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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6

    처참하게 파괴된 식생칸의 몰골을 본 이들은, 어째서 열차의 문이 제멋대로 열리고 말았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열차의 잠금장치도 결국은 마나를 이용한 현상.

    아마 식생칸에 발생한 대화재로인해 열차의 마나 공급에 차질이 생겨, 공간격리의 마법도 풀려버리고 만 것이리라.

    그 불길에, 고든과 서드는 발이 묶였다.

    그들의 의상 인챈트는 이미 그동안의 전투로 마모되어 저토록 화끈한 불길을 뚫고 지나갈 정도로 수준이 되지 못했고, 워프트레인의 엔진실에 마련된 소방도구도 초기화재 진압에 쓸 법한 물건이 대부분이라 나아갈 방법이 없었다.

    열차에 설치된 자동소화장치가 일을 제대로 끝마치기를 바라는 수밖에.

    뭐, 불길을 막기 위해 진작 내려왔어야할 방화문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동소화 시스템이 이 화재를 진압하기엔 요원해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루크의 탐색을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시에나는 홀로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처참하게 짓눌리고 파괴된 시체무리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으윽.”

    어쩐지, 아까부터 구운 해산물 냄새가 온 칸에 진동하고 있다고 했더니만.

    이건, 루크가 한걸까?

    “이건 좀 심한데…….”

    비위가 약한 후배 톰이었다면 벌써 구토를 하고 말았을 끔찍한 환경은, 불 속에서도 얼마나 강하고 무자비한 힘으로 짓눌려버린 것인지 짐작이 가능하게 했다.

    확실히 ‘언데드’를 처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한 화력으로 이렇게 짓누르거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조각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책상머리 위에서 하는 탁상공론에 가까운 방식이고, 실전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다분하다.

    상황이 발생하면 제압인원들에게 그만한 화력이 준비되어있기 어려울 뿐더러, 만약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심리상태의 사람은 다른 생물에게 그 정도로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일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 바닥에 기어다니는 엄지 한마디도 안되는 작은 벌레 하나를 눌러죽이는 것조차 꺼리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다.

    그런데 만약 사람과 닮은 형상에게 그만한 폭력을 쏟아낸다고?

    웬만큼 고장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

    보통의 사람은 충분한 훈련도 없이 그저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단숨에 경추를 부수고, 뇌수를 터트리고, 내장을 조각조각 파열시키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없다.

    정말 루크는 괜찮은건가?

    티는 내지 않았지만, 상황과 정신이 꽤나 몰려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마 이 모습이 루크의 본모습은 아닐 테니까.

    “빨리 찾아야 해….”

    시에나는 점차 루크를 부르는 속도를 더욱 높이기 시작했다.

    “루크! 어디야! 들리면 대답해줘!”

    그러나 몇번이고 불러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주변의 소음이 시끄러울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타닥, 타닥–!

    -끼이익…쿵!

    -펑! 쿠구구….

    불에 타는 목재가 갈라지는 소리, 불탄 잔해가 바닥에 떨어져 내는 소리, 압축마력통에 열이 가해져 폭발하면서 나는 소리 등…….

    공기밀도가 낮아 평소보다 작게 들릴텐데도, 그 소음의 크기는 그녀의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였다.

    불이 난 현장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이었다니.

    그녀는 새삼 이런 현장에 수도 없이 투입되는 소방관들이 엄청나단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만한 화재 속에서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방마코팅을 발라준 루크도.

    ‘그런데 대체 어째서 세계수까지…….’

    그것은 생각할수록 의문이었다.

    세계수가 불에 탄다니.

    세계수가 불이라는 현상 따위에 저렇게 무력할 수는 없었다. 

    세계수는 일반적으론 불태울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세계수의 마나는 식물로서 뿐 아니라 어떤 물체보다도 극단적으로 안정된 배열을 지녔기에, 외부의 현상으론 웬만해서는 반응하지 않는다.

    세계수 근처의 화기를 엄금하는 이유 또한, 마나를 생산하는 시설 특성상 불에 반응하는 자원들이 많기 때문이지 세계수 자체가 불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식생칸에 비치된 것이 원본의 세계수가 아닌데다 크기 또한 작아서 그만한 수준의 방마력을 갖추진 못했다고 해도, 세계수에 일부러라도 불을 지르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일반적인 화재는 아닐 것이다.

    식생칸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한가하게 그런 것들을 고민하며 따져볼 시간은 그녀에게 없었다.

    불이 붙어 지탱하는 힘을 잃은 나뭇가지들이 지금도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쩌적…! 쿵!

    “크윽……!”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잔해에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버릴 터.

