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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5

        

       요정은 자연스럽게 기자의 카메라 안에 찍혔다.

       DSLR 카메라(Digital Single-Lens Reflex Camera)는 너무나 선명하게 요정을 찍었고, 숲을 벗어나서 농장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초점 안에 담아내었다. 요정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근처에 누구 없는지 살피는 모습도 찍었고, 날개에서 뿌리는 반짝이는 가루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어둠 속에 파묻혀 이동하는 것 역시 찍어내었다.

       혹여 좀 거대한 벌레가 아니냐고 반문하지도 못할 만큼 확실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동한 요정은 농장 주인이 주장하기를 ‘최근에 좋은 가격을 부르길래 팔아넘겼던 농장의 일부’로 이동하였고, 은밀하게 숨겨진 아지트를 찾는 것처럼 농작물의 이파리를 헤치고 땅속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요정의 은밀한 아지트를 찍은 기자가 그것을 파헤쳐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

         

       기자는 야전삽을 하나 들고 요정이 들어간 곳을 파헤쳤다.

         

       물론 불법이긴 했다.

         

       사유지를 무단으로 침입하고, 심지어 농작물을 훼손하고 땅을 파헤치는 것이었으니까.

       심하면 고소까지 당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뭐, 그런 사소한 위법보다는 알 권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기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땅을 파헤치는 것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야전삽은 신나게 허공을 날았다가 땅을 찍기를 반복하였고.

         

       그렇게 벙커가 발견되었다.

         

       요정의 거처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벙커가 말이다.

       공기부터가 사람의 기분을 확 나쁘게 만들고,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무언가 끔찍한 냄새가 코를 마비를 시킬 것만 같다. 축축한 벙커 특유의 냄새가 폐를 한 번 훑고 지나가오면, 어디 공포 영화 한 편이라도 본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남는다.

         

       거기에 벽면은…와우! 여러 언어로 무언가가 새겨져 있는 것이, 사악한 불신자와 이교도들이 모여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서 사악한 존재를 찬양하면서 인신 공양 의식이라도 한 것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벙커 안에 조명이 없었기에, 너무나도 새까만데다가 밀폐된 공간 특유의 그 느낌이 너무나 섬찟했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찰칵.

         

       그리고 이는 벙커를 발견한 기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DSLR 카메라 역시 그의 심정에 동의한다는 듯 보기만 해도 오싹해지는 음산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었다. 농장에서 발견된 이 벙커가 얼마나 이질적이고 으스스한 공간인지 최선을 다해 표현하겠다는 듯 말이다.

         

       그렇게 한 발자국 더 나아갈수록.

       그렇게 사진을 하나를 더 찍을수록.

         

       벙커의 음산한 느낌은 더더욱 강화되었다.

       강조되고, 또 강조되었다.

         

       귀엽고 깜찍한 요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지옥에 있는 무언가를 부르는 의식을 행한 뒤 아무도 살지 않게 된 흉가에라도 들어오게 된 듯한 이 분위기가 등골을 오싹하게 했고, 어디 연쇄살인마가 죽기 전에 살던 생가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으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이 끔찍한 심정을 느끼며 탐험을 거듭한 끝에 기자는 벙커의 끝에 도착했을 때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책 몇 권과 뼈로 만든 무언가로 보이는 것이었다.

         

       다만 정말 다행인 것은, 그 책이 그가 벙커를 돌아다니면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동물의 피로 직접 쓴 마도서도 아니었고, 사악한 원념을 담아서 쓴 주물도 아니었다.

       사람의 피 대신에 잉크를 사용했고, 사람의 가죽 대신에 평범한 종이를 사용해서 만든 책이다. 좀 낡기는 했지만 잘 보관이 되어있는 그 책은-

         

       『 요정의 둥지에서 ‘자본론’ 발견! 』

         

       자본론.

       공산주의자들이 꼭 한 권씩 지니고 다닌 바로 그 책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성경.

       한때 지구를 반으로 갈라버렸던 미국의 주적들의 책!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책이기도 했다.

         

       평범한 책인데 무슨 마법이냐고?

         

       『 농장에서 발견된 빨갱이의 흔적,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미국 시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뭐가 마법이겠는가?

         

       마도 공학이니 뭐니 하는 거?

       X까.

         

       이게 마법이고, 이게 기자의 궁극의 권능이다.

         

       그렇게 기자는 자기 손에 들어온 이 사악한 성물을 100% 활용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인과 손자국을 사진으로 선명하게 찍고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싣기도 했고, 책 일부를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황급히 자기 기사를 받아쓰는 기자 놈들이 체리 피커놈들처럼 비겁한 짓거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진에 큼지막하게 워터마크를 박기도 했다.

       아니, 아예 그것을 넘어서 찍는 사진 일부에 자신의 일부를 포함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직급과 이름이 적힌 명함을 옆에 놓기도 했고, 아예 자본론을 손에 들고 셀카를 찍기도 했다. 그것도 벙커 안에서 말이다.

