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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4

        

         

       농장 주인은 분노했다.

       요정의 깜찍한 모습에도, 귀여운 행동에도 그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겪은 억울함과 모든 수모가 저 요정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울컥한 농장 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전기톱의 손잡이를 콱 잡았다.

       하지만 전기톱을 쥐었을 때의 그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 순간, 그는 가출하려 했던 이성을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다.

       갑자기 이성이 돌아오면서 아차 싶었다.

         

       전기톱을 들고 숲으로 돌진을 한다고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전기톱을 들고 저 요정을 공격할 수도 없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파리를 어떻게 전기톱으로 죽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저 요정이 말한 것처럼 ‘동물 친구들’이 몰려왔을 때, 혼자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잘 싸우면 그가 왜 농장을 운영하고 있겠는가. 미군에 들어가서 굴렀겠지. 아니면 미국 연방국세청(IRS)에 들어가서 신나게 샷건을 갈겨대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작자들을 끌고 가는 일을 하던가 말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화나고 억울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농장 주인은 철수를 결정했다.

         

       부르르릉.

         

       …그런데 기분 탓일까?

         

       왠지 모르게 요정의 태도가 시무룩한 것 같기도, 몸이 축 늘어진 것 같기도 하다는 착각이 들었다.

         

       물론 그냥 착각이면 좋겠지만-

       만약 저 요정이 아쉬워한다면, 그들이 숲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 요정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사악하고 호전적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농장 주인이 철수하는 그 시각.

         

       한 호텔에서 얼굴이 새빨갛게 잘 익은 사람 하나가 펄떡이고 있었다.

         

       “으흑, 내가 왜 이런 대사를…. 그 애들 같은 포즈는 또 뭐고….”

         

       몸을 뒤틀기도 하고.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는 것도 싫은데, 그걸 많은 사람 앞에서어어어….”

         

       베개에 얼굴을 푸욱 파묻고 사정없이 호텔의 침대를 다리로 두들겨 패기도 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 * *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버리자 농장에 수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관심을 하는 이들 중에는 현대사회의 하이에나나 다름없는 이들도 있었다.

         

       기자.

         

       항상 특종에 목말라 있으며, 아주 먼 곳에서도 어떻게든 특종 냄새를 맡고는 몰려드는 그 존재들. 혼자 배불리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를 바라지만, 항상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필요할 때는 범법마저도 저지르는 그 작자들!

         

       “신이시여.”

         

       농장 주인은 저 기자라는 족속들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는 않았다. 직접 겪어본 적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평소에 황색언론이라고 불리는 타블로이드(tabloid)를 보면서 낄낄대며 즐겼던 입장이기에, 그들의 힘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냐고?

         

       ‘저 새끼들한테 잘못 걸리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정도?

         

       뭐 제대로 된 기자와 얽히는 것이라면 그리 피곤하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이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일에 제대로 된 기자가 얽힐 것이라고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이 흙이랑 풀밖에 안 보이는 농장으로 몸소 찾아올 정도로 엉덩이가 무거웠던 기자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

       …

       …

         

       『 농장에서 발견된 놀라운 미확인 생물체의 정체는?! 요정은 실존했다! 』

         

       그렇게 기사가 하나.

         

       『 대낮에 출몰한 요정! 농장주의 사악한 의식인가? 』

         

       둘.

         

       『 농장에서 혹사당했던 흑인들의 원한이 요정을 불러냈다! 』

         

       셋.

         

       『 독점) 요정이 나타난 농장, 창고에서 모세 6경을 발견. 사악하고 불길한 책의 힘? 』

         

       넷.

         

       『 불신자와 이교도. 그들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

         

       다섯.

         

       『 신종마약으로 탄생한 돌연변이들. 미국의 자연은 괜찮은가? 』

         

       …아니, 매우 많은 기사.

         

       농장 주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기사가 잔뜩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자극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개중에는 아예 이야기를 지어내 버리는 것들도 존재했다. 농장 주인이 평소에 많이 보았던, 그냥 자극적인 거 툭 던져놓고 나중에 아니라고 밝혀지면 ‘어 그래? 뭐 아닐 수도 있지. 뭐 그건 됐고, 그런 식상한 이야기 대신에 새롭고 자극적인 다른 이야기나 하자.’라는 반응을 보이는 패턴이었다.

         

       볼 때는 그렇게 행복하고 재미있었지만….

       그게 자신이 겪는 일이 되자 너무나도 억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농장 주인은 억울했다.

