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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8

    -짹, 째잭…

    따스한 느낌이 얼굴에 드리우고, 향긋한 내음이 은은하게 코끝을 간지럽히며, 기분좋은 새소리가 너무 시끄럽지 않게 들려오는 아침.

    시에나는 마치 백수가 되고나서 처음으로 늦잠을 자던 때처럼 침대 위에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걱정도, 근심도 없는 평온한 하루.

    영원히 이러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건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이봐, 이봐! 정신이 좀 드나?”

    잘 자고 있었는데 누구야, 대체.

    시에나는 흥분한 듯 소리치는 남성의 목소리에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으응…….”

    간만의 단잠에서 강제로 일어난 것에 불만스러운지 시에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그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깨운 방해꾼의 그 잘난 낯짝이나 좀 보려는 심산으로.

    그런데 자신을 깨운 것은 다름아닌 고든이었다.

    그는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깨어나서 다행이야. 이거 정말 놀라운걸.”

    “네? 그게 무슨…….”

    “조금만 있어보게, 여기 사람을 불러올테니까.”

    그는 곧 그렇게 말하며 방에서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왜 저러지? 난 그냥 좀 자고 있었던 것 뿐인데.

    그때, 시에나는 이 상황에 어딘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뭐지, 이 상황. 데자뷰인가?

    그것을 의식한 순간, 시에나는 강한 두통을 느꼈다.

    “으윽, 아아 머리야…….”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러니까…….

    시에나는 천천히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나가기 시작했다.

    불타고있는 식생칸.

    루크는 자신에게 실험을 자행했던 흑마법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것이 루크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고 생각해 말리려 했지만, 너무 늦었고…….

    복수를 마치고 나서 너무 지쳤는지 루크는 용의 힘이 풀리고 정신을 잃고 말았지.

    이후 자신은 그런 루크를 다치지 않게 받아내었지만, 갑자기 열차에 널려있던 시체들이 기묘한 소리와 함께 부풀어오르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나는…….

    루크를 덮어서 그 폭발을 대신…?

    “어? 뭐야, 나 어떻게 살아있지?”

    분명 내 몸이 산산조각나서 사방에 흩어진 걸 눈으로 직접 봤는데?

    이후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았지만, 머리가 꽤 짧아진 것 말고는 이상한 점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사라진 부위는 커녕, 잘린 곳을 봉합한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며칠 전에 칼에 찔려서 당한 흉터까지도 말이다.

    대체 어떻게?

    시에나는 대체 왜 고든이 그런 반응이었는지 깨닫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 꿈꿨나?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시에나는 문득, 한가지 생각에 도달하고 말았다.

    “……아냐, 잠깐만.”

    어쩌면 살아있는 게 아닐수도 있어.

    사실은, 나는 이미 죽어서 천국에 온게 아닐까?

    봐, 창 밖의 풍경도 너무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워보이잖아. 

    게다가 이 좁은 방 안에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는게 단 하나도 없어.

    오두막의 나무냄새, 기분 좋은 꽃향기, 엄청나게 폭신하고 부드러운 침구류…….

    천국이 있다면 마치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벽한 곳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이 죽은 건 납득이 간다.

    그렇게 생각하니 받아들이는 것은 빨랐다.

    “그래, 나는 죽었구나.”

    그래, 여기는 천국이 확실하다.

    고든도 그 폭발로 다 같이 죽어서 천국에 온건가?

    그러면 루크는?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일 줄 알았는데…….

    “아니, 걔는 여기 없는게 좋은 거잖아.”

    천국에 있다는 건, 죽었다는 소리니까.

    그럼 보이지 않는다는 건, 살았다는 소리겠지?

    참 다행이다, 내가 대신 죽어서.

    적어도 예르나에게 면목 없을 일은 없겠네.

    “으음.”

    시에나는 괜스레 허탈한 기분으로 볼을 긁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거 의외네.

    아, 그러고보니 서드도 보이지 않던데.

    혹시 그쪽도 나와 똑같이 서드를 감싸고 대신 죽은건가?

    뭐야, 그 사람도 꽤 괜찮은 어른이었잖아.

    그러면 어찌어찌 천국에 있을 자격은 될지도.

    그렇게 나름대로 상황을 납득하며 중얼거리던 순간이었다.

    -달칵.

    “깨어났다고 들었다.”

