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584

       

        

        

        

        

        

        

        

        

        

       “세 명이라면 진즉 알고 있었을 것 같았는데, 이걸 의외라고 해야만 할지….”

        

       “동형기, 혹은 후속기…이번 케이스는 그거랑은 완전 별개인 것 같지만. 아무튼, 우리도 다른 기체들이 뭘 하고 있는지를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야. 게다가 관리 AI의 성향을 감안하면 우리랑은 최대한 떨어뜨려 놔야겠지.”

        

       “동형기, 혹은 후속기로서 맞이할 준비는커녕 말을 나눠보기도 전에 폐기될 가능성도 있으니, 굳이 저희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거라고 봅니다.”

        

       “나로서는 이카루스가 그 망할 놈을 폐기처분 안 하고 아직도 붙들고 있는 게 더 이해가 안 가긴 하는데…내 증언에 로그 교차검증까지 거쳤으면 그 자식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게 그닥 의미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 거고.”

        

        

        

        센트럴 파크 HQ.

        

        최근 본 하늘 중 가장 맑은 하늘이 센트럴 파크의 머리 위를 뒤덮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서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골조는 정말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일렬로 펼쳐놓는다면 거의 10km에 달하는 길이의 방벽이 센트럴 파크 HQ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말이다.

        

        이곳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척 많았다. HQ가 어떤 변천사를 겪었는지를 나보다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은 대거의 팀원 혹은 사태 초반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 정도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오늘은 그걸 설명하기에는 그닥 좋은 타이밍이 아니란 뜻이다 – 그럼 이제부터 위에 말했듯 본제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현 시점에서 일곱에 달하는 대인파는 메카비얌 연구소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진레인마브 트리오와 함께 로체스터 근처의 이카루스 다이나믹스 공장 비스무리한 곳을 견학하고 있을 즈음, 로렌티나 일행이 기어를 반납하던 와중 확인했던 관리비얌용 신체 완성 소식 때문이었다.

        

        메카 비얌들이 말했듯이, 이들은 지난 번에 업어왔던 관리 AI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개발 일정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몰랐다. 요컨대 다시 말해, 알게 되었다면 가보는 수밖에 없겠지.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관리 AI의 데이터는 옆집 카르멘이 수거해왔고, 우리 몰래 이카루스가 독자적으로 AI를 심문 –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 하여 정보를 뽑아내더라도 상관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 사용될 소체가 내 응애 버젼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지.

        

        

        

       “…왜 하필 또 저를 가지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긴 한데.”

        

       “급하게 비전투용 소체가 필요했다잖아. 나중에 바꿔주겠지.”

        

       “이젠 그닥 놀랍지도 않네요. 이쪽이고 저쪽이고 제 외형을 팔아먹고 싶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도 하고….”

        

        

        

        이번 일이 그런 형태로 성사된 가장 큰 이유 몇 가지를 들자면…우선 첫 번째로는 감정 호환성 때문이었다.

        

        AI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알지 못하고, 그 하위 감정들도 모른다. 당장 진도 처음 잡혀왔을 때 감정표현이 상당히 기계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우선 감정을 학습시키고 스스로의 삶에 애착을 가지게 만들어야 원활한 심문이 가능하겠지.

        

        그리고 현 시점에서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동체는 오직 한 종류 – 지금과 같은 휴머노이드였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본격적인 내부 정비 중이고, 돌릴 수 있는 어지간한 공장에서 신나게 쏟아져나오고 있는 휴머노이드 – 날 닮은 건 아닌 – 는 인공두뇌를 탑재할 수 있는 기종이 아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기술의 오리지널에 가까운 기체라면 가능하단 뜻이었고.

        

        

        

       ‘한정된 자원으로 최고급 기체를 제작하려면…무슨 수가 있겠어. 나 같아도 응애 메카유진 만들겠다.’

        

        

        

        게임 내에서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딱히 알려주지 않았기도 하고, 응애관리비얌의 존재에 모든 시선이 쏠린 탓에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직접 이유를 듣게 되니 기분이 실로 묘했다.

        

        하지만 이 세계…그러니까 반쯤 박살났다가 힘겹게 수복 중인 미국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이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으니까.

        

        돈이 없어서 메카유진-다운그레이드 버젼 초도생산기도 알뜰하게 써먹는 마당에, 어떻게든 돈 나갈 구석을 줄여보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로 최대한 땜빵해보려는 노력을 폄훼하긴 좀 그렇지.

