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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5

    그 무렵, 시에나와 고든, 서드는 엔진실에 갇혀 한창 매뉴얼을 해석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서드가 해석하는 것을 시에나와 고든이 돕는 형식이었지만.

    “시에나, 거기의 부록에서 ‘멜리메’ 주문이 언급된 페이지를 좀 찾아주시겠습니까? 고든, 당신은 ‘체스키’와 ‘루멘’이 적힌 페이지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으, 응!”

    “그렇게하지.”

    그렇게 서드의 명령에 따라 매뉴얼 해석이 진행되고 있을 때, 시에나는 서드가 말한 문서를 찾으면서 고든에게 말 없이 시선을 보내었다.

    “쟤는 저걸 대체 어떻게 해석하는거죠? 당신은 알아요?”

    “글쎄, 나라고 알리가.”

    매뉴얼을 읽어보고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해석을 결국 포기해버린건 그도 마찬가지다.

    사용설명서 같은 느낌으로 집어들었건만, 설마 그정도였을 줄이야.

    만약 서드가 아니었으면, 이 작업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요즘 아카데미에서는 열차 매뉴얼 해석하는 법도 가르쳐주는 건가?

    그럴리 없지.

    아무리 요즘 전체적인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주문의 양이 많아졌다고 해도, 워프트레인 운행에 사용되는 응용마법을 배울 리가 없다.

    워프트레인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고, 최신식 마법공식과 공학기술들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물건이니까.

    단순히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만 해도 수십가지의 마법공식이 서로 얽히고 섥혀서 이뤄내는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물론 그건 현대의 다른 모든 첨단 마도기들이 그렇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그 주문의 원리와 공식을 전부 알 필요는 없다.

    주문을 학습하기 어려운 사람, 주문을 배워선 안되는 사람들에게도 전부 팔아먹기 위해서, 일반인 소비자에게 닿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사용자 친화적으로 복잡한 주문따위 알 필요 없도록 만드니까.

    하지만 워프 트레인 같이 복잡한 마법이 수없이 동원된데다 전문인력 이외엔 운행할 일이 없는 최신식 마법장치엔 그런 배려가 들어있지 않았다. 들어갈 수도 없었고.

    덕분에 남겨진 건, 열차학을 전공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이해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주문이 빼곡히 들어선, 두꺼운 마도서와 같은 매뉴얼이다.

    그런데 서드는 관련지식도 없으면서, 저 매뉴얼만 읽고도 열차의 운행법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생긴 건 아카데미에서 수업이나 제대로 들을까 의심스러운 얼굴인데, 정말 의외였다.

    “쟤, 틀림없이 공부도 잘하겠죠?”

    “무조건이지.”

    저런 복잡한 마법도 저렇게 척척 해석하는데, 아카데미의 시험은 뭐가 문제겠는가.

    아무리 요즘 애들이 배우는게 많아도, 서드가 성적이 나쁘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서드의 아카데미 성적은 사실, 마법 이외의 모든 과목에선 간식히 낙제를 피하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서드는 오직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었다.

    “자, 여기있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에나와 고든은 각자 서드가 지시했던 문서를 찾아 소년에게 건네자, 서드는 그 문서를 받아서 다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매뉴얼을 읽으며 빈 페이지에 주문을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서드가 그렇게 열심히 주문을 완성해나가기 시작하고, 이 순간에 시에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할 일 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그들이 확보했다던 ‘화물’에 시선이 멈췄다.

    웅크린 어린아이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꽤 커다란 크기의 자주색의 캐리어.

    무게도 꽤나 묵직하던데, 가지고 뛰려면 서드가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시에나가 문득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저기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걸까요?”

    “글쎄. 나도 궁금해서 열어보려고 했지만, 도통 열리지 않더군.”

    보기엔 간단한 잠금장치로 보여도, 그것은 워프트레인이 사용하는 ‘공간격리’가 부여된 최상급 잠금장치였다.

