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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7

    화염에 휩싸인 열차 내.

    마치 모든 마나를 자신의 현상으로 잠식 하려는 듯 더욱 강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돌연, 한 남성의 형체가 날아들었다.

    -슈욱, 쿵!

    그것은 흑마법사, 세이어였다.

    얼핏 멀리서 보면 바닥을 닦는 걸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있는 그는, 그렇게 넝마가 되어 추레하게 바닥을 구르면서도 웃고 있었다.

    “크으, 흐, 하하, 하하하하! 쿨럭, 커헉!”

    과연, 이게 바로 ‘그릇’의 진정한 능력……!

    복제된 육신에 이식한 불완전한 정신만으로도 이만한 용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니?

    이 힘이라면, 확신을 갖기에 충분하리라.

    기술은 완성되었고, 이번 계획은 성공할 것이다.

    자신에게 놓인 이 처참한 상황이, 그에겐 그간의 모든 것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으니까.

    “그 힘……!”

    신성 대항용 인공병기, 니드호그.

    그런 그녀가 자신을 해하려 걸어오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수백년에 걸친 그 연구의 결실이,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그는 불타는 열차칸의 광경을 보며 웃었다.

    “하하, 하하하! 좋아, 정말 멋져! 실로 멋진 힘이야!”

    다시 일으킨 수백의 언데드 군단을 마치 벌레를 눌러 죽이는 것처럼 무심하게 학살하고, 체내 저장마나의 추출속도 리미트를 해제한 ‘인형’도 마치 장난감처럼 유린하는 그 힘!

    그것은 ‘전투’라고 칭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무참한, 일방적인 폭력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세계수마저 불태우는 그 불길…….

    비록 자신의 손 안에서 일어난 결과는 아니나, 성공의 가능성을 본 것만으로 그에겐 충분하고도 충분했다.

    “아주, 아주 훌륭해, 크큭, 크하..학……! 쿨럭! 쿡!”

    즐거워하며 웃어제끼는 그의 목에서 돌연 붉은 선혈이 터져나왔다.

    좋은 순간이지만, 자신의 몸 상태는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실제로도, 이 신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는 입 안에 퍼지는 피의 맛을 느끼며 그렇게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는데.’

    흑마법사에게 죽음은 전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늘 죽음과 함께하는 그들은, 오히려 죽음 가까이서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타인의 고통만큼 자신의 고통 또한 무가치하며, 가치를 중시하는 흑마법사들은 무가치한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여기니 고통 또한 무의미하다.

    단지,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자신의 능력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

    어쩔 수 없나, 준비된 무대의 소품과 역할이 이것 뿐이었으니까.

    그 때, 불길 너머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어……”

    목소리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되는 듯한 강한 울림.

    그것은, 용에게서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드래곤피어였다.

    그러나 공포를 일체 느끼지 못하는 흑마법사에겐, 그 생물종의 깊숙히 내재된 포식자의 공포조차 그저 흥분의 기폭제에 불과했다.

    “크하하핫! 그래! 나는 여기야!”

    그는 목소리의 주인을 맞이하려 주변을 더듬으며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신체 대부분이 부러진건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뼈와 근육의 움직임을 이용해 목소리의 방향을 향해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자, 그 누군가의 모습은 그의 시야에 너무나도 명확하게 전해졌다.

    -타닥, 타닥…!

    불과 잔해 속에서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그 형체는 압도적인 열기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갖춰나갔다.

    “속임수는 끝인가.”

    마침내 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반쯤 용화한 여성의 모습.

    용의 힘을 해방한, ‘그릇’의 형태였다.

    오늘 서클의 과도한 혹사로인해 더이상 서클을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억지로 이끌어낸 힘이다만, 그 권능은 확실히 신을 죽이는 힘에 필적할 수준이다.

    신성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건, 신성에 상호영향이 가능하다는 것.

    즉, 동등한 위치에 있는 권능이라는 뜻이니까.

    루크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의식하며 약간만 이끌어내도 이정도인가……’

    물론 끝까지 꺼내려하지 않았던 만큼, 부작용이 없는 힘은 절대 아니다.