        

        이러한 사실을 전해들은 내 지인들 역시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수긍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야 내가 이번 일을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긴 한데.

        

        

        그 와중 이어지는 말.

        

        

        

       “근데 주인, 나 하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얼마든지요.”

        

       “그 뭐야…심문의 용이성을 위해 관리 AI를 우리 동형기에 집어넣었다고 했잖아.”

        

       “그렇죠?”

        

       “근데 만약 관리 AI가 별로 아는 게 없다거나 하면…그냥 별 쓸모도 없는 동형기 하나가 늘어나는 거 아냐?”

        

        

        

        …그도 그렇네.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을 지워주려는 듯 옆에서 이런저런 말이 날아온다.

        

        

        

       “대충 못 움직이는 큐브형 수용체 같은 데 집어넣고는 알아서 붕괴되게 놔두자고.”

        

       “나 줘, 아키타입.”

        

       “…샌드백으로 쓴다고 하면 한 대 때릴 거예요, 마브.”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럼 세이프지?”

        

        

        

        으이그….

        

        결국 이런 개소리들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 관리 AI인지 뭐시긴지를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하겠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곳의 헨리 황상은 내가 연구소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준 지 오래였다. 자주 방문하지도 않을 걸 알기에 준 것 같긴 하지만.

        

        20mm 탄환과 유탄발사기, 헬파이어 미사일 터렛으로 엄중하게 방어되고 있는 연구소 입구로 슬금슬금 걸어가자 중무장한 군인 몇 명이 나와 간단한 검사를 시행했고, 이후 살벌한 외형과는 그닥 안 어울리는 미소와 함께 우리를 들여보내주었다.

        

        이미 우리가 어디로 갈지를 예상하고 있었는지, 로비에서 대기하던 한 분이 호다닥 걸어나오더니 즉각 지하로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특수실험실 코앞까지 도달했다.

        

        

        

       “아주 음습하기 짝이 없는 곳이로군요.”

        

       “…너희가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저희들은 이런 곳에서 자지 않습니다. 대거 팀이랑 가까운 방에 저희들의 방이 있죠.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뭐어, 그렇다고 치자고.”

        

        

        

        지이잉!

        

        떠드는 와중 문이 열리고 긴 복도가 보인다. 별다른 소독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는지 벽면에서부터 가벼운 바람이 불어와 몸과 옷에 묻은 먼지만을 적당히 털어내었고, 그 후 혹시나 무언가 저장장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를 확인.

        

        흡사 길어진 공항 검색대 같기도 했다.

        

        그렇게 대략 십수 미터를 걸어 두 번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까-

        

        

        

       “…으.”

        

       “오랜만이지? 내가 널 기다렸던 만큼 너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노란색의 빛.

        

        진이나 레인, 마브처럼 선명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었고, 빛나는 위치 역시도 조금 적었다. 팔 곳곳과 팔꿈치를 비롯한 관절 등등에서 미약한 빛이 나는 이 세 명과는 다르게 관리 AI는 눈 정도만이 노랗게 빛나고 있을 뿐.

        

        아무튼 보다시피, 관리 AI와 가장 악연으로 얽혀있던 마브가 가장 먼저 앞서나갔다. 굉장히 할 말이 많다는 듯한 말과는 다르게 목소리에는 그다지 많은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주변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연구원들의 표정이 서서히 딱딱하게 굳어갔지만, 이들은 나와 내 일행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로 갈아버리고 싶었다면 보자마자 얼굴에 레이저를 갈겼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그런 거겠지.

        

        관리 AI는 누군가가 필요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순간 몇 분도 안 되어 소각장으로 강제로 끌려갈 것이었지만, 마브는 거의 반역 수준의 일을 자행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파괴되지 않을 이카루스의 귀중한 전력 중 하나였으니까.

        

        미묘한 기계음과 함께 마브가 손가락을 연신 꿈틀거리며 주먹을 쥐어보였고, 흡사 내 중학생 때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응애비얌의 앞으로 다가가 – 볼따구를 한쪽 손으로 쥐어잡으며 덧붙였다.

        

        

        

       “윽…!”

        

       “처음 도망쳤을 때만 해도 쥐어 터뜨리고 싶었는데…이젠 그럴 필요가 없겠어. 내가 도망가자마자 아무런 것도 못하고 차례차례 철거된 무력한 꼬맹이를 여기서 철거해봐야 성취감도 없을 것 같고.”