    저 가방을 열어보려면 비밀번호를 풀거나, 루크와 같은 공간 자체를 일그러트리는 무식한 방법으로 여는 수밖에 없으리라.

    “뭐, 굳이 열줄 몰라도 상관 없어. 뭐가 들어있든, 그 녀석에게 중요한 물건인것은 확실하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설마 온 열차의 승객을 언데드로 바꿔가면서까지 찾으려고 했겠는가?

    분명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것이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

    시에나도 그런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요. 딱히 중요한 건 아니겠죠.”

    그리고 이제야 본건데, 화물의 구석에 주인의 이름을 적는 칸에 ‘로제프’라고 적혀있더라.

    설마 그가 로제프와 동일인이라는 단서가 그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루크도 그걸 봤으려나?

    “로제프…….”

    로제프, 그리고 로빈슨……. 

    설마 그 둘이 동일인이었다니.

    그 때, 시에나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고든이 문득 끼어들었다.

    “그래서, 그 로제프라는 인간은 누군데? 아까 전에 듣기는 했지만, 정확한 건 알지 못해서 말이야.”

    “아, 그건 말이죠.”

    시에나는 이어서 그에게 토레프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설명했다.

    로제프가 누구고, 토레프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의문점이 있었는지까지.

    그렇게 토레프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고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쓸었다.

    “그렇군, 토레프쪽에선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하지만, 그러면 정말 이상하단 말이죠.”

    루체스트 타워에서 그가 나타난 무렵까지 토레프에 존재하던 그의 기록은 조작된 것이라고 치부하고 넘긴다쳐도, 그의 등장은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로빈슨은 분명 죽었다.

    그냥 죽은 것 뿐 아니라, 죽어서 불태워지고 흐르는 물에 흩뿌려지는 모든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오늘 저렇게 멀쩡하게 나타나다니.

    사람이 복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 때, 고든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진짜 복제를 한걸수도 있지.”

    “예?”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시에나는 잠깐 벙찐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고든은 뭘 그리 당황하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음, 아까 말하지 않았나? 루체스트의 연구 말이야. 그중에는 생물복제가 포함되어 있었어.”

    고든은 아까와는 달리 어느정도 진정된 그녀에게 고든이 확인한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이었다.

    “그 아이가 연관된 문서엔 동일한 특성을 지닌 고양이를 양산하는 방법에 대한 것도 있더군. 뭐, 있을법하지않아? 동일한 특성을 지닌 생물은 의학계에선 꽤나 유용할테니까.”

    잠깐, 루크가 복제실험에 연관되어있었다고?

    이해가 잘 안가는데……

    “……그말은, 그러니까 루크도 그 복제실험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겠지?”

    “……!”

    당황스러운 진실에 놀란 시에나가 말을 잃어버린 바로 그 순간, 서드가 문득 끝난 듯 펜을 내려놓았다.

    “뭐야? 다 끝난 거야? 이제 이 지긋지긋한 워프를 끝낼 수 있게 된건가?”

    고든은 약간의 기대감을 담아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서드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주문이 뭔가 비어있는 것 같아서요.”

    “비어있다니?”

    “페이지가 찢겨있군요. 누군가 임의로 매뉴얼을 훼손한 것 같습니다.”

    “뭐라고?!”

    시에나가 놀라서 고든을 제치고 확인한 매뉴얼에는 정말 서드의 말대로, 누군가 페이지를 찢어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에나는 굉장히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그리고 고든은 마도서의 찢긴 페이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보나마나, 그 흑마법사 짓이겠지.”

    설마 자신의 밥그릇을 걸고 열차를 운행 해야 하는 기관사들이 그런 짓을 했을리는 없으니, 범인은 당연히 그 흑마법사다.

    브레이크를 망가트린 건가…….

    그에 가장 격한반응을 보이는 건 시에나였다.

    “아니, 그럼 문은 어떻게해? 열 수 없는거야?”

