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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7

        

       불이 꺼졌을 때 방문하는 손님은 대부분은 불청객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말이다.

         

       처업.

       처억-.

         

       소리가 들려온다.

         

       바라지 않았던 존재가 내는 소리가.

       약속이 없음에도 방문한 존재의 발소리가.

       불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예의이거늘, 그러한 예의를 차릴 생각도 하지 않는 무례한 이가 내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 발소리는 물기가 잔뜩 젖어있는 발로 장판을 밟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끈적이는 점액질 속에 머리끝까지 빠졌다가 밖으로 빠져나온 이가 걸어 다니며 내는 소리 같기도 하였으며, 혹은.

         

       “진흙이군.”

         

       발에 진흙을 잔뜩 묻힌 이가 걸어 다니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비가 한껏 내린 산길을 찰박거리며 걸어 다닐 때의 소리.

       물이 빠져나가고 모습을 드러낸 갯벌에서 걸어갈 때의 바로 그 소리.

       흙 묻은 발로 남의 집을 더럽히는 무례한 작자가 내는 바로 그 소리가.

         

       그 소리가 난다.

         

       다만 기이한 점은 그것이다.

         

       비가 내리지도 아니하였고, 주변에 연못이나 호수가 있는 것도 아니거늘.

       대관절 지금 이 발소리를 내는 이는 어디에서 그런 진흙을 잔뜩 묻히고 왔는가?

         

       처업.

       처어억.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온다.

       진흙 발로 방을 더럽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찰박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방 어딘가에서 자그마한 불꽃이 보여온다.

         

       화륵.

         

       그 불꽃은 조용히 타올랐다.

       시장에서 사 온 아마(亞麻)로 만든 천에 새겨놓은 문양이 불꽃에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푸르른 불꽃이 천천히 피어오르며 진성이 새겨놓은 문양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불꽃은 불씨를 자그맣게 남겨 밤하늘에 흐릿하게 반짝이는 별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길을 그리며 문양을 드러낸다.

         

       그 문양은 호신을 위한 것이요, 인간이 아닌 존재를 쫓기 위함인 것이라.

       저 문양이 타오르는 것은 곧 이 장소에 발을 들인 이가 인간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고, 그 불꽃의 색이 푸른색임은 그것이 짐승도 초월적인 존재도 아닌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주물과도 같은 것임을 말하는 것인지라.

         

       그러니 진성은 저것의 정체가 주술로 만들어낸 물건임을 알았다.

         

       ‘진흙 묻은 발로 내는 소리. 두 발자국으로 걸을 때 낼 수 있는 소리. 짧은 보폭, 처진 듯하지만 힘이 찬 듯한 느낌. 거기에 가볍게 냄새로 맡아지는 진흙의 냄새와 고소한 냄새, 그리고 얕은 피의 향기.’

         

       주술임을 알았으면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저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은.

         

       ‘남미식으로 만들어낸 진흙 인형. 그것도 어린아이 형상을 한 것이로다.’

         

       진흙을 재료로 삼아 행하는 주술은 많다.

       진흙을 빚어서 어떠한 형상으로 만들어서 부리는 주술도 많다.

       진흙을 사람 형상으로 만드는 주술도 많으며, 어린아이 형태로 만드는 주술 역시 많다.

         

       하지만 진흙으로 어린아이의 형태를 빚어내었으면서도, 고소한 냄새와 피 냄새를 함께 풍기는 주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많지 않은 주술 중에서 많이 알려진 주술이라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니.

         

       그것은 바로 남미에 아즈텍이 존재하던 시절, 인신 공양을 밥 먹듯 행하던 사악한 주술사가 사용하였던 진흙 인형 조종 주술밖에 없다.

         

       ‘진흙 인형이라.’

         

       여러 씨앗을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들고, 거기에 인신 공양으로 바친 어린아이의 피를 섞어 반죽을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곱게 갠 진흙을 섞어서 어린아이 형태로 만들고, 해당 진흙 인형의 재료가 된 어린아이의 뼈로 만든 도구를 이용해 문양을 새긴다.

       그리고는 인신 공양으로 바친 어린아이의 가죽 일부를 잘라다가 바닥에 깔고 햇볕에 잘 드는 데에서 말리고, 피 냄새가 옅어질 때마다 어린아이의 가죽을 덮었다가 걷어내는 것을 반복한다.

         

       그것을 반복하면 옅은 피 냄새와 고소한 냄새, 진흙 냄새가 공존하는 어린아이 인형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형은 따로 관절을 조각하지 않았음에도 진흙에 생긴 금이 관절을 만들어내고, 다 말랐음에도 묘하게 말랑거리는 부분이 공존하여 진흙임에도 걸어 다닐 수 있게 된다. 거기에 재료로 사용한 어린아이의 머리뼈가 있다면 쉬이 인형을 조종할 수도 있으니, 참으로 기이하고도 기묘한 주술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피의 냄새는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주술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주술이다.

       정찰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함정이 의심되는 곳에 들여보낼 수도 있다.

       귀신을 빙의시킬 수도 있고, 이 인형을 재료로 다른 주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재료와 과정이 너무나도 잔인한지라, 이 주술을 원본 그대로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강구한 것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재료로 사용하는 방법이라.

         

       ‘돼지의 피를 사용했군.’

