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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8

    <588 – 맛있는 연계퀘스트(12)>

     

    이사장의 얼굴에선 미소가 그치질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저지르고, 타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흔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제국의 황제와도 수를 겨룰 정도로 대단한 남자가 작정하고 휘두른 칼을 누군가가 피했다.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비서실장은 이사장이 칼을 휘두르고도 성과를 내지 못한 적을 본 경험이 극히 드물었다.

     

    “교관들이 정확히 지고쿠해적단의 거점에만 모여서 모임을 하는 이유는 이쪽의 작전이 전부 새어나갔거나 읽혔다고 봐야 마땅하겠군요.”

    “이사장님이 비밀리에 꾸민 계획이라 하셨으니 사실상 읽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사장은 빠르게 소거법을 진행했다.

    선황은 아니다.

    그는 언더월드에 있으니까.

    교장은 아니다.

    그가 나선 것치고는 사태의 규모가 작다.

    만신의 대리인도 아니다.

    이번 사건은 신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북부대공 유다의 소행?

    그의 주변에 심어둔 장학생의 정보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남은 인물은 하나.

    오크노디.

    그의 발칙한 딸뿐이었다.

     

    “하하하. 귀여운 딸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었군요.”

    “오크노디의 역습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녀가 아니면 누구도 이 사태를 초래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손을 쓸 것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대응하고 있었군요.”

    “오크노디는 친구가 많습니다. 지고쿠만 정확히 노려서 방어하는 것은 운이 너무 따르지 않았습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추려보면 의외로 제가 노릴 수 있는 오크노디의 친구는 한정적입니다.”

     

    비서실장은 의아함을 느꼈다.

    전세계에 재단의 자객이 널려있는데 노릴 수 있는 인원이 어찌 한정되었단 말인가.

     

    “우선 오크노디가 중히 여기는 친구는 생각보다 인원이 많지 않습니다.”

     

    ━━━

    [오크노디의 친구목록]

    *1순위

    매스각키, 즈앙, 티토소가, 아카디아, 로지니

    *2순위

    지젤, 이사벨, 손오천, 도로시, 록펠, 싱, 아이린, 카시아, 페이퍼콤파니

    *3순위

    안데르센, 샌드쿠커, 뾰이, 도비

    *4순위

    지고쿠, 모브, 자쿠, 롯토, 카멜라, 이슈타르

    ━━━

     

    비서실장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보니 친구가 정말 많군요.”

    “아버지로서는 참 안심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티어 구분은 무슨 근거로 하는 겁니까?”

    “여러 가지 채점기준이 있습니다. 월간접촉빈도, 소통시간, 작전수행시간, 대화를 나눈 횟수 등등이 포함되어 있지요.”

    “…좀 극성맞은 아버지처럼 보이는군요.”

    “하하. 스토커라고는 안 하십니까?”

     

    자각은 있었구나?

    비서실장은 그래서 더 무섭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건 다 알겠는데 페이퍼콤파니는 대체 뭐 하는 놈입니까?”

    “하하하. 비서실장의 영민한 눈조차도 속일 정도로 감쪽같이 만들어 낸 인맥이니 이 일을 알려주거든 제 딸아이가 무척이나 뿌듯해하겠습니다.”

    “분명 1학년 명단에는 없었던… 2학년? 설마 학기 초에 신입생사냥에 나섰다가 찍혀서 오크노디에게 역으로 사냥당한 학생입니까?”

    “맞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학생이 오크노디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비서실장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저딴 게 친구면 간간이 이사장을 암살하려고 들이닥치는 자객들도 밤 친구라고 불러야 한다.

     

    “친구란 무엇입니까? 비서실장은 그 뜻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일반적으로는 오래 사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것이 비서실장의 친구론이라고 정의해 봅시다. ‘오래 사귄’이란 어느 정도의 기간을 의미합니까?”

