신체에 꾸역꾸역 뭉쳐놓은 마나의 크기만큼, 그의 움직임은 매우 빨랐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빠르게 접근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근접 전투에 대한 이해도 또한 상당할듯 보였다.

    하지만, 너무 직선적이야.

    루크는 즉시 그의 경로에 은밀하게 접촉시 발동하는 석화의 함정을 설치했다.

    그러나 그 순간.

    -탓-!

    그의 움직임이 일순 달라졌다.

    직선적이었던 경로가 순식간에 부딪힌 듯 비틀렸다.

    호오, 함정에 반응한 건가?

    직선적인 움직임은 단순히 방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속임수였던 모양이다.

    역시, 단순한 생체배터리는 아니었던건가.

    -슈슉-!

    그렇게 함정을 회피함과 동시에, 그는 로브 속에서 소형 화살촉의 형태로 빚어진 마나 애로우들을 흩뿌렸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단순한 기초마법.

    이런 기초마법 정도는 루크의 수준이라면 보는 즉시 해체하여 소멸시켜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법에 담긴 마나의 크기는 그렇게까지 단순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마법의 100배 이상에 가까운 고밀집상태.

    대체 누가 마나를 아낄 줄 모르고 1서클의 기초마법인 마나애로우 따위에 그만한 마나를 때려박느냐 싶겠지만, 이런 상항에선 꽤나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격상의 서클을 지닌 상대에게 정직한 마법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상대에 의해 해체된 마법은 오히려 자신을 해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하지만, 저렇게 단순한 마법에도 무식하게 많은 양의 마나를 담게 되면, 디스펠에 걸리는 시간을 동일한 마나를 소모한 대마법 수준으로 지연시킬 수 있다.

    그렇게되면 마나애로우처럼 빠르게 쏘아내고 끝내는 마법은 사실상 디스펠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마법이란 염원과 지식, 그리고 의지를 통해 발현되는 현상이며, 기본적으로 마나를 들이부으면 더욱 효과가 강해진다.

    실제로 그가 쏘아낸 마나애로우는 강도, 날카로움, 속도 등… 확실히 일반적인 마나 애로우에 비하면 그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 마법에 쓰인 마나가 커다란 만큼, 그 탄막은 그리 촘촘하지 못했다.

    루크는 고개를 살짝 틀어내는 간단하고 단순한 동작만으로 그 마나애로우를 피해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공세가 그걸로 끝나진 않았다.

    후속으로 준비된 마법은 없는지, 날아오는 것은 그의 몸이었다.

    역시 육탄전으로 이어갈 생각인가.

    하긴, 기껏해야 1서클도 간신이 될까말까한 그로서는 마법만으론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육탄전만이 최선이겠지.

    또 다시 아까 전과 같은 마나애로우를 쏘아내려면 이미 진작부터 준비하고 구현시켜두어야 했다.

    마치 아무리 물탱크에 담긴 물의 양이 많아도 수도꼭지를 틀어 나오는 속도 이상으로 물을 받아낼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신체에 마나가 많이 담겨있다해도 신체가 마나를 내보일 수 있는 속도는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체 내부의 마나를 조작하는 신체강화의 마법은 이야기가 다르다.

    신체강화의 마법은 마나를 신체 외부로 구현하지 않기 때문에, 지닌 마나의 크기가 곧 명확한 힘의 크기로 이어지니까.

    결국 그로서는 이러나저러나 육탄전이 가장 승산이 높은 전투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루크 또한 그런 상황에 대한 대처는 쌓일대로 쌓인 대마법사다.

    아무리 오늘 자신이 마나를 여기저기에 뿌려대고 다니느라 지쳐있다지만, 이런 단순한 상황조차 대처가 안되어선 대마법사를 자칭할 수 없겠지.

    루크는 자세를 다잡기도 전에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그의 발차기를 팔을 이용해 막아내었다.

    -팡–!!

    단순한 만큼 화끈한 위력.

    마나의 크기 만큼은 대마법사에 필적할 상대였기에, 그 충격량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 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막은 팔 채로 부러지고 말았겠지.

    그러나 루크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비록 복제되어 열화되었다곤하나, 명색이 불사의 그릇.

    겨우 이정도 공격으로 깨어질 리는 없겠지.

    -꾸욱…!

    “…….”

    이어, 루크는 팔에 막힌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발차기는 공격에 체중과 회전을 최대한 실을 수 있어 가장 강력한 기술이지만, 동시에 막혔을 때는 그 실패의 리스크가 꽤 큰 기술이다.

    발차기를 하는 도중에 모든 신체의 밸런스가 한 점에 집중된 상태이기에, 그 밸런스가 상대에게 붙잡히게 되면 치명적이니까.

    이대로 발목에 손을 내리치면, 그의 발목을 부러트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루크의 팔이 그의 발목에 내려쳐지기 직전, 그의 몸이 공중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슉-!

    잡힌 발목을 중심으로 공중에서 다시 회전하여, 그 힘으로 루크의 악력을 풀어냄과 동시에 다른 발로 두번째 공격을 이어온 것이다.

    루크는 그 공격또한 잡아내려 했다가, 발 끝에 뭉쳐지는 희미한 마나의 모습에 급히 고개를 틀었다.

    -후웅–!