         

       이는 사람 대신에 돼지를 재료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옛적 이방인들은 남미에 있는 이들에게 사람을 잡아먹는 대신에 돼지를 잡아먹으라 하였으며, 태양을 움직이기 위해 끊임없이 인신 공양하는 대신에 모든 이들의 죄를 끌어안고 사라지신 존재를 널리 알리며 그분의 은총으로 태양이 이치대로 뜨고 지는 것을 반복할 수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남미에서 떠도는 사악한 그림자는 사라지고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음이라.

         

       그런즉, 사람 대신에 돼지 역시 사용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화르륵.

         

       진성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했다.

         

       저 돼지의 피와 씨앗 가루, 진흙을 반죽해서 만들어낸 진흙 인형을 부술지, 저 인형을 매개로 인형을 보낸 주술사에게 흑주술을 날릴지, 혹은 저 진흙 인형이 어떠한 전언을 가졌는지 확인할지-

         

       정말 잠시동안.

       아주 짧게 진성은 고민하였고.

         

       “수라트 알마이다에서 말하기를 너희에게 허락되지 아니한 것이 있으니 이는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잡은 고기가 아닌 것이라! 어찌하여 너희는 성서를 받은 자들의 음식이 허용되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음식들이 있으며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길들인 짐승과 새가 허락되고 있거늘 어찌 더러운 고기를 먹으려 하느냐?”

         

       결정했다.

         

       “아, 유일하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담을 흙으로 빚은 다음 한 방울의 정액으로써 그를 안정된 곳에 두었으며 그 정액을 응혈 시키고 그 응혈로써 살을 만들고 그 살로써 뼈를 만들었으며 살로써 그 뼈를 감싸게 한 후 다른 것을 만들었나니! 오, 불신자여! 신성모독자여! 어찌 허락되지 않은 것의 응혈이 그 고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실로 부정하고 모독적이니, 그분의 권능 앞에서 너는 감히 이곳을 더럽히지는 못할 것이니라!”

         

       진성은 주언(呪言)을 외우며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팔을 살짝 벌리고는.

         

       짜악-!

         

       크게 손뼉을 쳐 소리를 내었다.

         

       퍼어엉-!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밖에서 다른 소리가 났으니.

       그것은 물풍선이 터지는 것 같기도 하였고, 부패해 부풀어 오른 시체가 가스를 폭발시킬 때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혹은 힘껏 내려친 손바닥이 벌레를 터뜨릴 때 내는 소리 같기도 하였고, 그분의 권능이 임하사 천벌로써 부정한 것을 터뜨린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 진흙 인형은 터졌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말이다.

         

       ‘어찌 진흙 인형을 보냈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굳이 터뜨리지 아니할 이유도 없지.’

         

       진성의 결정은 간단했다.

         

       진흙 인형을 부수는 것이다.

         

       무릇 주술이라는 것은 사소한 것이 크게 불어나기도 하는 것.

       궁금하다고 진흙 인형을 내버려 두었다가, 그 진흙 인형이 좋지 않은 의도로 행해지는 주술의 매개가 된다면 진성은 몰라도 리세와 오딜리아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은 파괴하는 것이 안전 면에서는 가장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부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진흙 인형을 보낸 이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함인 것이라.

         

       이렇게 주술로써 진흙 인형을 부쉈으니 이제 저 진흙 인형 너머에 있는 주술사의 반응이 보일 때가 되었다.

         

       좋지 않은 의도로 인형을 보낸 것이라면 뒤를 따라 오는 것이 있을 것이요.

       좋은 의도가 있는 것이었다면 사과가 따를 것이요.

       단순한 대화가 필요한 것이었다면 진성의 존재를 깨닫자마자 모습을 드러내어 서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것이다.

         

       자.

       어느 쪽인가.

         

       진흙 인형을 보낸 구도자는 과연 무슨 의도로 호텔을 정전시키고 진흙 인형을 보낸 것인가?

         

       진흙 인형은 전령인가, 암살자인가?

         

       의도를 드러낼 때가 되었도다.

         

         

         

        * * *

         

         

         

       “부서졌. 군.”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서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서 있었고, 한 손으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흉흉한 기색을 풍기는 눈동자로 호텔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은 수염을 쉴 새 없이 쓰다듬었고, 한 손은 목을 긁었다. 가볍게 손톱을 세워서 목을 한 번, 두 번, 세 번. 빨간 줄이 다섯 개가 그어지고, 그렇게 그어진 줄에 다시 빨간색이 겹친다.

       줄이 겹치고 겹치고 또 겹치며 점차 안으로 파고든다. 안으로 파고든 손톱은 점점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며 벅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죽을 찢기 시작하고, 마침내 투명한 껍질이 벗겨지고 손톱에 핏물이 묻기 시작한다.

         

       아, 그 색은 목에 그어지는 줄이 몇 겹이 된다 해도 따라올 수 없을 짙은 빛깔이었는지라.

         

       그래서.

       그 짙은 빛깔을 보고 나서야 목을 긁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끄윽. 하필 알러지(allergy) 증상이 대가. 라니. 가렵고, 따가워 미칠. 것 같군. 흐으.”

         

       그는 그곳에 있다.

       그는 목에서 핏물을 줄줄 흘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호텔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더더욱 용서할. 수가 없겠. 어.”

         

       불청객이며.

         

       “아암. 그 책은 나의 것이니까.”

         

       원하는 것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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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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