    그녀는 그로부터 튀어오르는 불씨를 팔로 막으며 다시금 루크를 찾는 목소리와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루크야, 어디있어! 들리면 대답해!”

    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걸까.

    지쳐서? 아니면 연기를 너무 마셔서인가?

    제발 잘못되었기 때문만은 아니길.

    그 순간, 불길이 조금 약한 방향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

    “루크니?!”

    놀람과 반가움에 시에나는 곧장 그 인기척이 느껴진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꽤 커다란 잔해가 길을 막고 있었지만, 시에나는 아랑곳 않고 그 잔해를 뛰어넘었다.

    이미 그녀는 그 정도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인기척을 내었던 사람은, 루크가 아니었다.

    “이건…….”

    그곳에 있던 건, 로브를 두르고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있는 아이였다.

    ‘어린아이…?’

    예상치 못한 아이의 등장에 그녀는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아직 이런 곳에 어린이가 남아있었던건가?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미 그 언데드의 난리통 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이 보통이었을텐데.

    물론 그녀라고 아이들이 전부 희생되는 것을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빠르게 그 아이를 향해 다가가 생사여부를 확인했다.

    ‘목숨은 붙어있어.’

    척 봐도 꽤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있었기 때문에 죽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주변을 치워놓은 흔적도 보이고……. 루크가 한 걸까?

    설마 그 흑마법사가 아이를 구하려고 이렇게 해뒀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는건…….”

    그렇다는 건, 아마 루크도 상황이 꽤 괜찮다는 거겠지.

    조금 편의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상황이 급하면 아이를 구한다는 여유도 부릴 수 없었을 테니까.

    만약 아이를 구한 것이 정말로 루크가 한 일이라면 분명 근처에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에나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아이를 다시 원래의 위치에 잘 내려두고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면 루크는 대체 어디에…….’

    그러자, 실제로 다른 인기척이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졌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싣고 흘러들어온 것이다.

    “……이건!”

    그것은 작지만 분명 루크의 목소리였다.

    화재현장의 소음으로 인해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루크의 것이 확실했다.

    “루크? 거기에 있니? 있으면 대답해!”

    그러나 루크가 바람과 소음에 가로막혀 시에나의 외침을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인지는 몰라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었다.

    불을 머금은 바람이 길을 막아 앞을 방해했지만, 그녀는 불길 너머로 얼핏 두 사람의 형체를 본 것 같았다.

    두 사람?

    설마 아직도 그 흑마법사와 대치하고 있는 걸까?

    시에나의 걸음이 조바심으로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마침내 시에나가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한 순간, 거기엔……. 

    기대했던 루크의 모습 대신, 모든것이 죽고, 부서지고, 불타고, 무너진 장소에서 한 남성의 목숨을 막 끊어내기 직전의 괴물이 있었다.

    “……!”

    등 한쪽에 불길하게 돋아난 반쪽짜리 피막날개, 머리 옆을 거의 덮을 정도로 날카롭고 무절제하게 솟아오른 유각들, 피에 젖어 번들거리는 비대칭적으로 두꺼운 팔과 손톱.

    그야말로 괴물의 형태로 빚어내기위해 온갖 것들을 마구잡이로 섞어버린 듯한 그 흉몰은, 동시에 너무나도 익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건 대체…….”

    그 모습에, 시에나는 문득 방금 전 엔진실에서 고든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시설에서 그 아이의 실험에 관한 문서를 봤어. 꽤나 흥미롭더군. 연구가 ‘니드호그’와 연관되어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무지막지한 생체병기와 관련된 것이었겠지.’

    ‘….그 아이가 연관된 문서엔 동일한 특성을 지닌 고양이를 양산하는 방법에 대한 것도 있더군.’

    ‘…뭐, 있을 법 하지 않아?  동일한 특성을 지닌 생물은 의학계에선 꽤나 유용할테니까….’

    설마 생체병기란건, 이런 걸 말하는 거였던 걸까?

    모든 것을 깨달은 시에나는 그 괴물의 형상을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루크, 정말 루크 너 맞아……?”

    “…….”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에겐 이미 충분한 대답과도 같았다.

    비록 그 모습은 괴물이라 칭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흘러내리는 금발, 단촐한 흑백조합의 의상,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만큼은 분명한 루크였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월 11일에 올린다고 말씀드렸는데, 주말에 갑작스런 일이 생겨서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신 2화분의 전개를 한편으로 줄이고 손을 좀 봐서 조금 더 빨리 진행되게 했습니다.

    ps. 실수로 공지에 올려서 수정하려고 보는데 공지로 올라간 회차는 카테고리 수정이 안되는 모양이네요…;
    재업로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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