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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6

    <586 – 맛있는 연계퀘스트(10)>

     

    개썰매를 빌려서 마을까지 향해보니 마을은 전보다 깨끗하고 살만해 보였다.

    그녀를 알아보고 환대하러 나온 촌장에게 지고쿠는 나그네들의 정체부터 물었다.

    그러자 촌장이 고개를 숙여 지고쿠에게 감사인사부터 올렸다.

     

    “기프트 아카데미의 행정교관이라는 이들이 지나가는 김에 군인 노릇을 한 사악한 것들을 담갔으니, 지고쿠 님께서 우리 마을을 어여삐 여기어 부하를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사의 의미로 초봄에 잡은 가장 큰 빙어를 바치겠습니다.”

     

    그제야 지고쿠는 진상을 깨달았다.

    지나가는 선배님들이 우연히 눈에 보이는 패거리들을 족치고 사라진 것이다.

     

    “저… 혹시 빙어는 필요 없으십니까?”

    “아니, 그게, 어, 음…”

     

    내가 부른 사람들이 아닌데.

    지고쿠는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촌장이 저렇게 실망스러워하니 그냥 보내기도 좀 그랬다.

    사실을 알리고 촌장의 실망을 받기 vs 초봄에 잡은 가장 큰 빙어 받기.

    고민 끝에 지고쿠는 빙어를 받기로 결정했다.

     

    “…이게 제일 큰 거 맞냐?”

    “빙어는 본래 3cm에서 15cm 사이를 오가는 종입니다. 20cm는 아주 실한 녀석이지요!”

    “에휴. 됐다. 뭔 계곡잉어만도 못한 걸 가져와서는… 그건 매운탕이나 끓여 먹고 촌장 몸보신이나 하셔. 그보다 우리 선배님… 아니 부하들이 담갔다는 놈들 시체나 좀 보자.”

     

    설원에 파묻힌 시체는 남은 흔적도 화려했다.

    고속으로 달리는 무언가에 치인 것처럼 사방팔방 튕겨 나가 전신골절을 입은 흔적.

    확인 사살을 겸하여 날린 돌이나 자갈에 심장과 목, 머리가 뚫린 자국.

    누가 보더라도 양민학살을 당한 모습이었다.

    선배들이 자기들을 부하 취급한 걸 알고 유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시체 중 상태가 성한 놈 하나의 면상을 보니 선배 걱정은 차라리 속 편한 걱정임을 깨달았다.

     

    “어? 이 새끼 해적질하기 싫다고 전에 크루즈선에서 내렸던 놈인데?”

     

    양민 학살당한 시체 사이에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의 부하가 섞여 있었다.

    지고쿠의 얼굴이 굳었다.

    재단의 사람이 자신의 세력권에서 개짓하려고 들다가 시체로 발견됐다.

    이사장의 짓이라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니지…?”

     

    지고쿠의 눈이 떨렸다.

    오크노디가 자신의 세력권에 손을 썼다.

    그런 불길한 상상은 상상조차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하지만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이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도 최근 오크노디의 행보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고, 아카데미를 떠나 외부로 겉도는 모습을 보여왔으니까.

    그녀는 근거를 얻고 싶었다.

    이 사태에 오크노디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만한 증거를.

     

    -언젠가 암흑상회의 힘을 빌릴 일이 생기거든 밖에서 규모 1만 이상의 큰마을이나 도시에서 이 표식이 그려진 벽을 찾아가십시오. 정해진 방법으로 표식을 남기거든 접선책이 먼저 연락을 넣을 것이고 금방 정보지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지고쿠는 아카데미 밖에 있는 지젤의 암흑상회에 연락을 취했다.

     

    “몇 가지 정보를 알아줬으면 좋겠어.”

    “지젤 님의 동기분이시군요. 말씀만 하십시오. 정보이용료는 지젤 님께서 대신 납부하실 겁니다.”

    “이쪽 마을을 습격한 패거리들이 어디서 온 녀석들인지 시신을 보고 흔적을 쫓아줘.”

    “마을을 위협하는 이들의 추적을 원하십니까?”

    “그래.”

    “지도에 현장을 표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확인했습니다. 조사관을 파견하고 정보를 수집 중이오니 1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암흑상회는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망과 운송로를 조사하며 그들의 침입 경로와 이들의 정체를 밝혀냈다.

     

    “이들은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지원을 받는 북부 모험가길드 동해지부 지부장의 지원을 받아 무기를 습득했습니다. 모험가 자격증을 얻었으나 이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얻은 자격증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는?”