    “……?!”

    시에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의 모습에 경악하고 말았다.

    왜냐면,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루크였으니까.

    “아, 안돼……!”

    시에나는 마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듯 쓰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루크는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와 부축하기 시작했다.

    “이런, 괜찮은건가?”

    “전혀 괜찮지 않아, 대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루크가 여기에 있다는 건…….

    말도 안돼.

    결국 루크도 죽어버린건가.

    이렇게까지 위험해질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런 계획에 어울려주는 게 아니었어.

    루크까지 죽어버리다니…….

    이러면 내가 나중에 예르나 얼굴을 어떻게 보라는 거야…….

    헌데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하는 루크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 더욱 오열하고 말았다.

    “흐아앙–!”

    하지만 갑자기 통곡하기 시작한 시에나의 반응에 루크의 모습을 한 그녀는 어리둥절하며 당황할 뿐이었다.

    “나 참, 이 여성이 대체 왜 이러는건지 모르겠군, 부활이후 정신이 아직 온전치 못한건가…….”

    “흐어어…엉…?”

    그리고 그렇게 당황스러워하는 그녀의 중얼거림에 시에나는 그제서야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정말 루크라면 자신에게 ‘이 여성’이라 지칭할 리가 없으니까.

    “쿨쩍, 잠깐만…….”

    그리고 자신을 부축하는 루크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던 시에나는, 어딘지모르게 루크의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단 걸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분명 외모와 특징이 전부 루크와 똑 닮았지만 전반적으로 풍기는 의상 분위기나, 체형 등에서 루크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말투도 루크보다 어딘가 좀 딱딱하다는 느낌이고…….

    시에나는 폭주하던 감정을 그제서야 어느정도 추스르며 물었다.

    “당신, 루크가 아니군요…?”

    마침내 알아차린 듯한 시에나의 모습에 루크를 닮은 그녀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휴우,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모양이군. 다행이야, 상당히 난감했는데.”

    그렇게 가까스로 시에나에게서 벗어난 그녀는 뒤늦게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소개가 늦었군. 소개하지, 난 케이트. 이 시설, ‘아린세이아’의 관리자라네.”

    “케이트…?”

    —–

    아린세이아를 사후세계로 착각한 시에나의 촌극 이후, 그녀는 케이트에게 루크가 있는 곳을 안내받으며, 자신에게 있었던 일과 이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마지막 순간, 그대는 고맙게도 제 한 몸을 바쳐 루크의 몸을 지켜냈네. 그리고 그 때 마침 워프가 끝났고, 나는 이미 그대들이 열었던 워프의 꼬리를 추적해 그대들을 잘 회수해 이곳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가능한 방식으로 되살려낸거네. 요컨대, 그대는 일단 사후세계 같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세. 아주 잘 살아났어.”

    “……..”

    그러니까 여긴 천국이 아니라 ‘아린세이아’라는 이름의 비밀 연구시설같은거고, 그녀는 이 시설의 관리인이라는 얘기지.

    자신은 그녀의 마법과 기술로 친히 ‘부활’을 했다는 것이고.

    대체 정확히 어떤 원리로 자신을 부활시킨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시에나는 자신이 했던 모든 착각들이 매우 부끄러워졌다.

    아마 지금의 대화주제를 돌리지 않으면 부끄러움으로 다시 죽을 수도 있으리라.

    그나마 다행인건, 피부가 어두우면 얼굴이 빨개진 것도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에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애써 부끄러움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주제를 돌렸다.

    “케이트. 당신이 누군지는 파일에서 봤어요. 루크의 유전적 친어머니시라고…….”

    시에나의 말에 케이트라 불린 여성은 꽤나 당황스러워하며 볼을 긁었다.

    “친어머니…, 뭐, 일단 그런 역할을 맡기는 했다만…….”

    ‘어머니’라…….

    왜 다들 자신을 주인의 어머니로 알고 있는 거지…….?

    확실히 레니에가 가기 전에 분명 그런 식으로 던져두고 가기는 했지만, 아직도 자신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건가?

    그 부분에 관한 명령은 딱히 받은 게 없어서 아직 명확한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에 뭔가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 얽혀있을거라 짐작한 시에나는 더욱 캐묻지 는 않기로 했다.