         

       기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미국 전역, 아니 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이 특종을 미친 듯이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 후는?

       뻔한 일이다.

         

       거대한 특종에 부러워하는 기자들이 그것을 미친 듯이 받아쓰기 시작하고, 거기에 살을 붙이거나 소설을 지어내며 다른 기사를 써 내린다. 그리고 그것이 몇 번 반복되면서 미국 전역에, 인터넷에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언급된 공산주의자라는 거대한 이슈에 잠시 사그라들려 했던 광기는 기자들이 집어넣는 장작과 부채질에 순식간에 다시 재점화하며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빨갱이의 흔적을 발견한 일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행복한 일이었다.

         

         

         

        * * *

         

         

         

       요정을 미행한 기자는 행복했다.

       다른 기자들도 행복했다.

       특종을 읽는 사람들도 행복했다.

       정치인들도, 기업가도 행복했다.

       미국의 수많은 시민 단체도 행복했다.

         

       딱 한 사람, 농장 주인을 제외하곤 모두가 행복했다.

         

       “이봐요! 당신 농장에서 빨갱이들 책이 발견됐어! 당신 빨갱이지!”

         

       “인종차별자에 빨갱이라니, 이 빌어먹을 놈! 미국에서 꺼져! 당장 소련으로 꺼지라고!”

         

       “가족끼리 붙어먹는 역겨운 빨갱이 새끼야! 꺼져라! 미국에서 꺼져라!”

         

       “너는 자랑스러운 미국의 사나이가 아니야! 더러운 빨갱이 새끼라고! 미국의 순수성을 더럽히려고 하지 말고 당장 꺼져!”

         

       “너는 미국의 백인이 아니야! 슬라브 혼혈 놈에 불과해!”

         

       물론 다른 이들의 행복만큼 농장 주인의 불행은 더더욱 깊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거야 뭐, 사소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종차별자!”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수많은 유색인종이 몰려들어 ‘정의 구현’을 행하고.

         

       “같은 핏줄도 아랑곳하지 않고 붙어먹는 역겨운 돼지 새끼!”

         

       레드넥, 남부, 인종차별자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을 가진 이들이 몰려들어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을 배설하듯 쏟아내고.

         

       “역겨운 슬라브 혼혈 새끼!”

         

       빨갱이가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벙커가 농장과 연관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농장 주인이 간첩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소리치고.

         

       “당장 미국에서 꺼져! 너는 미국에서 살 자격이 없어!”

         

       농장 주인이 이런 성격이 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레드넥들이 몰려들어서 ‘너는 미국인이 아니다.’,’너를 이웃인 줄 알았던 내가 멍청했다.’라면서 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을 미친 듯이 쏟아낸다.

         

       그리고 그들을 부채질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는 것은 덤이었다.

         

       농장 주인이 죽기라도 하지 않는 한 사그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광기였지만….

         

       뭐.

       문제는 없었다.

         

       사람을 패는 것이야 문제겠지만…. 어디 지금의 저 농장 주인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형상을 한 샌드백이고, 두들겨 패면 와르르 사탕이 쏟아지는 피냐타(Piñata)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 사람들은 신나게 그를 두들겨 팼다.

         

       하나같이 거대한 광기에 휩쓸려서 말이다.

         

       이는 농장 주인이 차를 끌고 어디론가로 도망을 칠 때까지 계속되었고, 농장 주인이 모습을 감춘 후에도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원망할 대상이 사라졌는데도 어떻게 광기가 사라지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장작이 계속 들어가고 있는 모닥불이 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기자들은 이 간만에 찾아온 특종에 매달려 있었고, 정치인들은 미국인의 지지를 받고 그들의 표를 모을 수 있는 이 훌륭한 소재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수십 년 전 소련과의 냉전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라도 돌아간 것처럼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 미국 내부의 공산주의자 색출을 부르짖으며 나이 먹은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모두가 그랬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외치고 다니기만 하면 지지율이 오르고 표를 끌어올 수 있는 데다가, 두들겨 패는 것은 아무런 후환이 없을 평범한 농장 주인이다.

         

       하지 않는 것이 멍청이다.

         

       그렇게 불은 계속해서 타올랐고….

         

       『 빨갱이의 벙커가 있던 곳이 팔려나갔다는 주장. 사실인가? 』

         

       『 특종! 빨갱이들의 벙커의 소유자는 외국인이었다?! 』

         

       『 구대륙에서 온 빨갱이! 그 정체는?! 』

         

       『 대마녀 가브리엘라는 빨갱이인가? 』

         

       마침내 그 불이, 농장 주인을 넘어 마녀에게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이 거대한 광기는 제어하기 힘든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 * *

         

         

         

       이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오딜리아의 ‘복수’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말과 같았다.

         

       그녀에게 엿을 먹였던 가브리엘라도, 농장 주인도 모두 참교육을 받은 것이다.

         

       참으로 좋은-

         

       “….”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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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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