    “죽은 이들의 신원을 사칭한 겁니다. 실제 신원은 파악할 수 없습니다. 국제신원등록마도보관서에도 등록되지 않은 신원불명의 무국적자들입니다.”

    “역시 재단이 맞았나…”

    “다만, 이들이 사용한 무기에는 북부정규군에 무기를 납품함을 증명하기 위한 군납품 특유의 표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

     

    북부정규군으로 위장한 가짜부대의 습격.

    이는 이사장이 세운 계획이었고, 암흑상회는 정규군의 표식을 알아차릴 정도의 눈썰미는 갖추었다.

     

    “해당 군납품을 지급받은 부대는 이미 전선에서 전멸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니, 이는 전선지대에서 재단이 독자적으로 회수한 ‘정규군의 군수물자’입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데?”

    “신원불명자들을 모아 정규군의 상징인 무기를 들려주었으니, 이들이 사고를 쳐도 시신의 훼손 정도만 심하다면 정규군의 소행이라고 오인되었을 겁니다. 재단은 정규군을 이용해서 지고쿠 님의 세력권에 해를 입히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니 근데 얘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세력권이 여기라고 알아차리고 있지?

    당황한 지고쿠의 모습에 암흑상회 정보원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희 암흑상회는 세계전역의 ‘암상인’들의 연합이기에 브로커와 거래하는 작은 마을들이 어느 세력과 엮여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기 마련입니다. 애초에 정보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암상인의 수하가 아니고서야 이런 궁핍한 어촌이나 고위계 사냥터 따위에 주기적으로 상인이 찾아올 일은 없으니까요.”

     

    던전이나 사냥터, 궁핍한 벽촌마다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아서 온갖 몬스터 재료나 잡동사니를 대량으로 매입해도 끄떡없는 재력의 상인이 하나씩 있는 이유를 알게 된 지고쿠였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암흑상회의 정보습득 방법이 아니었다.

     

    “그 재단의 녀석들이 ‘누구’의 지령을 받고 왔는지도 알 수 있어?”

    “꽤 어려운 요청이군요.”

    “미안하지만 너희밖에 부탁할 곳이 없어. 돈이 필요하다면 지젤이 아닌 내가 직접 줄 수도 있어. 나도 나름 성공한 해적이야.”

    “아, 괜찮습니다. 크루즈선의 불필요한 물자를 뜯어내고 군함으로 개조하는 작업에서 인력과 물자를 대어준 사람도 지젤 님이고 그분이 동원한 세력도 암흑상단입니다. 저희는 지고쿠해적단에 오래전부터 투자하고 있던 셈이니 부담 없이 이용해 주십시오.”

    “…지젤 이거 보기보다 무서운 놈이었네.”

    “정보는 얼마나 빨리 얻기를 원하십니까?”

    “가급적 빠르게.”

    “알겠습니다.”

     

    정보원은 하루가 지나 돌아왔다.

     

    “너, 그 팔은…!”

    “별것 아닙니다. 팔 한쪽을 잃은 정도로 재단의 정보를 얻었으면 값싸게 얻어낸 것이지요.”

    “설마 내가 빠르게 정보를 달라고 해서?”

    “아, 오해는 마십시오. 이건 제 실력이 미숙했기 때문이지 기한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 쪽 정보원도 열 명가량 죽기야 했지만 유가족에게는 모종의 경위로 암흑상회의 지원과 보호가 따릅니다. 정말로 지고쿠 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심지어 열 명이나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니!

    돌이킬 수 없는 인명피해에 지고쿠는 머리에 올랐던 열이 식고 현실감이 되돌아왔다.

    재단은 그만큼 위험한 조직이다.

    그런 조직의 뒤를 시급히 캐려면 목숨을 거는 것쯤은 당연했다.

    이들은 지젤과 암흑상단이 작전 도중 전사한 이들의 ‘목숨값’마저도 대신 치러줄 것을 믿었기에 나선 것이리라.

    당사자들은 지고쿠해적단에 빚을 지울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지고쿠의 양심마저 빚이 없다고 여길 수는 없었다.

    지젤은 암흑상회를 움직여 정보를 소집한 것만으로도 지고쿠해적단에 빚을 지운 셈이다.

     

    그녀가 인명피해가 일어날 것을 알고 요청했든 모르고 요청했든 이미 피해가 실제로 발생했다.

    그러니 이것은 빚이다.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지고쿠는 지젤의 ‘호의’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호의에 기대서라도 정보를 얻는 것이 시급했다.