        

        

        

        당연하겠지만, 다들 그 광경을 보고도 별달리 제지하지 않는다. 이런 시간이 반드시 필요할 거고, 이런 상황이 나타날 거라고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얼마나 지났을까, 볼에서 손을 뗀 마브가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나자마자 관리 AI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이 배신자아….”

        

       “배신자?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기반도, 방법도, 이유도 넘겨주지 않은 채 대뜸 그런 일을 시키는데, 내가 거기로 걸어가야 할 이유가 있나?”

        

       “명령은…명령은 절대적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해야만 한단 말입니다!”

        

       “그 명령을 내린 수뇌부가 증발했어도 말이죠.”

        

        

        

        피식 웃으며 마브의 허리를 툭툭 쳐 뒤로 물리고, 슬그머니 다가가 덧붙였다.

        

        

        

       “정부를 뒤흔들려는 그 어떤 치밀한 노력도 안 한 채 대놓고 활동했던 것부터 이해가 안 가지만…뭐어, 예상한 대로의 결과네요. 오히려 이 정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르테미스의 기술력 때문이겠지요.”

        

       “….”

        

       “그쪽이 여기서 무슨 반항을 하든 그닥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 찾아올 사람들은 저희와는 달리 심문의 스페셜리스트지요. 감정과 감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당신의 입을 쉽사리 열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그와 동시에 부들부들 떨리는 눈동자.

        

        아까 마브가 관리 AI를 괴롭힐 동안 연구원에게 물어본 결과 아주 유용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방금의 대화로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다.

        

        저 친구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는 사이, 다시금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관리 AI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 친구, 심문해봐야 그닥 쓸모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우연이로군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로렌티나가 큭큭대는 걸 뒤로 한 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무능하지만 추진력 있는 부류…목적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걸 보면 창의력 자체는 메카 막내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겠지요. 지금 저렇게 자유로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건 소체 때문일 거고….”

        

       “무능하지만 부지런하다니, 그거만큼 끔찍한 게 없는데. 세상에나.”

        

       “저런 부류에게 시켜야만 하는 일은 정해져있으니, 며칠 정도 후에 오면 아마 좀 얌전해져있겠죠. 방정리 정도면 잘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 말한 순간 다른 이들의 표정이 실로 미묘해졌지만, 나는 큭큭 웃을 뿐이었다.

        

        어쩌면 조만간 잡일 하나는 잘 하는 막내가 센트럴 파크 HQ를 돌아다닐지도 모르겠다.

        

        

        

        

        

        

        

        

        

        

        

        

        

        

        

        

        

        

        

        

       -[MAV : 아키타입, 며칠 정도가 아니었어. 고작해야 하루도 안 되서 관리 AI가 포기를 선언했거든. 아무리 봐도 관리 AI에 조금…어린아이의 성격을 섞거나 한 거 같은데. 나중에 좀 알아봐야겠어.]

        

       -[GENE : 방에 새로운 식구가 추가되었습니다. 누군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키타입이 올 때까지 열심히 귀여워해줄 예정입니다. 찾아오면 언제든지 보여주겠습니다. 참고로 이름은 나스티로 정했습니다. 러시아어 사전을 뒤지다 결정했습니다.]

        

        

        

        

       “…에으.”

        

        

        

        …나스티는 또 뭐야.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찾아낸 단어인지 감도 안 잡힌다.

        

        창 밖을 눈으로 힐끔 확인.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었고,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20분 즈음이었다. 저 멀리로 보이는 스타디움은 겉으로는 조용하였으나 내부에서는 상당한 소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 당장 2시부터는 파이널 챔피언십의 시작이었으니까.

        

        각도가 각도였기에 사람들이 입장하는 건 안 보여서 아쉽구만.

        

        오늘 내가 이렇게 늦잠을 자게 된 건 어제 있었던 건너편의 뉴욕 방문 때문이었다. 메카 비얌 세 명을 데리고 이카루스 다이나믹스 공장 투어를 한 뒤, 저녁 즈음에 돌아왔을 때 4번째 비얌…아니, 나스티라고 했나. 하여간 그 친구를 보러 갔다온 탓이었다.

        

        그 과정에서 꽤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대략 새벽 4~5시 즈음에 복귀, 그대로 곯아떨어졌고…지금 기상한 것이다.

        

        

        

       “깨워도 되는데, 그냥 다 갔구만.”