    “못해도 일주일은 보아야 친구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마음이 통함은 어찌 알 수 있습니까?”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면 알 수 있습니다. 펜팔처럼 물리적 거리가 멀더라도 서신을 통해 소통을 한 시간이 길다면 그것도 친구가 됩니다.”

    “타인의 강요 없이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 공통된 목표를 수행하는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 또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답이 나왔군요.”

     

    이사장이 손가락을 세우며 하나 하나 짚었다.

     

    “월간접촉빈도, 소통시간, 작전수행시간. 사용한 언어만 다를 뿐, 모두 비서실장이 말한 친구의 구성요건과 일치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페이퍼콤파니는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 겁니까?”

    “그는 오크노디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극히 평범한 하급반 학생이었습니다. 신입생 사냥이 아니면 당장 형편이 어려울 정도였지요.”

     

    작년 학기 초까지만 해도 페이퍼콤파니는 분명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페이퍼콤파니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강의에서 놀라우리만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2학년 재학 도중에 조수제의를 받아 교수의 직속교관으로 거두어지기까지 했지요.”

    “…!”

    “그렇습니다. 제 딸아이가 그에게 지혜를 빌려주어 그를 요직에 앉힌 것입니다. 심지어 그 교수는 제국파 교수이기까지 합니다.”

     

    오크노디의 ‘방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밤 이후로 페이퍼콤파니는 갑작스럽게 하급반의 한계를 뛰어넘어 교관직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어촌에 추가로 나타난 ‘지나가는 나그네’ 사이에는 페이퍼콤파니도 속해있다고 하더군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 생각합니까?”

    “1년을 앞질러 내다본 심계…”

     

    솔직히 오싹했다.

    아버지와 딸은 닮기 마련이라더니.

    사람 다루는 솜씨까지 이렇게까지 기분 나쁘게 닮지는 말아줬으면 싶었다.

     

    “페이퍼콤파니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면, 노릴 수 있는 교우관계가 적다는 부분으로 돌아옵시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순위를 봅시다. 매스각키는 제국의 여제이고 즈앙은 목숨도둑 륭의 수제자, 티토소가는 남부신성도시국가연맹 소속 카넬레 시의 시장가문 막내딸, 아카디아는 피렌체 왕국의 몰락한 공작가의 후예, 로지니는 적색마탑의 적염학파 마스터의 대제자입니다.”

    “하나같이 쟁쟁하군요.”

    “그뿐입니까?”

    “노리기 힘든 배경이 있거나, 재단의 장학생이 밀려난… 밀려난?!”

     

    이사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 짐작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장학생은 언더월드와의 전쟁에서 대거 쓸려나갔습니다. 목숨도둑은 인간관계를 단절했죠. 카넬레 시는 도적길드 잔당의 비호를 받습니다. 아카디아 세비체의 가문도 장학생이 쓸려나갔죠. 로지니는 현 적색마탑에서 차기마탑주로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경호가 붙었습니다.”

     

    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2순위부터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릴 수 있는 기회는 모두 한 번뿐이며, 스스로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인물들이지요.”

    “하면 3순위와 4순위에도 숨은 기준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3순위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4순위는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공략할 수 있지요.”

     

    교우관계의 긴밀함은 개뿔.

    인질로 삼을 가치가 있는지, 협박하기 쉬운가 어려운가의 난이도를 측정한 공략리스트가 아닌가.

    비서실장은 웬일로 이사장이 사람 흉내를 내나 했다.

    이래야 피도 눈물도 없는 삼대거악답지.

     

    “그런데 피할 수 없는 함정이 저도 모르는 설계에 의해 회피되었습니다. 지고쿠조차 그럴진대 다른 학생들에게도 대비책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요.”

    “지고쿠가 그렇게까지 우선도가 떨어지는 인물입니까? 그녀는 크루즈선을 해적선으로 개조시키고 추후 북부에 개척될 새로운 해로의 주인이 되어 대해적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요. 우리 딸아이는 크라켄도 소환할 수 있습니다. 해양대괴수를 부릴 수 있는 아이의 지원을 받는 해적단과는 경쟁할 적수조차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고쿠가 저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제든지 ‘바꿔 치울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바꿔치운다…?”

