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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9

        

         

       방이 흔들린 것은 고작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전조라고 하기조차 부끄러울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고작 방에 지진이 난 것 같은 환각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공격이 될 수 있겠는가?

       주술을 파훼함으로써 주술사가 공격하려는 곳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는데, 어찌 고작 이 정도로 공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말 그대로 ‘고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조금 전 일어났던 것은 정신을 뒤흔들기 위한 자그마한 수작에 불과한즉, 너희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을 해야 할 것이로다.”

         

       제대로 공격을 가하기 전 자그마한 이득을 얻고자 하는 행위.

       조금 전의 진동은 그러한 의미이기도 하였으며….

         

       쿠구궁.

         

       …곧 공격이 일어날 것임을 알리는 의미이기도 했다.

         

       드드드드.

         

       다시 한번 방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까 지진을 연상케 했던 환각보다는 명백하게 약한 진동.

       하지만 무시하기에는 힘들 정도의 진동으로.

         

       그것은 마치 거대한 존재가 방을 손아귀에 움켜쥔 뒤 뜯어내려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격렬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폭력적이었고, 적의와 악의가 분명히 섞여 있었다.

         

       진동이 다 같은 진동이지 어찌 진동에 적의와 악의가 섞인 것이 구별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라 하겠다.

         

       “공기 자체가 바뀌기 시작하는구나.”

         

       아니.

       진동뿐만이 아니다.

         

       진성과 리세, 오딜리아가 있는 이 방 전체가 그러했다.

         

       조금 전까지는 화려하고 포근했던 공간이었건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공간 자체에 적의와 살의가 묻어나오기 시작한다.

         

       포근했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분위기가 날카롭게 변한다. 마치 그들이 불청객이라도 된 것처럼 이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배경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던 가구들의 날카롭고 위험해 보이는 부분이 특히나 눈에 잘 들어온다.

       덩달아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괜스레 주위의 날카로운 것이나 천장에 매달려 있는 낙하물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경계가 커진다. 그쪽으로 감각이 자연스럽게 쏠리게 되고,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이 후끈하면서도 음산한 날카로움이란!

       정글에서 맹수가 그늘에 숨어 쏘아본다 한들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건만.

       어찌 이 끔찍한 공간은 사악한 존재의 아가리에 들어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러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가?

         

       “공간 자체에 작용하는 주술이라…. 이 정도면 의식을 해야 하는 수준일 터인데.”

         

       진성은 그리 중얼거리며 배타적으로 변한 환경을 살펴보았다.

         

       친화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곳곳에서 적의가 묻어나온다.

       밖에서 비친 불 때문에 어슴푸레하게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던 아까와는 달리, 방이 능동적으로 그들의 눈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방 전체에 짙은 어둠을 내리깔아버린다. 그 덕분에 방은 한 치 앞조차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깜깜한 와중에도, 신경은 곳곳으로 쏠린다.

       책상의 끄트머리, 불이 켜져 있을 적 화려함을 뽐냈던 전등들, 방에 묵는 귀빈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곳곳에 걸려있던 장식품들의 날카로운 부분들까지.

       그 모든 부분은 바로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든 어둠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낸다. 기이하게도 그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을 똑바로 확인하기 위해 뚫어져라 쳐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칼날을 보여주었다가 다시 숨어들어 가는 암살자를 보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더더욱 신경을 갉아 먹게 만드는 것이었다.

         

       “보자. 공간 자체에 규칙을 부여하는 형태인 듯한데….”

         

       찌르는 듯한 적의와 살기로 감각을 쉽게 활용할 수 없게 만든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위험물을 지속해서 보여주며 정신력을 갉아먹고, 위기와 위험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이 공간 안에 있는 이들의 정신 줄은 툭 건들면 끊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당겨질 것이오, 위기감과 위험에 대한 경계심은 그 역치가 달라져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교묘한 수작이었다.

         

       이것은 주술이라기보다는 암살을 업으로 삼는 무인들, 혹은 군인들이 주로 하는 짓인데-

         

       아마도 이 주술을 사용한 이는 암살자나 군인과 연관이 있는 이 같았다.

         

       아니, 연이 없을 수도 있기는 했다.

       극에 달하는 모든 것은 통하는 법이라.

       머리를 짜내면 생각해낼 수 있을 정도의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 주술을 사용한 주술사는 주술로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신주님. 신력으로 불을 밝힐까요?”

         

       “아니. 그 어떤 방식으로도 불을 켜지 말도록 하거라.”