    본디 드래곤은 서클을 지니지 않는 생물이기에, 용의 힘을 끌어내려면 자신의 본질인 서클을 일부 깎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서클이 낮을 때엔 가끔씩 제어할 수 없게 발생하던 용의 특성들이, 서클의 성장과 함께 점차 제어하기 편해지고 희미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단점 또한 꽤 중요한 점인데……

    일단 지금으로서 체감되는 단점은, 아직 용의 힘을 이용한 마법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더러운 것에 직접 손을 가져다 대어야 한다는 점이다.

    루크는 그렇게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소멸시킬 작정으로 그의 목을 쥐어올렸다.

    -꾸욱……!

    “큭…….”

    몇분 전, 루크는 죽음의 권능이 회수되어 다시 깨어난 언데드를 정리하고, 구속구에 의해 조종되던 그 아이를 무력화시키고, 세이어의 흑마법과 지팡이를 부수고, 허튼 수작을 부릴 수 없도록 몸 곳곳에 숨겨둔 자해수단들도 전부 부수고 뽑아내었다.

    더이상 도망칠 수단도, 대항할 수단도 전부 잃은 그는 그저 무력하게 그녀의 손에 이끌려 공중에 매달리는 선택지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용의 팔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와도 같다.

    이제 남은 건, 그에게 영혼단위의 완전한 죽음을 선고하는 일이다.

    라이프베슬조차 버텨내지 못할 정도의 막강한 권능으로, 다신 부활할 수 없게 소멸시켜버리는 것.

    일반적으로 라이프베슬의 위치를 모르는 한 리치의 소멸은 불가능하지만, 7서클 이상의 권한과 용의 힘, 그리고 죽음의 권능 모두를 체득한 지금은 충분히 가능할만한 일.

    아마 그도 지금쯤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진정한 최후가 다가왔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그러는 와중에도 전혀 주눅드는 모습이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도 그는 도발적이었다.

    “좋아, 인정해. 네가 날 이겼어. 그런데, 이제는 어쩔거지? 이 다음 계획은 있나?”

    루크는 그의 말에 딱히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앞두고서도 참 한결같은 모습이라 우습기는 했다.

    마지막까지 이토록 일관적인 태도라니.

    아무리 흑마법사가 마법사중에서도 특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족속들이라지만, 질릴 정도이긴하다.

    삶에 충실하여 후회를 남길 것 없는 인생도 이토록이나 기분좋게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어, 루크는 그를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말했다.

    “내 다음 계획이 뭐든, 그대와는 상관 없는 일이 될거네.”

    -꾸욱.

    그 더러운 입에 아린세이아와 레니에를 올린 죄, 소멸로 갚아야 할 지니.

    그렇게 루크는 그의 심장에 차갑고 날카로우면서도 광포한 마나를 흘려냈다.

    그렇게 마나가 날뛰어감에 따라 그의 입과 코에서는 점차 피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으나, 그는 그 과정 속에서도 웃고 있었다.

    “크큭, 크후후…….”

    그렇게 그의 영혼 소멸작업이 완수되어가던 찰나…….

    “루크야…?”

    익숙한 목소리가, 루크의 신경을 돌렸다.

    —-

    고생 끝에 마침내 도달한 루크의 앞.

    그러나, 루크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저 모습은 분명 100년 전 세계수를 불태웠다는 괴물, 니드호그.

    그 모습이 된 루크는 이미 완전히 변해 있었다.

    “루크……. 너, 맞아?”

    이는 단순한 외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본질에 관한 질문이었다.

    루크가 가진 능력과 배경이 절대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진작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그녀가 봐온 루크의 모습은 그저 잘 웃고, 요리를 잘하고, 실수에 곤란해하기도 하고, 가끔은 토라지기도 하는 평범한 소녀에 불과했다.

    비록 자신이 그리 긴 시간을 봐온 것은 아니나, 그것이 루크의 본성이라는 것을 시에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

    마치,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무심한 시선.

    그 차가운 시선 속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분노도, 슬픔도, 하다못해 기쁨조차도.

    “루크야……!”

    마치 마음이 없는 완전한 살상병기로, 거듭난 것 같아 불안해졌다.

    누군가를 저토록 철저히 망가트리고, 죽여버리려고 하는 아이가 아니라.

    물론, 루크가 느낄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의 일들을 복수하고 싶겠지.

    당작에라도 죽여버려야 속이 시원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런 표정을 지어선 안되는 것이 아닐까?