     

    “지령은 재단총본부로부터 북부 모험가길드 동해지부 지부장에게 하달되었습니다. 지령의 내용은 <지정된 일자에 방문하는 신원불명자들에게 모험가 신분증을 넘겨 신원을 세탁할 것>.

    두 번째는 <이들이 지도에 표기된 마을에 일정 수준 이상의 피해를 주거든 그 즉시 개입, 이들을 사살하고 흔적을 남길 것>.”

    “그거야!”

    “예?”

    “지도에 표기된 마을이라고 했잖아. 재단은 그 마을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물론 그럴 겁니다. 모르는 장소를 지도에 표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고쿠는 더 이상 자신의 의심과 단서를 혼자 끼워맞추려고 암흑상회와 스무고개를 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의 스무고개에 어울리는 정보상에서 몇이나 되는 사망자들이 더 발생할지 몰랐으니까.

     

    “난 지금… 오크노디가 재단에 정보를 알리고 지고쿠해적단의 세력권을 건드리는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아… 그래서 이런 묘한 정보를 원하셨군요.”

    “맞아.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재단상층부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근거가 있습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실은 마나재해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마석광산에서 탈출한 광산노예들입니다. 병역기피, 군사법 위반, 그 외 중죄를 저지른 이들은 광산노예로 삼으면서 강제로 문신을 새기죠. 남부에는 없는 문화이기에 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

    “하지만 무지를 이용하는 적이 있다면, 무지가 곧 목숨을 잃을 이유가 되기도 하죠. 마석광산은 마법사들의 마법을 펼치는 데 사용되는 마나석을 캘 수 있는 귀중한 광산입니다. 군에서 관리하는 주요자원이 마석이고 주요시설이 마석광산이죠. 그런 곳의 탈주노예들을 북부대공은 용서하지 못할 겁니다.”

    “뭐… 그건 나라도 그랬겠지. 해적군도에서 귀중한 해저자원을 삥땅치는 놈들이 있다면 당장 목을 베거나 총살할 거야.”

    “그게 문제입니다. 현재 어촌 근처에서 발생한 사상자들이 실종된 북부정규군이며 발견된 무기가 그 증거라는 정보가 인근 관저에 알려졌습니다. 암흑상회에서 새어 나간 정보가 아님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으니, 이는 재단의 소행입니다.”

     

    해안가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에는 물결과 파도가 더욱 크고 거칠어진다.

    바람의 세기와 바닷물의 높이가 달라지고, 구름이 어둡고 낮게 내려앉으며, 개들은 구멍에 숨으려 들고 물고기들은 수심 깊이 달아나며, 하늘에서 조류들이 사라진다.

    지고쿠의 마음속에서도 불길한 마음이 먹구름처럼 낮게 내려앉으며 비바람을 품기 시작했다.

    다만, 쏟아질 것은 투명한 비가 아니었다.

    사람이 죽으며 흘릴 붉은 피였다.

     

    “북부대공에게 보고가 올라갔다면 머지않아 정규군이 파견될 겁니다. 이것이 재단의 함정이라면 지고쿠해적단은 제대로 함정에 빠졌습니다. 탈주노예를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서 광산에 마나재해를 일으킨 주범으로 테러죄마저 뒤집어쓸 가능성이 역력합니다.”

    “미치겠네. 더럽게 빡센 위기인데 왜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어. 그렇게까지 오래되고 치밀하기까지 한 함정이면 오크노디의 계획은 아니니까 그런가?”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지고쿠.

    그러나 정보원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안도하기엔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다크프린세스는 작년 아카데미 2학기 중간고사에서 북부대공 유다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뭐.”

    “그녀가 북부대공과의 대면을 통해 재단의 이권을 보장받는 대신, 지고쿠해적단의 세력권 위치를 알려주고 이를 소탕할 계기까지 제공하는 대신, 마석광산에서 빼돌린 마석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사법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말도 안 돼!”

    “정말로 확신하십니까?”

    “오크노디는 그럴 아이가 아니야!”

    “다크프린세스는 ‘파파’라 부를 정도로 부친인 이사장과의 관계가 긴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국4황녀 신분으로 황제의 곁에 침투하여 황녀사망설을 대두시켜 혁명군 봉기의 계기를 만들고 유유히 아카데미에 복귀하기도 했죠.”

    “그건…”

    “그 정도의 심계를 지닌 <무서운 아이>를 당신은 제대로 알고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

     

    지고쿠의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외부인 시점에선 어엿한 흑막의 딸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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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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