    눈 앞을 스쳐가는 희미한 마나의 궤적은, 그것이 그가 숨겨두었던 마지막 마나애로우였음을 깨달았다.

    과연, 찰나의 육탄전 중에도 몰래 마나애로우를 빚어내고 있었던 건가?

    -치이익….

    그렇게 루크와 작은 술자는 그렇게 다시 거리를 벌렸다.

    마치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제자리를 되찾은 것 같은 순간.

    “…….”

    루크의 왼쪽 뺨에 붉은 실선이 드러났다.

    흠, 스쳤나.

    비록 피가 흘러내리지도 않을 정도로 매우 얕은 상처이고, 잠깐 숨을 고르는 순간에 이미 흔적도 없이 아물었으니 신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지만, 공격을 허용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상대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푸슉…!

    한박자 늦은 타이밍에, 그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왼쪽 눈가를 베인 상처에서, 피와 함께 마나가 새어나가고 있었던 탓이다.

    그는 조용히 루크를 바라보았고, 루크는 다른 손에 숨겨진 ‘마나 애로우’를 마치 보여주듯 내던졌다.

    그가 두번째 발차기에 섞은 마나 애로우였다.

    꽤나 창의적인 방식이었다만, 그 뿐이다.

    의외긴 하나, 딱히 간파하기 어려운 장난은 아니었으니까.

    “…….”

    “…….”

    지극히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경합은, 서로에게 많은 생각을 남긴 듯 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왼쪽 얼굴을 부여잡으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로브의 손상 탓인지, 루크는 이제 그의 맨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크는 그의 모습에서 곧 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알겠군. 왜 서드가 네게 ‘친밀감’을 느낀건지.”

    그의 얼굴은 며칠 전, 메를린의 액자에서 보았던 아이들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옛 메를린의 ‘인형’중 하나인가…….’

    자신을 돌보지 않는 방식의 저돌적인 공세, 전투의 지속보다는 일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맹격, 퇴각을 고려하지 않는 고집적인 맹목.

    이는 과거의 서드에게서도 보였던 특징이다.

    과연, 같은 스승을 두었다는 건가.

    예상컨대, 루체스트는 ‘처분’되어야 했을 아이들을 회수하여 저런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부모에게 버려져 살수로 키워진 아이들이, 결국 저런 최후를 맞이하고 말다니.

    이걸 보면, 메를린도 결코 선한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안식을 안겨주는 것 말고는.

    그렇게 심장의 서클을 회전시키기 시작한 루크는 이내, 이상함을 느끼고 표정을 굳혔다.

    루크는 마치 투기장의 관객처럼 뒷짐을 쥔 채, 실없이 웃고 있는 세이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이어, 저 아이. 어떻게 된거지?”

    “무슨 문제 있나?”

    마치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한 그의 반응에, 루크는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물음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 언데드가 아니잖아.”

    그러자 세이어는 그제야 알았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언데드라고 한 적 없어. 언데드여야 할 이유도 없잖아?”

    모두가 알다시피, 언데드는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하다.

    게다가 죽는 순간부터 기억을 유지하는 영혼과 세포 또한 소멸하기 때문에 점점 행동이 어눌해지고 망가진다.

    외부의 마나도 생각보다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일단 명목상으로나마 ‘살아있는’ 상태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오래된 기술이지. 노예화, 알고있지?”

    세이어는 그 아이의 목에 채워진 구속구를 드러내 보여주며 설명했다.

    아주 먼 과거, 노예가 합법이던 시절.

    노예화 마법의 원리는 그저 말을 듣지 않으면 강한 충격을 일으켜 말을 듣게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기술은 여러 문제가 많았다.

    일단 노예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첫번째, 딱히 채찍질보다 나을 것이 없는 주제에 비싼 가격이 두번째, 노예의 자살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세번째.

    그래서 새롭게 연구된 것이, 일종의 자아형 구속구를 이용해 신체의 신경을 온전히 대체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하면 노예의 몸을 전혀 상하게 하지 않고도, 자신에게 절대 거역하지 않는 편리한 노예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구속구에 기본자아가 투입되면서 ‘구속구’로서는 상당히 비싸졌지만…….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리빙아머’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합리적인 가격도 아니었다.

    뭐, 개발되자마자 마계전쟁이 끝나고 아린세이아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면서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아이처럼 괜찮은 성능의 생체배터리는 구하기 어렵단 말이지. 그렇게 오래 썼는데도 이정도라니까. 아, 그거 아나? 언데드에 하는 부패방지마법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쓰면 이렇게 오래 사용할 수도 있어. 물론 당사자는 고통스럽겠지만 말이야.”

    태연히 설명하는 세이어의 모습에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

    메를린의 사진이 찍혔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수십년.

    저 아이는 저 육신에 갇힌 채 강제 연명을 당하며, 계속해서 비밀 살수 겸 배터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루크는 주먹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흑마법사들은 늘 부족한 능력을 채우기 위해 추잡한 수단을 쓰는군.”

    “무슨 소리, 부하의 능력은 곧 나의 능력이나 마찬가지. 기업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결국 오늘도 약속을 지켰습니다.
    액션신은 좀 날려그려도 별로 티 안나는게 장점이네요.

    이 기세로 내일도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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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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