    “……예.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지금으로선 엔진실에서 워프를 멈출 방법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비어있는 부분에 알고있는 주문을 되는대로 대입해가며 하나쯤 얻어걸리길 바라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으리라.

    자신에겐 없는 주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시에나는 서드에게 재촉하듯 외쳤다.

    “그, 그러면 문만이라도 열면 되잖아? 너도 루크처럼 서클로 마법을 쓸 수 있으면 가능한거 아니야?”

    아까 루크가 했던 것처럼, 마법으로 어떻게 문의 잠금만이라도 잘 해제하면 되는 게 아닌가?

    처음부터 그녀가 원하는 건 워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여는 것이었으니까.

    그러자 서드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억지입니다. 스승님과 저를 동일시하지 말아주십시오.”

    매뉴얼에 적힌 바에 따르면, 엔진실의 공간적 격리조치는 워프마법과도 연동되는 기능이기 때문에 워프가 끊어지거나 마나공급이 멈추지 않는 한은 멈출 수 없다.

    루크가 문을 열었던 것이 정말로 이상했던 것이지, 자신에게 안되는 걸 따져도 방도가 없다.

    “…..아.”

    그의 대답을 들은 시에나는 허탈한 듯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열차의 워프를 끝내고 문을 열어 루크에게 달려가고 싶어하는 시에나에겐, 그 유일한 방법이 부정당한 셈이니까.

    -쿵!

    “젠장!”

    시에나는 분노에 차올라 애꿎은 잠긴 문을 내리쳤다.

    소리가 꽤 컸던만큼 손이 아플만큼 저렸지만, 그녀에겐 그보다 오갈 데 없는 분노의 감정을 삭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보라.

    어찌나 갑갑했는지, 묘하게 주먹이 따듯해지는 것 같은…….

    -끼기긱……!

    그 순간, 잠긴 문에서부터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이…?”

    어떻게봐도,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가까웠다.

    놀란 시에나는 곧장 서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뭘 어떻게 한거야? 그 무차별 대입이란거, 이렇게 빨리 성공하는 거였어?”

    그러자 서드는 오히려 당황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전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

    서드의 대답에 시에나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자신의 손과 문을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에 고든이 정말 장관이라는 듯이 웃어제꼈다.

    “하하하! 맙소사, 주먹으로 공간적 격리마법을 해제해버리다니, 대체 뭘 어떻게 때렸기에 그게 가능한거야? 넌 그동안 대체 왜 그 재능을 가지고 경찰관 같은 거나 하고 있었나?”

    “…….”

    주먹으로 공간격리 자물쇠를 해제한것으로 졸지에 경찰에 재능없는 다크엘프가 되어버린 시에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열렸으니 됐죠? 전 루크에게 갈 겁니다. 이젠 더이상 말리지 마시죠.”

    그녀의 말에 고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렇게되면 나도 더이상 말릴 필요는 없겠지.”

    “동감입니다. 어차피 이젠 엔진실에 남을 필요도 없으니까요.”

    더이상 자신들에겐 워프를 멈춰야한다는 당위성도 없고, 여기서 더 뒤로 물러설 곳도 없으니까.

    게다가 그녀가 우리를 이곳에 몰아놓은 지도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아직도 무언가에 막혀있는 거라면, 차라리 그녀를 도와 조금이라도 손을 덜어주는 편이 상황의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

    “좋아요, 드디어 말이 통하는군요!”

    이제야 좀 상식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 시에나는 매우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에나와 고든, 서드는 바뀐 계획을 갖고 전의를 불태울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불타고 있던 것은 단지 그들의 전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뭔가 이상한데, 갑자기 왜 이렇게 밝아지지?’

    마력광 하나에 의존해 꽤나 어둑했던 엔진실에 낯건 광원과 열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시에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겨있던 문을 향해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째서 잠겨있던 문이 열린 것인지 깨닫고 말았다.

    \

    “어……?”

    그건, 식생칸에서 세계수가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음…….
    이제보니 좀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다음편은 되도록 11일이 끝나기 전에 업로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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