    루크가 응어리진 감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복수를 선택한 것이라면 말릴 수 없겠지만, 저 모습은 마치 그저 ‘해야 할 일을 마쳐야만 한다’는 지친 사명감에 행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연 그 염원하던 복수가 끝난 후, 루크는 이전과 같은 아이로 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시에나는 루크가 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는 걸, 베이비시팅을 부탁받은 입장에서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루크, 멈춰! 넌 그를 죽여선 안돼!”

    시에나는 그렇게 루크에게 외치며 다가갔다.

    하지만 그 순간.

    -콰광-!!

    식생칸에서 번진 불이 열차의 압축마나탱크에 번져 폭발한건지, 돌연 열차가 굉음과 함께 흔들렸다.

    시에나는 가까스로 그 속에서 균형을 잡아내었지만, 그 폭발은 화재 이후 점차 약해지고 있던 열차의 외부 결계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말았다.

    그 영향으로 차내로 들어오는 차원폭풍이 더욱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크윽…!”

    파괴된 열차의 외벽 너머로 강한 차원폭풍이 불어닥쳐오는 바람에 이제는 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루크를 향해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제발…!”

    그러나, 루크는 그녀의 손이 자신에게 닿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결과는 결정되었고, 이 힘을 꺼낸 이상 다른 선택지는 더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그때, 그가 돌연 입을 열었다.

    “이거, 익숙한 상황이지 않아?”

    “……?”

    들려와선 안될 이의 목소리에 루크는 잠깐 의문이 떠올랐다.

    목이 졸리고 있을텐데, 대체 어떻게 말하고 있는거지.

    허나 그 답은, 꽤나 간단했다.

    그는 권능에 의해 영혼이 소멸되기 직전, 죽음이 확정된 순간 그것에 얽힌 틈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다잉메세지처럼.

    또 다른 속임수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한 루크가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겠다 마음먹자, 죽음의 순간을 한없이 늘린 것 같은 늘어진 시간 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전에도 비슷한 구도가 있었지 아마. 그래, 타워에서의 구도와 똑같아. 하하,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지만, 이건 너무 빈도가 잦군. 그래서 참 알기 쉬워.

    계획이란건 말이지, 원래 실패를 상정하고 짜여지는 법이야.

    네가 나타나기 전에, 우리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일이 얼마나 되었을 것 같나? 한번? 두번? 아니, 정답은 한번도 없었어. 오직 너만이, 우리의 계획 속에 유일한 변수였지.

    생각해봐, 불과 이 1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그동안 한번도 계획을 준비하다 죽은 적이 없던 손가락이 세개나 꺾였어. 지금 이 죽음까지 포함하자면, 4개가 너에게 죽임당한 셈이잖아.

    아무리 새로운 장비와 아티팩트, 사역마들로 밀어붙였음에도 완벽히 패배할 뿐이었어.

    이쯤되면 바보도 알겠지, 넌 우리를 너무 잘 죽여.

    물론, 그 이유는 알고있어.

    그도 그럴게, 너는 운명의 교차점에서 탄생한 존재니까.

    운명에게 버림받은 존재가, 온갖 운명적인 보정을 덕지덕지 두른 존재를 상대로 어찌 승리할 수 있을까?

    그러면, 이쯤되면 우리도 계획을 짤 때 우리의 죽음을 고려하지 않겠어?

    과연 운명의 비호도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계획에 의존해야만하는 우리가, 무려 이미 4번이나 있었던 일을 그렇게 무시했을까?

    사실 계획은 이미 완성되었어.

    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내가 계획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거라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 모든 사단은 그저 결과에 불과하지.

    그러니까 넌, 방금 네 손으로 우리의 계획에 마침표를 찍어준 셈이야.

    “뭐, 라고…?”

    그는 그렇게 영혼으로 건네는 마지막 말을 마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보라, 우리들의 변곡점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

    그것은 그가 자신의 죽음 속에 숨겨둔 마지막 주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식생칸은 폭발에 휩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주는 왜 이렇게 바쁘고 글이 안써지는지 모르겠네요.

    진짜 어제는 글을 써가지고 업로드하는 꿈까지 꿨을 정도입니다.

    사실 전부터 업로드만 하는 꿈은 종종 꾸기도했는데, 삽화그리는 부분부터 꿈이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정말 당황스럽군요.
    꿈에서 깼을땐 마치 작업물 세이브가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전개와 묘사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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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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