    누가 봐도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게 뻔한 이야기를, 구태여 입 밖으로 내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취미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아, 네. 알겠어요. 당신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죠.”

    “…이해해줘서 고맙네.”

    어색한 침묵 이후.

    시에나가 그 숨막힐듯한 침묵을 어떻게든 깨고 싶었던 건 시에나였다.

    “그러면, 제가 타워에서 봤던 테러리스트도 바로 당신이었다는 얘기군요.”

    “일단은.”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죽었던 게 아니었다니까.

    일단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원수가 되는 셈이지만, 굳이 그걸 여기서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죽을뻔한 자신을 구해준 사람 앞에서 당신이 저를 실직자로 만들었어요하고 말해봤자 자괴감만 들 뿐이고.

    시에나는 당장에라도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사실 지금은 그보다 먼저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면 저한테 했던 그 말은 무슨 뜻이었죠?”

    “어떤 말을?”

    “마지막에 저한테,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역시 경찰 내부의 배신자를 조심하란 이야기였나요?”

    “…….”

    시에나의 추측에 케이트는 입을 다물었다.

    당시에 그 조언을 건넬 것을 추천한 건 레니에였고, 자신은 그저 그 말을 전한 것에 불과하니까.

    따라서 그 때의 레니에가 정확히 어떤 생각으로 그런 명령을 내렸던 건지는 모른다.

    그녀가 그 이유를 말해준 적도 없고, 자신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래도 감히 추측하자면, 분명 레니에는 그녀에게 그런 조언이 필요하리라는 근거가 있었을 것이며, 아마 그 근거는 아직 반도 해석하지 못한 암호화된 루체스트 파일에 들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조언은 전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법.

    아마 레니에도 그 부분을 알고 그렇게 조언할 것을 요구했을 테니까…….

    뭐, 그녀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또한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그런 조언이 도움이 좀 되었으련지 모르겠군.”

    “당신의 조언이 아주 도움이 안 되진 않았어요. 제가 좀 둔해서 늦게 알아들어서 그렇지.”

    “그런가.”

    그렇게 서로 적당히 얼버무리기만 하는 대화가 끝난 후.

    시에나는 문득 주변을 다니며 분주하게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 곰인형들과 갑옷들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그나저나, 여기 꽤 멋진데요. 루크가 그  많은 인형들을 다 어디서 났나 했더니, 다 당신의 공간에서 나온 거였군요.”

    시에나의 감탄섞인 혼잣말에 케이트는 문득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응? 내 공간이라니?”

    “아까는 당신이 관리자라면서요? 당신의 공간이 아니었나요?”

    “아니 나는 그냥–”

    케이트가 무언가를 해명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 케이트, 시에나! 여기일세, 여기!”

    “루크!”

    갑작스레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시에나는 곧장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응……?”

    뭔가, 루크가 좀 작아진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너무 성급하게 썼던 것 같아서 이전화를 다시 읽어보니 불필요한 설명과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가 눈에 밟혀서 조금 손보고 다듬느라고 정작 새 회차에는 집중하지 못했네요.

    진짜 다신 전개수정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신경쓰여서 더 바로잡기 어려워지기 전에 바꾸는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대충 바꾼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용으로 변하면 마나 운용이 조금 불편해진다고 금방 언급해놓고 상당히 고난이도의 마법인 지식열람을 대놓고 쓰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지웠고요,

    시에나가 와서 한게 없지않나? 얘 그래서 왜옴?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랑, 서로 오해하는 부분은 진짜 글자수 늘리려고 수써놓은 게 대놓고 보여서 부끄러울 지경이라 삭제했습니다.

    대신 추가로 시에나의 심리 상황을 조금 간략하게 집어넣어서 개연성을 높이고, 시에나가 루크에게 도움받는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 입장으로 전개를 살짝 체인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차의 폭발이, 처음부터 세이어의 계획이 그런 식으로 설계되어있었다는 게 더 깔끔하고 잘 나타는 방향으로 다듬었습니다(사실 이게 원래 의도였습니다. 올릴 땐 몰랐는데, 다시 읽어보니 루크가 또 방심을 했구나!가 되어 있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수정했지만, 사실 작가의 말을 다 읽으셨다면 별로 다시 한번 읽고 넘어가야 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시에나가 그 상황에서 루크를 구했다 정도만 이해하고 봐주시면 됩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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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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