         

       그냥 열심히 농장을 운영했던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고, 기자 놈들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자신의 농장을 마구잡이로 물어뜯는 것도 꼴 보기가 싫다.

       흑주술 의식이니 흑마법이니 떠드는 것도 싫었고,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면서 저주받았니 뭐니 하는 것도 싫었다.

       흑인 어쩌고 하는 이야기도 정말로 듣기 싫었다. 게다가 인권 어쩌고 떠들면서 정말로 농장에 찾아온 흑인 무리를 상대해야 하니 정말로 싫었다. 옛날 남북전쟁 당시의 일을 들먹이면서 흑인 노예 어쩌고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시절이 언제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애초에 그 시절 농장에선 다 흑인을 쓰고 있었다고!’

         

       애초에 부려 먹을만해서 부려 먹은 게 뭐 문제란 말인가?

       그렇게 살기 싫었으면 애초부터 아메리카에서 태어나든가 했어야지.

         

       농장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인종차별적인 생각이었지만-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다.

       적어도 그의 주변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기 생각이 이상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면서 이때까지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그랬기에.

       그런 인종차별적인 기질이 깔려있었기에,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Fuck off! 여긴 목화 따윈 없다고!”

         

       농장 주인은 인권 어쩌고 소리치면서 난리를 치는 흑인에게 흑인을 비하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농장 주인 자신은 실수라고 여기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홧김에 나오기 힘든 그런 말이기도 했다.

         

       “뭐?! 목화?! 당신 지금 나한테 목화라고 했어?!”

       

       그렇게 농장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갑자기 인종차별 발언을 들은 흑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농장 주인을 바라보았다가 갑자기 열이 확 올라 농장 주인에게 주먹질했고, 농장 주인도 질 수 없다는 듯 흑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그리고 그 생생한 싸움의 현장을, 한 기자가 영상으로 담아내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그 영상에는 농장 주인이 했던 인종차별적인 말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요정을 녹화하기 위해 기기를 켜놨던 것이 다른 특종을 잡는 행운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농장 주인에게는 행운이 아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런 일 겪기 싫었으면, 행실을 자기가 똑바로 했으면 될 것을.

         

       그렇게 농장은 더더욱 북적이게 되었다.

         

       농장 주인에게는 비극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이봐요! 흑인 인권운동가에게 목화나 따라고 한 게 사실입니까?!”

         

       “당신 제정신이야?!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인종차별을 해?! 너 같은 이웃 따위는 필요 없어! 당장 우리 주에서 꺼져!

         

       “이 빌어먹을 레드넥! 너 같은 놈이 있으니까 미국이 이 모양인 거야!”

         

       “레드넥은 꺼져라! 우리 주에서 당장 꺼지고, 남부로 내려가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꺼져! 딕시(Dixie) 새끼들끼리 모여 살라고!”

         

       “가족, 사촌끼리 붙어먹는 더러운 딕시 새끼 같으니! 핏줄 섞인 놈들끼리 그게 말이나 되냐, 역겨운 놈들 같으니!”

         

       “저 얼굴을 봐! 턱이 저 모양인 걸 보니까 가족끼리 붙어먹은 게 틀림없다고! 역시 딕시 새끼들은…!”

         

       수많은 이들이 몰려와 농장 주인을 비난했다.

       그 비난 중에는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감당하기도 힘든 비난들이 많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비난의 수위가 점점 강해지기까지 했다.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이 계속해서 모이는 걸 본 사람들은 점점 거리낌이 없어졌고, 혼자라면 지켰을 선조차도 군중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선을 넘자 더더욱 거리낌이 없어졌으며,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라는 확신과 함께 그들은 농장 주인을 비난하고 또 비난했다.

         

       농장 주인 가족의 신상까지 다 털려서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심지어 그를 변호하기 위해 나섰던 레드넥들까지도 죽일 기세로 비난하기까지 했으니, 그 비난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을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상황이 이쯤 되자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었음을 깨닫고 어떻게든 그들을 식히려 노력하는 이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한 번 달아오른 공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하나로 뭉쳐서 자신이 정의라고 확신하는 이들은 하나의 폭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폭력은 그들을 단숨에 식히고 이성을 되찾게 할 정도의 사건이 없다면 쉬이 해산되지 않을 것이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그래.

       그들의 목표였던 악당이 쓰러지거나.

         

       혹은.

         

       『 독점) 요정의 둥지 발견! 』

         

       『 요정은 공산주의자였다! 』

         

       딱 봐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일이 일어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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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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