    “아카데미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해적선이 아니라도 해상루트를 장악할 선장이 있다면 지고쿠해적단은 플랜A로 내세웠을 뿐, 대체 가능한 인력이지요.”

     

    오크노디의 친구목록을 다시 살펴본 비서실장은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카디아.”

     

    ━━━

    *1순위

    아카디아

    *4순위

    지고쿠

    ━━━

     

    어렸을 때부터 군함에 올라타서 실적을 거두기까지 했던 젊고 영리한 선장후보 아카디아.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고 충분한 지원만 주어진다면 지고쿠해적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아직 가르침을 주지도 못했는데, 이미 아비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사람을 다룰 수 있는 재능이.”

    “……정말 대단한 재능이군요.”

    “문제는 제 아이의 재능에 잡아먹혀 저의 계획이 무너진 탓에, 저의 ‘자동적인 성장기록’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

    “자동이란, 일이 진행되는 도중에는 그 편리함을 이용할 뿐이지만 일이 마무리되거든 그 성공과 실패의 유무를 뒤늦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개입하지 않은 사건을 아랫사람의 충성이나 충심을 이용해 자동으로 해결할 때 오르는 기능.

    이사장이 직접 설계한 계획이지만 그 계획을 실제로 추진한 인물은 그의 아랫사람이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그간 재단의 기획실에서 많은 일을 해주었던 집사였는데 이렇게 은퇴하다니.”

     

    재단 건물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래진 검은 세계수가 복도 가득 뿌리를 뻗었다.

    문이 부서지고 누군가가 내지르는 비명에 비서실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군요. 북부는 전략적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마왕군도 더는 이용 가치가 사라졌지요. 이 판에서 우리만 손해를 보고 내려가기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비서실장이 눈을 부릅 떴다.

    이건 암묵적인 지령이었다.

    기획실을 대신하여 그가 직접 주도하여 일을 추진하라는 뜻이다.

     

    “재단의 잔당이 버티는 동안 침공을 개시하라고 마왕군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비서실장의 판단을 믿습니다. 세계수가 품기에 당신은 너무 커다란 사람입니다.”

     

    너무 빨리 먹이가 되지는 말아라.

    친절한 격려의 이면에 담긴 무서운 속뜻에 비서실장은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해적 하나만 희생하면 넘어갈 수 있었다. 그걸 지키겠다고 재단과 척을 진 것은 너 자신이니,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여. 이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세계의 흐름이, 전란의 시대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오크노디 따위.

    일개 아카데미 학생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한 지역을, 나아가 세계를 도탄에 빠뜨릴 전쟁.

    인류와 마족의 오랜 평화가 깨진 것이다.

    아무리 다크프린세스라 불린들 오크노디는 11살.

    982년이 들어 나이를 더 먹었어도 12살이다.

    12살의 어린 천재에게 이미 세계를 무대로 대국을 운영하는 젊은 천재 이사장의 수는 무겁다.

     

    ‘속수무책으로 밀린들 어쩔 수 없겠지.’

     

    그저 가여울 따름이다.

    그렇게 여겼던 시절이 비서실장에게도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카데미에서의 급보입니다. 오크노디가 성녀연합의 출범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현재, 제국과 남부신성도시국가연맹, 피렌체 왕국이 출범식에 사자를 보내겠노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륙을 도탄에 빠뜨릴 위기에 맞추어 벌어진 성녀연합의 출범선언.

    공포에 떨며 흔들려야 할 인류의 권력자들의 모든 어그로가 성녀연합에 꽂혔다.

    완벽한 타이밍에 맞춘 선언으로 인해 본래 열려야 할 세계각국 수뇌부의 마왕군 대책회의가 성녀연합회 출범식으로 옮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응수를 했어.’

     

    그 이사장에게.

    오크노디가.

    전율이 그를 휩쓸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동기능 열일하는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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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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