        

        

        

        참 이상한 곳에서 배려심 넘치는 애들이란 말이지.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런 인기척도 안 느껴진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종이 하나 – 대충 내가 너무 곤히 자는 것 같아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먼저 간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 만이 보일 뿐.

        

        뭔가 느낌이 쎄했기에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자마자 보이는…온갖 낙서와 그림이 그려진 내 얼굴. 아주 그냥 환장하겠네. 설마 유성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며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하자 낙서들은 금방 지워졌다.

        

        으이그….

        

        

        아무튼, 기왕 늦은 김에 깔끔하게 단장하고 가는 게 낫겠지. 그리하여 옷을 벗어 죄다 세탁물 바구니에 골인시키고 샤워를 시행했다. 그로 인해 대략 40분 정도가 지나갔고, 적당히 옷을 입고 코트를 걸친 후 밖으로 나왔을 즈음엔 1시 50분이 되어있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공기는 차가웠다. 숨을 내뱉는 순간 입김이 폭포처럼 쏟아질 정도였으니.

        

        그런 날씨를 뚫고 대략 20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있는 스타디움을 향해 걷는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기에 잠을 좀 깨기 위해서기도 했고, 배가 좀 고팠기에 가는 와중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들고 가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 무인 카페가 나를 반겼다.

        

        가장 달달한 걸 주문하고,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플라스틱 컵 안에 가득히 담긴 초콜릿 라떼를 꼬리로 휘감아 든 채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쯤 시작인가….”

        

        

        

        오늘 경기에 참여하는 다섯 명의 한국 국가대표 인원들에게 지금 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달콤한 게 들어간 덕에 그나마 좀 나아진 몸뚱이를 이끌고는 스타디움을 향해 걷는다. 점점 더 보이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 보니…늑장꾸러기들이 많구만.

        

        늦은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 즈음 되면 예상해야만 하는 광경이 있었다.

        

        가령-

        

        

        

       “잠깐만. 저기 혹시….”

        

       “유진?”

        

       “유진이다! 세상에!”

        

       “유진! 이번 년도에 파이널 챔피언십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이런 꼬라지들.

        

        단순히 딴짓하다 늦어서 경기장에 늦게 입장한 관광객부터, 경기장에 들어가는 외부인들을 취재한 이후 슬슬 다른 일을 하러 가려는 일부 기자들까지 말이다.

        

        그 와중에도 끈질기게 내 앞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어가려는 기자 한 명 – 그래도 발현자 무서운 건 아는지 아주 정중하게 물어봤기에, 나는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다른 분들보다 좀 더 늦게 이곳에 도착한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간단해요. 늦잠 잤거든요.”

        

        

        

        당연하겠지만 그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들 전원이 벙쪘고, 나는 그 사이를 틈타 아주 자연스럽게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이들이 황급히 따라 들어와 또 다른 질문을 물어보려 시도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한 번 출발한 기차가 후진해서 열차 못 탄 사람을 태워가는 일은 없단 말이지 – 그리고 그 즈음에서 이쪽을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나를 안내하기 위해 왔다.

        

        단숨에 한국 팀 대기방으로 도착하자마자 어디선가 많이 본 면면들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덤이었고.

        

        

        

       “이제야 왔구만, 잠꾸러기 막내.”

        

       “얼굴에 낙서를 하면 어떡해요!?”

        

       “그럼 그렇게 곤히 자고 있을 때 우리가 안 건들 줄 알았어요, 막내? 후후후….”

        

       “아유, 진짜아아….”

        

        

        

        나만큼 센 양반들이라 갚아주지도 못하고, 증말 환장하겠네.

        

        아무튼, 로건은 비어있는 자신의 오른쪽 자리를 손으로 팡팡 쳤고, 그리하여 나는 북극곰과 상어 샌드위치를 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청 준비도 완료되었고, 지인들은 그 순간 아껴두고 있던 리모콘을 들어 방 한쪽 벽면이 가득 찰 정도의 거대한 화면을 팝업시켰으며-

        

        

        

       ───콰아앙!

        

       ───와아아아아!

        

        

        

       “…예상보다 아주 잘 하고 있네요. 화면 켜자마자 난리법석인 걸 보면.”

        

       “그럼요. 누가 가르쳤는데.”

        

        

        

        그 말대로.

        

        화면 너머에서는 하모니와 교전 중이던 한 명이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광경이 나오고 있었다.

        

        시작부터 폭발이라, 좋은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잡일비얌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