         

       그렇기에 진성은 리세가 불을 켤지 질문을 했을 때,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로 불을 켜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주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진성의 머리에 수많은 주술이 스치고 지나간다.

       공간 자체에 작용하는 주술들, 그 주술들을 비틀어서 행하는 방법들, 그 주술의 범위 안에 들어있을 때 특정한 행동을 트리거로 작동시킬 수 있는 다른 주술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진성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진성은 그 많은 주술 중 어떤 것이 사용되었는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였다.

         

       하지만 진성의 고민은 헛된 것이었다.

         

       철-퍽.

         

       젖은 진흙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정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 그 주술이로군.”

         

       찰박거리는 소리.

       아까와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듯한 그 소리.

       갓 물이 빠져 수분을 한껏 머금은 진흙을 가지고 놀 때의 바로 그 소리.

       손에 달라붙었다가 땅바닥에 철퍼덕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고, 쏟아진 그 진흙을 다시 그러모은 뒤 토닥토닥 두들겨서 형체를 만든 뒤 손으로 다시 집어 올리는 바로 그 소리.

         

       그 소리가 바로 정답으로 인도하는 가장 큰 힌트이며, 동시에 정답 그 자체였다.

         

       “순수한 공의(公義) 주술 의식이로군.”

         

       ‘순수한 공의’.

       ‘신성모독자 처형 주술 의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바로 그 주술 의식임이 분명하다.

         

       진성은 그리 확신했다.

         

       순수한 공의 주술 의식은 이름과는 다르게 꽤 살벌한 주술이었다.

       반드시 한 사람 이상이 죽어 나가는 ‘인신 공양 주술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주술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유일신을 모독한 자’를 재료로 발동한다.

       주술 의식이 시작되면 신성모독자는 주변의 온갖 저주와 액을 끌어모으게 된다.

       마치 세상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죽었다는 성인처럼, 일정 지역의 모든 저주와 액을 자기 몸에 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신성모독자의 몸은 일종의 폭탄이 되어간다.

       자신을 죽이기 충분한 수준이 되었음에도 저주와 액을 끌어모으는 것은 멈추지 않으며, 종국에는 마을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준의 끔찍한 수준이 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러한 저주와 액을 담은 이의 몸은 그 자체가 주물이나 다름이 없다.

       액막이나 정화 의식 없이 죽는다면 사방에 부정을 흩뿌릴 것이요, 때가 좋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귀신으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저주와 액의 수준에 따라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준의 귀신이 되어 곳곳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사체는 역병을 퍼뜨리거나 좋지 않은 것들을 끌어들이는 부정한 것이 되며, 몸에서 흐른 피는 땅을 오염시키고 농작물이 쉬이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끌어모았던 저주와 액의 수준에 따라서 아예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게 만들거나, 심한 경우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는 것도 문제다.

       살아있는 한, 주술 의식이 계속되는 한 ‘신성모독자’는 저주와 액을 한없이 끌어들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완성된 것은 어제보다도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끔찍할 테니까.

       나중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 수준이 될 것이 분명할 테니까.

         

       게다가 이 주술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한 이를 끌어내어 처형한 일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신성모독자를 처형하지 않으면 이 신성모독자가 있는 그 장소에, 이 신성모독자가 속해있는 그 공동체 역시도 피해를 보게 된다.

       이를 ‘아도나이의 진노’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신성모독자는 죽어야만 했다.

       그것도 이 주술 의식과 관계없는 곳에서 말이다.

         

       신성모독자를 처형한 일화에서 진영 밖으로 끌고 가 온 회중이 돌을 던져 죽였듯, 주물이 되어버린 ‘폭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죽어야 한다.

       주술 의식이 행해지는 곳의 땅이 오염되지 않도록 의식의 범위 바깥으로 끌고 간 뒤, 멀리서 돌을 계속 던져서 죽인다. 그렇게 된다면 주술 의식이 행해진 공동체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뿐더러, 주변 지역에서 저주와 액을 다 끌어갔으니 오히려 순수한 상태가 된다.

         

       그래.

       이 ‘순수한 공의’는.

       사람을 재료로 사용하는 액막이 주술이며, 인신 공양 의식이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은 진흙으로 빚어져 만들어졌다고 하였으니, 진흙으로 빚어 사람의 형상을 만들면 그것으로 사람을 대용할 수 있음이라.’

         

       그리고 지금 호텔에 행해진 의식은 이 ‘순수한 공의’의 중요한 재료인 ‘신성모독자’를 진흙 인형으로 바꾸어서 실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

         

       “진흙 폭탄이라. 이거 참.”

         

       밖에, 진흙으로 만들어진 폭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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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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